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 최종병기 유리야 -->
파프리카 프릭스의 패배.
엄밀히 따지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력적으로 봤을 때 아예 상대가 안된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건 진짜 레전설 할애비가 와도 못 이긴다
적어도 팀이 중견팀급은 돼야 비비지
파프리카 프릭스는 너무 약해
너무 모래성이야
└도인디는 그래도 나름 하던데……
글쓴이-네 다음 솔킬^^
└정글 차이가 이빠이 난다는 게 너무 커
└탑도 저라딧 때문에 덜 까인 거지ㅋㅋ
첫 세트가 끝나자 롤 커뮤니티들에는 게시물이 폭주하고 있다.
수많은 뇌피셜들이 도배되듯 주르르륵-!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안 그래도 노잼스라 치부되던 최근의 롤챔스.
간만에 나온 박빙의 명승부다.
양쪽 버스 기사의 캐리력 대결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니야?
파프리카 프릭스의 밑천이 드러나는 경기였다.
다각도에서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기되는데 이른다.
??? : 살고 싶다고 말해!
그러니까 우리 삼선 갤럭시에 들어온다면……
└이건 예상 못했다
└아, 출제 범위 너무 넓은데
└감독님 열일 하시는 중……
└진짜 레전설은 탈파프리카해야 돼 ㄹㅇ루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지적이다.
탑과 정글이 너무 못 받쳐준다!
악조건 속에서 봇을 터트렸는데 캐리가 안된다.
그 외에도 수많은 화제들이 수많은 논란을 낳는다.
결국 요점은 하나다.
파프리카 프릭스, 이대로면 승산이 제로에 수렴한다.
〈최근 기세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신인팀이에요. 갑자기 확 기울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어조가 상당히 진지하다.
그도 그럴게 전례가 있다.
심지어 얼마 전의 일이다.
무적의 신인이라 칭송 받던 그리핀도르가 고작 한 번의 패배에 와르르르 무너졌다.
〈LML 무패, 승강전 무패! 그러다 한 번 지고 승강전 탈락하지 않았습니까?〉
〈파프리카 프릭스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패배했기에 더욱 멘탈을 붙들어 잡아야 돼요.〉
기세가 좋은 신인팀 일수록 멘탈도 약하다.
잘 나가다는 듯하다가 한순간에 고꾸라질 수 있다.
그만큼 이어지는 두 번째 세트의 중요도가 높다는 소리다.
〈그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파격적인 선수교체를 시도하는 걸로 보이긴…… 하거든요?〉
클끼리 해설의 말미에 의문이 가득하다.
파격적인 건 좋지만 너무 파격적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비비게 만든다.
도저히 실화인지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아니, 진짜로??
-다시 교체하겠지?
-같은 얼굴, 다른 사람일 수도 있음
-그 와중에 사진은 귀엽네ㅋㅋ
방송 화면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서브 미드라이너!
그 자랑스러운 얼굴이 온 세상에 낱낱이 공개된다.
생긴 것은 정말 이쁘장하다.
달래, 그리고 하비와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둘에게는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말이 많던 깍두기가 등장했습니다.〉
클끼리의 소개에 경기장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온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멤버진 한구석에 분명히 있었다.
왜 있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정말 나오리라고는 눈곱 만큼도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유리야 선수가 섭섭할 수가 있어요?〉
〈아니, 저는 진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 선수가 과연 등장할 날이 올까! 온다면 하위권팀을 상대로 시범적인 카드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하위권팀도 아니고, 잘하는 팀도 아니고, 세계에서 최고로 잘하는 팀이다!
축구로 따지면 레알 마드리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치어리더가 경기장에 나타났다!
같이 공을 찰 수나 있을지 의문이 가득한 상황.
상대가 E-스포츠계의 호날두, 테이커이기까지 하다.
치어리더는 고작해야 골드 티어에 빛나는 실력의 소유자다.
〈참고로 프로게이머에게 자격 요건 같은 건 없습니다.〉
클끼리가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짚고 넘어간다.
마스터&챌린저는 돼야 프로게이머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자소서에 요구되는 필수 경력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에서 낙하산으로 불가능한 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KTX B팀의 코돈빈 선수도 처음 프로가 됐을 때 언랭이었어요. 배치고사도 안 봤다는 소리입니다.〉
가능성을 높게 점지한 게임단의 감독이 꽂아줬다.
그리고 정말로 가능성을 꽃 피우고 있다.
아니, 꽃 피운지 한참 된 중견 선수다.
유리야에게도 그런 잠재력을 봤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코돈빈은 과거 카오스의 네임드 중 하나였다.
〈유리야 선수의 잠재력을 보고 기용했다는 거겠죠?〉
〈포텐셜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어요. 현 시점에서 긍정적인 가능성을 논하자면 그것 뿐이긴 한데 하아…….〉
-김은준 말문 막힘ㅋㅋㅋㅋㅋㅋ
-혈압 터진 거 같은데?
-강팀준이 또
-??? : 근거가 없어요 근거가!
데이터와 근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해설가다.
어떻게 포장을 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안 긁은 복권이라고 하기엔 이미 많이 긁었다.
솔로랭크 전적이 2천 판 가까이 된다.
브론즈를 탈출한 건 극히 최근이다.
골드는 정말 한 달도 안된 일이다.
클끼리 해설이 황급하게 무마하려 했지만.
〈솔로랭크와 대회는 엄연히 다르잖아요? 의외의 가능성을 기대를 해볼 만합니다!〉
〈서포팅적인 측면에서 재능을 찾을 수도 있긴 한데 하아…….〉
선수들의 멘탈을 걱정하기 전에 본인의 멘탈부터 찾아야 할 듯싶다.
하지만 김은준 해설의 말문이 막힌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프게임넷의 자막 미스가 아닌지 진지하게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네, 서포터 아니고 미드라고 합니다~
-미드로 쓴다는 게 진짜였어?
-김은준 혈압 터지기 직전ㅋㅋ
그나마 서포터라면 일말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서포터라는 포지션 특성상 점수를 올리기 힘들다.
인류 역사상 최초 수준의 극단적인 예일 희망이 0.0001%는 있었다.
그 희망이 가뿐하게 짓밟혔다.
포지션이 무려 미드!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라인이다.
김은준 해설이 롤챔스 최초로 조냐를 시전했다.
〈중앙 선수석에 앉았습니다. 정말로 미드로 출전하는 모양이네요!〉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담담한 클끼리의 말대로 미드 포지션으로 나오게 됐다.
하비 선수도 교체하지 않은 만큼 스왑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파프리카 프릭스도 분명 무언가 생각이 있긴 할 거다.
그런데 과연 어설픈 전략이 먹힐 수 있는 상대일까?
진지하게 곱씹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테이커 선수의 최고 점수가 챌린저 1221점입니다. 그리고 유리야 선수는 1372점이에요 어떻게 보면 박빙의 대결이 될 수도 있거든요?〉
-아니 그건 MMR이잖아ㅋㅋㅋㅋㅋ
-정보)테이커의 MMR은 3500점까지도 갔다
-아무말대잔치ㅋㅋㅋㅋ
-에라, 모르겠다! 드립이라도 치자!
어쩌면 팀다크 사건 이후 잠잠했던 롤판에 전대미문의 대형 사고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불길한 촉이 드는 건 기분 탓이 아니다.
최근 이미지 세탁을 했을 뿐이다.
과거 경력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너무 방심하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
수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던 진용준 캐스터는 등줄기에 땀띠가 난다.
같은 시기에 한 명 더 땀을 줄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 * *
"후후, 선배 제가 바본 줄 알아요? 다 알고 눈치챘거든요~?"
유리야가 특유의 때려주고 싶은 우쭐함을 보이며 손가락을 흔든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건 아니다.
"몰래 카메라죠? 이벤트 매치죠? 져도 하~나도 상관 없는 게임 맞죠?"
그저 현실을 도피하고 있을 뿐이다.
유리야가 정신줄에서 손을 뗐다.
평소에도 반쯤 떼고 있는 녀석인데 이제는 오락가락하는 듯싶다.
"유리야 벌떡 일어나!"
기계화 교육이 빛을 발하며 자동반사처럼 일어난다.
본인도 왜 일어났는지 당황해 하지만 지시해준다.
앞을, 상대편의 부스를 봐라.
"저기 앉아있는 사람 누구야."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그러니까 누구냐고."
"아는데……, 아는데……."
알면 말을 하라고!
평소 같았으면 윽박질렀겠지만 상황이 다르다.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유리야도 나름 똑똑한 아이다.
"선배 저한테 왜 그래요. 저도 제가 못하는 거 아는데……."
진짜로 부르면 어떡하냐고.
그리고 상대가 정말 테이커냐고.
유리야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다.
그런 만큼 잘 알고 있고, 부담감도 많이 느낀다.
현실 도피를 하려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유리야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따질 것도 없이 보이지.'
하는 행동에서부터 티가 나지 않는가?
얘가 자신감이 별로 없다.
툭하면 안된다고, 포기하려고 한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은 세다.
원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작은 지적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러는지 나도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자주 가봐서 알지만 유리야집이 보통 잘 사는 게 아니다.
주위 사람들도 능력자들 뿐이다.
동생만 해도 상당하다.
나보다는 살짝 떨어질 뿐이지 얼굴도 꽤 되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비슷하게 좋다.
그런데 리야는 애 같은 성격에 실수 투성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그럴 만하다.
"저 솔직히 외모 말고 장점도 없고……."
이쁜 여자들은 대부분 콧대가 높다.
리야가 예외가 된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유난히 부들부들대고, 티어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게임에서라도 잘 나가고 싶은 심리.
남자라면 한 번쯤 가지게 되는 생각이다.
여자라고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한 가지 착각하고 있다.
"리야가 서툰 면이 있긴 해. 근데 예쁘잖아. 요즘 같은 시대에 외모는 자산이고 능력이야."
"선배……."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렇게 조금만 달콤한 소리를 해주면 금세 넘어온다.
넘어오게 한 다음 무너뜨리는 과정이 참으로 마약 같은 쾌감이다.
"단순히 너의 외모가 나머지 단점들을 커버하지 못할 뿐이야. 그러니까 매일매일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으렴."
"흐에에에엥!"
가벼운 팩트 폭행일 뿐이다.
유리야 성격에 못생기기까지 했어 봐!
하늘이 얼마나 공평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인생사 재능이라는 건 쓰이기 나름이다.
내가 유리야를 괜히 기용했겠는가.
일단 그 착각부터 바로잡는다.
"리야야."
"저……, 저……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모르면 내가 가르쳐줄게."
재능이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냥 겁나 잘하는 재능.
다른 하나는 대체할 수 없는 재능.
유리야에게 이끌어내려는 건 후자다.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너가 아니면 안되는 일도 있다는 걸 가르쳐준다.
어째서 하필이면 유리야일까?
도인디나 다른 이에게 시켜도 되지 않았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켜도 거부할 게 빼박이거든.'
두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된다.
절대 예상할 수가 없는 포지션 변환이었음에도 상대의 대처는 능수능란하다.
노련한 임기응변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 생길지 모를 변수를 최우선으로 제거한다.
변수만 제거하면 자신들이 무조건 이긴다.
그런 자신감이 엿보이는 밴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얕보고 있다.
"리야야."
"네……."
"넌 어차피 도움 안되니까 노래나 하나 들어."
"히잉……. 근데 노래 들어도 되는 거에요?"
듣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할 사람이 없을 뿐이지.
'하지만 리야는 해도 돼.'
어차피 밴픽 진행되는 거 하나도 이해 못한다.
싱숭생숭할 마음이나 진정시키는 편이 옳다.
딱 맞는 노래가 한 곡 존재한다.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 해준 세상이란~.〉
"우쒸! 저 어린 애 아니에요."
"그랬구나. 그럼 딴 거 들어."
디지몬 노래 들으면 힘이 무럭무럭 솟는데.
은근히 랭크게임 연승곡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곡.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하나도 없어. 이런 내가 뭐라고, 대체 내가 뭐라고…….〉
얼핏 우울하게도 느껴지는 도입부다.
하지만 잔잔하고 산뜻한 멜로디.
그리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가사.
다 듣고 나면 왠지 모를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곡이다.
지금의 유리야에게 필요한 노래다.
길을 모른다면 내가 알려준다.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진지해질 시간이 찾아왔다.
========== 작품 후기 ==========
한올- 이래도 되는 게 맞는 걸까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