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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비제이 -->
『유리야 Lv.10』
강려크해진 만큼 부작용도 컸다.
특유의 때려주고 싶은 우쭐함이 늘었다.
〈선배 저 이제 갈구지 마요. 엄청 잘해졌잖아요.〉
"그래?"
〈그리고 저 여자에요. 가볍게 대하면 안되는 거에요.〉
"그렇구나."
유리야에게서 온 전화.
놀라운 정보를 깨닫게 됐다.
한 가지 더 물 밀듯이 들어온다.
〈저 정도면 꿀리지 않는 미모잖아요. 그쵸?〉
"끌리지 않는 이모겠지."
〈아, 정말! 숙녀를 너무 놀리면 안돼요~.〉
어머어머?
질풍노도의 시기가 때늦게 왔나 보다.
심통이 잔뜩 난 목소리로 따박따박 대들어온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쳐들어가서 바로 재교육을 시키고 싶지만.
"야, 유리야."
〈왜요오!〉
"방송이라 말 안 했는데…… 너 발냄새 나더라."
〈우씽! 선배도 홀애비 냄새 나요! 흥!〉
소소한 복수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딱히 발냄새는 나지 않았다.
'향이 고소하던데?'
발 주물주물하고 냄새를 맡아봤다.
물씬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살짝 맛도 봤는데 똑같이 고소한 맛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유리야를 키울 날이 아니다.
이상해꽃은 자동 사냥을 시켜놓는다.
이미 발걸음은 하비의 집 앞까지 도착했다.
'하비 얘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문제가 커.'
처음에는 그냥 컨셉인 줄 알았다.
스트리머, BJ들은 그런 게 있다.
일부러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챔피언을 한다.
나도 BJ 짬밥이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원래 솔로랭크에도 그런 애들이 있지 않은가?
얘가 진짜 진지하게 게임하면 잘할 거 같은데.
우스꽝스러운 픽으로 즐겜만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둘도 없는 빡겜이었다는 이야기다.
"하비."
"Why Why?"
하비의 집에 도착해 바로 방송을 진행한다.
말을 건네자 귀엽게 대답해온다.
처음에는 어색한 말투였는데 요즘은 설렌다.
약간 연애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분을 느낀다.
바로 옆에서 들어봐야 알 수 있는 설레임이다.
동시에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도 함께 들린다.
흐흫핳하~!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꼴도 보기 싫은 챔피언이다.
아군에 있어도 짜증나고, 적군에 있어도 짜증난다.
존재 자체가 악의 축.
피카츄가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하비다.
생긴 것만 피카츄처럼 귀여우면 좀 좋아.
문제는 하는 챔피언도 피카츄 같은 쥐새끼다.
"티몽…… 좋아해?"
"좋다! Lovely. Aren't You?"
진심으로 묻는 거야?
티몽을 좋아하는 솔랭 유저가 있겠니?
마음속 깊이 떠오른 대답을 꾹 참는다.
'하고 많은 챔피언들 중에 왜 하필…….'
하비가 비주류 챔피언들의 장인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솔직히 말하면 그냥 똥챔 유저다.
어떻게 말을 해야 상처를 안 입히면서 저 거지 같은 챔피언을 못하게 만들까.
딴따란~
하비의 티몽이 망토를 흩날린다.
부리나케 달려가 적을 촉촉! 때린다.
악어 가죽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
치지직…!
푸슉!
점화와 함께 쏘아지는 실명침.
적 탑라이너 악어를 솔킬 냈다.
하비가 환한 얼굴로 하이파이브를 권해온다.
-하비 솔킬 땄다!
-악어는 티몽 밥이지 ^오^
-근데 레전설 표정 왜 저럼?
-잘하는 게 하필 티몽이라서ㅋㅋ
최근 티몽이 쓸 만한 건 사실이다.
너무 쓸 만해서 너프까지 당했다.
오라클이라는 아이템이 사라지면서 버섯을 지우기 힘들게 된 탓이다.
버섯의 AP계수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버섯은 지우기 힘들고, 현재 주류 챔피언들 상대로 티몽이 상성 우위에 선다.
네네톤이나 티바나는 접근도 못하고 두들겨 맞는다.
'그런데 상대가 왕린, 이펙트, 선데이지.'
농담이 아니고 글자 그대로의 일이다.
조별 리그 상대팀 탑솔러가 저 세 명이다.
전부 다 챌린저에서 한따까리 하는 유저들이다.
특히 네네톤 그 자체라는 이야기가 있는 왕린.
나한테 발린 거지 실력 자체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티몽이 네네톤 카운터고 나발이고 간에 잡아 뜯긴다.
하비가 잘한다고 해봤자 다이아 장인이다.
챌린저 상위권 유저 앞에서는 속수무책 당한다.
티확찢 당하는 그림이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그려진다.
"성훈 표정 안 좋다. Why?"
"음…, 왜일까?'
"Smile! Like 티몽!"
티몽처럼 웃으라는 뜻일 것이다.
화면 속 티몽이 밝게 웃고 있다.
방금 전 갱킹을 당해 죽은 상태다.
'죽어서도 웃는 유일한 챔피언인 건 인정해.'
소환자의 전장, 웃음 전도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조차도 꼴보기 싫은 녀석이라서 문제지.
유리야나 달래였다면 머리칼을 쥐어 뜯어서라도 말렸다.
"핫 둘 셋 넷~♬"
티몽 음성을 따라하며 해맑게 웃고 있다.
나 레전설, 동방예의지국의 후손.
서방에서 온 그녀에게 혹평이 나오지 않는다.
'왜 내 주위의 여자들은 나사가 하나씩 풀려 있을까?'
내가 지금 느끼는 게 과연 기분 탓인지.
솔직히 이번에는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외모도 성격도 실력도 합격점이라 방심을 하고 말았다.
다이아5에다가, 빡겜을 하니 바로 다이아3이라고?
심지어 현재는 다이아 2티어다.
몇 가지 조언과 함께 플레이를 봐주자 금세 올랐다.
《승리》
심지어 이번 게임도 이겼고 나무랄 구석이 없다.
그런데 티몽이다.
하필 티몽이다.
잘해봤자 티몽이다!
하비, 그녀가 내 앞에서 밝게 웃는다.
무언가 요구하는 듯한 그런 표정이다.
이렇게 대놓고 어필하면 눈치는 당연히 챈다.
"하비……, 잘했어. 열심히 하면 마스터 티어도 꿈이 아닐 거야."
"Really? 나 열심히 한다. 마스터 간다. 성훈 위해 힘낸다."
-훈훈하긴 한데……
-이 복잡미묘한 분위기 무엇
-레전설도 여기까지는 예상 못했다 ㅇㅈ?
-??? : 체력이 없을 때 티몽한테 맞으면 죽거든요!
어지간한 챔피언이면 조합 구상이라도 해볼 텐데.
쓸모라곤 약에 쓸래야 쓸 일이 없는 쥐새끼 챔피언이다.
그저 해맑게 웃는 것 빼고는 존재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다.
'개띠해가 와서 롤판이 개판이 되지 않는 이상 티몽이 대회에서 쓰일 일은 없어.'
무려 그 정도의 챔피언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하비는 딱히 원챔 유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은근히 많이 한다.
문제는 많이 하는 것 전부가 비주류.
그것도 티몽에 비견되는 녀석들만 골라서 한다.
〈트롤 한 판 해볼까?〉
이윽고 시작되는 다음 판.
유쾌한 음성이 고막을 찌른다.
* * *
하비와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다.
〈You 카오스 초코수. I Know 쓰뤠기!〉
그때는 몰랐는데 초코수, 안 좋은 뜻의 단어였다.
쌌다를 포함해서 쓰지 말라고 엄하게 훈계했다.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을 설명하니 바로 끄덕였다.
아무튼 중요한 건 후자다.
나에 대한 루머들을 알고 있었다.
아니, 나와 카오스에서 만나본 적까지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만도 했어.'
즉, 상당히 실력 있는 유저였다는 소리다.
실제 내가 바라본 하비의 게임 센스.
생각보다 훨씬 훌륭했다.
'물론 일반 유저 기준에서 말이지만.'
달래처럼 나에게 인정 받을 수준은 솔직하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하비를 좋아해도 실력 평가는 냉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뛰어나다.
까놓고 말해서 롤 여성 유저 대부분이 못한다.
하비 만큼 잘하는 사람?
솔로랭크 다 뒤져도 찾기가 힘들 수준이다.
진흙 속의 진주를 우연하게 발굴해낸 셈이다.
진지하게 게임을 한다면 마스터 티어에 갈 수 있는 인재다.
빈말로, 응원해주려고 했던 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챔피언폭이 좀 많이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비팬이지만 인정합니다
-하비의 무한 티몽 사랑……
-티몽만 버려도 진작에 마스터 갔다 ㅇㅈ?
그건 아니다.
편들어주는데 정색해서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비는 게임 센스가 엇나간 부류의 인간이다.
게이머의 세계에는 은근히 있다.
비주류, 남들 안 하는 거 골라서 하는 애들.
카오스는 비주류 영웅도 잘만 하면 괜찮았다.
애초에 롤처럼 솔로랭크가 존재하지 않는다.
남다른 특징을 살려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롤은 정형화된 느낌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
'일단 점수를 올려야 두각을 나타내던가 말던가 하는 거지.'
챔피언 스펙이 안 좋으면 점수 올리기 힘들다.
그래서 하비는 실력 대비 점수가 낮은 편이었다.
내 조언과 더불어 빡겜으로 최근에 많이 올리기는 했는데.
"올리면 뭐해! 티몽, 트롤킹, 힐라카 이런 걸 대회에서 어떻게 써먹어!"
-본심 폭발!
-하비가 보면 울겠다ㅋㅋ
-이건 이해해줘야지. 솔직히 하비도 봐야 돼!
-으악…… 유리야만 문제였던 게 아니었어
하비와의 합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방송을 키고 신세 한탄.
유리야를 겨우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지끈거리는 머리가 격한 고통을 호소해온다.
혹시 하비가 볼지도 모르니 방송은 종료했다.
홀로 무아지경에 빠져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강구한다고 나올까?'
무안함을 감수하고 하비에게 부탁도 해봤다.
다른 챔피언을 사용해보는 게 어떻겠니?
처음으로 하비가 삐지는 모습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우리의 목표는 롤챔스다.
파프리카TV 멸망전이 아니다!
하기 싫은 건 아는데 그래도 좀 해줬으면 싶다.
Okay Okay. 하비 한다. 싫지만 한다.
기껏 쌓아놓은 하비의 호감도가 일부 깎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만큼은 어쩔 수 없다.
나 레전설, 게임 앞에서 여자고 나발이고 안 따진다.
'문제는 차라리 티몽을 하는 게 나은 수준이었다는 거지.'
순간 욱해서 하비인 걸 잊고 갈굴 뻔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참담한 결과.
원래 똥챔 장인들이 그런 면이 있다.
오히려 좋은 챔피언을 못 쓴다.
하비가 정확히 그 케이스였다.
필사적으로 교정을 해서 키운다?
'똥챔 장인들을 내가 잘 아는데…… 가르쳐도 못해.'
개선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할 것이다.
하비와의 관계가 틀어질 위험도 크다.
그럴 바에야 달래집 가서 무릎 꿇는다.
달래가 은근히 착해서 그 정도로 부탁하면 스케줄 한두 번은 비어줄 것이다.
이상한 조건을 달아올 게 뻔해서 문제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해버렸다.
'아니, 돌파구는 있어.'
가능성은 낮지만 걸어볼 만하다.
이전에 탑카직트를 사용했을 때.
의도치 않게 터졌지만 의도해서 터트릴 수도 있다.
남은 시간은 2주일.
그 낮은 확률에 걸어보기로 했다.
* * *
2014년 3월 7일.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지옥 같은 시간이다.
기나긴 겨울+봄 방학이 끝나고 다시 등교해야 한다.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길가의 낙엽과 은행 나무가 유난히 애틋하게 보인다.
그런 애틋한 마음.
조금은 달래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스프링 시즌 개막식이 막을 올렸다.
〈따듯한 봄날! 옛날 말이 되었죠~. 요즘은 3월도 쌀쌀해요. 하지만! 현장의 열기는 작년 스프링 시즌 이상으로 뜨겁습니다. 캐스터 진용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진용준 캐스터의 목청이 터져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팬들이 환호와 함성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지난 승강전 이상의 열기가 가볍게 베어나온다.
〈왜냐! 개막전임과 동시에 내전이기도 하거든요. SKY T1 게임단, 오늘 들어올 때는 함께 웃었지만 나갈 때는 어색할 수가 있어요!〉
아직 조냐를 쓰기 전인 강빈 해설이 저 푸른 하늘을 향해 외친다.
정말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명승부다.
SKY T1 K 대 SKY T1 S.
전자에게 몰빵된 감은 있어도 두 팀 모두 인기가 제법이다.
무엇보다 내전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이벤트다.
개막전까지 겹치자 난리가 났다.
표를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다.
그 별을 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개막전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승부를 앞두고 흥분된 상태다.
〈무적함대가 스프링 시즌에도 쭉 이어져 내릴 수 있을지! 오늘 경기를 함께 한다는 건 그만큼 의미가 있어요.〉
〈만약 끊는다면 SKY T1 S! 형제팀만한 포텐셜을 감추고 있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전설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클끼리 해설과 진용준 캐스터가 개막전의 의미를 짤막하게 정리한다.
개막식전임과 동시에 롤판을 뒤흔든 역대급의 사고.
스프링 시즌의 신호탄이 조금 화려하게 쏘아 올려진다.
========== 작품 후기 ==========
3편은 타이밍 맞을 때 할게요
지금이 딱 경기로 넘어가는 부분이라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