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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만석이다.
파프리카 프릭스가 경기를 할 때면 당연해졌다.
언뜻 의아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고작 걸음마를 디딘 신생팀이다.
활약을 한다고 한들 인기와는 별개다.
이슈 한두 번 오른 정도로 팬이 붙을 만큼 E-스포츠 판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재 인기를 구가하는 선수들도 그 과정은 대단히 고됐다.
우승을 하고, 캐리를 해도 사람들의 기억에 잘 안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성화인 데는 이유가 있다.
〈다시 한 번 깍두기……, 아니 이제는 깍두기가 아니죠?〉
〈큰일날 소리에요! 파프리카 프릭스의 자랑스러운 미드라이너 아닙니까~?〉
-깍둑좌!
-골드라서 무시 받는 서러움ㅠ.ㅠ
-원래는 서러울 일도 없어야 정상이지……
정상적이지 않은 일을 서슴지 않는 팀이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자랑스러운 미드라이너 유리야가 등장했다.
그녀의 등장을 기대한 수많은 현장팬들이 환호한다.
빡대가리야 화이팅!
경기장 어디선가 터진 외침이다.
해설진들도 표정 관리가 안된다.
한 번 안 사람은 잊을 수가 없는 인상적인 별명이다.
그런 별명을 가질 정도로 안타까운 실력!
그리고 낮은 티어에도 나오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여실히 보여줬기에 이견의 여지도 없다.
〈감탄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카드를 많이 오픈했고, 저는 그 점이 염려가 돼요.〉
하지만 알려졌다는 건 대처법도 세워진다는 이야기다.
시작되는 첫 번째 세트의 밴픽.
클끼리의 우려가 현실화된다.
레드팀인 삼선 블루가 랄라를 잘랐다.
〈삼선 블루가 랄라를 밴한 건 옳은 판단입니다. 왜냐! 팀을 보조하는데 특화돼있기 때문이죠!〉
강빈 해설의 말대로 1인분 특화 챔피언이다.
낮은 실력인 유리야도 제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그냥 OP이기도 하다.
-크 유리야 저격밴!
-골드를 저격밴한 것만으로도 굴욕 아님?ㅋㅋ
-근데 랄라는 자를 만해
날이 갈수록 입지가 높아져 가는 챔피언이다.
후반전 양상이 잦은 최근 메타에서 평가가 높다.
물론 유리야에 대한 저격밴인 것도 틀리진 않다.
본래라면 굳이 미드에 밴카드를 안 썼을지 모른다.
골드 따위한테 왜 굳이?
굳이 해야 하는 이유를 지난 SKY T1 K전에서 보여줬다.
〈역시 화근은 삭초제근. 힐라카까지 자르네요. 하비 선수의 저격이기도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밴입니다.〉
랄라와 힐라카가 밴되고, 섬광 마이는 너프됐다.
과연 파프리카 프릭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목이 모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만약 상대의 노림수가 먹힌 거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해진다.
파프리카 프릭스가 픽을 망설인다.
삼선 블루는 망설임 없이 가져온다.
-다대기의 야흐오……
-다대기! 우리에게 돈!
-와, 야흐오 예상했는데 저걸 또 가져가네
준비를 해서 왔다는 사실을 밴픽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자신들의 이점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야흐오는 레전설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대기! 야흐오가 스킬을 쓸 때 외치지 않습니까? 다대기 선수를 위한 챔피언이거든요!〉
챔피언을 쓸 때마다 자연스레 연상이 된다.
다대기 선수의 시그니처 챔피언이다.
심지어 레전설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지난 윈터 시즌 결승전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미드에서는 다대기 선수가 더 잘할 수도 있어요.〉
〈그 정도인가요?〉
〈레전설 선수가 미드에서 활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각자 활용하는 라인이 다르다.
레전설은 원딜, 다대기는 미드.
클끼리의 지적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독특한 전략은 파프리카 프릭스가 전매 특허가 아니다.
삼선 블루의 원딜러 알파카도 수차례 사용한 적이 있다.
삼선 블루의 픽과 함께 관중석이 요란스러워진다.
이 챔피언이 나오길 내심 바랬다!
다대기의 팬들은 잊은 적이 없다.
〈다대기 장인 자드 아닙니까? 삼선 블루가 오히려 픽이 과감한데요?〉
〈이러면 야흐오가 원딜로 갈 가능성이 농후해지죠……. 이런 경우의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첫 세트부터 몰아붙입니다 삼선 블루!〉
지금의 다대기를 있게 만든 챔피언이다.
야흐오는 솔직히 대체재 느낌이었다.
역시 다대기는 자드지!
팬들의 열렬한 반응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단순히 잘하기 때문에 뽑은 픽일 리 없다.
〈미드 정글 싸움을 강력하게 가겠다는 의지입니다. 로밍도 좋고, 여차하면 솔킬도 가능하죠. 한 번 삐끗하는 순간 유리야가 극한의 고통을 맛볼 수도 있겠습니다.〉
-유리야 곶통……
-대놓고 노리면 따일 수밖에 없겠는데?
-하긴 점멸도 못 들게 하니까
레전설 본인이 방송으로 밝힌 오피셜이다
별풍선 10개 도네.
유리야 왜 점멸 안 들었음?
들어봤자 못 쓰는 빡대가리니까!
웃기려고 한 말로 보기에는 묘하게 신빙성이 있다.
커뮤니티에서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결론은 확실히 그럴 만도 하네.
골드가 점멸 써봤자 어차피 죽겠지.
차라리 점멸 안 들고 다른 스펠을 든다.
그리고 보다 조심히 하면서 게임을 한다.
의외로 괜찮은 선택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자드는 대놓고 멱을 따는 사신(死神)과도 같은 암살자다.
〈이러면 분위기가 싸해지죠. 밴픽으로 압도를 해도 힘들어질 수 있는데 밀리기까지 하면…….〉
신생팀인 파프리카 프릭스가 준결승전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
절반은 레전설이고, 나머지 절반은 밴픽이다.
독특한 시도가 성공을 거두며 힘을 더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뺏긴다?
적에게 휘둘리기까지 한다?
기본적인 힘에서 밀리는 파프리카 프릭스의 승산이 희박해진다.
나머지 픽에서 반전시키지 못하면 다전제에서 가장 중요한 첫 세트를 내줄 수 있다.
그런 파프리카 프릭스가 선택한 챔피언.
고작 450원짜리 싸구려 챔프 둘이었다.
* * *
야흐오가 나온 시점에서 반절.
그리고 자드가 나온 시점에서 확신했다.
이번 첫 세트는 승리의 여신이 웃어준다고.
'알아서 꼴아 박아주는 챔피언이 둘이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기는 하다.
지난 SKY T1 K전과 마찬가지.
불타는 섬광은 완성시키는 과정이 지옥 같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아군이 잘 버텨줄 리가 없다.
잼할의 네네톤이 신명나게 두들겨 맞는다.
저렇게 맞고서 그 3천만원 짜리 백으로 가공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딱히 망한 것은 아니다.
게임 시간 5분, 이제 겨우 한 번 죽었다.
본인도 인식을 하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 하나는 기똥차게 하는 친구다.
"선배!"
"왜."
"저 근데 정말 따라다니기만 해도 되는 거에요?"
우리팀에는 노력파 친구가 정말 많다.
유리야가 진심으로 궁금한 듯이 물어온다.
그도 그럴게 딱히 뭘 하고 있지 않다
졸졸 따라다니며 심심하면 스킬 쓰기.
'세상에서 제일 쉬운 챔피언이지.'
유리야한테 딱 맞는 챔피언이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유리야라도 만만히 보는 게 가능하다!
두두는 명실상부 롤에서 가장 쉽다.
정글로 쓴다면 머리를 굴려야 하겠지만 미드다.
아니, 미드도 아니고 사실상 서포터.
나한테 붙어서 버프만 주면 된다.
파앙!
파앙!
두두의 W스킬 넘쳐흐르는 힘.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를 상승시킨다.
밀려오는 미드 웨이브를 빠르게 녹여낸다.
헤일의 불빠따는 평타 한 방, 한 방에 스플래쉬가 묻어난다.
"야, 유리야."
"왜용?"
"이제부터 주인님이라고 불러."
"히잉…… 왜용!"
왜긴 왜야.
그 편이 재밌으니까.
딱히 무슨 불순한 목적으로 말한 게 아니다.
"빨리 주인님이라고 불러. 그 편이 기분 나니까."
"그, 그, 그런 거 시키지 마요! 성희롱이에요!"
대체 무슨 얼토당토한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음란마귀도 씌이고 우리 리야 어른 다 됐네.
그렇다고 착각하지는 않아줬으면 싶다.
'그런 플레이는 내가 하고 싶지 않아!'
나도 하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헌법에 나와있다.
유리야는 롤에서 인간이라 쳐주기 민망하다.
딱 애완동물 키우는 느낌이야.'
두두가 옆에서 졸졸졸 따라다닌다.
먹이도 먹이면서 키우고 있다.
정글몹을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마치 강타와 같은 효과를 지녔다.
덕분에 정글링이 마이&랄라보다 빠르다.
이 조합은 정글을 싹쓸이하는데 특화돼 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섬광 스택을 모으는 사이.
탑라인의 잼할이 초심을 잃지 않았다.
또다시 갱킹을 당하며 죽고 말았다.
하지만 허무하게 당한 건 아니다.
나름대로 시간을 끌었다.
상대가 턴을 꽤 소비하기도 했다.
─FFs 레전설님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잼할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
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챔피언 선택이 좋았다.
정글링 하나는 누구보다 빠른 두두와 헤일이다.
상대로 하여금 대처할 틈도 없도록 순삭해버린다.
"헐, 저 막타 못 먹었어요."
"괜찮아. 기대하지도 않았어."
"히잉……."
만약 기대를 했으면 말을 해줬을 것이다.
원래 애완동물의 목에 목줄을 채우고, 똥을 치워주는 건 주인의 역할이다.
애초에 내가 먹어야 섬광 스택을 채운다.
마이를 할 때보다 훨씬 스택이 빨리 모인다.
정글링 자체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정성 면에서도 우월하다.
화락!
챠라락!
자드의 표창 견제가 유리야를 꿰뚫는다.
역시나 정직하게 2표창을 다 맞아준다.
만약 랄라였다면 저기서 킬각이다.
탈진이고 나발이고 머리통 쥐어뜯긴다.
레벨과 실력 차이로 유린 당한다.
하지만 두두는 체력이 찬다.
와구와구!
치킨을 먹고 행복해 하던 유리야의 표정이 겹친다.
미니언을 잡아먹자 체력이 뭉텅 차오른다.
두두의 Q스킬 씹어먹기가 가진 효과.
더불어 돈템이 고대의 방패다.
노란 돈템이 아닌 초록 돈템.
이렇듯 유지력도 좋고, 무엇보다 돈이 들어온다.
유리야 말고 나에게 말이다.
찰칵!
돈템의 시너지, 빨라진 정글링 속도.
아이템 나오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당겨진다.
채 9분이 되지 않아 신발을 포함한 1.5코어가 나온다.
'이쯤 되면 나도 무서울 지경이긴 한데…….'
위글의 랜턴은 정글몹을 잡을 때 추가 골드를 얻게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 유리야의 서폿 돈템까지 더해진다.
미니언은 돈템으로 추가 골드.
정글은 정글템으로 추가 골드.
돈이 미친 듯이 굴러온다.
물론 아군도 미친 듯이 죽는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사실 아군이 못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글이 그냥 생으로 없는 셈이다.
심지어 나는 킬조차 따지 못했다.
마이는 여차하는 순간 갱이 가능하다.
알고도 못 피하는 사기적인 직선갱.
헤일은 챔피언 특성상 수동적이다.
파앙!
파앙!
빠르게 라인을 밀고 정글링을 도는 게 고작이다.
그렇기에 이기고 싶을 때 꺼내려고 했다.
어설픈 운영,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SKY T1 K때처럼 대처법을 모르지 않는다.
불밤처럼 쇠퇴하기 시작한 팀도 아니다.
명백히 전성기를 구가하는 상대.
'전면에서 무너뜨리는 방법밖에 없어.'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주분야다.
막싸움이야 말로 피지컬이 빛을 발한다.
헤일이 가진 기대치라면 실현이 가능하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타까지 가는 길.
생각 이상으로 녹록지 않아진다.
정글러의 갱킹에 당한 것이 아니다.
"야, 유리야."
"넹."
"왜 미아핑 안 찍어. 너 미드 아니야?"
"저…… 미드 맞기는 해요."
자드의 로밍에 봇라인이 당하고 말았다.
라인을 밀리는 탓에 다이브 갱킹.
하비가 플레이하는 모르피나가 죽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내 미스긴 해.'
변명을 하자면 일일이 찍어줄 여유가 없다.
그럴 만한 여력도 없고, 시야도 부족하다.
고로 유리야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미안하면 앞으로 주인님이라고 불러."
"너, 너무 해요. 그런 호칭 옳지 않아요!"
"내가 지금 장난으로 말하는 게 아니야."
정말 1할쯤은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주인님을 모신다는 심정으로 성심성의 임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게임에 감정이입이 되지.
"빨리 해! 너의 그 한 마디에 승패가 걸려 있다고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주, 주인님……."
부들부들, 부들부들!
서둘러 재촉하자 자신도 모르게 대답한다.
보다 복종시킨 애완동물로 승리를 노린다.
========== 작품 후기 ==========
레전설의 재림이 드디어 200화에 입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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