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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07화 (20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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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같은 걸 끼얹나…? -->

"코치님, 이러면 저희도 후반 노리는 게 낫겠죠?"

진행되는 네 번째 세트의 밴픽.

삼선 블루의 부스 안은 긴장감이 맴돈다.

상대가 택할 조합에 따라 실시간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다행히 예측이 되는 부분이다.

삼선 게임단은 신흥 강호.

제대로 된 코치진을 완비하고 있다.

대비책 또한 완벽에 가깝게 갖췄다.

첫 번째 세트는 빗나갔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세트에서 입증했다.

그런 만큼 선수들의 신뢰 또한 두텁다.

괜히 밴의 방향을 수정했던 게 아니다.

"수비적으로 후반에 가서 원딜 캐리를 도모하려는 속셈이야. 우리도 알파카 중심으로 가자."

수석 코치 최명욱의 주도 하에 밴픽이 착착 의도대로 흘러간다.

힐라카는 원딜러를 보조하는 챔피언.

가져갔다는 건 후반 지향이다.

이전 세트들과 달리 레전설의 몰아먹기 전략도 아니다.

평범하게 한타에 힘을 줘 싸우겠다는 심산이다.

블러디체리라는 픽이 확신을 자아낸다.

삼선 블루로선 바라지 마지 않던 구도.

초중반에 변수만 없으면 자신들이 이긴다.

레전설, 잘하기는 하나 후반에 갈수록 솔로 캐리는 힘들어진다는 게 앞선 세트에서 증명됐다.

그렇기에 캐리형 원딜러를 하려는 거겠지만 원딜이라면 삼선 블루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삼선 블루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다.

알파카가 마치 낙타과에 속하는 포유류처럼 목청 높여 울부짖는다.

"이길 수 이씀미다 부시앙 안함미다 토이치 주심시오!"

세 세트 연속 부시안을 픽하며 안정감을 지향했다.

리메이크 이전의 부시안.

무난함의 대명사로 마치 고르키 같은 픽이었다.

물론 강력한 라인전을 기반으로 픽의 특징을 살렸다.

문제는 레전설에게 계속 따이며 굴욕을 맛보았다는 부분이다.

평소에는 초식 동물처럼 온순한 알파카지만 원딜러의 자존심은 둘째 가라면 서럽다.

KTX 롤러코스터 B팀의 코돈빈을 괜히 원수처럼 여기는 게 아니다.

이게 다 프로 원딜러들간의 신경전이다.

심지어 레전설이 원딜로 와버렸다.

"그래, 자신 있는 거 해. 알파카 성장에 힘 싣는 방향으로 가자. 남은 건 다대기인데……."

오늘 경기력 한창 날이 선 다대기다.

당연히 걱정 따위 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픽.

야흐오가 밴이 된 상황이다.

자드를 택했다간 자칫 자체 카운터를 맞을 수가 있다.

예로부터 경기의 반은 밴픽.

어떤 픽을 할지 골치가 아파지는 상황에서.

"제가 나이즈 하겠습니다."

"아~! 그런 수가 있었지. 전통적인 카운터기도 하고 좋은데?"

윤성환 코치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친다.

나이즈는 최근 메타에서 떠오르는 1티어 탑솔러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선픽하기에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카운터를 맞거나 갱을 당하면 힘을 못 쓴다.

라인 스왑에도 약해서 선픽하기 껄끄럽다.

미드로 가져온다면 리스크가 적어진다.

나이즈는 다대기가 애용하는 시그니처 픽.

장군이라는 별칭이 나이즈로부터 유래됐을 정도다.

물론 미드에서는 라인전 능력이 약해서 잘 안 쓰인다.

그런데 상대가 블러디체리라면 상성에서 오히려 우위다.

'초반이 약간 고비가 될 수 있긴 하겠지만…….'

하도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은 상황이다.

선수들이 알아서 피력해온다면 좋은 일.

진지하게 고려를 해보자 약점이 없진 않다.

최근 나이즈가 괜히 탑으로 쓰이는 게 아니다.

챔피언 특성상 초반 주도권이 없다.

그리고 갱킹에 특출나게 약하다.

그럼에도 코치진은 사인 콜을 내렸다.

오늘 다대기의 컨디션이 무척이나 좋다.

상대 정글러가 위협이 되지 않는 만큼 충분히 할 만하다.

'근데 쟤네 토이치도 안 가져가고…… 남은 원딜 뭐하려고 하는 거지?'

하도 생각할 게 많은 상황이다.

워낙 당연했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상대가 바로 그 파프리카 프릭스, 그리고 레전설.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다.

잠잠했던 나머지 방심을 했던 걸지도 모른다.

상대의 마지막 픽을 본 삼선 블루의 코치진은 입술이 굳었다.

"지트 뭠미까! 이김미다! 지지 안쑴미다! 싸우게씀미다!"

동시에 알파카가 울부짖었다.

기형적인 원딜도 어느 정도여야지.

스킬샷이 중요한 봇라인에 직트가 왔다.

'힐라카의 마나 보급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기는 한데……'

어째서 굳이 직트를?

떠오른 의문을 분석할 만한 시간이 없다.

당장 게임이 시작되려는 상황이다.

선수들과 코치들이 피드백을 서둘러 주고 받는다.

결론은 상대의 노림수에 휘둘리지 않는다.

알파카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어디 가서 피지컬로 밀리지 않는 선수다.

그 장점을 극대화시켜 공격적인 라인전을 살린다.

상대가 레전설이라도 꿀릴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여차하면 힐라카를 끌어서 죽이면 되고.'

훅 들어온 상대의 변칙 픽에 어질했던 것도 한순간.

곱씹어볼수록 밀릴 것이 하나 없다.

미드면 모를까, 봇 라인전은 서포터 역량에 크게 휘둘린다.

제아무리 레전설이라도 고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하뜨의 쓰레쉬라면 보여줄 만하다.

이윽고 시작되는 네 번째 세트.

예측과는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 * *

조금이 아니라 많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물론 어처구니 없는 짓 한두 번 보여주지 않았다.

파프리카 프릭스는 독특하며 신기한 매력이 있다.

그런 만큼 어지간한 건 놀라면서 보려고 생각을 했는데…….

〈물론 어떤 선택이라도 사용되기 나름입니다. 약간의 효율 차이가 있을지언정 특정 상황에서는 더 좋을 수가 있거든요.〉

아이템트리에 정답은 없다.

스펠이나 챔피언 선택도 마찬가지다.

해설가는 설사 의아하더라도 선수들의 판단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이를 테면 카서트의 조냐는 좋은 선택인지 의문입니다. 라바둔의 죽음투구를 가는 게 더 나아 보이거든요!

이런 식의 말을 하는 건 선수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끼리의 혀가 간지럽다.

〈여러분은 지금 블러디원딜을 보고 계십니다. 픽의 의도는…… 경기를 통해 보여줄 거라 믿습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간다.

어차피 레전설이다.

-어련히 보여주겠지

-블러디도 피흡 가능하니 원딜인가?

-ㅇㅇ스킬도 원거리니 원딜 맞자너ㅋㅋㅋ

적어도 야흐오 원딜에 비하면 양반이다.

정말 그러려니 납득하는 분위기.

레전설이라는 세 글자는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힐라카에요. 스펠을 헷갈려서 든 건 아닐 거란 말이죠……?〉

진짜 문제는 오히려 이쪽이다.

가만히 있는 힐라카는 대체 왜?

힐라카는 하비의 모스트 챔피언이다.

지금까지 나쁘지 않은 활약을 선보였다.

가장 안정적이라며 띄워주기까지 한 마당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측면의 강조다.

-힐라카 나 살자고 보호막 들었네ㅋㅋㅋㅋㅋ

-레전설이랑 제대로 파토났죠?

-싸운 거 맞다니까. 나 혼자 살겠다는 마인드~

탈진이나 점화를 안 드는 건 최근 메타에서 종종 보인다.

후반에 갈수록 원딜러의 생존력이 대두되기 때문이다.

서포터가 힐을 들고, 원딜러가 보호막을 들기도 한다.

〈그 반대는 보통 없잖아요?〉

〈보통이 아니라…… 그냥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진용준 캐스터의 의문에 클끼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한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입이 간지럽다.

채팅창에도 올라오는 두 선수의 불화설!

이전에 도맡았던 멸망전 해설이었으면 거침없이 꺼냈을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기 때문에 못한다!

과연 라인전이 진행이나 될런지.

슈욱!

나름대로 잘 버티고는 있다.

블러디체리 특유의 흡혈.

미니언을 쪽 빨아서 체력을 채운다.

힐라카도 유지력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챔피언이다.

상대의 공세를 충분히 버텨내고도 남는다.

하지만 라인전을 밀린다는 것 자체가 유쾌한 구도가 아니다.

〈알파카 선수가 진짜 공격적으로 밀고 있습니다. 이건 한 번 킬각을 잡겠다는 의도거든요?〉

〈자존심 상하죠! 내가 알파칸데! 나 원딜런데! 저런 족보도 없는…… 빨간 챔피언이 눈앞에 있는 거야!〉

-???: 블러뒤 멈미까!

-난 직트 예상했는데…… 사거리 길어서

-블러디는 사거리도 짧고 라인전도 약한데

-저게 좋나? 대체 왜 한 거지?

아직 라인전이 진행 중이다.

픽의 의미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라인전이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한다.

저러다가 한 번 사달이 날지 모른다.

레전설이야 피지컬이 보증된 선수다.

안타깝게도 서포터 쪽은 솔직하게 역량이 부족함이 있다.

키잉-!

유리야가 워낙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다 보니 지적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전 세트에서도 잘하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끌리고 만다.

힐라카의 목덜미에 쓰렉귀의 선고가 제대로 걸린다.

─그 독 내 거라고!

토이치의 독병이 깔리며 발을 늦춘다.

점화까지 걸리자 순식간에 대위기.

라인을 먼저 미는 쪽의 특권이다.

논타겟 스킬을 맞힐 기회를 얻는다.

그 기회, 놓칠 만한 팀이 아니다.

삼선 블루의 봇라인은 강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제아무리 레전설이라고 한들.

그 레전설이 판단을 내렸다.

빠꾸도 없이 달려나간다.

〈잠깐, 이거 너무 들어가는데요? 미니언 많거든요?!〉

클끼리가 깜짝 놀라 외친다.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이다.

순수하게 2대2만 싸워도 승산이 밝지 않다.

그런데 미니언 웨이브도 삼선 블루 쪽이 많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라인을 먼저 미는 쪽이 괜히 주도권을 가지는 게 아니다.

그런 상식을 가볍게 부수니까 레전설이다.

말하기라도 하듯 이변을 터트린다.

교전의 결과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힐라카가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 보호막을 들었기 때문이죠!〉

강빈 해설이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해준다.

일단 힐라카가 질겼다.

보호막을 들은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라면 스펠 교환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퍼스트 블러드!

FFs 레전설님이 SAMSUN 하뜨님을 처치했습니다!

도저히 이길 만한 교전이 아닐 텐데?

해설진들의 입에서 '아니'가 튀어 나온다.

롤 유저가 어이없을 때 반자동으로 나오는 말이다.

누구보다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고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해설자고 해설자가 어려운 점이다.

이따금 저 선수 머리통을 뜯어보고 싶을 때가 생긴다.

미니언의 반격을 피웅덩이로 씹으며 쓰렉귀를 비볐다.

그렇다 해도 잡아낼 딜은 아니었다.

사르르 녹아난 쓰렉귀의 체력바는 한 가지를 방증한다.

* * *

힐라카의 Q스킬 별똥별은 핵똥별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했다.

강력했다, 과거형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강력하지 않다.

'너프가 먹으면서 딜링기로는 애매해졌지.'

어찌나 센지 나도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아니, 힐라카는 힐 주는 챔피언 아니야?

알고 보니 막싸움에도 일가견이 있더라.

너무 OP였던 나머지 발굴되고 금세 너프됐다.

다소 아쉬운 일이지만 큰 상관은 없다.

힐라카의 딜을 기대하고 이룬 조합이 아니다.

뾰롱~ 촹!

2초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적 서포터 쓰렉귀의 옷깃을 적신다.

그래봐야 가랑비에 옷 젖는 수준이다.

현실에서는 신경 쓰일지 몰라도 게임 내에서는 터프하다.

FPS게임에서 총 맞아도 약 바르고 핫식스 마시면 낫잖아.

하지만 그 가랑비가 독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딜계산이 좀 안될 거야.'

첫 교전 이후 라인 주도권을 틀어잡았다.

밀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구도다.

포탑을 끼고 있지만 결코 안전치 못하다.

쓰렉귀는 점멸이 빠졌다.

그리고 나는 점멸이 있다.

포탑을 무시하고 과감히 다이브친다.

촤아앙!

블러디체리의 궁극기 흑사병.

가하는 피해량이 보다 늘어난다.

곱연산으로 더욱 강렬하게 박힌다.

쓰렉귀는 피웅덩이 위에서 터져버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니, 체력도 많은데 이게 죽는다고?

선취점을 먹고 마법 관통력의 신발을 갖췄다.

세 번 연이어 적셔진 별똥별이 결정적이다.

데미지는 가랑비처럼 미약하다.

하지만 맞다 보면 어느새 잠식된다.

힐라카의 별똥별이 가진 부수적인 효과다.

'상대의 마법 저항력을 깎아.'

바꿔 말하면 마법 관통력이다.

탱커가 어째서 탱커일까?

단단하기 때문에 탱커다.

그 가죽을 벗겨내면 딜러와 다를 바가 없다.

찰칵!

그렇게 2킬을 먹고 갖추는 아이템.

힐라카가 보조 덕에 체력 관리가 손쉽다.

주문력에 올인한 죽창 블러디의 위력을 선보인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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