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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승강전.
1부 리그인 롤챔스로 가는 골목이다.
그 골목을 통과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이제 마지막 관문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는 팀은 직행, 패배한 팀은 다시 한 번 치러야 돼요.〉
물론 여기까지 온 이상 떨어지는 것도 쉽지 않다.
조별 리그는 첫 번째 골목이다.
그 첫 번째 골목을 통과한 이상 여유가 좀 생긴다.
승강전에 배정된 롤챔스 시드권은 총 여섯 장이다.
그리고 조별 리그를 뚫고 올라온 팀이 여덟 팀이다.
즉, 어지간하면 떨어질 일은 없다.
금일부터 진행될 역 토너먼트.
딱 한 번만 이기면 시드권을 얻는다.
진 쪽은 패배한 팀끼리 패자 부활전을 가진다.
롤챔스의 승강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1군팀들을 위한 안전 장치이기도 하다.
이렇듯 보험이 있어서 반쯤 안심해도 된다.
〈하지만! 패배하는 것만으로도 굴욕이거든요~. 다음 시즌 잘해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해야 되는데! 승강전에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잖아요?〉
진용준 캐스터가 말하는 대로다,
또한 승강전은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다.
게임단들에게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적 이상의 의미를 가질 정도로.
대중적인 이미지가 좋아야 후원이 잘 들어온다.
선수들의 몸값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맞습니다. 두 팀 모두 최근 경기력이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어요. 더욱 분전해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필요성이 있습니다.〉
페닉스 게임단과 비슷한 평판인 IM 1팀.
그리고 형제팀에 비해 아쉬운 KTX 롤러코스터 A팀.
두 팀의 경기가 금일 승강전 첫 번째 경기로 잡혔다.
김은준 해설이 질타는 필요한 따끔함이었다.
양 팀 모두 긴장 좀 하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
평소처럼 그냥저냥 약팀다운 모습만 보여주다간 진짜로 큰일난다.
〈요즘 롤챔스가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는 팀은 도태됩니다. 이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이에요.〉
〈오늘 미끄러지면 다시 못 올라갈 수도 있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중계진이 괜히 겁을 주려는 게 아니다.
변하지 않다가는 정말로 따라잡힐 수 있다.
아니, 이미 따라잡혔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파프리카 프릭스도 그렇고, 그리핀도르도 그렇고 신인팀들의 기세가 요즘 엄~청나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할 때에요.〉
올라가는 팀이 있는 이상 당연히 내려가는 팀도 있다.
롤챔스, 1부 리그의 의자수는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이번 승강전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오늘 두 팀의 경기는 예정돼있지 않지만.
〈오늘의 첫 번째 경기! IM 1팀 대 KTX 롤러코스터 A팀입니다. 함께~~~ 보시죠!〉
그 중요도가 결코 낮을 수가 없는 승강전.
시드권을 둘러싼 역 토너먼트가 펼쳐진다.
* * *
지난 조별 리그 때는 솔직히 억울했다.
오프게임넷이 주관하는 롤챔스인 만큼 당연히 공정에 공정을 기해서 대진표를 짰겠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왜 하필 경력도 없는 우리 팀이 첫 경기로 잡힌 거야.
'상대가 허접이라 천만다행이었지.'
SKY T1 S를 먼저 상대했다면 졌을 각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간담이 서늘하다.
인터넷에서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을 테니까.
반대로 이겼기 때문에 마음이 평온하다.
남은 경기에 대한 부담감이 덜어진다.
물론 긴장을 놓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IM 춘봉박님이 학살 중입니다!
주위가 갑작스레 시끌벅적 소란스럽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한 선수가 썩 괜찮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름 아닌 경기장 안이다.
조별 리그 이후의 경기 진행.
어떤 느낌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용산 E-스포츠 경기장에 관중으로 온 적이 없기도 하다.
경험과 궁금증을 겸해서 직관을 왔다.
'못하진…… 않네.'
춘봉박이라는 선수가 선전을 하고 있다.
챔피언도 하필이면 리픈.
나로서는 상당히 깐깐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게 한다.
리픈의 강점을 잘 살려내는 모습이다.
리픈 원탑인 내 눈에 괜찮다는 건 상당한 칭찬이다.
'근데 부족해.'
잘하긴 잘하는데 겁나 잘하진 못한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시비털기인지.
선수 본인이 들었다면 멱살 잡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간혹 성격이 나쁘다고 오해 받는 이유다.
설명을 다소 부족하게 하는 감이 있다.
어째서인지는 보다 보면 아마 나올 것이다.
쿠와앙-!
탑라인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티바나.
갑자기 궁극기를 쓰고 날아오른다.
최근 대세 챔피언답게 기본 스탯이 좋다.
심지어 용 형상으로 변하면 단단해진다.
리픈이 아무리 잘 컸어도 원콤은 못 낸다.
쐐기를 박는 건 정글러 노텀의 글로벌 갱킹.
〈들어가면 끝나죠 이거는?〉
〈여기서 춘봉박 잘리면 큰일이에요! 망했어요~ 점멸까지 썼는데 사망!〉
불이 꺼지며 마피아 게임이 시작된다.
KTX A팀의 정글러 까메오가 날카로웠다.
동시에 춘봉박의 리픈이 안일했던 감도 있다.
진용준 캐스터가 무척이나 아쉬워 한다.
그도 그럴게 현재 진행되는 경기.
IM팀을 지탱하던 건 춘봉박 선수였다.
탑 말고는 전 라인이 힘든 상황.
학살을 찍었던 춘봉박이 제압 당했다.
사실상 승기가 넘어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딜챔프는 한 번 실수하는 순간 져.'
내가 괜히 부족하다고 짚었던 게 아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적당히만 잘하면 저렇게 된다.
속된 말로 재미만 보다가 진다.
현재 메타에서 탑 딜챔프를 하는 건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저 선수는 어지간한 수준이다.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몰라도 현재 경기력은 눈에 보이는 대로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리픈이 한 번 죽자 게임이 급속도로 기운다.
멀쩡했던 탑라인 1차 포탑이 허물어진다.
제압킬을 준 탓에 글로벌 골드가 훅 넘어갔다.
'아, 뭔가 감정 이입되네.'
탑만 혼자 잘하고 나머지가 못 받쳐준다.
어떤 팀의 경기가 매우 연상된다!
그 어떤 팀은 바로 파프리카 프릭스.
심지어 챔피언도 같은 리픈이다.
내 상황과 겹치는 듯한 건 착각일까?
누구누구 탓을 격하게 하고 싶다.
"기지배야. 니가 좀 열심히 하면 안되냐?"
"오라버니, 달래는 롤이 너무 너무 어려워요~."
당연히 혼자서 관람하러 온 게 아니다.
물귀신 작전으로 강제로 끌고 왔다.
이번에야 말로 모든 팀원 다 데려왔다.
그 중 한 명, 달래가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손을 흔든다.
카메라가 이쪽 관중석을 자주 비친다.
관계자석이라서 눈에 띄기도 할 뿐더러 아무래도.
'그래, 얘가 지인만 아니었어도 정말…….'
최근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2년 전 기억의 일부를 지우면 달래가 엄청 예뻐 보이지 않을까?
수준급 외모, 능력 있고, 나 좋아하고 솔직히 단점이 없다.
지랄 맞던 성격도 몰라 보게 좋아졌다
적어도 봐줄 만한 지경까지는 와버렸다.
문제는 당시의 기억.
워낙 강렬해서 본능적으로 꺼림칙하다.
달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지레 놀란다.
〈어, 파프리카 프릭스 선수들이 직관을 오셨네요?〉
〈관중석에 꽃이 활짝 피었어요! 경기 중에도 한 떨기 꽃 같은 달래 선수인데 사석에서는~ 그야말로 진달래, 두견화에요!〉
정말 90년대 감성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어쩌면 80년대 이전일 수도 있겠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라 판단이 안된다.
진용준 캐스터가 침이 튀기도록 달래를 떠받든다.
'롤챔스 승강전 평균 시청률이 네 배 가까이 껑충 뛰어올랐다고 들었지.'
모르긴 몰라도 방송사 입장에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여성 프로게이머만 해도 희귀한데 외모가 웬만한 연예인 윗줄이다.
엄청난 이슈가 야기된 건 필연이었다.
바로 옆 자리에 있는지라 실시간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뭘 꼬라 봐."
"요즘 뭐 피냐? 아직도 말레?"
"아오 씹. 이 웬수를 진짜 죽일 수도 없고."
춘자 모드가 된 달래가 험악한 언어 사용과 함께 내 목을 졸라온다.
나도 어쩔 수가 없는 게 놀려야 한다.
요즘은 안 놀리면 어색하다.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내가 아는 춘자가 맞나 이따금 헷갈린다.
〈선수들끼리 장난도 치고 굉장히 화목한 팀 같습니다.〉
〈저걸 화목하다고 봐야 할지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레전설 선수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대로 서로 친분이 있는 듯합니다.〉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데 이걸 이렇게 포장한다고?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지만 그럴 만도 하다.
달래는 오프게임넷 입장에서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다.
만약 1부 리그 롤챔스로 승격한다면 더더욱 귀중한 존재가 된다.
지금부터 미리미리 사이 좋게 지내야지.
근데 그 달래를 올려주는 사람이 나다?
'살짝 섭섭하려 그러네?'
나도 나름대로 이슈에 오르는 사람인데 순위가 밀려버렸다.
이러다가 섭섭하면 확 트롤하는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해는 되는 게 텅텅 빈 관중석.
우리 파프리카 프릭스가 경기를 치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약 300석 정도 있는 경기장 내부가 절반도 채 안 채워져 있다.
이 모습이 평소에 비하면 훨씬 흥행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
1부 리그가 아닌 롤챔스 승강전의 인기는 원래 저조하다.
"달래야."
"왜 씨발아."
"오빠가 너 아낀다."
"아…… 뭐래. 정말."
원래 못된 짓만 하다가 가끔 잘해주면 상대가 감동한다.
달래가 예상치 못한 칭찬에 당황한 듯 어색어색.
내 진심이 마음속 깊이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달래가 은근히 순정파야.'
오를 것이 분명한 유망주다.
친하게 지내서 나쁠 일이 전혀 없다.
그런 속 보이는 이유만은 아니고 섭섭할까봐 그런다.
방금 전 느낀 지라 바로 실천해준다.
쿠와앙-!
잡담을 떠드는 사이 경기도 슬슬 끝나가는 분위기다.
제압킬과 포탑 골드를 먹고 성장을 복구한 티바나.
단단한 몸을 앞세워 미드 1차 포탑에 뛰어든다.
〈티바나는 다이브를 할 수 있거든요! 아~~ KTX A팀의 한타 대승! 이대로 용까지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티바나가 포탑에 몸을 대자 나머지 팀원들이 정리했다.
안 그래도 유리하던 전세가 기운다.
용까지 나가자 차이가 극명해진다.
'해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 직관적이라서 이해하기가 정말 편해.'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존경하던 몽상가 강빈.
롤챔스 해설자가 되셨다니.
살짝 불안했는데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티바나는 다이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근데 혹시 내 경기 해설도 저렇게 한 건가?'
스치듯 궁금증이 인다.
* * *
2014년 1월 21일.
대한민국에 있어 딱히 뭐 별일이 있는 날은 아니다.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 팬들에게는 가히 축제날이다.
"진짜 오늘 티켓 예매 성공해서 다행이다."
"나 너무 설레. 혹시 나한테 윙크 날려오면 어떡하지?"
"미친놈아. 조현병 있냐?
떡 줄 사람이 생각도 안 해도 망상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10대, 그리고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항상 꿈꾼다.
자신의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나기 주기를!
그럴 일이 없다 보니 찾아가게 된다.
서울시 용산에 위치한 E-스포츠 스타디움.
전날의 다섯 배 이상으로 경기장 인파가 부풀어 오른 이유다.
게임 잘하는 취미 맞는 여자.
심지어 걸그룹 수준으로 화려한 외모.
예비 물소들이 자신들의 꿈과 희망사항을 떠들며 돌아다닌다.
"달래 여신님 오늘 이기고 MVP도 타셨으면 좋겠다~."
"100% 줄 걸? 오프게임넷도 안달 났더라."
"오늘 레전드 각이야. 아빠 등산용 카메라 꼼쳐온 거 신의 한 수인 거 인정?"
급식충으로 보이는 아기 물소들도 하하호호 오늘만은 즐겁다.
용돈을 탈탈 털어, 엄마 지갑도 조금 슬쩍!
롤챔스 티켓을 예매했다.
조금 양심이 찔리더라도 추억을 장만할 수 있는 날이다.
커뮤니티에서는 소문이 파다~하다.
금일 예정된 파프리카 프릭스의 경기.
이기는 순간 MVP는 무조건 달래다.
오프게임넷이 억지로라도 주게 돼있다.
늘 감사하고 황송한 복장만 입고 오시는 여신이시다.
오늘이야 말로 접견을 할 수 있는 날이구나.
그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
일단 반은 파투났다.
상상치도 못한 초유의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연애질이 없으면 진도가 한 세 배 빨라지지 않을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