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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주닌자 하비 -->
〈근데 오빠.〉
"뭐."
우여곡절 끝에 전화를 걸었다.
걸자마자 또 금전을 갈취하려 한다.
〈내 방 팬클럽 가입도 안 했네? 흰색 글씨 실화야?〉
"내가 니 방 팬클럽을 왜 해."
나 먹고 살기도 바쁜 몸이다.
그리고 소름끼쳐서 하기 싫다.
하지만 이전에 한 번, 한다고 했던 적이 있던 것 같기는 하다.
〈팬 가입을 두세 달씩 미뤄? 잠깐만…. 지금 나만 너 개때리고 싶냐?〉
-춘자ON!
-달래는 이 맛이지!
-누님 오늘 한 놈 담구시지 말입니다
-레전설 하드 카운터 오졌죠? 아무고토 모타죠?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는 거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아오…….
팀장으로서 이 모진 수모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
"팬가입 할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말투가 좀 띠껍다? 아쉬운 게 없으신가 봐?〉
"팬가입 하고 싶습니다. 몇 개 원흐스느으.〉
-어금니 꽉 깨물었죠?
-캬~ 꼬시다ㅋㅋㅋ
-한 만 개 부르자ㄱㄱ
-만 개가 뭔야 2만 개는 돼야~
이 새끼들이 지들 돈 아니라고 막 부르네!
만 개, 2만 개가 뉘집 개 이름인지 알아?
수수료 포함하면 110만원, 220만원이다.
'만 개 쏘는 순간 이번 달은 컵라면만 먹어야 돼!'
용준좌는 그래도 해설 때만 먹지.
나는 삼시세끼 먹어야 한다고!
안 그래도 이번에 적금 들고, 청약도 들었다.
생활비 빠듯한 와중에 110만원은 너무 무리다.
〈오빠 그 정도도 못 쏴? 달래 기분 다운됐어.〉
"다운? 진짜 다운 당해볼래? 맞짱 함 뜰까?"
-여자 상대로 폭력을……
-말넘심;;
-이런 데서 평소 인격이 나오는 거지ㅉㅉ
지금 진지를 갈아 마시고 인격 드립하는 애들 실환가?
쟤는 그냥 여자가 아니다.
쟤한테 한 번 멱살 잡히고 명치까지 맞아봐야 환상이 깨지지.
결코 맞아봐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럼 달래가 퀴즈 하나 낼 테니~ 오라버니가 맞춰 보실래요?〉
"네, 맞춰 볼게요. 내보기나 하세요."
〈달래가 누구랑 닮았을까요오? 별풍선으로 정답을 맞추시면 달래가 기분이 업! 될 것 같아요!〉
제 혈압도 업! 될 것 같아요!
솔직하게 정답은 알고 있다.
맞추기가 싫을 뿐이지.
마지막 한 가닥 인간을 포기하는 듯한 기분이다.
─레전설님 별풍선 1003개 감사합니다 뿌잉뿌잉!
레전설님이 22892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됐냐?
'두고 보자…….'
이 굴욕은 반드시 갚아주마.
통장에서 소중한 11만 330원이 사라졌다.
마지막 일말의 자존심으로 1개를 덜 쐈는데.
〈땡! 틀렸어요. 그래도 거~~~의 근접했으니 착한 달래가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요.〉
"착한 달래? 야, 맞짱 까자. 안되겠다."
〈아~ 정말 쫀쫀하게. 맞았다고 쳐줄게.〉
진작에 쳐줄 것이지.
있는 사람이 더 한다고 돈도 잘 벌면서 마지막 한 입까지 뜯어먹을 생각을 한다.
더럽고 치사해서 쏜 건데 또 쏘라고 했으면 여자고 나발이고 아오…….
-레전설 돈도 잘 벌면서 저걸 아까워 한다고?
-실망입니다
-레전설 저 새끼 전생이 스크루지 영감임
-ㄹㅇ 그러고도 남는다 쓰레기
이걸 나한테 실망한다고?
나한테 정치를 하고 있다고??
'아니, 누가 봐도 별풍선 갈취하는 아삭한 여캠이 잘못한 건 아니냐?'
내가 잘 벌고 쫀쫀한 거면 말이라도 안 한다.
롤챔스에서 선전하고, 파프리카TV 시청자 많으니까 잘 벌 거 같지?
'롤챔스는 계약금 제외하면 들어오지도 않았고 시청자는 그냥 거품이야 거품!'
내 시청자의 1/10도 안되는 달래가 나보다 100배는 더 잘 번다.
정말 100배까지는 아니겠지만 그에 준할 수준이다.
방송 시간이 많은 편이면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없는 여건이다.
스크림은 당연히 방송을 끄고 해야 된다.
멸망전도 아니고 롤챔스니 당연하다.
전략 유출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방송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소리다.
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빛 좋은 개살구 뜯어먹어서 좋으시겠어요?
〈너무너무 좋아요! 1004개 한 번만 더 콜?〉
"받고 푸른 눈의 백룡."
〈오빠~ 오라버니! 저 안 그래도 요즘 롤하고 싶었는데.〉
-푸른 눈의 백룡은 너무 강했다
-덴세츠노 레어 카도!
-유희왕 추억 새록새록…… 근데 뭔 드립임?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달래 시절 사진ㅋㅋ
그래,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달래…… 아니 춘자 시절의 사진이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컬렉션을 간직하고 있다.
본인이 워낙 당당해 희소성이 다소 떨어졌지만 몇 가지는 유효하다.
저번에 까톡으로 한 번 보여주니까.
'씨랑 발을 찾게 되셨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도 막상 보면 다르다.
잊고 있던 심층 기억이 그제서야 떠오른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짓을 하고 다녔는지.
흑역사가 샘솟으며 쥐구멍을 찾게 된다.
〈니가 그러니까 하비씨가 도망가지. 이 찌질한 새끼야.〉
"아니, 하비는 잠깐 일이 있어서 쉬는 거야."
〈구질구질 해가지고. 눈치 겁나 없죠?"
"뭐, 구질구질? "
-팩폭 너무 아프고~
-본인만 인정 안 함 본인만ㅋㅋ
-근데 진짜 8강 뛰시나요 여신님??
지인의 과거 사진을 간직하는 게 어째서 찌질한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다.
추억을 소중히 할 줄 아는 남자다.
'아무튼 이걸로 한시름 놓았네.'
유리야 하나 믿기에는 지나치게 험난한 여정이다.
8강에서 맞붙게 될 상대.
어느 팀이 될지는 몰라도 결코 만만할 수가 없다.
총 열여섯 팀이 참가했던 조별 리그를 뚫고 올라온 맹장들 뿐이다.
달래의 재합류로 안정적인 승산을 점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다.
일단은.
* * *
명가(名家).
어떤 분야든 원조집이 있기 마련이다.
E-스포츠, 로드 오브 로드에도 손 꼽히는 명가가 있다.
얼밤과 불밤으로 대표되는 맛밤 게임단이 대표적이다.
시즌2의 로드 오브 로드를 상징한다고 봐도 될 정도다.
맛밤 내전은 흥행의 보증 수표라고 불릴 만큼 인기를 몰았었다.
몰았었다, 과거에 그랬다는 이야기다.
시즌3에 이후 얼밤과 불밤과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승은 물론이고 결승 진출을 한 적도 작년 스프링 시즌 한 번 뿐이다.
과거를 대표했던 원조집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선수들로서는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강팀이고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힘든 시기야. 하지만 이 시기만 넘기면 재도약 할 수 있어!"
맛밤 게임단의 감독을 맡고 있는 강윤종.
선수들 만큼이나 그도 답답하고 힘든 입장이다.
게임단이 성적을 못 낼 때 가장 힘든 건 원래 책임자다.
하지만 선수들을 전혀 닦달하지 않는다.
운도 나빴고, 메타도 어울리지 않아서 그렇다.
이번 시즌이야 말로 명가 다운 모습을 보여줄 때다.
"운영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어. 조합 갖추고 한타만 하면 질 이유가 없는 상대들이야."
맛밤 게임단의 연습실에서 가히 연설을 하고 있다.
매 시즌 이맘때쯤이면 한 번씩 있는 행사다.
이맘때란, 본선 진출이 결정된 직후를 뜻한다.
「얼밤」 VS 「마진 실드」
이미 본선 대진표가 확정된 마당이다.
다행히 대진운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마진 게임단도 나름 명가지만 맛밤에게는 항상 한 수 밀렸다.
"소드도 아니고 실드야~ 만년 8강인 판독기잖아. 얼밤 너희들 자신 있지?"
강윤종 감독의 물음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기합까지 외친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새어나온 진심이다.
얼밤은 시즌2 롤드컵의 준우승을 거머쥐었던 이른바 한국의 대표팀이었다.
그 자리를 SKY T1 K에게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팀의 성적은 날이 갈수록 하락세를 면하지 못한다.
팀의 중심이었던 클끼리가 나가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마진 실드 정도야 뭐~
상대 전적에서 월등하게 앞서고 있다.
구면인 만큼 상대하기도 편하고 자신감도 생긴다.
"얼밤은 이지훈 코치와 함께 연습하는 방향으로 해보고 문제는 불밤인데……."
형제팀인 불밤 또한 이번 스프링 시즌의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과거에는 얼밤에 살짝 밀린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는 오히려 얼밤보다 준수한 활약을 보인다.
롤챔스는 아니지만 WCG라는 권위 있는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만큼 상대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 기세가 SKY T1 K에 비견된다는 신생팀이다.
"너희도 알겠지만 쉬운 상대는 아니야. 하지만 어려운 상대도 아니야!"
강윤종 감독은 매사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수들을 아낀다.
이는 어떻게 보면 장점이긴 하다.
선수들이 성적으로 내고 있을 땐.
가족처럼 아끼며 싸고만 돌면 냉철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경우가 다르다.
확실하게 근거가 있는 판단이다.
"하긴 파프리카 프릭스도 질 때가 됐지~."
"레전설 빼면 주의할 만한 선수도 없고. 전략도 슬슬 다 나왔잖아?"
감독의 설명을 들은 선수들이 수긍한다.
최근 롤챔스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파프리카 프릭스.
선수들로 하여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롤챔스에서 저런 멱살 캐리가 가능하다고?
가능한 건 둘째 치고 챔피언이 왜 저래?
온갖 독특한 똥꼬쇼를 다 하고 다닌다.
심지어 그게 먹히면서 이슈까지 낳고 있다.
팬들 입장에서도 가히 당황스러운 팀이다.
동종 업계 종사자인 선수들에게는 더더욱이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결국 다 일회성 전략이야. 차분하게 준비해서 대처하면 약점이 있어."
이를 분석하고, 대처법을 찾고,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다.
명가가 괜히 명가라고 불리겠는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다.
그 이유는 비단 집문서나 뒷돈을 꽁쳐두어서가 아니다.
지식적인 부분이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맛밤 게임단은 다전제에 강하기로 유명하다.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항상 본선에는 진출한다.
강팀들을 상대로도 비비거나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뒷심이 바로 코치진이 가진 힘이다.
"지금까지 나온 전략들은 스크림으로 대처법을 연습할 거야. 코치진들이 피드백 할 테니 안심 푹 놓아도 돼."
하물며 파프리카 프릭스처럼 근본이 없는 신인팀.
제대로 된 코치진도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판제면 모를까, 다전제인 이상 확실하게 이긴다.
'파프리카 프릭스를 잡는다면 팬들의 신뢰도 되찾고, 그간의 부진도 만회할 수 있겠지.'
그런 불밤의 주장, 앰빠따로서는 많은 생각이 오간다.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만큼 마음이 착잡했다.
성적을 못 내고 있는 탓에 팬들께 죄송하다.
이번 스프링 시즌이야 말로 보여줄 시기다.
그래야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에게도 체면이 선다.
앰빠따에게는 한 가지 더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럼 오늘은 이것으로 해산할 테니 푹 쉬고 내일 새로운 마음으로 보자 이상!"
감독님의 훈화……와도 같은 긴 8강 대비 피드백 시간이 끝났다.
선수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오늘 일과의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뭐 먹을까?"
"하이고~ 벌써 먹을 생각을 하냐."
"요즘 프레셔 때문에 죽겠는데 먹기라도 잘 먹어야지!"
오후 연습이 끝났기 때문에 나머지는 개인 여가다.
잘 먹고, 잘 쉬고, 푹 자고 다음날을 기약한다!
본래라면 행복을 음미해야 할 시간이었다.
"집합."
""…….""
앰빠따의 한 마디에 불밤의 선수들이 전원 주춤한다.
가장 연장자이며 팀장이며 위엄이 있는 존재.
감독이나 코치보다 훨씬 두려움의 대상이다.
세상사 법은 멀고 방망이는 가깝다.
"저, 저희 오늘 스크림 결과도 좋았고 문제 없지 않았나요?"
"그래서?"
"그러니까 내일의 빡연습을 대비해 쉬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아닙니다."
단 두 마디에 이견이 묵살된다.
앰빠따는 엄하기 그지없는 팀장이다.
팀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 종종 방망이도 들 정도다.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듯한 남자다.
내 여자에게조차 쓰레기인 남자가 있다고 들었다.
통칭 사랑꾼이라고 불리는 앰빠따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근데 저희 밤 늦게 연습하면 감독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은데……."
마지막 희망이다.
편하게 쉬고 싶다!
코치님이 부디 앰빠따를 멈춰주기를!
강윤종 감독님은 온화한 성향이라 분명 말려주실 것이다.
"친목 도모로 게임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해."
"……알겠습니다."
대 파프리카 프릭스전을 향한 맹연습이 실시된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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