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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42화 (14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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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眞파프리카 프릭스 -->

형제봉(兄弟峯).

드높은 광교산의 봉우리 중 하나.

까놓고 가장 만만한 등산로라 금방 올라간다.

혼자 간다면 설렁설렁 가도 한 시간 반.

겨울이다 보니 길이 미끄러워 조금 더 걸렸다.

'나랑 춘자 성격에 그런 게 있겠냐만은.'

호쾌하게 팍! 팍!

땅과 눈을 동시에 헤집으며 나아갔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탓에 자연스럽게 늦어졌다.

딱히 재촉하는 것도, 바쁜 것도 없으니 괜찮다.

그렇게 한 눈이 팔린 탓에 눈치 못 챈 감이 있다.

올라오는 길에는 몰랐는데 정상이라 그런지.

'사람이 은근히 있는데?'

눈까지 내린 겨울임에도 사람이 적지 않다.

원래 형제봉이 만만해서 왕로가 잦기는 하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아이고~ 이쁜 아가씨 또 보네?"

그 생각은 결과적으로 반만 맞았다.

한 아주머니가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네오신다.

나이대와 호칭을 고려한다면 BJ로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대화에서도 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좋은 총각 찾았나 봐~. 이런 데도 다 데려 오고."

"그렇게 보여요?"

"오늘은 그 나쁜 시키 욕 안 해도 되겠어? 어머어머, 내가 괜한 소리 한 건 아닌가 몰라."

"……."

높은 확률로 그 시키는 내가 맞아 보인다.

정상에서 뒷담 깠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구나.

'여기서 진짜로 나 욕한 거야? 산 아래 사람들 다 들으라고?'

아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셨네.

이제는 소개까지 해주신다.

"괜찮아요. 이 새끼가 그 새끼에요."

"그 시키여? 쯔쯧."

"……."

이름도 모르는 아주머니가 혀를 차더니 흘겨보고 떠나신다.

굉장히 기분이 더러운데 차마 뭐라고는 못하겠다.

솔직하게 잘못을 했던 건 사실이니까.

"집단 린치라도 하려고 데려왔니?"

"해줄까?"

"아니……."

주위 등산객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묘하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한 소리씩 하고 돌아다닌 듯하다.

딱 봐도 유리야과로 입이 가벼워 보이셨다.

형제봉 정상에서 굴러 떨어지기는 싫은 노릇.

달래를 재촉해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의외로 순순히 하산에 동의했다.

별 대화를 하지 않아서 금방이었다.

한 시간 반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빵집.

"밥 안 먹어? 시원하게 파전에 막걸리 한 잔 조지지?"

"밥 먹을 기분 아니야."

기분으로 밥을 안 먹기도 하는구나.

달래가 내 뒷담을 까고 입가심으로 먹는다는 그 빵집이다.

광교산 메아리라는 이름의 독특한 빵을 판다고 한다.

'진짜로 있네…….'

진짜로 있어서 더 깜짝 놀랐다.

모양은 크로와상에 식빵을 합쳐 놨다.

광교산 메아리 하나에 아메리카노 두 잔.

테이블로 가져와서 취식해보기로 했다.

실제로 맛도 겉은 크로와상, 속은 식빵이다.

다만 좀 더 달달하고 감칠맛이 나서 취향이다.

"맛있냐?"

"그냥 배고파서 먹는다."

"그래? 난 이제 마음대로 못 먹는데."

아무리 취향이라도 간식으로 먹는 거다.

등산 갔다 와서 배고파 죽겠는데 식사로 먹을 건 아니지.

달래도 틀림 없이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을 텐데.

'얘가 유리야 마냥 배고파요, 밥 먹고 싶어요,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이러는 애는 아니지만.'

안 먹고 사는 애도 아니다.

오히려 여자 치고는 잘 먹는다.

복스럽게는 아니어도 야무지게 먹는다.

그러고 보면 처음 얘를 여자로 느꼈던 것도 같이 밥을 먹으면서였던 거 같다.

"왜? 좋아한다며."

"다이어트하고 있어. 어떤 새끼가 나 보고 1kg 더 빼라고 해서."

"……."

그 새끼에 이어 어떤 새끼도 나 맞는 거 같은데?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닌 듯 아메리카노로 연신 입맛을 다셔댄다.

근데 그건 할 말이 없어서 했던 말이지 진심으로 한 건 당연히 아니다.

"나 어때?"

"배고파 보여. 그냥 먹자."

"아니…… 씹. 옷 어떠냐고."

무서운 누님이 비속어를 쓰신다.

왕복 세 시간이 넘는 등산 코스였다.

땀이 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말라서 긴 머리카락이 볼에 붙었다.

처음 만났을 때 생기발랄했다면 지금은 살짝 피곤해 보인다.

드센 모습이 한풀 꺾이자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쓰다듬어 주고 싶어서 쓰다듬어줬다.

"옷이…… 어떠냐고 옷이."

"오소이."

"니가 루피냐? 고무 인간처럼 맞아볼래?"

험상 궂은 대꾸와 달리 피식댄다.

달래도 인터넷 인간, 한 때 게임 폐인이었어서 드립이 먹힌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옛날 춘자 같다.

하지만 한 켠에서는 다른 느낌.

화질이 선명한 최신TV로 광고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마치 모델처럼 고고하게.

전체적인 외모가 누가 봐도 일반인은 아니다.

진짜 모델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옷 광고 찍고 왔어. 늦은 이유도 그래서고."

"그래? 그대로 입고 온 거야?"

"잘 어울린다고 주심."

"그러심?"

"이응이응."

모델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아니, 의외로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해본 적이 없지만 주위 사람들.

'유리야도 몇 번 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

이쁘장한 애들은 주위에서 그런 아르바이트가 잘 들어온다.

혹시 무서운 곳 아니냐고 따라간 적도 있다.

쇼핑몰 등 사진 소모되는 곳이 많더라.

일반 아르바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급이 좋다.

그렇다고 엄청난 수준도 아니다.

달래의 수금에는 따라가지 못할 텐데.

본격적인 광고 촬영이었다면 납득이 간다.

"여캠 그만두고 연예인이라도 하게?"

"니은니은."

"1절만 하자……."

롤챔스 승강전.

화제를 몰고 왔다는 사실은 모를 수가 없다.

나 또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래 봬도 여러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내가 괜히 대표 이사 전화를 막 끊은 게 아니다.

달래도 예외일 수 없었다.

"병행하면서 돈 쓸어 담을 거야. 나 지금 잘 나가잖아?"

"어련하시겠어. 여캠 원탑이신데."

"그러니까……."

한동안, 아니 향후 몇 년은 바쁠 예정이란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고 싶으시다고.

스프링 시즌은 적극적인 참가가 힘들 수 있다.

'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른 일도 아니고 진짜 자신의 꿈을 위해서다.

열혈들을 푸른 눈의 백룡으로 설득했을 때와는 다르다.

진지한 일에 초칠 정도로 내가 그렇게 눈치 없지는 않다.

"눈치 있었음?"

"너보단 있다 얌마."

"그럼 나 피곤한데 어떻게 해야 되게?"

어쩌긴 뭘 어째.

가서 씻고 퍼자야지.

그 장소에 대해 은근하게 어필해온다.

"호텔 가서 씻고 질펀하게 놀고 싶다 누구랑."

"누구랑?"

"질투해? 그럼 내가 너 말고 그런 짓 할까 봐?"

"……."

테이블 위에 엎어진 채 키득 웃으며 바라본다.

색기가 부쩍 늘어서 농담 같지가 않다.

물론 나라고 관심 없는 건 아닌데.

"……너랑 하면 정기 다 빨릴 거 같아."

"내가 무슨 색녀냐?! 서큐버스야?"

"그런 건 사귀는 사이끼리 해야지. 우리 이제 안 사귀잖아."

전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얘랑 다시 잘되고 싶다.

그리고 얘의 인생에 내가 도움이 된다.

그런 거라면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게 없다.

솔직히 목이 마르면 말랐지 그 반대의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전자는 확신이 안 섰고, 후자는 절대 아닐 것이다.

"꼴에 보수적이야. 지는 쓰-레기면서."

"…….나 지금 프로 해야 돼. 너도 일하는데 방해되잖아."

"쓰~레~기!"

여기서 눈 딱 감고 승낙하는 쪽이 더 쓰레기지!

이 정도면 진짜 신사 인정해줘야 한다.

달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순수했던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입 싹 닫아서 색녀 만드냐?"

"아니, 사랑했던 것 뿐이잖아. 그리고 막말로 니가 뭐가 순수해!"

"성적인 부분은 순수했단 말이야~!"

춘자가 아니고 달래의 모습에서는 상상치도 못할 반응이다.

불을 부풀린 채 떼를 쓰듯 테이블을 주먹으로 통통 친다.

한 차례 아등바등하더니 제풀에 지쳐 쓰러졌다.

"오늘은 땀도 흘리고 엉망이라 어차피 할 생각 없었어."

"아, 그래."

"나 사랑은 않더라도 좋아는 하지?"

"아마."

"다시 사귈 마음 조금은 있잖아. 있으면 키스해죠, 응?"

애처럼 애교를 부려오자 갭이 살짝 적응이 안된다.

힘든 일이 많다 보니 의지하고 싶나 보다.

좀 많이 쓰레기 같은 발상이긴 한데…….

'지금 꼬시면 인생 피는 각 아닌가?'

달래 통장에 최소 몇 억은 있을 거 같은데?

기둥서방 되면 평생 게임만 하면서 살 수 있지 않나?

힘들어하는 여자 꼬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얼핏 들은 바가 있다.

주위에 그런 나쁜 남자가 있을까 걱정돼서 하는 소리다.

내가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일식집에서 일 치렀다.

그렇게 될까봐 일찍 집에 보낸 것이기도 하다.

"여기 빵집이다."

"어디 갈래? 멀티방? 룸카페? 역시 호~텔?"

"……호텔 말고."

달래도 말했지만 내가 적지 않게 보수적이다.

책임질 마음 없으면 쉽게 진도 안 나간다.

확신도 없이 다시 만나지도 않는다.

'확신이 없는 것 뿐이지…….'

마음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다.

힘들어한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어디까지나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 * *

달래와는 그 길로 근처 룸카페에 잠깐 들렀다.

어린 나이에 이러저러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안아서 달래주고, 뽀뽀도 한 번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집에 보냈다.

'……얘가 아직 한창 어릴 때라 그런가.'

땀냄새도 향긋하더라.

본인은 신경 쓰는 모양인데 전혀 그럴 게 아니었다.

야릇한 이야기까지 오가다 보니 분위기가 무척 묘해졌다.

널리고 널린 남자들처럼 자제심이 부족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내가 인성이 된 사람이라 다행이지.'

달래가 정말 사람 하나 진국으로 잘 사귄 거다.

아무튼 집에 돌아오자 부재 중 전화가 한 통.

그리고 메세지가 두 통.

하나는 남수길 대표고 다른 하나는 박인주 운영자다.

남수길 대표께서 시간 날 때 전화 좀 해달라고 한다.

어지간히 발등에 불이 떨어지셨나 보다.

박인주 운영자에게는 파트너BJ 승격 메세지가 왔다.

'타이밍이 참 절묘하네?'

롤챔스 승격이 확정되고 물어봤었다.

약속했던 파트터BJ 승격 언제 해줄 수 있나?

내부적으로 검토가 오가야 된다며 확답하기 힘들단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시크릿 방식이구나!

파프리카TV가 지들 멋대로라는 건 모르지 않다.

아무리 내가 BJ라도 기업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다.

'근데 당연한 말이지만 티를 내면 안돼.'

힘이 있는 사람들은 갑질을 할 줄도 안다.

괜히 밉보였다간 손해보는 지름길이다.

보란 듯이 전세를 역전 시키고 여유롭게 지껄여준다.

"스프링 시즌을 저보고 또 뛰라고요? 대표님 저 요번에 너무 힘들어서 쉽게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요."

〈아니, 그러지 마시고 이미 한 배를 탄 몸인데…….〉

누구 마음대로 한 배를 태우려고 하지?

나는 언제든 배를 갈아타도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이다.

도인디가 프로팀 제의가 많이 와서 행복한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종류 별로 뷔페가 차려졌다.

괜찮은 것만 골라 잡으면 더 적겠지만 이게 다 밀당이다.

협상으로 끌고 가 밀당하면 나 잡고 싶은 팀들 엄청 많을 것이다.

"일단 착각하고 계신 점 하나 잡아드릴게요."

〈차, 착각이요? 지금 제가 들은 단어가 맞나요?〉

그러니까 파프리카 프릭스도 나 잡고 싶으면 밀당을 하라고.

어디서 고급 인재를 꽁으로 굴리려고 그래.

그 뻔한 속셈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저는 팀을 이루는 톱니바퀴가 아니에요."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당연합니다. 저도, 선수들도, 그리고 직원들도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파프리카 프릭스라는 팀을 이루는 거잖아요?〉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격하게 하고 싶은가 보다.

역시 회사의 사장쯤 되니 포장이 아주 번지르르하다.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건 협동이란 전제부터가 틀려먹었다는 거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해드리면 저는 중요한 톱니바퀴가 아니라 기계 그 자체에요.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냥 윤활유에요. 어떤 느낌인지 입감이 오세요?"

〈…….〉

다른 사람한테라면 이렇게까지 말 안 했을 것이다.

쓰레기 취급 받는 나지만 이래 봬도 재활용은 되는 쓰레기다.

이 녀석은 애초부터 BJ들 꼬셔서 무급으로 굴리려고 작정을 했었다.

[패시브 스킬 『연봉 협상 -중급편-』 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일단 현실 파악부터 하게 만들어준다.

더 이상 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 작품 후기 ==========

초반부를 수정했어요

읽기 편하도록 한 번씩 교정을 거쳤고(사실…… 초반부 오타랑 비문 안 고치고 그냥 올렸었어요 힝)

2화 정도 분량이 삭제되었습니다

삭제된 건 처음 부대 복귀할 때 이러쿵저러쿵 자질구레한 부분

조기 복귀 부분도 논란이 없게끔 수정했습니다

또 50화쯤에 걸그룹 때도 논란이 있었는데!

"어떻게 팀원이 전부 사람이 아니냐 사람이……."

주인공이 별 말실수를 안 했잖아요

이 말실수를 추가하고 이로 인해 문제가 야기됩니다

또한 협회 토의 내용이 일부 변경됩니다

하루만에 다 하다 보니 머리 아파성……

아무튼 변경됨!

나름 괜찮게 수정했다고 생각해요

보시고 계신 분들께는 상관 없겠지만 따라오실 분들에게는 분명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날 잡고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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