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 커피물조절장인 -->
분명 SKY T1 S가 아름답게 걸은 한타다.
티확찢을 못한 건 아쉽지만 충분히 족하다.
리심과 함께 들어간 티바나.
〈몰락검이 뜬 티바나는 데미지랑 추노력이 말도 안됩니다.〉
처음 티바나가 유행하던 당시에는 순수한 탱커였다.
불타는 망토를 코어템을 탱템만 둘둘 두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움직임도 보인다.
딜탱 브루저 느낌으로 쓰면 어떨까?
몰락한 기사의 검이 티바나와 잘 맞는다.
뜨기만 하면 %뎀으로 순식간에 찢어발긴다.
딜템인 탓에 띄우는 과정이 어렵다.
왕린 선수는 이를 실력으로 극복해냈다.
그리고 한타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려 했지만.
촉!
촉!
촉촉하게 젖어들며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다.
점멸로 도망갔음에도 끝끝내 잡히고 만다.
피니시를 장식하는 제물이 되었다.
─트리플 키일-!
FFs 레전설님은 전설적입니다!
마무리…!
경기장 관중들이 셋으로 나뉜다.
일단 잘한 거 같으니 환호하는 군중.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분석하는 군중.
SKY T1 S의 대패를 안타까워 하는 군중까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생각은 사치다.
그냥 단순하게 보고 즐기는 게 맞다.
강빈 해설이 짤막하게 압축한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카시오가피의 한타 캐리! 파프리카 프릭스 대승!〉
글자 그대로의 일이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한타 대승이다.
카시오가피가 원딜러 이상의 지속딜을 퍼부으며 한타를 견인했다.
반대로 SKY T1 S의 원딜러.
전혀 만족스러운 딜링을 하지 못했다.
흥분을 가다듬은 김은준 해설이 상황을 정리한다.
〈결국 포커싱은 카시오가피한테 있었어요. SKY T1 S는 당연히 잡을 줄 알았습니다.〉
몰락검 나온 티바나가 대놓고 물었다.
쓰렉귀도 노린 듯이 선고를 던졌다.
코리아나와 토이치의 점사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틴 게 이상한 거다.
레전설의 한타 피지컬이 미쳤던 거다.
아이템 선택도 확실하게 빛을 발했다.
〈나일아이의 수정창…… 일반적인 코어템은 아니거든요. 의아했었는데 방금 한타로 이유를 보여줬습니다.〉
한 대 맞는 순간 35%의 둔화가 걸린다.
그래봤자 고작 둔화 아니야?
뚜벅이 챔피언에게는 가히 지옥이다.
그리고 화룡점정이었던 레전설의 카이팅.
마치 원딜러처럼 거리 조절이 미쳤다.
허리가 계속 돌아가면서 딜을 박아넣는다.
-와, 슬로우 장면으로 보는데도 ㅎㄷㄷ하네
-독니쿨 왜 이렇게 짧음?
-독 묻으면 0.5초야
-ㅁㅊ 뭔데 그렇게 쿨이 짧아? 원딜러냐?
AP원딜러 느낌이 나는 카시오가피다.
일단 챔피언 컨셉은 그러하다.
그런데 난이도가 너무 높아!
레전설의 손에 잡히니 자연스럽다.
원래 그런 챔피언인 것처럼 쓰인다.
촉촉하게 젖어들며 프리딜.
방금 전 한타의 리플레이가 송출되고 있다.
카시오가피의 존재감에 압도된다.
물론 레전설 혼자만의 캐리도 아니긴 하다.
〈랄라의 커져라가 타이밍이 기가 막혔죠?〉
〈사실 거기까지는 연계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저는 하비 선수의 판단력에 놀랐어요.〉
원래라면 충분히 찢어지고도 남았다.
딜러가 앞점멸 함부로 하다간 큰일난다.
심지어 한 명도 석화에 걸리지 않은 대위기.
티몽이 핫둘셋넷! 열심히 뛰어가서 점멸로 푸슉-! 박았다.
이래 봬도 티몽 장인.
까다로운 플레이는 꿰고 있다.
-캬 저기서 실명침 박았구나
-티몽 캐리ㅇㅈ?
-티몽이 원딜러 담당 일찐이지!
마스터시 실명 시간이 무려 2.5초에 달한다.
CC기가 중요한 서포터라 선마스터했다.
나름대로 유용한 CC기임이 맞다.
특히 원딜러들에게는 지옥과도 같다.
궁극기를 켠 토이치가 바보가 됐다.
카시오가피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독을 묻힌 덕분에 독니도 바로바로 연계됐고 아무튼 정말 방금 한타는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KTX 롤러코스터 A팀전.
결과적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평가는 많이 갈렸다.
레전설이 한 번만 죽었으면 진 게임 아님?
반박할 말이 없다.
방금 전 한타는 느낌이 달랐다.
카시오가피가 캐리한 건 맞다.
하지만 팀원들의 보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물론 그 본인의 캐리력도 어디 가지 않는다.
여전히 혼자서도 무쌍을 잘만 찍는다.
부쉬에서 난데없이 캬아악-!
〈아니, 이거 잘못하면 죽겠는데요?〉
김은준 해설이 깜짝 놀라 소리친다.
탑라인 웨이브를 관리하기 위해 올라가던 티바나.
부쉬에 몰래 잠복하고 있던 카시오가피에게 딱 걸린다.
그래도 탱커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괜히 깜짝 놀랐던 게 아니다.
박히는 딜 보니까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FFs 레전설님은 전설적입니다!
궁극기를 쓰고 도주했음에도 결국 잡힌다.
또다시 자연스러운 세 글자가 떠오른다.
전설적.
보통 대회에서는 나오지 않는 알림이다.
그런데 이 선수의 경기에서는 너무 자연스럽다.
낚시가 성공하며 다시 한 번 울린다.
기울어지던 게임에 결정타를 박는다.
크롸라라라-!
소환자의 전장에 울리는 괴수의 울음소리.
바론 백작이 쓰러지는 걸 막을 수 없다.
SKY T1 S는 접근조차 힘들었다.
퍼엉!
이전 한타의 승리 이후 특산품이 됐다.
용 강가에 이어 바론 강가도 버섯이 박혔다.
버섯이 터질 때마다 티몽의 웃음소리도 함께 들리는 듯하다.
바론이 먹히며 게임의 주도권을 잃는다.
버섯밭에 맵의 시야가 장악 당한다.
레전설의 카시오가피를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
* * *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소용돌이친다.
SKY T1 S로서는 절대 져서는 안되는 경기다.
아니, 개인적인 감정이라던가 조별 리그 성적은 접어두고.
"너는 티몽한테 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박다균 감독의 언성이 높다.
첫 번째 세트를 패배해버린 영향이다.
하지만 다음 세트를 준비해야 하는 선수에게 훈계하는 일은 보통 없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실수를 해도 다 끝나고 나서 얘기하는 게 보통이다.
모를 리가 없을 박다균 감독이 선수를 쪼아대는 이유는 흥분해서다.
"뭘 하려고 하지 마, 제발! 너 오늘 뭐 보여줄 거 없어."
"죄, 죄송합니다……."
단단히 화가 난 박다균 감독 앞에서 SKY T1 S의 서포터 우르프가 쪼그라든다.
굳이 봇라인이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탑 차이로 게임을 비비는 게 본래 계획이다.
봇라인이 어긋난 바람에 반쯤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이 괜찮았다.
성장해서 정식 한타를 하면 무조건 이긴다.
그런데 카시오가피의 상상치도 못한 활약에 대패.
알고 있음에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2레벨 때 앞점멸 한 건 정말 싸이코 같았어. 그냥 반반 가면서 그랩각만 노려야지."
누구는 자드 미러전을 진 정도로 하루에 수만 번씩 죽는다.
하필이면 티몽한테 져버렸다.
롤챔스 첫 출전, 앞으로도 나올 일이 없을 트롤픽에 말이다.
이건 씹혀도 평생 씹힐 만한 흑역사다.
SKY T1 S만의 패배도 아니다.
박다균 감독의 지분도 없지 않아 있다.
'레전설 그 자식한테 얕잡아 보일 짓을…….'
선수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따랐다면 최소 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카시오가피의 슈퍼 플레이임을 알고 있음에도 흥분이 안 가라앉는다.
인간, 누구나 지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박다균 혼자만도 아니다.
자신의 아끼고 아끼는 선수이자 바리스타.
SKY T1 S의 주장 왕린도 똑같이 애타고 있다.
"다음 세트에서 만회해보죠 감독님."
단 둘이 있을 때는 친구 사이인 박다균과 왕린이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높여 부른다.
속한 게임단의 감독이니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지금은 예외 중의 예외다.
자신조차 흥분해서 선수를 비난했을 정도다.
훨씬 더 화가 치미른 상태여도 이상하지 않을 왕린이 냉정하다.
그 모습을 본 박다균 감독도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 당장 경기를 이기는 게 급선무.
황금수염과 우르프를 타박한다고 져버린 첫 세트가 돌아오진 않는다.
"저희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을?"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가 특별히 준비해온 조합이라고 느꼈습니다."
롤챔스를 보다 보면 아주 간혹 나올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비주류인 챔피언과 조합.
하지만 이 팀을 상대로는 써봄직하다.
아무리 그래도 티몽은 에바참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
소위 말하는 맞춤형 조합이다.
티몽과 카시오페아의 봇듀오.
SKY T1 S의 카운터로 작용하리라 저격한 듯싶다.
'나름대로 전략적인 가치가 있기는 있어.'
흥분을 가라앉히고 곱씹어보자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
티몽의 운영은 한두 판 연습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버섯 때문에 원하는 구도의 한타를 열지 못했다.
SKY T1 S라는 팀이 지닌 장점.
형제팀인 T1 K와 달리 운영보다는 초중반 난전에 있다.
억지로 운영을 하게 되자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렸다.
결정적으로.
"카시오가피에 대해서도 너무 저평가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흠…, 그건 그래."
곰곰이 따져보면 DPS가 상당히 높은 챔피언이다.
원딜 포지션을 대신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전례가 없었으면 모를까 있다.
야흐오 원딜이란 이상한 메타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비슷한 짓거리를 한 번 더 한다고 이상하지 않다.
당황한 데다 실수까지 겹쳐 당하고 말았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카시오가피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
티몽의 독으로 초반 라인전을 보완했다.
그리고 한타 페이즈에서는 레전설 본인의 피지컬이 터져나왔다.
과거 그를 스카웃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박다균 감독이다.
실력에 대한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피지컬이라면 자신은 두뇌다.
'요행은 여기까지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한 번 잡은 격이다.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
박다균은 처음 시작했을 때 유레카를 외쳤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理想)이다.
전략, 그 하나만으로 천재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 증명은 이미 해버린 마당이다.
SKY T1 K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놨다.
SKY T1 S도 곧 그렇게 만드리라.
오늘 이 자리가 가지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과거의 천재에게 알려주는 자리다.
여포, 너의 시대는 옛적에 끝났다.
이제는 지략과 전략의 시대다.
수를 숨긴 건 너희들만이 아니다.
앞으로의 경기를 위해 아끼고 있었을 뿐.
상대가 필사적이라면 꺼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 *
첫 번째 세트를 무난하게 이겼다.
이 만하면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팀 둘만 잘해줘도 게임이 이렇게 편하네!'
라인전 단계에서 다소 무너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이 있는 도인디다.
내가 평가하긴 뭣하지만 될성부른 싹이 보이는 녀석이다.
한타에서도 스킬 활용이 썩 괜찮다.
포지셔닝 또한 굉장히 신경을 쓴다.
하비도 모스트1을 잡자 경기력이 확실히 달라졌다.
챔피언이 악의 축인 거지 플레이 하는 선수는 잘못이 없다.
티몽으로 제법 느낌 있는 활약을 펼쳤다.
어찌나 펼쳤는지 MVP를 받았을 정도다.
'티몽은 롤챔스에 처음 나오는 챔프니 그럴 수도 있어.'
솔직히 나 같아도 신기해서 줬을 것이다..
MVP는 하도 받아서 신물 나니 한 번 정도는 괜찮다.
어쩌면 잼할도 모스트1을 주면 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그니처 픽을 잡으면 경기력이 올라간다는 게 학계의 정설."
"알았어. 그럼 가능한 픽을 하는 방향으로 가보자."
잼할은 천상계 트롤킹 장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쓰기 애매한 챔피언이다.
하비의 경우를 보아하니 한 번쯤 믿고 맡겨도 될 듯하다.
이어진 두 번째 세트의 밴픽.
밴의 흐름은 첫 세트와 비슷하다.
하지만 픽의 흐름은 전혀 달라졌다.
'랄라를 가져가? 그리고 루나?'
아직 상대의 조합을 알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대략적인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확정 CC와 슈퍼 세이브.
이 두 가지는 안티 캐리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내가 활약할 환경을 주지 않겠다.
그리고 이전 세트 조합을 쓰는 게 어려워진다.
'티몽을 하는 순간 웃는 얼굴이 끊이지를 않겠지.'
시체가 돼도 웃고 있는 챔피언이다.
티몽은 루나에게 칼이 꽂히는 순간 죽는다.
심지어 스킬딜 위주인 이즈레알을 가져갔다.
실명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는 고작 전조에 불과했다.
상대가 노려오는 에이스 카드는 따로 있었다.
'왕린의 나이즈라…….'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1티어 탑솔러다.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럼에도 사용한다는 건 게임단 내에서 분석과 확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까다롭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
이전의 나였다면 악으로 깡으로 부딪혔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설사 내가 여포라고 해도 지금의 나는 메카 여포다.
========== 작품 후기 ==========
잼잼 듀오..
모티브가 된 선수를 모르시는 분들은 어색할 수 있지만 원래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사실 10년 넘게 선수 생활을 하면서 우승을 한 번도 못한 어떤 전설급 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