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186화 (186/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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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교체의 쐐기 -->

2014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스프링 시즌.

길었던 조별 리그가 끝나고 본선 경기가 치러지고 있다.

각 조의 1,2위들이 준결승전 진출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코코볼 선수가 밴시의 외투를 3코어로 올렸습니다. 화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절대 물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네요.〉

8강 두 번째 대진.

마진 실드 대 얼밤의 경기다.

두 팀 모두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명문이다.

그런데 원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와나 이제는 밴시를 3코어로 올리네;

-요즘 밴시가 워낙 사기라……

-소환자의 전장에 아칸 굴러다니는 거 실화?

-아칸이래ㅋㅋㅋㅋㅋㅋ

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유닛과 비슷하게 생겼다.

밴시의 외투는 시즌4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이다.

상대의 스킬 공격을 1회 막아주는 보호막 효과가 쏠쏠하다.

하지만 옵션은 체력과 마법 저항력 뿐일 텐데?

보호막 효과가 워낙 빨리 돌았다.

또한 보호막이 꺼지면 체력 재생력을 올려준다.

순간적인 이니시에 약하고, 유지력이 안 좋은 포킹 챔피언들의 고질적인 단점을 보완하는 셈이다.

대치 구도 최강의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펙도 좋아서 탱커, 딜러 안 가리는 필수템.

〈얼밤은 서둘러 밴시부터 갖추려는 모습이죠?〉

〈아이템 자체가 좋기도 하거니와 운영의 얼밤에 날개를 달아주는 아이템이라고 저는 봅니다.〉

-클끼리 실드 쳐주는 거 보소

-한솥밥 먹은 식구들이자너~

-아칸이 대체 몇 마리야!

-그냥 대놓고 1시간 게임 하려는 속셈이잖아!

밴시의 외투를 하도 올리다 보니 아칸 메타라고도 불린다.

한 40분쯤 되면 파란 공들이 굴러다닌다.

그 시기가 날이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

왜냐!

아이템이 너무 좋다.

프로 리그에서 참 안성맞춤이다.

특히 장기전이 일상인 최근 메타와 어우러진다.

진행되고 있는 네 번째 세트.

이미 2패를 해버린 얼밤은 대놓고 장기전을 바라본다.

한 번만 더 승점을 내주면 다전제의 최종 패배가 확정되기 때문이다.

〈마진 실드도 조급해 하지 않는 움직임이죠?〉

〈밴시까지 있는 직트의 수성을 무리해서 뚫으려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서…… 오브젝트부터 챙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2승을 한 마진 실드도 입장은 비슷하다.

8강은 5전 3선승제로 치러진다.

다시 한 세트 내주면 2대2 원점이 된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성급한 움직임을 금한다.

차근차근 소소한 격차를 불려나간다.

양팀이 수비적인 성향을 보이다 보니 자연스레 장기전.

〈얼밤, 얼어붙은 밤 아닙니까? 단단해요! 그리고 실드는 방패죠! 방패와 방패의 대결인 만큼~ 결착이 나는 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어요!〉

-'용준'을 받아들인 용준좌……

-왜냐면 이미 컵라면을 먹었거든

-이번 세트 이기고 얼밤 블라인드픽 가즈아!

팀의 이름에 걸맞게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두 팀이다.

오래된 명문답게 안정감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통! 통! 포옹!

직트가 던진 물풍선이 터진다.

바닥에 깔린 구슬 지뢰들도 힘을 더한다.

마진 실드의 진격을 막아내자 팬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울린다.

오래된 명문이며,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던 팀이다.

콘크리트와도 같은 팬층 덕분에 응원의 열기가 뜨겁다.

솔직한 팬 입장에서는 저렇게 버티기라도 해서 이겼으면 싶다.

-제발 이번 시즌에 재도약하길

-할 수 있잖아 얼밤, 하면 되잖아 얼밤

-매라신 제발 부탁드려요. 슈퍼 플레이 한 번만요!

그 간절한 팬들의 소망.

선수들이라고 당연히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때로는 부담감이 판단을 그르치게 만든다.

과감한 판단을 내리기 망설여진다.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색깔을 변하려 하지 않는다.

시대는 이미 변했음에도 말이다.

─더블 킬!

MJS 워치님이 학살 중입니다!

얼밤은 그저 수그리고만 있다.

그에 반해 마진 실드는 계속 두드린다.

두드리다 보면 한 번은 열리기 마련이다.

前얼밤의 정글러 클끼리 해설이 깊은 한숨을 토한다.

〈하아…… 얼밤 집중력이 너무 떨어지는데요. 봇듀오가 다 끊겨버리면 바론은 둘째 치고 후반을 바라본다는 취지 자체가 흔들립니다.〉

-스페이즈 반응 속도 왜 저래ㅡㅡ

-아, 매라 판단 좋았는데……

-진짜 얼밤은 원딜이 구멍이다

어느 선수가 구멍이라고 볼 경기는 아니다.

그저 팀 자체가 변하지 않아서 문제다.

팬층이 너무 두터운 탓에 오히려 모른다.

자신들이 틀리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얼밤의 팬들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결과다.

얼밤의 팬들이 아닌 이들은 과정 또한 아쉽다.

이놈의 수성 메타, 약속이라도 한 듯한 용준!

─용준의 하드 카운터는 레전설이 아닐까?

레전설만 해버리면 안 재밌는 게임이 없잖아

이번 스프링 시즌의 빛과 같은 존재다

파프리카 프릭스 경기날 언제지?

└8강 4경기니까 다음 주 금요일

└아아, 레전설하다에 그런 속뜻이……

└달래 여신님 주전으로 나온다는 소문도 있던데

글쓴이-정말?

파프리카 프릭스, 그리고 레전설에 대한 기대가 나날이 높아져 간다.

팬들의 마음에 보다 크게 자리 잡는다.

* * *

달래와는 하루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가장 순수하던 시절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최근 달래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연습 시간도 안 늦고 오더도 잘 따른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우리 달래가 달라졌어요!

순수하게 좋아할 수가 없는 일이다.

깊게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진다.

'악마와 계약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다.

독주인 걸 알고 있음에도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얼마 전 하비랑 연락을 했는데 귀국이 오래 걸린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달래를 써야만 한다.

사실 실력적인 면만 보면 나쁘지 않다.

아니, 가히 이상적인 수준이다.

이주일이 채 되지 않는 연습의 결과.

달래가 챌린저 티어에 안착했다.

단순히 달성한 게 아니라 안착이다.

하비와 달리 듀오를 안 해도 혼자서 점수를 척척 올린다.

약간 고전하긴 하지만 내려가진 않는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실력이 붙고 있다.

그 체감을 다름 아닌 내가 하고 있다.

달래에 한해서는 고평가나 포장 절대 안 해준다.

그런 달래와 오랜만에 현실에서 만날 일이 생겼다.

"야."

부르자 몸으로 격한 대답을 해오신다.

주먹을 쥔 채 가운데 손가락을 쭉 뻗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네일아트가 인상적인 뻐큐다.

본인도 내가 어떤 말을 싶은지 알고는 있었나 보다.

"……제정신으로 입고 왔니?"

"남이사."

나도 웬만하면 복장으로 트집 잡기 싫었다.

그도 그럴게 오늘이 바로 8강 경기날이다.

괜히 티격댔다간 경기력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서로 자존심 싸움 하느라 일부러 말 안 하고.

경기 중에 핑이랑 오더 적극적으로 안 하고.

E-스포츠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스포츠에도 으레 있잖아.'

팀원간의 불화가 경기력 하락, 나아가 성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지간한 건 참고 받아주려고 마음 먹고 왔다.

보자마자 머리끄댕이를 잡고 싶게 만드네.

"코스프레 실화냐고요. 오타쿠세요?"

"응 니 상판이 오타쿠."

"……."

뒤에 있는 유리야가 키득 웃는다.

이내 두 손으로 입을 막지만 다 들었다.

그 응징을 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아주머니. 우리 지금 경기하러 가는 거에요. 어디 코스프레 행사장 가는 거 아니라고요. 알고 계세요?"

다시 한 번 가운데 손가락을 길게 뻗어온다.

요즘 왜 이렇게 사분사분하나 했더니 빅엿을 준비하고 계셨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경기장에 어울린다.

선수가 플레이할 챔피언 중 하나로 말이다.

'크흠……, 뭐 복장 자체는 소화를 하긴 하는데.'

달래가 아링 코스프레를 입고 왔다.

한 눈에 알 정도로 눈에 띈다.

스킨도 굉장히 유명한 거다.

슈퍼스타 아링.

가장 노출도 있는 스킨이다.

약간 어레인지 했는지 살색 스타킹.

"꼴리냐?"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 대답을 하기에는 적기가 아니다.

파프리카TV가 큼지막하게 써져 있는 밴 한 대가 오고 있다.

이 차량을 타고 경기장 안쪽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걸어 들어갈 리가 없다.

""헐…….""

밴의 문이 활짝 열리기도 전에 이미 입이 벌어져 있다.

파프리카 프릭스 소속 선수들이다.

코스프레의 스케일에 압도된다.

심지어 입은 사람이 좀 되신다.

인정하긴 싫지만 잘 어울린다.

얘가 폭스과여서 그런지 폭스 챔피언과 궁합이 맞나 보다.

"안 타?"

""…….""

도리어 본인이 당당하니 당황스럽다.

다행히 꼬리까지 달고 오진 않으셨다.

머리 위의 여우귀는 굉장히 신경이 쓰이지만.

* * *

스프링 시즌 본선 4일차, 파프리카 프릭스 대 불밤의 경기.

그 자체만으로도 향신료가 필요 없는 흥행 보증 수표다.

안 그래도 형제팀인 얼밤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예로부터 맛밤 게임단의 팬들은 의형제다.

서로 티격태격 싸우지만 한쪽이 떨어지면 다른 한쪽으로 자연스레 합류한다.

그런 팬문화가 있다.

하물며 파프리카 프릭스.

새로이 대세가 되고 있다는 신생팀이다.

팬들의 기대치가 가히 폭발할 수밖에 없는 날이다.

최근 들어 비좁아지는 느낌인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이 더욱 극성이다.

어떻게든 입석이라도 서보려고 아옹다옹한다.

꼭 봐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고 말았다.

"실화냐……."

"와 진짜 오늘 오길 잘했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선수들이 타고 있을 차량.

대로변에 차를 세우더니 문이 열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의아했는데 여신님이 강림하셨다.

뭇 남성팬들의 하트를 사로잡고 시작한다.

혹시 하던 이야기가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로드 오브 로드의 첫 번째 여성 프로게이머, 여신이라고까지 추앙 받는 그녀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비를 대신하여 경기를 뛴다.

물론 하비도 인기가 제법 많은 선수다.

이국의 그녀는 남자들을 설레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결혼은 한국 여자랑 해야지!

그런 발칙한 상상 한 번은 해보기 마련이다.

오늘은 특히 더 그런 마음이 사무친다.

"CBS 조승철입니다! 오늘 하실 챔피언을 예고하는 코스프레인가요?"

"UTN 뉴스 아시죠?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MBS에서 나왔습니다!"

.

.

.

아링은 미드 챔피언이다.

그리고 달래는 서폿 포지션이다.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로드 오브 로드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그 정도도 모른다면 큰 문제다.

알고 있음에도 말이 헛나오게 된다.

무려 여신님을 영접하고 있음이다.

어디서 연예인 보면 와~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그런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실물, 심지어 코스프레.

혀가 꼬이게 되는 것도 그럴 만하다.

여신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몰렸다.

파프리카 프릭스 차량이 인파에 둘러 쌓인다.

가까이서 보자 그야말로 천사와도 같은 자태.

하지만 천사가 있는 세상에는 악마도 있는 법이다.

눈웃음을 짓던 여신님이 입을 열려던 그때.

차 안쪽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손 하나가 낚아챈다.

"뭐야? 뭐야?"

"저 손 누구야?"

"미친 새끼 아니야 저거!"

파프리카 프릭스 소속.

미친 짓을 할 인간.

세상에 두 명은 없다.

여신님의 머리채를 잡을 인간은 더더욱 말이다.

"사진 찍었어?!"

"촬영 되고 있었습니다!"

"얼굴 나왔는지 확인해 어서!"

현장의 수많은 기자들이 난리법석이다.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이 안된다.

파악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확인한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자의 손이 천사의 머리칼을 덥썩 잡았다.

엄밀히 따지면 위쪽의 여우귀.

잡아서 그대로 끌어당긴다.

천사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차량이 빵빵! 경적 소리를 울리며 출발한다.

악마에게 납치된 천사가 행방불명.

""…….""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수많은 군중들.

이거 혹시 큰일난 건 아니지?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동시에 떠오르는 설마 하는 생각.

그녀가, 천사가 SOS 신호를 보낸 거라면?

채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SNS가 발칵 뒤집힌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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