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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잼할과 잼구 -->
1부 리그 롤챔스의 데뷔전.
승강전이 정식 대회에 발을 디뎠다.
그만큼 의미도 깊고 성적을 내야 하는 순간인데.
"저기요. 잼구님."
〈네…….〉
잼구가 힘아리 없는 목소리로 대답해온다.
처량해 보이지만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블루가 포켓몬스터 전설의 개새끼 마냥 보기가 힘들어요. 설명 좀 해주실래요?"
바로 터트린다며?
탑미드 위주로 캐리한다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캐리는 커녕 버프마저 강탈 당하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선취점 이후 내내 끌려다닌다.
정글러가 하루종일 도움 핑만 찍어댄다.
변명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납득은 간다.
〈제가 어느 쪽으로 터트릴지는…… 말, 안 했습니다아?〉
처량했던 목소리가 갑자기 능글맞게 변한다.
아하, 그런 언어유희였구나!
마음에 들었던 대로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타고난 예능감으로 개그맨이나 데뷔하지 그랬니?
'아오…… 잼구 나이트인지 뭔지.'
몇몇 시청자들이 괜히 말린 게 아니었나 보다.
솔로랭크에선 잘하길래 방심했다.
스크림에서도 잘하길래 철썩같이 믿었지.
연습때 만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첫 경기인 만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듀오도 썩 신통치 않다.
크허엉!
잼할이 플레이하는 애꾸사자.
지난 승강전 이후 천천히 연구되던 챔피언이다.
네네톤, 티바나와 더불어 탑라인의 3대장으로 자리 잡았다.
특유의 질긴 생존력과 한타, 운영의 변수.
발휘하게 전에 갱을 당해 찢겨버린다.
까메오의 카직트가 갈고리를 세운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킬을 먹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글은 블루도 못 줄 정도로 차이가 나고, 탑은 갱을 가는 족족 죽어준다.
저런 주제에 영입 때는 자기들은 일반BJ가 아니라 프로 지망이라고 그렇게나 떠들었다.
'아니야. 김재슥이랑 저라딧이었더도 별반 다르진 않았을 거야.'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블루는 나름대로 챙길 수 있다.
두 번의 약진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터억!
사앗…!
표식과 함께 그어지는 금빛 사슬.
카직트의 무빙을 무시하고 옭아맨다.
1.5초가 지나며 사슬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투욱!
치지직…!
마지막 평타와 함께 원위치로 되돌아온다.
점화 4틱 쯤 카직트의 목숨이 다할 것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FFs 레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골드와 함께 빼앗긴 블루 버프도 회수된다.
딱히 딜계산을 자랑하는 쇼맨십이 아니다.
부리고 싶어도 부릴 여유가 없다.
통! 통! 포옹!
적 미드라이너 직트가 라인을 쭉쭉 밀고 있다.
라인 푸쉬와 포탑 철거에 특화된 챔피언이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타워가 반피가 나갈 뻔했다.
재빠른 회군 판단 덕에 포탑이 상하는 건 최소한으로 막았다.
방금 같은 플레이를 계속 해줘야 한다.
해주지 않으면 게임 유지가 안된다.
〈곰이다!〉
희망과도 같았던 봇라인.
잼잼 듀오보다 훨씬 잘해주던 하비도 어쩔 수 없다.
적 서포터 하찬은의 배티가 궁극기를 때려 박았다.
"Sorry! 배티 No Flash…."
하비가 정말 미안하다는 듯 풀 죽은 목소리로 브리핑한다.
편 드는 게 아니라 잼잼 듀오와는 상황이 다르다.
6레벨을 찍은 배티의 점멸 킬각은 매섭다.
다이아 티어인 하비로서는 캐치 못할 만도 한다.
더군다나 힐라카라는 챔피언.
생존기가 없어서 순간적인 CC기 연계에 취약하다.
언젠가 한 번은 나올 거라 생각했다.
6레벨 타이밍에 혼자 죽은 거면 상당히 잘 버텼다.
안 그래도 마침 느낌이 안 좋아서 내려가던 참이다.
파앗!
내가 자꾸 로밍을 다니자 직트도 조급해진다.
자신도 라인을 마저 밀고 따라오려고 한다.
물풍선을 던지는 등 조심스럽지만 그래봤자 빈틈은 생긴다.
터억!
퍼엉!
거리가 닿자마자 튀어나가 침묵의 표식과 복사본.
타겟팅으로 꽂히는 두 표식은 피할 수가 없다.
위기감에 직트는 뒤도 보지 않고 점멸을 쓴다.
사앗…!
하지만 맞점멸로 따라가 사슬을 잇는다면?
또다시 터진 침묵이 결정타로 작용한다.
유일한 생존기인 점프 폭약을 쓰지도 못한 채 직트가 비명횡사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FFs 레전설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킬을 딴 건 좋은데 만족스럽진 못하다.
못하는 상대의 목숨을 주워 담은 정도지.
그런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여기까지는 기본이야 기본.'
르풀랑을 뽑은 시점에서 솔킬은 생각했다.
문제는 나머지 상황들이 너무 여의치 않다.
좀만 여의치 않아야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잼잼 듀오 멱살 잡고 싶다.
'챌린저를 무슨 고스톱으로 따셨나….'
첫 경기이니 만큼 이해를 해줘야 하는 부분인 건 안다!
아는데 지금 나 완전 소년 가장이잖아.
느낌이 딱 왔다.
한 번이라도 죽는 순간 진다.
상공 2만 피트에서 펼쳐지는 극한의 외줄타기가 시작된다.
* * *
KTX 롤러코스터 A팀의 부스 안.
경기의 향방은 예상과 거의 들어맞는다.
상대 봇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가두리 양식이다.
〈곰이다!〉
배티의 궁극기 곰돌이 소환이 작렬한다.
사거리가 은근히 길어 조금만 방심해도 닿인다.
비슷한 실력이라면 조심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다이아.
심지어 여성 유저가 힐라카를 플레이하고 있다.
안쓰럽긴 해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점화까지 걸자 체력바가 살살 녹아내린다.
〈생명을 내리소서!〉
다급함이 화면 너머로 와닿을 정도다.
힐라카가 점멸, 탈진, 궁극기 다 쓰면서 도망간다.
원딜러의 힐까지 받은 덕에 가까스로 못 잡기는 했다.
〈힐라카 집 갈 텐데 다이브 치거나 포탑 밀까?〉
〈밀지 말고 라인전 오래 가자. 그 편이…….〉
원딜러 애로우즈의 물음에 하찬은이 생각을 곱씹는다.
포탑을 밀지, 말지.
일반적으로는 기회가 왔을 때 미는 게 맞다.
글로벌 골드와 더불어 운영적인 이득.
프로 레벨에서는 따질 것도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따금 그렇지 않는 편이 좋을 때도 있다.
상대가 킬을 잘 줄 때.
솔로랭크에선 이따금 그런 구도가 나온다.
마침 비슷한 구도가 갖춰졌기에 나쁘지 않다.
한 가지 더 노림수를 둔다.
'르풀랑 한 번만 잡으면 게임 터지겠는데?'
미드를 제외한 전라인의 상황이 좋다.
파프리카 프릭스를 상대로 예상했던 흐름이다.
그 흐름이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다.
탑과 정글은 여유가 넘친다.
봇라인도 이만하면 상당한 격차다.
문제는 미드가 상당함을 넘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래도 나 직트라서 라인은 막을 수 있어. 근데…… 따라는 못 가겠다.〉
벌써 세 번이나 솔로킬을 당하고 말았다.
CS까지 생각하면 미드 차이에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게임의 방향이 웃어주고 있어 승패에는 지장이 없다.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상대.
킬에 조급한 르풀랑을 점멸로 잡아먹는다면?
즉발 스턴인 배티의 궁극기는 안티 캐리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윽고 기회가 다가온다.
상대 1차 포탑을 괜히 살린 게 아니다.
스멀스멀 라인을 몰고 가는 것만으로도 압박이 된다.
〈르풀랑 미아야! 나…… 못 따라가. 가능하면 궁 지원이라도 해볼게.〉
팀의 미드라이너 쿠키가 다급한 듯 소리친다.
이미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라 다 체크하고 있었다.
와드로 시야까지 살펴놓은 하찬은은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사선에서 덮쳐올 적 르풀랑.
다가오는 순간 정확히 광역 스턴을 박아 넣는다.
점멸까지 사용하면 상대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솔직히 넌 너무 나댔어.'
레전설이 아니꼬운 프로는 자신만이 아닐 것이다.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공공연하다.
이제 막 데뷔를 한 주제에 까불어댄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던 참에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
조지명식에서 저지른 선전포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격차를 모르니까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팀플레이와 포커싱의 중요성.
프로판은 혼자 날뛴다고 이길 수 있지 않다.
참교육을 시키주겠다는 생각에 하찬은은 흥분했다.
〈곰이다!〉
양쪽 탑라이너가 텔레포트까지 탄 대규모 교전.
그 아비규환 속에서 하찬은은 기다리고 있었다.
튀어나온 르풀랑을 향해 배티의 점멸궁이 때려박힌다.
* * *
개인의 기량이 돋보일 수 있는 건 사실 일정 티어 이하의 이야기다.
수많은 프로, 챌린저 고수들이 입을 모아 마스터는 양학이 안된다.
마스터부터는 판 수로 밀어붙여 올라가야 한다.
일련의 설명은 결코 변명이 아니다.
〈집중 마크를 하기 때문에 솔로 캐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팀원들이 최소한의 으쌰으쌰를 해줘야 하는데…… 방금 상황은 많이 암울하긴 했어요.〉
김은준 해설의 말대로 게임의 균형감이 참 아이러니하다.
미드를 제외한 세 라인이 뒤통수를 살짝 쳐주고 싶다.
채팅창에서는 이미 그러한 과격론자들이 불거진다.
-아오 잼구 진짜!
-잼할 질질 싸다가 폐지 줍고 가네
-인성제로 저 새끼 입으로는 아마추어 원탑 드립하더니 롤챔스 나가자마자 털리고 있죠?
입으로는 롤챔스를 평정할 듯이 말하던 BJ들이 롤챔스 나가자마자 줄줄이 싸재낀다.
한 소리 얻어 터지는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암울하긴 했어요, 과거형의 이야기다.
현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리플레이가 펼쳐진다.
파앗!
방금 전 봇라인에서 벌어진 대규모 교전.
서로 시비가 걸리며 양쪽 탑라이너가 텔레포트를 탔다.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 만큼 판단력과 집중력이 승패를 가른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포커싱이 정확했다.
하찬은의 배티가 점멸 궁극기로 노렸다.
곰돌이가 레전설의 르풀랑 위에 분명 소환됐었다.
〈예측……이라고 봐야 될까요?〉
〈혼잡한 교전 와중에 이걸 예측했다는 건 말도 안되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정말 슈퍼플레이였습니다 레전설.〉
설명을 하는 김은준 해설마저 알쏭달쏭하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어어!! 하는 감탄사밖에 안 나왔다.
르풀랑이 뒤틀림을 재사용해 배티의 점멸궁을 가볍게 흘렸다.
그렇게까지 해도 교전은 분명 파프리카 프릭스의 열세.
하지만 중간중간 예리하게 들어가 잡아 챘다.
레전설이 움직일 때마다 한 명씩 사그라든다.
파앗!
먼저 머리통이 터졌던 건 애로우즈의 토이치.
궁극기를 쓰고 독화살을 두 발 쏘기도 전이었다.
대쉬기와 점멸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르풀랑에게 삭제된다.
주요 딜러인 토이치가 죽고 말았다.
KTX A팀은 어그로 핑퐁을 하며 퇴각한다.
그 판단은 분명 최선이었으나 후위가 허점을 보이고 말았다.
터억!
사앗…!
침묵의 표식과 함께 이어진 금빛 사슬.
가장 뒤에서 아군을 엄호하던 티바나에게 감긴다.
이어진 애꾸사자의 속박과 호응에 차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럼에도 아직 유리한 상황이고 직트가 미드를 밀고 합류했기 때문에 손해를 약간은 메웠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하필…….〉
클끼리의 말대로 교전은 더 이어졌다.
수십 초밖에 안되는 짧은 상황.
그만하면 궁극기가 돌아온다.
모름지기 르풀랑은 상대의 허를 끊어치는 챔피언이다.
파앗!
파앗!
존재 의의를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과감하다.
힐을 받고 체력을 채운 르풀랑이 재진입한다.
포탑을 끼고 귀환하던 카직트.
던져진 표식과 금빛 사슬에 스치며 터진다.
─FFs 레전설님은 전설적입니다……!
어느새라고 할 것도 없이 출현한 전설이다.
레전설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는 그마저도 부족하다.
가히 르풀랑 원맨쇼라고 해도 될 만한 명장면이 끝나자마자.
─FFs 레전설님은 전설적입니다……!
한 번 더 소환자의 전장에 울려퍼진다.
리플레이가 송출되는 사이에도 당연히 게임은 진행되고 있었다.
귀환 전에 용시야를 장악하려던 배티가 르풀랑에게 끊긴다.
이번 교전에서만 무려 3킬 1어시를 챙겼다.
골드를 두둑하게 챙긴 레전설이 상점에 귀환한다.
저 정도로 쓸어담으면 아이템 선택도 이목을 모은다.
〈아니, 여기 롤챔스에요? 솔로랭크 아닙니다?〉
클끼리 해설이 화들짝 놀랄 만도 하다.
어처구니 없는 구매 아이템.
진용준 캐스터가 큰 목소리로 두둔한다.
〈주문력이 벌써 400이지 않습니까? 똑똑해요. 책, 읽을 만하죠!〉
테자이의 영혼약탈자.
솔로랭크에서 이따금 양학을 즐길 때 가는 템이다.
리스크가 지나쳐 대회 무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누가 정해 놓기라도 했냐는 듯 한 명, 한 명 적히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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