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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32화 (13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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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만나게 될 상대라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죠. 두 팀 모두 기세가 등등하지 않습니까? 커뮤니티에서도 떠들썩해요!"

이어지는 인터뷰.

진용준 캐스터의 대답에 피맥의 눈썹이 움찔 한다.

의식하는 이유의 절반이 그것이다.

솔직하게 너무 억울하다.

"저는 그리핀도르가 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성적에 민감한 거기도 한데……."

말하려는 내용은 아쉬움이다.

우리 진짜로 열심히 했고 잘했다.

그런데 그만한 주목을 못 받고 있다.

-주목 못 받아서 서운한가 보네ㅋㅋ

-뭐야, 질투하는 거?

-피맥 자체가 타고난 관종이라서……

파프리카TV의 롤챔스 승강전 중계 방송.

과거 BJ피맥의 팬들이었던 시청자가 상당수다.

그런 만큼 피맥의 심정을 백분 이해하고 있다.

나쁜 의미의 관심종자가 아니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이다.

피맥이란 사람 자체가 원체 그러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인기BJ였던 피맥.

그는 개인 방송을 시작한 이유부터가 남다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려고?

둘 다 아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 줄이다.

자신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한 마디로 그는 성공한, 그리고 능력 있는 관심종자다.

프로로 데뷔한 이후로 승승장구.

이 정도 이겼으면 커뮤니티도 들썩이겠지.

다른 사람 이야기만 보이니 눈썹이 찌푸려질 만하다.

"저번에 보니까 레전설 선수가 탑도 하시더라고요?"

"탑도 하고, 미드도 하고, 원딜도 하고! 멀티 포지션이라 저도 가끔 헷갈려요~."

그런데 그런 레전설이 성역을 짓밟았다.

원래 탑유저들은 세포가 전투적이다.

소위 단세포적 성향을 띈다.

피맥도 예외가 아니고 이번 경우는 특히 더 민감하다.

"만약 승강전에서 만나게 된다면 비밀병기를 꺼내겠습니다. 한 번 라인전을 서보고 싶었어요."

"비밀병기요……? 준비하고 있는 카드가 있으신가 봐요?"

진용준 캐스터의 물음에 피맥이 고개를 어색하게 끄덕인다.

재차 물어오지만 대답은 하지 않는다.

비밀병기는 숨겨져있기 때문에 비밀병기다.

공개되는 시점에서 그 가치가 당연히 떨어진다.

이를 사용하면서까지 꺾고 싶은 상대.

피맥의 안에서 파프리카 프릭스, 그리고 레전설은 거슬린다.

알을 박은 롤챔스 상위권팀이면 모를까.

신인팀과 경쟁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2부 리그인 LML에서 이미 다 꺾고 올라온 마당이다.

자신들은 롤챔스에 갈 저력이 있는 팀이다.

격차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다.

그런데 관심을 파프리카 프릭스에 전부 빼앗기고 말았다.

-비밀병기? 대체 뭘 꺼내려는 거지?

-그냥 또 허언이잖아ㅋㅋ 롤드컵 우승이 목표라는 얜데

-ㄴㄴ피맥 개잘함; 10데스, 20데스 하면서도 게임은 이겨

설마 정말일까?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일까?

후자의 의견이 대세를 이룰 수밖에 없다.

승강전 조별 리그 이후의 대진.

각조의 1,2위들이 다시 한 번 겨룬다.

거창하게 토너먼트 리그를 펼치는 게 아니라 딱 한 번이다.

그 한 번에 걸릴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안 만나는 거 그냥 던져보는 거겠지.

그러면서도 내심 비밀병기의 정체에 궁금증이 인다.

─피맥이라면 비밀병기 숨기고 있을지도 몰라

피맥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유명했잖아

탑 거미여왕을 피맥이 창시했음!

비밀병기가 하나쯤 있을 만도 해

└요즘 솔랭에서 탑야흐오 하던데 설마……

└탑야흐오 정도로 비밀병기?

└레전설한테 밀리니까 관심 받으려고 그러는 거임ㅋㅋ

그렇게 커뮤니티에서 다소 화제가 된다.

물론 그래봤자 다소다.

뭔가 공개된 것도 아니고 선전포고다.

그 선전포고가 닿을 확률도 지극히 낮다.

하지만 불가능할 정도의 확률도 아니다.

머피의 법칙은 은근히 잘 터진다.

이윽고 발표된 승강전의 최종 대진표.

사상 최강의 신진팀 대결에 불타오른다.

* * *

최근 들어 겁나 쓸데없는 일상이 하나 생겼다.

한 마디로 공주님 비위 맞추기다.

거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100만원을 받는 게 아니었는데…….'

돌려준다고 하니까 삐진 척을 해온다.

대회 참가 안 하겠다면서 배 째란다.

대체할 사람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저런다.

"야, 나 억지 부리는 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 알지?"

"알지, 아는데. 야! 나랑 영화 한 번 보는 게 시간 아깝냐?"

본심을 들은 이후로 춘래가 돼버렸다.

아니, 달자가 어감이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본래 모습대로 털털해진 달래가 반말로 대꾸한다.

"아깝지. 연습할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데. 놀고 싶으면 소환자의 전장에서 놀면 되잖아. 내가 몇 시간이고 놀아줄게."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새끼를 좋아해 가지고……."

누가 좋아하래?

누가 좋아해달래?

당연히 거기까지는 말 안 한다.

2년이란 긴 세월 동안 잊지 않아준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승강전 최종전 경기까지 여유도 조금 있다.

우리팀이 A조다 보니 경기가 일찍 끝났다.

한 번 정도는 영화 볼 짬을 내줄 만하다.

그런데 단둘이 가기는 좀 그렇다.

만에 하나 스캔들 터지면 어떡해.

그런 문제 이전에 그냥 내가 싫다.

'달래가 옛날 춘자가 아니야.'

자존심 때문에라도 인정 안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춘자가 달라져도 보통 달라진 게 아니다.

방심하다가는 잡아먹힐 것 같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초대했다.

유리야도 함께 영화관에 왔다.

리야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저 소외되는 기분이에요. 잊혀지는 기분이에요. 너무 슬퍼요. 괜히 온 거 같아요."

힘을 준 눈꺼풀이 부들부들 떨린다.

입술은 한껏 당긴 채 볼은 튀어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서 왜 기분이 다운돼 있는지 모르겠다.

"야. 화장실 갔다 와."

"뭐? 갔다 온다는 게 아니라?"

"리야랑 할 말 있으니까 눈치껏 갔다 오라고."

"하, 그러셔."

별말 따지지도 않고 쿨하게 바로 떠난다.

달래를 보내고 심층분석 시간이 이루어진다.

어째서 그녀는 빡쳤는가?

"왜 이런 자리에 저 불러요. 저도 한가한 사람 아니란 말이에요."

"나도 한가한 사람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너 시험 끝나고 방학 했다며!"

"방학 했어도 저 바빠요. 아무튼 바빠요. 바쁠 거에요."

리야가 오해를 좀 하고 있나 보다.

확실히 지난번부터 전조는 있었다.

달래랑 옛날에 잠깐 사귀었다.

그 말 듣더니 할 거 없는 동네 아줌마 마냥 귀를 쫑긋한다.

안 어울려주면 부들부들 부들부들.

'진짜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싫거나, 잘못해서 때리는 게 아니라 그냥 때리고 싶다.

뭔가 때리면 찰질 것 같다.

반응이 우러나올 것 같다.

근데 그럴 수가 없다.

때렸는데 화나서 집에 가기라도 하면 수습이 안된다.

"그냥 간만에 놀자고 부른 거야. 안 본지 오래됐잖아 우리~."

"선배 저 별로 신경 안 쓰잖아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내가 리야를 얼마나 아끼는데."

"정말요……?"

조금만 살갑게 대해줘도 넘어와서 너무 편하다.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를 알 듯한 기분이다.

이용한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아낀다.

친애하는 후배인 리야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저, 저…… 눈치 보인단 말이에요. 두 분 데이트하는데 옆에 끼어 가지고 쭈구리 마냥."

우물쭈물 고민하더니 결국 말을 해온다.

얘가 이런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만큼 속에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저 덤이에요? 두 분 사귀는 거 가려주는 알리바이…… 그런 거에요?"

리야가 말하는 것도 그렇고 얘가 좀 어리버리하다.

하지만 결코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니다.

한국대는 머리가 나쁘면 들어올 수 없는 대학교다.

눈치도 은근히 있다.

민간인 인생 첫 번째 흑역사가 탄생한 날.

리야를 술 먹여서 보내버리고 그 죗값으로 머리 박았을 때.

그때도 자기가 버려졌다며 내 속내의 안 좋은 부분을 알아챘다.

스스로는 여자의 감이라고 우쭐대는데 당연히 그런 건 아니고 드라마를 많이 봤다.

드라마충이다 보니 비슷한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한다.

문제는 너무 쓸데없이 넘겨짚는 감이 있다.

이건 좀 진지하게 대응할 이야기다.

'근데…… 진짜 한 대만 때려보고 싶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자세히 보면 얘가 몸이 자잘하게 떨린다.

추워서가 아니라 열 받아서, 제 성을 못 이겨서.

그렇게 진심으로 떨면 나도 진심으로 놀리고 싶어진다.

이번 만큼은 참고 달랜다.

"설마 그러겠어? 오빠가 리야를 이용만 하는 나쁜 오빠야?"

"요즘은…… 조금 그런 거 같아요."

살짝 찔리기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리야의 안에서 내 평가가 왜 이렇게 낮아졌는지 모르겠다.

이번 기회에 쌓인 오해를 풀고 넘어간다.

"달래랑 안 사귀어. 걔 성격 알잖아? 나는 성격 좋은 여자 좋아해."

"정말요? 몰래 사귀는 거 아니에요?"

"만약 사귀어도 너한테는 안 숨기지. 그리고 지금 나…… 솔직히 여자 생각이 전혀 없어."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다.

지금 막 프로로 데뷔한 셈이다.

정식 데뷔는 아니어도 팬들의 눈이 있다.

나는 진성 게이머기 때문에 게임 관련된 게 무조건 1순위다.

리야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끄덕인다.

부들부들대던 몸도 진정이 된다.

이건 조금 아쉽네.

아무튼 오해가 풀렸다면 다행이긴 한데.

"선배."

"응?"

"저는 성격 어때요? 저 살면서 성격 나쁘다고 들어본 적 없어요!"

그렇겠지.

너를 성격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60억 인류 중에 없어.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보험 가입 거절한 아줌마랑 보증 안 서줘서 서운한 친구 정도겠지.

유리야는 착하기를 넘어서 초식 동물 알파카 수준이다.

"우리 리야가 성격이 참 좋아."

"그쵸! 저 성격 좋아요. 엄청 좋아요."

"근데 너무 띨빵해."

"흐에엥……."

니가 질질 짤 문제가 아니다.

지인이 띨빵하면 얼마나 빡치는지 알아?

그리고 너는 착하기 이전에 여자로 안 보여.

'한 5년쯤 매력을 쌓으면 몰라도.'

여성으로서 페로몬이 개화가 된다.

한 단계 성숙해질 계기가 생긴다!

그런 기적이 벌어지길 내심 바라고는 있다.

친한 여자가 이쁘고 섹시하면 얼마나 좋아.

근데 리야는 결혼해서 애 낳아도 똑같을 거 같다.

워낙 동안이라서 차후 15년은 안 늙을 상이다.

"쓰레기 새끼. 나 자리 피하라 한 주제에 울리고 앉았네."

"울린 거 아니야. 그냥 리액션이야."

"별풍 터졌냐? 리액션은 무슨. 터진 건 니 인성이겠지. 울지 마요 리야씨~."

화장실을 갔다온 달래가 리야를 달래준다.

달래 달래, 눈앞의 광경만 봐도 명확하다.

한 살 어린 달래가 훨씬 더 언니로 보인다.

딱히 진지하게 우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보였다.

"야."

"뭐, 쓰레기 새끼야?"

"지금 당장 리야한테 언니라고 불러."

"어? 나 아직 리야씨랑 안지 얼마 안됐어."

"얼마 안되고 자시고 연장자잖아! 언니라고 부르라고."

한국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나이가 깡패다.

웃어른은 당연히 공경해야지.

웃어른인데 애 취급 받으니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

리야가 은근히 마음에 담는다.

"그리고 옷 좀 신경 써서 입어."

"니 주제에 내 패션에 태클을 걸어? 지는 청바지찍 긴팔찍 코트찍 입고 나온 주제에."

"아니! 노출을 줄이라고 노출을. 여기 별풍선 1만 개 리액션 하는 곳 아니거든? 영화관이거든? 장소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라고 우리 리야처럼."

"별꼴이야 정말. 내가 다시는 파인 옷 입고 오나 봐라."

'아, 그건 좀 곤란한데.'

리야를 띄워준 건 좋았지만 대신 다른 걸 잃었다.

내심 같이 다니면서 뿌듯해 하고 있었다.

시야에 간혹 감사한 게 들어온다.

이제는 못 볼 거라 생각하니 살짝 아쉽다.

'괜찮아. 달래는 눈치가 백단이니까.'

리야를 띄워주기 위해서.

얘가 좀 다운돼 있으니까.

일부러 소리쳤다는 걸 분명 알 거다.

애초에 화장실을 보냈던 게 그 이유니까.

"그리고 내 옆에 있지 마. 위치 바꿔."

"아, 또 왜!"

"나 유리야랑 단둘이 영화 본다?"

"꼴값병 돋았네. 나도 니 옆에 있기 싫거든? 리야 언니랑 놀아야겠다."

덕분인지 이후의 분위기는 한결 풀렸다.

리야와 달래의 사이도 몰라보게 가까워졌다.

둘이서 쑥덕쑥덕 내 뒷담을 깐다는 게 거슬리긴 하지만.

'원래 다 뒷담 까면서 친해지는 거야.'

나름대로 목적의식을 채운 하루였다.

이후 달래의 옷차림은 건전해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손목은……

다른 쪽으로 터트리기로 했습니다

언급 안 한 이유가 있도록!

플롯을 바꾼 건 아니고 첨가를 해봤어요

그 편이 자연스러울 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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