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 탈주닌자 하비 -->
하비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팀에 공백이 생겼다.
서포터 자리가 그만 반공석이 돼버렸다.
유리야로는 턱없이 부족한 관계로 부탁.
그래, 부탁이다.
부탁을 들어준 달래가 다시 돌아왔다.
최근 스케줄이 여유가 있어서 어떻게 조정하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결론이고 연습도 순풍이다.
한동안 롤을 안 해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몇 판 하더니 감을 되찾아서 나조차 깜짝 놀랐다.
'맞아. 롤은 결국 재능 게임이야.'
솔직히 말해서 실력적인 면은 그냥 달래가 짜세다.
내가 유리야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지 않았는가?
열심히 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잘하는 거지.
달래가 정확히 그 예다.
달래가 코 파면서 발가락으로 해도 유리야보다는 잘할 것이다.
시청자들은 상상이 안 가겠지만 나는 얘랑 볼 장 다 본 사이다.
환상 따위 하나도 없다.
〈시청자 오빠들~ 달래 이 챔피언 별로 안 해봐서 잘 못해요…. 이해해주실 거죵?〉
-괜찮아! 처음부터 잘하는 게 어딨어
-서포터허눼ㅎㅎ 고여븐 것
-그런데 이분 티어 어디임?
-휴면 강등으로 다이아3요!
온몸에 소름이 돋는 애교를 부리며 연습을 하고 있다.
아니, 이 정도야 예상을 했다.
여캠이 여캠했을 뿐이데 문제라도?
진짜 문제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는 부분이다.
"그냥 하던 거 하지?"
〈꼬우면 빼던가~.〉
"……하시죠."
배 째셨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래서 먼저 말을 꺼내기 싫었던 거다.
온갖 거들먹은 다 부릴 미래가 보였으니까!
그리고 현재 그 미래를 감당하고 있다.
안 돼! 이런 미래는! 난 감당할 수 없어!
스타크래프트 제라툴과 공감대가 형성된다.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쓰렉귀를 연습 중이다.
대세 서포터인 만큼 챔피언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신규 챔피언이라 익숙하지 않을 텐데?
키잉-!
세 판만에 무리 없이 소화를 하고 있다.
우려를 표한 입장에서 심히 무안해진다.
날카롭게 던져진 선고가 적 쏘냐의 머리끄대기를 낚아챈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두 번.
기다리고 나서 날아가 채찍으로 넘긴다.
넘기는 방향에서도 기초적인 실수가 안 보인다.
'……실수하라고 일부러 덫 뒤에 깔았는데.'
쓰렉귀&핑크스 조합의 기본적인 연계다.
쓰렉귀의 스킬을 고려해서 덫을 뒤로 깐다.
일부러 한참 뒤에 깔았는데 이걸 실수를 안 하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하비야미안해님이 학살 중입니다!
약하다는 약점을 가진 쏘냐답게 찢어진다.
가볍게 학살하며 라인전을 터트린다.
확실히 실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
챔피언 폭까지 넓어진다면 금상첨화.
생각했던 이상으로 무릎 꿇은 보람이 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 그만 까먹고 말았다.
"야, 랜턴! 랜턴!!"
봇라인을 터트리고 탑으로 순회 공연을 왔다.
쓰렉귀 믿고 포탑을 치던 도중.
갑자기 느낌이 싸~ 해진다.
투두두두둑!
〈버거킹!〉
하늘에서 불바다 미사일이 떨어지며 대지가 이글거린다.
탈리반 3세가 궁극기로 가두기까지 한다.
안돼! 죽고 싶지 않아.
-이걸 잘려준다고?
-제압킬 줬죠? 역겹죠?
-달래가 킬 먹여줬더니 정신 못 차리네ㅉㅉ
'……'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달래가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말을 들었으면 분명 살 수 있었다.
"저기 달래씨. 랜턴 던져 달라니까요?"
〈달래가 그만 실수해쪄요! 데헷~!〉
-실수할 수도 있지ㅋㅋ
-그냥 저 쓰레기가 무리한 거임
-시야에 탈리반 보이는데 꾸역꾸역 치다가 죽어주네
데헷은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실수를 골라서 하는 재주를 터득하셨다.
물론 실수 한두 번 한다고 질 게임은 아니다.
'중요한 때는 알아서 잘해주기도 하고.'
문제는 역시 내 말을 안 듣는다는 부분이다.
정말 유리야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아니, 이참에 둘이 퓨전하면 안되나?
반반 섞어 놓으면 아마 적당할 것이다.
적당히 색기 있고,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멍청하고, 적당히 눈치 있고…….
'그야말로 이상형인데?'
그런 여자 어디 하늘에서 안 떨어지나?
왜 내 주위 여자들은 다 극단적이지?
불평을 하고 싶지만 선택지가 없다.
하비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꿇어야 한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한 번 부탁한다.
부탁이다.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달래씨."
〈뭐 임마.〉
절대 헷갈려서 말한 게 아니다.
비위 좀 맞춰주려고 일부러 말한 거다.
눈치는 오지게 빨라서 좋아하는 기색도 없다.
"오더대로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내가 왜?〉
"그야…… 를츰스그 증는으 으느느끄으!"
-해석: 롤챔스가 장난이 아니니까요!
-어금니 꽉 깨물었죠?
-달래 잘하는데 트집 잡네ㅋㅋ
-어휴, 누가 쓰레기 아니랄까봐
아니, 잘한다.
잘하는 건 나도 안다.
더 잘할 수가 있어서 그렇지!
'아무리 잘해도 부족한 게 롤챔스야.'
나도 최근 들어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절박하기 때문에 뼈 빠지게 하고 있다.
지는 순간 욕 오지게 먹겠구나!
그에 반해 우리 달래는.
달래는요~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팬 여러분께 너무 죄송해요.
울지 마! 울지 마!
괜찮아! 괜찮아!
물소들의 향연이 뇌 내에서 재생되는 듯한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웬만큼만 하면 져도 아쉬울 게 없으시겠지!'
그런데 나는 아쉽다.
아쉬워도 보통 아쉬운 게 아니다.
커뮤니티를 보니까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파프리카 프릭스 8강 가서 지기만 해봐라
우리 슼오빠들 고생이나 시키고 말이야
저래 놓고 거품 다 빠져서 똥물 튀기면 가만 안 둬ㅡㅡ
└언냐 사이다긔!
└22222
└SKY T1 K팬들 겁나 무섭네……
SKY T1 K의 사생팬이 쓴 글로 생각된다.
물론 모든 팬이 저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딜 가든 극소수 모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어서 문제지!
팬덤이 큰 만큼 모난 사람도 엄청 많다.
경기장에서 분위기를 몸소 느낀 마당이다.
팬이 너무 많으니 관리가 안된다고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락지 맞아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달래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나 보네?
〈나 한 판만 더하고 자러 갈게. 늦게 자면 피부 상한다 말이야.〉
"……."
나는 성적 때문에 피가 말리는데, 우리 달래씨는 피부가 마르는 걸 걱정하고 계시네?
부글부글 하는 속을 참고 부탁한다.
"좀만 더 해주시면 은들끄으?"
〈어금니 좀 풀고 말하세요~. 그러다 죽빵이라도 치시겠어요?'〉
"하하아아아…… 호흡 곤란 올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네 둘은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네
-달래 잘하는데 왜 자꾸 트집 잡냐?
-우리 예쁜 달래한테 시비걸지 말거라~
저놈의 사심충들!
여론을 끌어내는 건 불가능 할 듯싶다.
보편적인 상식에 기인하자면 여자가 마스터급 실력이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잘하는 거다.
하지만 나는 쟤가 여자인 걸 모르고 만났다.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연습 시간만 늘리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
"달래야. 한 마디만 할게."
〈그냥 여물어주시면 안돼요?.〉
"아니 너…… 바쁜 것도 알고 다 아는데 8강만 좀 어떻게 안되겠니?"
너에게는 이름을 알리는 워킹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자리다.
그렇게 대충 하면 나도 마음 상한다.
달래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오빠, 나 모델 일 때문에 자기 관리 열심히 해야 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지?〉
"……."
-요즘 달래 대세야 대세!
-TV보는데 광고에 달래 나와서 깜놀함
-어휴, 레전설 철없다 진짜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달래에게 직접 들었던 만큼 모르지 않다.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 안되겠니?
"그리고 다이어트 같은 거 하지 마."
〈하? 니가 뭔데?〉
"네가 이 세상에서 1g이라도 사라지는 건 싫단 말이야……."
-미친 새끼ㅋㅋㅋㅋㅋㅋ
-추하고 역겹다 레전설
-으아 오글거려! 닭살!
누군 안 오글거리는 줄 알아?!
이렇게라도 해서 비위를 맞춰야 하잖아.
달래의 연습량에 8강의 명운이 걸려있다.
'대체할 수 있는 인재가 있었으면 너한테 무릎 꿇지도 않았어!'
오죽하면 어금니 꽉 깨물고 부탁을 하겠니.
내 필사적인 마음을 알아줬으면 싶다.
적어도 하비가 돌아올 때까지는.
"이번 8강 니 성깔에 걸맞게 한 번 다 때려 부숴보자."
〈달래는요~ 그런 폭력적인 거 못해요.〉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게."
〈아싸, 백 신상으로 맞춰야지.〉
"……."
협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종결됐다.
사고 싶은 가방이 하나 있었나 보다.
여자들이 백, 구두에 환장하던데 달래도 다르지가 않네.'
누가 여캠아니랄까봐 아삭하다.
살짝 실망이긴 하지만 속물인 편이 차라리 협상하기에는 편하지.
"돈도 많으면서 나를 뜯어먹어야 속이 시원하겠니?"
〈원래 라면도 남이 끓여주는 게 맛있음.〉
-인정합니다
-ㄹㅇ루다가 남이 해주는 게 제일 맛있자너~
-밥도 친구가 사줄 때가 꿀맛임ㅋㅋㅋ
'반박할 수가 없네…….'
하긴 비싼 고급품을 살 때 망설여지긴 한다.
이거는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의 문제거든.'
굴비 같은 거 솔직히 내 돈 주고 못 사 먹어.
근데 부모님이 보내주시거나, 선물 받거나.
그럴 때 먹으면 먹으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여자 백도 넓은 의미에서 비슷할 수 있겠다.
한두 푼이 아닌 만큼 고르는 게 힘들지도 모른다.
이참에 좋은 거 장만하시려는 생각인 걸로 보인다.
'근데 여자 백이 한 20만원돈 하나? 이번 달 가계가 좀 쓰라리겠네.'
끼니에 간간히 컵라면을 섞어야 할 듯하다.
* * *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조네스닷컴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온라인 쇼핑하면 아마조네스!
대부분의 나라에서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동쪽의 먼 나라, 한국이 예외일 뿐이다.
전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글로벌 대기업이다.
"구글과 트러블을 만들면서까지 크지도 않은 스트리밍 시장을 욕심낼 이유가 있나……"
최근 하나의 사업을 두고 구글과 경쟁이 불붙었다.
구글, 아마조네스닷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다.
웬만한 기업들이 입찰 경쟁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선 안될 문제다.
서로 아쉬움이 생기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보다 대중적인 비디오 스트리밍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저 로를 몬테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아마조네스닷컴의 이사회는 벌써 몇 달씩이나 방향성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결론이 날 듯한 분위기다.
이사회의 한 파벌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요점은 크게 세 가지다.
구글에게 양보를 해주자.
그리고 다른 부분을 양도 받자.
비디오 스트리밍 사업에 투자를 하자.
비디오 스트리밍은 한 마디로 인터넷 DVD 렌탈이다.
먼 걸음하여 DVD를 빌려오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빌려보는 시대다.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이지만 보다 강화하자는 취지다.
로를 몬테는 일반 스트리밍 시장에 회의적이다.
보수적인 입장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향후 스트리밍 시장은 더욱 커져 갈 것입니다. 우리 아마조네스가 점유율을 잡을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 호기가 아닐런지?"
로를 몬테와는 반대쪽 파벌의 대표인이다.
상반된 두 의견이 격돌한 것도 벌써 수 개월이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쐐기를 박으리라 작정을 해왔다.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은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다른 쪽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로를 몬테가 준비해온 자료를 브리핑 하려던 그때.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성을 입증할 자료이므로 먼저 브리핑하는 걸 양해 바랍니다."
찬성쪽 파벌의 한 여성이 엄중한 분위기를 깨고 주도권을 가져온다.
착 달라붙은 정장핏이 선정적으로도 느껴진다.
안경을 쓰고 묶은 머리의 지적인 스타일.
나이는 많이 쳐도 30대가 안돼 보인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저렇게 젊은 여성이?
사뭇 의아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건 능력이다.
하물며 대표이사가 아끼고 있다는 인재다.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먼 걸음 특별히 달려왔다.
"저는 스트리밍, 그리고 게이밍 시장이 급부상하리란 미래를 보고 왔습니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왔단 말인가?
60억 인류, 드넓은 지구.
온 가정이 인터넷을 하고, 게임을 하고, 컴퓨터를 보유한 근미래적 나라가 딱 한 곳 있었다.
========== 작품 후기 ==========
도시 국가 제외하면 정말 한국이 유일해요
안심하고 국뽕 가지셔도 되는 부분입니다!
광복절인 만큼 더더욱 가질 만한 날입니다
E스포츠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 맞고요(그전부터 있기는 했는데 그 어느 나라에서도 직업으로는 인정을 못 받았어요. 옛날 해외의 프로게이머라 함은 대회 상금 헌터의 동의어였어요 연봉제가 아니라)
9월 3일 티미 몬테-〉로를 몬테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