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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직트의 독주가 반쯤 예견되던 게임이다.
레전설이 초반 킬까지 먹는다고?
11레벨 되면 못 막는 거 아니야?
실제 그렇게 되는 흐름이긴 하다.
확실히 카직트의 성장 속도가 무섭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을 타이밍의 두 번째 진화.
〈난 날개 진화를 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공포에 떨어라! 지금 카직트가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타이밍입니다.〉
클끼리의 말대로 카직트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카직트는 날개 진화하고부터가 진짜지!
여차하는 순간 메뚜기 월드가 펼쳐진다.
-제발 레전설 한 번만 하자……
-레전설 하고 궁3렙 찍으면 이기는 거 ㅇㅈ?
-이 판 지게 되면 유리야 욕 오지게 먹을 듯
해설진까지 흥분하면서 기세가 넘어갔다.
실제 게임 내용이 완전히 기울어졌다.
과장스럽긴 하나 실제 분위기가 그러했다.
킬 먹는 순간 커뮤니티가 뒤집어지고!
멱살 잡고 솔킬 따면서 캐리할 거 같고!
그런 믿음이 가는 선수가 정말 극소수 있는데…… 그 대열에 최근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용한타가 일어날 조짐이 보입니다. 카직트 11레벨이라 삼선 블루가 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싸워요. 삼선 블루는 원래 한타 보는 팀이거든요?〉
〈삼선 블루! 파프리카 프릭스! 한타 잘하기로 유명한 팀들 아닙니까? 힘 대 힘의 대결이 되는 거에요 첫 번째 세트처럼!〉
진용준 캐스터가 상상한 장면을 관중, 시청자들 모두가 떠올랐다.
막장이 된 싸움에서 펜타 킬을 쓸어담는 위엄!
물론 엄밀히 말하면 잘 싸운 건 레전설이다.
반대로 레전설이 못한다면 기둥이 흔들린다.
현재 진행되는 용한타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장 강력한 타이밍에 힘을 발휘해서 스노우볼을 굴려야 한다.
사르륵……!
이윽고 일어나버린 한타에서 레전설의 판단은 과감함 그 자체였다.
순간적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적진 한복판에서 원딜러를 잡았다.
〈근데 너무 깊숙이 들어갔어요! 옆구리를 주고 목을 치려다 너무 깊이 찔렸는데요?〉
삼선 블루의 원딜러 알파카.
팀의 에이스인 그를 잘라냈다는 건 희소식이다.
하지만 순순히 잘려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반항하며 딜을 넣었다.
킬리셋을 하고 점프를 하면 된다?
날아가는 사이에 맞는 딜도 무시 못한다.
양팀의 화력이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서로 방패를 포기하고 칼만 갈아왔다.
그렇기에 든든한 보험을 들어 놓았다.
〈필리언이 여기서 딱 구세주처럼 궁극기를 써주면…….〉
필리언의 시간 회귀는 한 마디로 부활의 효과다.
체력 회복량도 많아서 거의 풀피로 되살아난다.
든든한 보험이라 함은 이를 가리킨다.
클끼리라고 예상을 못했을 리 없다.
조합이 처음 구성됐을 때 언급했다.
단순히 경험치 더 먹으려고 뽑은 필리언이 아니다!
카직트라는 챔피언은 늘 위험부담을 안는다.
들어가는 순간 포커싱에 노출된다.
필리언의 궁극기가 슈퍼세이브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조합일지 모른다.
한 가지 불확정 요소가 터졌을 뿐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설마하던 그것.
휘리링!
야흐오의 검이 소용돌이친다.
올곧게 나아가던 충직한 애완동물.
걸음이 닿기 직전에 목덜미를 낚아챘다.
─SAMSUN 다대기님이 학살 중입니다…!
-빡대가리야 옆도 안 보고 걸어가!!
-물몸이라서 그냥 찢기는데?
-심지어 탈진도 못 썼어……
유리야는 분명 둘도 없는 충견이다.
하지만 실력도 충견, 인간 같지는 않다.
애완동물이라는 밈이 급부상하는 뒷면에는 그러한 놀림도 산재해있다.
하필 가장 간절한 시기에 사고를 쳐버렸다.
궁극기 쿨타임을 돌리지 못했다.
그 스노우볼이 그만 격하게 굴러가고 만다.
〈보험을 들어 놨는데, 보험사가 파산을 해버렸죠? 이러면 땡전 한 푼도 못 받습니다!〉
필리언의 궁극기를 전제로 도주했던 카직트.
받지 못하자 그대로 죽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점멸까지 쓰며 추격해오는 상대를 떨치지 못했다.
팽팽하던 한타가 한순간에 확 기울어진다.
그래도 상대가 많이 투자했으니 할 만하지 않나?
양팀의 에이스들이 가진 무게가 다르다.
〈한타 시작되자마자 핑와 세 개가 다다닥! 박혔어요. 그만큼 레전설 선수만 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몰아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괴물 같이 컸어요! 반대로 잡기만 하면 대박이거든요~.〉
삼선 블루는 더블 에이스 체제라 타격이 적다.
탑라인의 성장도 훨씬 좋아서 밀릴 게 없다.
용한타는 삼선 블루의 대승으로 끝난다.
─다대기!
그 과정에서 다대기의 야흐오가 급성장했다.
솔로킬, 로밍 성공시키며 안 그래도 잘 큰 상황이다.
더 잘 크게 되자 사이드 라인에서 홀로 무쌍을 찍는다.
〈모르고 있어요? 모르고 있습니다?! 토이치 순진하게 라인 받아먹으러 갔다간…….〉
부쉬에서 야흐오가 돌연 뛰쳐나온다.
미니언을 타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토이치는 은신과 점멸, 보호막 온갖 것들을 쓰며 도주하지만.
─다대기!
쏘아진 회오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친다.
궁극기가 발동하자 백업이 무의미해진다.
공중에서 찢기듯 토막이 나서 죽는다.
이렇게 되면 백업 온 힐라카도 무사할 수 없다.
야흐오는 치명타 지속 딜러.
사각! 사각! 베어내자 무썰듯 썰리고 만다.
─더블 킬!
SAMSUN 다대기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FFs 잼할님이 SAMSUN 다대기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500G)
불행 중 다행으로 잼할이 텔레포트를 탔다.
간발의 차이로 야흐오를 잡기는 했다.
막대한 손해를 안은 채!
〈제압 골드가 500이에요. 이건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야흐오가 많이 죽였다는 거에요. 스펠 궁극기까지 다 빼고!〉
-잼할이 한 건 한 건가……?
-이건 제압 했어도 너무 아파;;
-아니, 다대기 경기력 미쳤는데?
-다대기는 원래 미친 선수야ㅋㅋㅋ
괜히 테이커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테이커가 다재다능한 만능형이라면 다대기는 장인형.
순대국밥에 다대기가 더해져야 제대로 맛깔나는 것과 같다.
한 챔피언을 극한까지 연마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선수였다.
최근 들어 색깔이 옅어질 뻔했다.
레전설이라는 상위 호환이 출현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대기의 야흐오가 소환자의 전장을 휩쓴다.
* * *
"야, 유리야."
"네, 주인님!"
유리야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해온다.
점점 기강이 잡히기 시작한다.
좋은 징조라 보기에는 애매하다.
본인이 찔리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딱히 실수라고 할 건 아니긴 한데…….'
당해줬다기 보다는 당했다.
상대의 플레이가 교활하고 매서웠다.
PVP게임에서는 이를 잘한다라고 해석한다.
'치사하게 유리야만 노리네.'
상대의 정정당당하지 못한 플레이로 인해 말렸다.
유리야가 궁극기도 쓰지 못할 순간 점사.
두 번째 세트를 패배하는데 이른다.
"저랑 교체하는 건 어때요? 대충 보니까 감을 잡아서 시키시면 할 수는 있는데."
두 세트 모두 필연적으로 벤치에 있었다.
서브인 유리야가 출전한 만큼 당연한 소리다.
도인디가 답답해서 내가 뛴다를 시전해왔다.
'그럴 만도 한 일이지.'
성적이 좋고, 그럴 만하다 보니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다.
언제 한 번 머리통을 쥐어 뽑아서 성격 개조를 시켜야 하긴 했다.
"괜찮아. 다음 세트는 리야랑 할 거야."
"그러니까 제가 리야 누나 역할을 대신……."
리야가 누나라고 불리다니 들으면서도 신기하네.
아무튼 하려는 이야기는 알겠다.
챌린저고, 실력이 있고, 재능이 있는 만큼 어지간한 건 보면 안다.
물론 보거나 설명을 듣는다고 한눈에 알 만한 건 아니다.
안다고 해도 저런 취급을 감당하기 힘들다!
티어대가 있는 유저들은 자존심이 쓸데없이 강하다.
'그걸 내려놓고라도 이겨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긴 해.'
전략에 대해 생각까지 해왔다면 발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기용할 수 없다.
시키면 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뛸 만한 직장이 아니다.
"너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
"아니, 장난하지 말고요. 그게 게임에서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필요해! 너 우리 리야가 장난으로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우리 리야가 얼마나 귀엽고 착하고 얼빵하고 실수 많고 식탐 많고…….
써놓고 보니 단점밖에 없기는 하다.
하지만 말 하나는 기똥차게 잘 듣는다.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충직함이 필요하다.
판단 하나하나에 망설임 따위 두면 안된다.
도인디가 가진 실력과 선입견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
물론 연습을 거친다면 녹아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럴 만한 시간이 지금 없어서 문제지.
그 말을 할 거면 진작에 하던가!
'발등에 불 떨어지고 나서 찾지 말고.'
그리고 전판의 패인은 대략 분석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리야야."
"네, 주인님……."
이제서야 부끄러운 모양이다.
리야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게임 중에는 뇌에 버퍼도 걸렸고, 부끄러워 할 경황도 없었다.
동생인 도인디한테 지적까지 당하자 의식해버렸다.
"너한테는 나의 보조라는 숭고한 의무를 맡기고 있어. 나 레전설, 한 번의 실수로 질책하지 않는 남자야."
"주인님……."
눈을 초롱초롱 빛내온다.
묘한 정복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다행히 유리야라서 미투 당할 걱정은 없을 것이다.
'전판은 유리야의 난이도가 은근히 높았어.'
최소한 궁극기만 쓰고 죽어라.
그게 생각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위기에 놓이면 유리야로서는 판단이 안된다.
자신에게 걸어야 하나, 어떻게든 걸고 죽어야 하나.
그 판단을 스스로 할 수가 없다.
워낙 종잇장이라 1초만에 찢기는데 내가 오더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랄라와 달리 먼저 스킬을 쓸 수 없다는 게 커.'
필리언의 궁극기 시간 회귀는 조건부 발동이다.
죽지 않으면 발동이 안된다.
타이밍을 맞춰 쓰야 해서 한타 난이도가 높다.
상대는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결국 성공했다.
유리야라는 구멍을 공략하는데 말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뭔가 야한데.
"아니구나."
"뭐가요?"
"그냥…… 청순해 보여서."
"헤헤, 정말요?"
청순하다 못해 한창 시끄러울 나이인 학생들을 보는 것 같다.
그대로 10년을 더 먹은 아이가 눈앞에 있다.
평소 딱까구리처럼 쫑알종알대는 이유가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만회를 해야겠지.'
첫 번째 세트의 승리.
두 번째 세트의 패배.
다전제에서 따라잡히는 입장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겠다.
확실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조급함 때문에 고수해온 전략을 바꿀 수는 없다.
유리야의 난이도를 낮추고, 내가 지속딜을 넣는 방향으로 수정한다.
이어지는 세트에서 전판의 약점을 보충해낸다.
* * *
세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된다.
현장의 열기는 최고조로 끓어올랐다.
예로부터 명경기는 양측이 팽팽해야 한다는 게 제1조건이다.
〈첫 번째 세트의 몰아먹기 조합이 대성공을 거둔데 반해, 두 번째 세트는 애매한 감이 분명 있었거든요?〉
약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경기 초반에 그렇게 격찬을 해놓고?
클끼리도 스스로 아차 싶었던 부분이다.
〈필리언이 너~무 죽었잖아요? 유리야 선수가 실수했다기 보다는 다대기가 선수가 워낙 잘했어요~.〉
〈그것도 큽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필리언의 패시브는 살아있을 때만 적용이 되니까요.〉
그런데 귀중한 라인전 중에 두 번이나 죽고, 한타에서 죽고, 이후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패시브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카직트의 성장 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용준 캐스터의 지적도 요인 중 한 가지이나.
〈근데 제 생각에는…… 카직트라는 선택이 약간 미스로 작용한 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챔피언 자체가 혼자서 판을 만들 수 있는 챔피언이 아니라서…….〉
카직트는 분명 하드 캐리형 챔피언이다.
메뚜기 월드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하지만 마이, 그리고 헤일과는 분명 다르다.
-하긴 판이 깔려야 쓸어담는 챔피언이지
-전형적인 후진입 암살자라……
-탑이 판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하필 잼할이야!
활약할 수 있는 구도가 은근히 정해져 있다.
더군다나 삼선 블루의 단합력이 단단하다.
카직트가 활약할 각이 나오기 힘들었다.
일련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같은 선택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레전설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된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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