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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파프리카 프릭스를 위한 초석.
1부 리그 롤챔스에도 먹힐 만한 팀을 만든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고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그래도 일단 되는 대로는 해봐야지.'
이런 문제는 고민을 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부딪힌 건 기존 팀원과의 교섭이었다.
〈페이가 보장된다면 한 시즌 정도는 못 뛸 것도 없습니다.〉
첫 교섭 때도 그랬지만 시원스런 녀석이다.
도인디.
나를 제외한 파프리카 프릭스의 최대 전력이다.
페이적인 부분은 해결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내는 것도 아니니까.'
돈을 내는 건 파프리카TV다.
글자 그대로 내 돈이 아니다.
그 액수가 엄청난 것도 아니다.
년단위 계약이 아닌 시즌 계약.
결국은 신인 선수라서 페이는 고만고만하다.
도인디도 그렇게 큰 욕심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전부터 고집을 부려왔었다.
'그래, 너 미드 쳐하세요.'
하고 싶다는데 뭘 어째.
물론 유도리를 두기로 했다.
팀의 성적을 위해 사정을 둔다.
여차하면 자신도 원딜을 하겠다.
부시안과 이즈레알은 충분히 소화한다.
이번 판은 그 여차가 아니다.
원딜을 하는 건 내가 됐다.
촤학!
녹색 독이 미니언을 촉촉이 적신다.
딱히 독을 쓰는 원딜러가 아니다.
'애초에 원딜러부터가 아니지.'
어쩌다 보니 원딜러로 쓰게 됐다.
그 사정은 다름 아닌 하비탓.
하비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솔직히 시도하기도 싫긴 했다.
아무리 웬만한 메타에는 거부감이 없는 나지만 이건 좀…….
투정을 하기에는 상대 봇듀오가 워낙 만만치 않다.
철썩!
적팀의 서포터 쓰렉귀가 1레벨부터 공격적이다.
채찍쓸기와 평타로 우악스럽게 라인을 민다.
그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라인전에서 킬각을 잡겠다라.'
대회 무대에서 흔히 있는 반반 구도를 원하지 않는 듯하다.
SKY T1 S의 우르프와 황금수염.
그들이 딱히 공격적인 성향이라 압박해오는 건 아닐 것이다.
추측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하비의 티어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리고 픽이 좀 많이 도발적이긴 하다.
나는 둘째 치고 우리 대견한 서포터.
슉!
슉!
티몽이 미니언을 톡톡 치고 있다.
독뎀으로 미니언도 하나 뺏어먹었다.
참으로 앙증맞은 녀석이 아닐 수 없다.
'진짜 하비라서 봐준다.'
그리고 현재 상황이 급박하기도 하다.
얼핏 평화롭게 보이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서로가 선 2레벨을 위해 템포를 억지로 끌어내고 있다.
미니언을 뺏어먹은 건 그 과정에서 일어난 참사다.
앞에 보이는 두 번째 근거리 미니언.
잡히는 순간 도화선에 불이 붙는다.
철썩!
프로 레벨의 킬각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수준이다.
쓰렉귀의 점멸 채찍 쓸기와 이어지는 선고.
정확하게 티몽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몸이 종잇장인 티몽은 죽음이 확정이다.
안이했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었다.
치지직…!
하비가 아무리 연습을 해도 다이아, 마스터다.
프로 무대에서 수년 호흡을 맞춰온 봇듀오의 킬각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점화까지 걸리며 티몽이 타들어간다.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촤학!
티몽을 잡으려는 적 원딜러 황금수염의 토이치.
그 밑에 맹독이 분사된다.
토이치가 과감한 앞무빙으로 이를 피해낸다.
'……이러니까 카시가 안 쓰이지.'
독을 못 맞히는 순간 딜로스가 너무 크다.
딱히 내가 실수한 게 아니다.
상대가 잘 피했고, 피하기 쉬운 스킬이다.
하지만 독을 맞힐 수만 있다면 그만큼 강력하다.
어째서 파격적인 서포터를 기용했는지.
픽의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교전이 된다.
촉!
카시오가피의 주력 스킬 독니.
독에 중독된 상대에게는 0.5초마다 박을 수 있다.
그런데 중독을 못 시켰으니 그러지 못해야 정상이다.
촉!
촉!
토이치가 촉촉하게 젖어 든다.
독은 분명히 피했는데 대체 왜?
상대로서는 얼척이 없겠지만 모르면 죽어야지 별 수 있나.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가볍게 잡자 쓰렉귀 혼자 덜렁 남는다.
티몽의 실명침 때문에 킬각이 애매하게 비틀어졌다.
흐흫핳하~!
티몽이 Crtl+4로 웃으면서 거리를 벌린다.
그 사이에 내가 마무리한다.
마나를 한계까지 짜낸 끝에 더블 킬.
'이렇게 프리딜만 가능하면 질 수가 없는 화력이야.'
0.5초마다 박히는 독니는 원딜러의 프리딜 이상이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공속이 2.0인 셈이다.
물론 독을 묻혀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이만한 화력에도 괜히 안 쓰이는 게 아니다.
방금처럼 가볍게 무빙해서 독을 피해버린다.
하지만 티몽의 평타는 점멸을 써도 피할 수 없다.
"티몽 Carry! Blind OP!"
모든 티몽 유저들의 패시브다.
안타깝게도 하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권위 있는 장인인 만큼 당연하기도 하다.
'카시와 티몽의 시너지라니…….'
카시오가피의 독니는 티몽의 독에도 연계가 된다.
일련의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하비는 장인답게 지식으로는 알더라.
이런 정신 나간 짓거리를 자력으로 구상하는 건 불가능했다.
[티몽의 숙련도가 5단계가 되었습니다!]
[티몽을 전 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
이전에 탑 카직트를 알게 됐을 때와 마찬가지다.
시스템의 도움으로 티몽에 대해 작정하고 알아봤다.
정말 어느 라인으로 해도 티몽은 티몽이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티몽 마스터가 됨으로써 특별한 인연을 얻습니다.]
[영혼의 파트너, 카시오가피와의 붉은 실이 보입니다!]
티몽의 유일한 존재 가치를 알게 되었다.
야흐오 원딜도 해본 마당에 못할 건 또 뭔가?
왕년에 카시오가피도 나름 했었기에 해볼 만했다.
이렇듯 성공까지 시키자 자신감이 붙는다.
더블 킬을 먹고 구입하는 아이템.
따질 것도 없이 여눈이다.
넘쳐나는 마나통을 화력으로 직결시키는 챔피언이다.
* * *
SKY T1 S.
이렇다 할 성적을 낸 적이 없음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항상 고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는 비단 왕린의 존재 때문만이 아니다.
〈작년 서머 시즌이 끝난 직후 멤버가 대부분 교체되면서 전력을 크게 보강했습니다.〉
첫 번째 세트의 극초반.
한가했던 인베 단계 때 나온 이야기다.
김은준 해설이 SKY T1 S의 정체성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SKY T1 K의 형제팀 아니야?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이야기가 아니다.
맛밤과 마진이 지배하던 한국 롤판을 격변시킨 장본인이 만든 팀이다.
박다균 감독.
SKY T1 K의 최강 신화는 명장의 손에서 창조됐다.
그런 박다균이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
당연히 일반적인 팀일 리가 없다.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한 팀에 모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 드리자면 슈퍼팀의 탄생이죠.〉
〈태생적인 강팀이란 소리 아니겠습니까? 이런 팀들은~ 시간만 지나면 강해집니다!〉
진용준 캐스터가 언급한 시간.
한국 요리들은 푹 끊이면 대부분 맛있다.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푹 고아야 맛이 우러나는 법이다.
SKY T1 S는 맛보기를 못한 찌개다.
하지만 잠재력이 있다는 건 이미 증명을 마쳤다.
지난 윈터 시즌때 상위권팀들을 상대로 엎치락뒤치락 다퉜다.
대진운이 안 좋아 결과적으로 본선 진출을 못했을 뿐.
기량은 상위권팀에 충분히 비볐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에 들어 다소 휘청거렸다.
-네 다음 파프리카 프릭스에 털린 팀~
-??? : 레전설은 내 아래다
-왕린은 바리스타가 적성 딱이야
-왕린의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사실일까…?
승강전 당시 워낙 처절했다.
일반 유저들엑는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여전히 고평가 한다.
아니,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스크림에서 엄청 강합니다. 스프링 시즌에 일 낼 수도 있겠다. 개막전의 선전은 결코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원래부터 싹이 보이던 팀 아니겠습니까? SKY T1을 괜히 달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소리에요!〉
한동안 뜨겁게 논란이 된 이야기다.
논란이 아직 식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해명도 하고 그랬지만 나쁜 소문은 으레 잘 퍼진다.
그런 SKY T1 S 경기 날이다.
화제 진압을 미리 해놓는다는 느낌.
김은준 해설에 이어 진용준 캐스터도 한 소리 얹었다.
-멤버는 확실히 화려하긴 해……
-솔직히 빨 만하다 ㅇㅈ?
-얘네가 나중에 T1 K만큼 성장하면 박다균 안목 ㅎㄷㄷ
-왕린에게 임팩트가 밀린 거지 다른 멤버도 은근히 거물이니까
왕린, 카오스 시절부터 전설이라 불려온 네임드다.
이지용, 약소팀에 속해서 고통 받아온 수준급 미드라이너다.
황금수염&우르프, 마진 실드에서 이적해 넘어온 보증 받은 봇듀오다.
그들 전부가 박다균 감독의 눈에 들어 스카웃됐다.
기존 멤버인 호롱과 합세해 SKY T1 S를 이룬다.
창단 초기부터 이목을 끌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이지용 선수는 스크림의 황제라고까지 불리는데……. 오늘 경기, 레전설 상대로 좋은 모습 보여주리라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련의 이야기는 경기 시작 극초반 때다.
인베 단계에서 지나가듯 한 이야기다.
일단 방금 전 기대는 반만 맞았다.
챠라랑!
극히 최근에 미드 1티어로 합류한 챔피언이다.
도인디의 랄라가 라인전을 무난하게 진행한다.
원딜 포지션으로 임한 그가 미드에?
반대로 미드 포지션으로 임한 선수가 원딜로 갔다.
봇라인에서는 살짝 어처구니 없는 이변이 터졌다.
초반부터 더블 킬을 가져가며 기세가 등등하다.
촉!
촉!
레전설이 플레이하는 카시오가피.
누구도 포지션을 의심한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미드 포지션으로 등록돼있지 않은가?
그리고 굳이 원딜을 한다면 랄라가 하는 게 맞다.
실제로 AD랄라를 하는 천상계 장인이 있다.
게임의 구도가 전혀 예측이 안된다.
〈쓰렉귀 죽었어요! 레전설 5분에 학살 떴습니다!〉
카시오가피의 독니가 촉촉 박히며 살살 녹아내렸다.
대체 데미지가 뭐 저렇게 세?
원래 센 챔피언이기는 하다.
근데 스킬 구조가 워낙 불편하다.
어느 세월에 독 묻히고, 접근하고 카이팅해서 죽이냐.
그 중간 다리를 생략하고 있다.
〈지식적인 측면에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나와서 활약을 하니까 참 아이러니하네요.〉
〈이게 원래 되는 조합인가요?〉
〈게임사 공인으로 시너지가 있기는 합니다.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요!〉
데이터의 김은준이라 불리는 만큼 당연히 안다.
카시오가피와 티몽의 시너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킬 설명에 적혀 있다.
근데 그걸 누가 신경 써?
애초에 솔로랭크에서 보기도 힘든 두 챔피언이다.
무엇보다 카시오가피로 원딜 갈 생각을 보통 안 한다.
야흐오를 원딜로 퍼트린 레전설은 보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FFs 레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티몽이 점멸로 평타를 톡!
토이치는 맞점멸로 즉각 반응했지만 늦었다.
쏘아진 시점에서 촉촉하게 젖는다.
젖자 독니가 촉촉 찰지게 박힌다.
0.5초마다 쏘아지며 순식간에 찢어버린다.
카시오가피의 솔로 다이브는 여유로울 정도다.
〈체력이 많아도 티몽한테 맞으면 죽거든요!〉
-티맞죽!
-오늘 만큼은 맞말 ㅇㅈ합니다
-이 드립 안 나와주나 했다ㅋㅋㅋㅋ
조냐 상태를 깬 강빈 해설의 외침대로다
0.5초마다 독니가 푹푹 박히니 버텨낼 재간이 없다.
아이템 차이와 레벨 차이도 나서 체감딜이 훨씬 세다.
하지만 원래는 프리딜하기 힘든 챔피언이다.
스킬 구조가 괜히 난해하다고 부르는 게 아니다.
티몽의 존재가 카시오가피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한다.
〈이런 류의 봇파괴 조합은 말리는 순간 답도 없어진다는 리스크가 있어요. 하지만 성공시켰고, 이렇게 잘 크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리스크를 넘어서면 리턴이 돌아오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 리스크를 짊어지는데 있어 남다른 두각을 보여준 선수다.
지난 KTX 롤러코스터 A팀과의 경기.
독서왕의 위엄을 여실히 떨쳤다.
이번에는 짊어지는 방향이 좀 다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
리스크가 있는 조합을 훌륭히 성공시키며 게임 승리의 발판을 다진다.
─SKY T1 왕린님이 학살 중입니다!
발판을 다진 건 레전설만이 아니다.
다른 쪽 캐리력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왕린의 티바나가 잼잼 듀오를 철저하게 찍어 누른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SKY T1 S 늑대-〉우르프로 변경했습니다(몬스터 늑대와 헷갈릴 수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