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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들었나?'
이상한 단어 사용이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청각에 잠시 이상이 생긴 거겠지.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레전설입니다. 탐방 되나요?
〈쌌다! 쌌다! 나 레전숼 팬 You Know?〉
'…….'
아무래도 잘못 들은 게 아닌 듯싶다.
젊은 처자가 쓰기엔 어색한 화법이 들린다.
아니, 요즘 애들이 발랑 까진 만큼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아니, 이분 생긴 건 매미비아 장인인데 왜 이렇게 허물이 없냐?"
-원래 말투가 그래ㅋㅋ
-하비 한국어 패치 잘못됨ㅎ
-처음에 까메오팟TV에서 활동하다가 옮았어!
까메오팟TV.
김재슥이 팟통령으로 군림했던 플랫폼이다.
돌려 말하자면 선비 의식이 결여돼있다.
'안 돌려 말하면 그냥 막장이지.'
처음 한국에 와서 까메오팟TV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쪽 문화를 흡수하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본토 사정에 해박해지는데 이르렀다.
"근데 지금 아는 척 하는 애들. 니들이 패치 잘못 시킨 거 아니야?"
-바로 그겁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요
-나 하비 방송 초기 시청자임~
-ㅎㅎ팟수인 거 들켰당
들켰당 ㅇㅈㄹ하고 있네.
같은 한국인으로서 살짝 부끄럽다.
애꿎은 외국인 한 명 잘못 물들인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책임감이 생기며 발을 빼기 힘들어졌다.
〈레전숼. 나 팬. 유 롤챔스 플레이 쌌다!〉
-일단 쌌다는 그만해주세요. 방송 심의에 어긋날 수 있으니까
해석 여하에 따라 안 좋게 들릴 수가 있다.
하지만 환영해주고 있으니 이야기를 진행하기 편하다.
믿을 수 없게도 시청자 제보가 사실인가 보다.
정말로 내 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You 카오스 초코수. I Know 쓰뤠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빼박 들켰죠?
-혹시 시청자가 말해줬나?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원래부터 나에 대해 알고 있었나 보다.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하는 종합 게임BJ.
카오스에 대해서도 일견식이 있다고 한다.
-제가 하는 말 이해하시나 모르겠지만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 흘려 들으세요
-No No No! 나 만났다. You 욕했다. 하지만 기뻤다. Because 나 팬.〉
-…….
아무래도 사생팬인 모양이다.
나랑 게임도 한 번 해봤다고 한다.
언제인지 몰라서 차마 입 열기가 그렇네.
당시 내가 실례를 안 했기를 빈다.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괜찮겠지.
근데 게임했을 정도면 꽤 실력이 있었다는 소리인데?
'물론 카오스가 인맥빨도 있어서 무조건 실력 100%는 아니지만.'
최소 기본 정도는 받쳐준다는 이야기다.
의외로 상당한 기연을 만난 걸지도.
원래 포켓몬스터도 수풀 막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레어 포켓몬이 걸린다.
근데 그런 애들 대부분이 몬스터볼 회피력이 높다.
슈퍼볼이나 하이퍼볼 던져도 잘 안 잡힌다.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
〈Hey! 레전숼. 나가지 마라. 나 진짜 You 팬.〉
-Okay Okay! 안 나간다. 걱정하지 마라
〈Okay! Lets Get It!〉
신났는지 두 팔을 번쩍 올리며 머리 위로 손뼉을 친다.
생긴 건 매미비아 장인처럼 생겨서 흥겨우신 분이다.
근데 방금 행동 탓에 겨드랑이도 좀 보였네?
"오케이. 합격점."
-쓰레기 새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야, 달래로도 부족하니?
-백마로 갈아타려고 하네
아니, 오해하지 말고.
사람이 어떻게 매일매일 같은 음식만 먹고 사냐.
유리야 같은 떡국도 먹고.
달래 같은 퓨전 음식도 먹고.
가끔은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도 썰어야지.
-여자를 음식으로 비유하는 쓰레기……
-하비는 건들지 말자. 순수한 애다
-유리야도 순수한 앤데?
-얘도 혹시 숨겨진 애인인 거 아니야?
비유를 쉽게 해줘도 뭐라고 한다.
달래의 예가 있다 보니 의혹도 나온다.
근데 진짜로 하비 이분은 오늘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났는데 환영해주니 참 몸둘 바를 모르겠다.
〈레전숼! 나 원한다. 스카이프 or 디스코드. Are You Okay?〉
-Okay. Lets Get It.
-둘이 잘 노네ㅋㅋㅋㅋ
-진짜로 아는 사이인 거 아님?
아, 정말 인기남의 삶이란.
여자가 하도 꼬여서 일상과도 같다
질투하는 사람도 많아서 관리하기 좀 힘든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욕심을 낼 만하다.
화면으로 보이는 하비씨.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생각된다.
〈안녕하세요! 나 하비 You Know?〉
"I Know. 반갑습니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미드라이너 레전설입니다."
-역겹게 예의 차리네
-그 예의의 반만 달래랑 유리야에게 나눠줘라
-저 새끼 쓰레기야. 절대 속지 마 하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초 치고 앉았다.
그리고 나도 확신의 단계에 접어든 게 아니다.
잘 대해준다고 넘어올 만큼 만만한 남자 아니다.
"제가 당신의 방송을 찾아온 이유 알고 계시나요?"
〈모른다. 알려주면 듣겠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팀장이자 실질적 우두머리가 바로 저입니다."
〈Oh! 안다 파프리카 프릭스! 잘한다. You 초코수!〉
초코수가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안다면 대화 진행이 빠르다.
애초에 여캠 탐방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본의치 않게 자존심 싸움이 돼버렸을 뿐 취지를 잊은 적이 없다.
"몇 가지 심하 하에 당신을 파프리카 프릭스로 영입하고 싶다. You Okay?"
〈Okay! Let's Go!〉
이분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호쾌하네.
진심일지는 몰라도 일단 진행한다.
외모에서 후한 점수를 줬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기본만 맞춰줘도 참작의 여지가 있다.
"롤 티어?"
〈다이아 Five!〉
"사는 지역?"
〈소울 신촌!〉
"허리 Size?"
〈23inch!〉
-이상한 게 섞였는데?
-아무튼 개이득 ㄳ
-허리 개얇네
-하비 개미 허리라니까ㅋㅋ
아니, 얇은 건 아닌데?
리야가 21 약간 넘고, 달래가 22다.
23이면 좀 그렇긴 하지만 희소 가치를 따진다.
백마와 만나는 건 나도 처음이라 살짝 두근댄다.
'그리고 허리가 다가 아니야.'
전체적인 밸런스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분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한다.
이제부터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정중한 부탁, 고려해줬으면 싶다.
"뒤에 있는 피카츄 인형 잠시만 가지고 와주세요."
〈What? 노란 쥐?〉
"Okay. Let's Go."
-원하는 거 개많네
-역겹게 영어 좀 섞지 마라. 발음도 초쿠리면서
-갑자기 인형은 왜 들고 와달래? 이거 갑질 아니냐?
팀장으로서 팀원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런 거 가지고 갑질이라고 하면 섭하지.
아무리 요즘 기업 갑질 사건이 많이 터지고 그래도 자소서 요구하는 정도로 갑질이라고 하진 않는다.
심지어 자소서도 아니고 그냥 간단한 구두 질문 몇 개다.
"핫팬츠? 합격."
-착한 갑질 인정합니다
-이걸 허리 아래를 보려고……
-큰 그림 오졌다!
-이 새끼 은근히 고단수네?
운동 능력을 평가한 거다.
아무리 게임이 가만히 앉아서 한다!
그런 이미지가 있어도 게임단은 현실에서도 만나기 때문에 여러가지 필요한 게 많다.
복장의 자유도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 사람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서로 선비탈 쓰고 친목 없이 하면 게임단은 내부적으로 무너진다.
스포츠란 팀원들 간의 화합.
특히 성별의 장벽은 간간히 문제가 된다.
개방적인 마인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남성 게이머들의 엔돌핀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이 누님 알면 알수록 괜찮은 분이네."
-어휴;;
-하비 착한데 제발 이용해 먹지 마라
-쓰레기 새끼
-여자를 몸으로만 보냐?
아니, 왜 자꾸 오해를 받는 거야 서럽게.
Talk를 섞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있잖아.
어색한 이 사이가 가까워져야 기량을 백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마지막 심사 들어가겠습니다. 이거 상당히 중요하니 진지하게 대답해주세요."
〈Of course! 당욘합니다!〉
"사랑은 국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Yes or No."
〈Yes!〉
-ㅁㅊ새끼ㅋㅋㅋㅋㅋㅋ
-아나 혈압
-이거 신고 안되나요?
-방통위에 신고ㄱㄱ
이걸 대체 왜 신고해!
그리고 신고할 수도 없다.
사랑은 결코 범죄가 아니다.
"축하드립니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팀장으로서 당신의 열정, 높게 평가합니다. 아직 지켜볼 여지는 있으나 첫 번째 서류 심사 통과하셨습니다."
〈WOW~! 나 파프리카 프릭스?〉
"음…… Okay. You 파프리카 프릭스. Welcome"
〈쌌다!〉
쌌다 좀 하지 말라니까 진짜.
정말로 방통위에 신고 당하는 수가 있다.
한국어를 대체 얼마나 잘못 배운 건지.
유창한 것 같으면서도 살 떨리네.
"바로 두 번째 심사 들어가겠습니다."
한 번 교정이 필요할 듯싶다.
* * *
지금까지 파프리카TV에서 여러가지를 했다.
이쯤 되면 나도 어디 가서 BJ다.
그렇게 말을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다 해본 건 아니다.
솔직히 컨텐츠가 부족하다.
게임BJ인 만큼 어쩔 수 없으나 인정은 한다.
"그래서 오늘 강남 나왔습니다."
-저기 어디냐?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데……
-갑자기 스케일 커지네
-레전설이 야방을 하다니;;
야방.
야외 방송의 준말.
절대 야한 방송이 아니다.
특별히 게스트도 초청할 예정이다.
"게스트가 게스트다 보니 오해할 수도 있는데 절대 사심 없습니다. 순수하게 심사의 한 과정으로 부른 거에요."
-응 아무도 오해 안 해
-어휴, 하다하다 팀장 직위도 남용하네
-제발 대한민국 망신만 시키지 말자;
무슨 또 대한민국 망신이야!
애초에 니들이 망신 시켜서 한국어 패치가 잘못됐잖아!
그래서 내가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해 이 자리에 나온 거다.
푸른 눈의 그녀가 다가온다.
"Hello!"
야외 방송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진행한다.
진짜 방송처럼 카메라맨이 따라붙지는 않는다.
셀카봉으로 자신을 찍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협소해진다.
몸의 반응도 굼떠질 수밖에 없다.
결단코 보고서도 못 피한 게 아니라는 소리다.
"Hey Hey. 떨어져 주세요."
"인사! 미국 인사 이렇게 한다."
"여기 한국입니다. 진정하세요."
"Okay! I 수긍."
바로 어제 서류 심사를 통과한 파프리카 프릭스의 예비 멤버다.
예비 멤버.
아직 확정이 된 게 아니다.
그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두 번째 심사에 들어갔다.
오늘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야방을 진행하는 이유다.
하비가 만나자마자 격한 포옹을 해온다.
방송으로 만났을 때보다 개방적이다.
개방적인 부분,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너무 오버하다가는 정말로 방통위에 신고 들어갈 수 있다.
"또 이러면 곤란해요. 아무리 팬이라도 정도를 지켜야 합니다."
"Sorry Sorry!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이제 안 그러겠다."
"Okay. 한 번 봐드립니다. 다음부터 주의하셔야 돼요?"
-봐주긴 개뿔이
-좋아 가지고 입이 귀에 걸렸는데?
-아 개부럽다!
-저 쓰레기 새끼 하비한테 포옹 받네
내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갑자기 달려든 거다.
그리고 내 의사도 존중해줘야지.
이거 자칫 잘못하면 성희롱이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에서 남자도 성희롱이 성립된다.
'아니, 이런 성희롱은 환영이긴 한데.'
이래 봬도 보수적인 남자다.
외간 여자와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다.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가고 난 이후에 했으면 좋겠다.
"일단 복장 합격. 롱코트 아래 맨다리. 플러스 1점 드립니다."
〈Plus? 캄사합니다,〉
"하지만 But. 방금 같은 스킨쉽 마이너스 될 수 있습니다."
〈Minus? 미안합니다. 봐주세요.〉
미안하다고 하니 특별히 봐준다.
미리 한국 문화를 모르기 때문에 봐주는 거다.
예쁘게 생겼다고,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게 아니다.
-어차피 뽑을 거면서
-꼴에 밀당하네
-아나 진짜 선비 코스프레 개역겹다
-어차피 여자면 좋아 죽는 쓰레기 새끼가
나 레전설, 절대 여자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늘 평점?
객관적으로 매겨진다.
첫 번째 심사는 어디까지나 서류 심사다.
두 번째 심사를 통과해야만 파프리카 프릭스 입단의 영광이 주어진다.
"참고로 오늘 쌌다 금지어 Okay?"
"쌌다 Why?"
"그거 나쁜 말. 하면 안된다. 다른 단어 써야 된다."
"Um.…, Okay!"
"만약 한다면 벌칙 수행 alright?"
"alright! Why Not?"
겸사겸사 나쁜 단어의 사용도 바로 잡아준다.
내 몸에 흐르는 선비의 피.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으로서 좌시할 수 없다.
금발의 외국인BJ 하비와의 좌충우돌 야방이 시작됐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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