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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악연 -->
SKY T1 S의 정글러 호롱.
뛰어난 피지컬과 아쉬운 판단력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선수다.
물론 모든 선수가 장점과 단점이 각각 있지만 이는 노력 외로도 극복이 가능하다.
1세대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 때와는 다르다.
로드 오브 로드는 무기가 여러가지다.
자신에게 꼭 맞는 무기가 나오면 떡상이 가능하다.
사르륵……!
주위의 풍경과 동화된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녹아든다.
카직트는 시즌 4패치 이후 떠오른 신규 정글러다.
이블퀸, 리심, 거미여왕으로 대표되는 정글 1티어 라인에 당당히 합류했다.
카직트의 특성은 육식 정글 다운 캐리력.
당연히 피지컬을 요구하고, 호롱 선수는 이를 이미 갖추고 있다.
근래 SKY T1 S의 평가가 오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은신 상태로 접근해 내려찍는다.
뾰족하게 솟은 갈고리가 리픈의 목덜미를 잡아뜯지만.
〈실드도 못 뚫습니다. 괜히 들어가서 또 킬만 줬어요.〉
〈성장 차이가 너무 나서 카직트가 그냥 메뚜기입니다. SKY T1 S가 또다시 손해만 보고 물러나네요.〉
피지컬이 좋다고 한들.
일단 딜이 박혀야 뭐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워낙 못 커서 한타 존재감이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고 상대가 만만하나?
-카직트 강타도 못 쓰고 터지네ㅠ.ㅠ
-풀피였는데 왜캐 빨리 죽지?
-레전설이 리픈 원탑이라 콤보 개빠름ㅋㅋ
가장 장기인 피지컬조차 한참 밀린다.
판단력과 성장 차이는 눈에 보이는 수준이다.
방금만 해도 용을 스틸하려던 카직트.
한 턴 버티고, 용 뺏고, 점멸로 빠져 나와야지.
강타를 쓰기도 전에 지옥행 티켓을 끊어줬다.
매 순간 레전설의 존재감이 관중의 눈을 잡아 끈다.
〈확실히 두드러지긴 합니다. 중간 중간 선수석을 비치는 것만으로도 경기장의 공기가 달라지고 있어요.〉
〈외모 평가는 사실 안 하는 게 맞겠지만 너무 아름다우신 데다 경기력도 좋아요!〉
물론 온갖 똥꼬쇼를 해도 근본적인 차이가 역력하다.
롤챔스 이슈화를 위해 중계진들이 열일 중이다.
카메라에 비친 잠깐 달래가 보다 이목을 모은다.
-달래 누님 땀 흘리는 모습도 섹시♡
-하악하악 너무 좋당
-밥도둑 드립 치면 쳐맞나요?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슬슬 모르겠다.
어느 쪽이 아마추어팀인 걸까?
SKY T1 S가 너무 속수무책 무너진다.
클끼리 해설이 뼈아픈 부분을 꼬집는다.
〈SKY T1 S가 본인들 뜻대로 풀리면 정말 강한 팀인데…… 반대로 못 풀렸을 때. 아니, 이 정도로 안 풀리는 경우가 보통 없거든요? 선수들이 정신줄을 반쯤 놓은 분위기입니다.〉
SKY T1 S가 괜히 고평가를 받는 게 아니다.
팀의 색깔도 있고, 경기력도 괜찮다.
그저 자잘한 실수와 운적인 요소.
언젠가 비상할 잠룡이라 평가 받는다.
그런데 비참할 지경이다.
차라리 잠룡일 때가 나았다.
속된 말로 관광을 당하는 중이다.
그 중점적인 이유는 따질 것도 없이 왕린.
〈왕린 선수가 라인전을 웬만하면 안 져요. 아마추어 시절부터 날고 기었던 선수잖아요?〉
〈탑라인의 테이커라는 별명까지 있었죠. 그에 상응하는 활약을 아직 못 보여줘서 아쉬운 선수였는데…… 오늘은 더욱 아쉬워지긴 합니다.〉
탑이라는 라인은 팀운빨을 엄청 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권.
손가락에 드는 랭킹을 장기간 유지했다.
1위 자리도 심심하면 차지했을 정도다.
탑라인의 테이커라는 별명.
테이커가 솔로랭크 랭커 출신이다.
비슷한 조건인데 다른 포지션이네?
기대가 엄청나게 모였다.
더군다나 왕린이다.
카오스 시절 초특급 네임드였다.
프로게이머 데뷔하는 순간 난리 나겠다!
지금 복날 개 맞듯이 난리가 났긴 하다.
챠작, 콰항!
탱커와 딜러간의 라인전.
최상위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 시즌4다.
1코어 기준으로 탱커가 압도한다는 게 정설이다.
네네톤의 초중반이 워낙 강하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균형이 무너진다.
딜템이 하나둘 갖춰지게 되자 갑옷이 뚫린다.
〈이제는 칼이 푹푹 박힙니다. 탱커라고 방심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어요.〉
〈1대1로 두면 손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SKY T1 S는 어떻게든 리픈의 흐름을 끊는 게 게임의 급선무가 됐습니다.〉
심지어 유지력 차이까지 나고 있다.
리픈이 갖추고 있는 배고픈 히드라.
흡혈템이라 미니언을 치면 체력이 찬다.
물론 애매한 아이템이긴 하다.
피를 마시는 칼보다 별로 아닌가?
실제로 대부분 리픈 장인들이 선택을 안 한다.
그런 평가가 있음에도 올렸다.
올린 이유를 똑똑히 보여준다.
궁극기를 켠 네네톤이 갑작스레 달려들었다.
꾸뤄러러럭-!
성립이 안되는 건 어디까지나 딜교환이다.
작정하고 꽝! 부딪히면 안 밀린다.
물론 리픈 입장에서는 빼면 그만이겠지만.
콰흑!
어둠 속에서 나타난 카직트가 발목을 잡는다.
둔화가 묻어나는 패시브 평타.
리픈의 스킬이 빠진 걸 확실히 보고 들어갔다.
아이템도 보다 단단하게 둘렀다.
이전처럼 녹아날 일은 없다는 소리다.
최소 점멸은 빠질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
터엉-!
초죽음이 되어 도망가던 리픈이 뒤를 돌았다.
돌자마자 묵직한 평타와 함께 땅이 울린다.
배고픈 히드라가 가진 액티브.
평타 한 방을 더 넣는 정도다.
고작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쿠훙!
챠락,
거한의 허리끈과 어쌔신의 신발을 갖췄다.
카직트는 나름대로 단단한 셋팅이다.
최소한 원콤은 날 일이지 없겠지.
─FFS 레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순삭 당한다.
중계진들조차 예상을 못했다.
방금 저게 죽을 피였나?
일단 해설은 이어 나가야 한다.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지금 이 타이밍에 정글 죽으면 바론 나가도 이상하지 않거든요?〉
〈그 대형사고를 기폭시킨 시발점이 또 레전설 선수에요! 카직트가 또 바삭하게 튀겨졌어요-!〉
그렇다고 리픈이라도 잡을 수 있나?
네네톤은 뚜벅뚜벅.
리픈은 깡총깡총.
점멸로 빼는 순간 절대 못 쫓아간다.
일련의 상황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리플레이가 당연히 송출된다.
시청자들을 배려해 0.25배속으로 느리게 재생된다.
방송을 진행하는 카메라맨도 궁금해서 그렇게 했다.
-뭔가 엄청 들어가네
-0.25배속인 데도 어지러워
-잘은 모르겠지만…… 세당ㅎ
-평히드라스턴평RQ점화임!
말로 정리를 하면 간단하다.
0.25배속인 만큼 눈치 빠른 시청자는 캐치한다.
근데 보이는 거랑 하는 거랑 당하는 건 각각 다르다.
호롱이 괜히 방심을 했던 게 아니다.
죽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실피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따라가서 몇 대만 더.
그 방심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레전설에게는 그조차도 방심이었다.
〈콤보를 압축해서 터트려버렸어요. 장인 중의 장인, 리픈 원탑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명장면이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광경이다.
김은준 해설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나온다.
리픈의 스킬들은 기본적으로 선딜레이가 있다.
〈히드라 덕분에 콤보가 매끄러워요. 네네톤이 히드라로 W평캔 하는 거랑 비슷한 원리 같습니다.〉
〈1류의 장인은, 최고의 장인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노하우가 결정타를 만들어 냈어요!〉
평캔은 물론이고 모든 스킬에 다 자잘하게 붙어있다.
그래서 못하는 사람이 하면 플레이가 버벅인다.
극에 이른 장인은 두 배속 이상으로 재생된다.
그 극한.
봐버리자 탄성조차 안 나온다.
살짝 불합리함을 느낄 지경이다.
오히려 카직트의 심정이 격하게 공감된다.
크롸라라라-!
그 한 번의 불합리함이, 슈퍼 플레이가 만들어낸 스노우볼.
정글러가 잡혔으니 내어줘야 한다.
네네톤은 체력도, 궁극기도 없어서 합류조차 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리픈은 평타로 잘만 피흡한다.
결국 바론 트라이를 막지 못하고 내주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레전설이라는 한 명의 선수로부터 비롯됐다.
〈레, 전, 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요. 확실히 엄청납니다. 너무 엄청나서 저는 지난 번에 알아보지도 못했어요.〉
바론을 먹고 나면 한 1분쯤 소환자의 전장의 공기가 잔잔해진다.
서로 턴을 소비했기 때문에 한동안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잠깐의 공백기에 눈치 빠른 클끼리가 그 사건을 언급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이니!
-편파해놓고 구차하죠? 역겹죠?
-그래, 젠부샤쓰처럼 개그로 승화시키자!
사정을 알고 있는 일부 팬들.
채팅창에서 ㅋㅋㅋㅋ이 연타된다.
관중석에서도 실소가 터져나온다.
근데 이런 건 사과하는 측의 용기도 받아줘야 한다.
〈의도가 어쨌던 안 좋게 받아들였다면 제 잘못이죠 실제로 이전에 솔로랭크에서 감정 싸움이 오간 적도 있었어요.〉
〈아~~ 그래서~! 지난 레전설 선수의 인터뷰가 살짝 고양됐던 게 그래서였군요!〉
진용준 캐스터가 몰랐다는 듯 받아친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있는 순간.
방송인인 이상 민심에는 민감해야 한다.
지금 민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는 따질 것도 없이 자명하다.
〈옛날에는 저도 레전설 선수도 젊다 보니 선을 못 지켰던 것 같아요. 묵은 오해는 청산하고, 나중에 다시 솔로랭크에서 만난다면 그때는 재밌게 게임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 그래도 유리한 상황.
이미 무너진 상대의 멘탈.
파프리카 프릭스가 바론을 챙기며 승기를 굳힌다.
오해를 청산하고자 하는 클끼리의 마음도 진심이다.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는 듯하였으나.
* * *
"아~ 그런 일이 있었나요?"
본의 아니게 너무 잘했다.
살면서 못한 적이 없어서 미안하다.
이번에도 또 MVP를 수상하고 말았다.
"레전설 선수도 보고 싶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선수, 이를 테면 팀의 서포터이신 달래 선수도 나왔으면 좋겠다~. 저는 아니고, 일부 팬들이 바라더라고요."
그 일부 팬에 무조건 속할 것 같은 사람이다.
오프게임넷 공무원으로서 가장 흥행을 바라고 있을 진용준 캐스터가 구박을 한다.
3세트까지 갔으면 달래 MVP 몰아줬을 각이다.
조별 리그는 무조건 2세트.
다전제와는 규칙이 다르다.
1세트 승리팀인 SKY T1 S의 인터뷰가 끝나고 이번에는 내 차례다.
달래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공감한다.
인터넷에서도 하도 난리라고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안 보는 게 좋은데. 걔는 입 다물고 있을 때가 가장 나요."
"두 분이 허물 없이 친한 사이신가요?"
"불…… 아니, 죽마고우입니다. 친하다면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죠."
하마터면 부적절한 용어 사용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뻔했다.
안 그래도 지난 인터뷰때 폭탄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이 오간 모양이다.
클끼리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고 하더라?
"솔직히 별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원래 상위권 랭커들이 자존심이 강하잖아요."
"소소한 오해도 쌓이면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거든요! 그런 오해를 툭 터놓고 푸는 게 한국의 사회 정 아니겠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한국인의 정이 그래서 좋은 부분이 있죠."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진용준 캐스터의 말이라서 괜히 맞장구 쳐주는 게 아니다.
듣기로 외국 사회는 워낙 개인주의라 속마음을 못 푼다고 한다.
서운하다고 말하면 진짜로 사이가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정(情).
올드 게이머로서의 공감대.
과거의 일로 아옹거리는 건 찌질하다.
하지만 이 하나 만큼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근데 한 가지만 정정해도 될까요?"
"한 가지……요? 정말 한 가지 만이죠? 두 가지 이상은 곤란하거든요."
"저번처럼 폭탄 발언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이에요."
전과가 있다 보니 안 믿는 눈치다.
정말로 별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한 가지가 거슬려서 정정하고 싶다.
"솔로랭크에서 저와 클끼리 해설님이 만날 일은 없어요. 다른 뜻은 아니고 그냥 알아두셨으면 해서."
재밌는 게임을 하는 것도 만났을 때의 이야기지.
마스터 티어도 못 찍는 양반이랑 어떻게 만나.
내가 고의 트롤 한 30판은 해야 만날 거 같은데.
그나마 챌린저밖에 안돼서 30판이다.
옛날 같이 1위였으면 50판을 던져도 안됐다.
지난 인터뷰 이상으로 또다시 입방아에 오르고 만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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