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129화 (129/443)

###129

<-- 끝없는 악연 -->

롤이라는 게임의 평가 잣대는 단순하게 놓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자신 있는 구도가 다르다.

이를 테면 원딜러.

나만 어떻게든 성장 시켜.

한타 가면 프리딜 넣어서 캐리할게!

이런 스타일의 유저가 있는 반면.

나 그냥 버려두고 위에서 이득 봐.

난 CS 받아먹으면서 최소한의 성장만 할게.

케어를 안 받고 한타에서 1인분 이상 해낸다.

절대 어느 쪽이 정답이 아니다.

프로팀마다, 메타마다, 보다 효율적인 상황이 있을 뿐.

현재 진행되는 경기에서 SKY T1 S의 에이스 왕린은 전자다.

〈각팀마다 성향이 있고, 승리 공식이라는 게 있습니다. SKY T1 S는 탑 캐리가 중심이 되는 팀이에요.〉

김은준 해설이 짤막하게 정리한다.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흔하지 않아서다.

원딜 캐리 조합은 많아도, 탑 캐리는 기형적이다.

대부분의 팀에서 탑은 버스 타는 라인.

한타로 가면 탑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Y T1 S의 색깔은 명료하다.

〈밴픽부터 탑에게 투자를 많이 해요. 갱도 많이 가고, 라인도 몰아주고. 그만큼 왕린 선수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줘요.〉

플레이메이커(Playmaker).

플레이메이커는 팀 전체의 플레이를 조율하고 만들어가는 선수이다.

일반적으로는 축구 용어이나 E-스포츠라고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SKY T1 S는 탑의 영향력이 낙수 효과를 일으킨다.

탑이 세니까 스플릿 주도권을 가진다.

내려가면 간단히 용을 챙길 수 있다.

탑 중심의 운영이 SKY T1 S라는 팀의 색깔이다.

그런데 그 색깔.

때깔도 때깔이지만 맛이 어떤지도 중요하다.

제육볶음 빨갛게 볶은 주제에 하나도 안 매콤하면 먹으면서 살짝 빡친다.

흘러가는 게임의 흐름이 조금씩 어긋난다.

쿠러렁!

왕린의 시그니처 픽인 네네톤.

일반적으로 캐리형 챔피언이 아니다.

하지만 왕린이 잡았을 때에 한해 존재감이 급변한다.

레벨과 아이템 격차를 바탕으로 찍어 누른다.

우악스럽게 다이브 해서 스노우볼을 굴린다.

그것이 왕린이 자랑하는 탑캐리의 공식이다.

이를 해내기 위해 투자를 받는다.

초반 격차를 보다 수월하게 벌린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네네톤이 하나도 맵지가 않아요. 앞서 김은준 해설이 수차례 강조하신 색깔이 전혀 살아나지 못합니다.〉

클끼리 해설이 정확하게 요점을 꼬집는다.

언제나 그러했듯 왕린에게 몰아줬다.

몰아줬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

〈정글이 탑에서 벌써 크게 두 번, 작게는 네 번이나 시팅을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공만 찼어요.〉

〈투자를 했으면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량주인 줄 알았는데 이득을 하나도 못 보고 있는 셈이에요!〉

진용준 캐스터의 말대로 이야기가 다르다.

아니, 몰아주면 캐리한다며?

첫 단추가 어긋난 건 바로 솔킬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2렙 솔킬을 당했다.

너무 급작스러워 카메라도 캐치를 못했다.

리플레이를 통해 송출된 정신병 걸린 킬각.

-빛전설 대전설ㄷㄷ

-평캔 너무 자연스럽게 다다닥! 박힌다

-프로인데 평캔은 기본이지

-기본 아닌데? 프로도 아닌데?

난전 속의 평캔은 장인들도 소화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의 이름값을 생각해야 한다.

매서운 킬각과 더불어 야무지게 들어간 딜링.

레전설의 리픈이 솔로킬로 선취점을 가져왔다.

카직트가 백업을 와 만회하긴 했으나 죽은 목숨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

SKY T1 S가 자랑하는 색깔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쿠러렁!

그 색깔이 두드러지기 위해서는 네네톤이 이겨야 한다.

필사적으로 모은 분노가 소비되며 휘둘러진다.

네네톤의 Q스킬 천참만륙.

이를 너무나 가볍게 흘려넘긴다.

못 맞힌 게 아니라 안 맞은 거다.

리픈의 거리 조절이 워낙 절묘하다.

그러면서 자기가 넣을 건 다 넣는다.

쿠훙!

3타 이후 이어지는 스턴.

기절한 네네톤은 샌드백이다.

리픈이 딜교환에서 이득을 보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갑갑합니다! 갱을 받았으니 라인전을 이겨야 되는데……. 왜! 대체 왜! 저 리픈을 이길 수가 없는 거야?〉

솔직하게 자존심이 상한다.

솔킬?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가끔은 당한다.

원래 솔킬이라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동반한다.

자신이 따려고 하는 만큼 자신도 따인다.

실력이란 이름의 부가 스탯이 이를 보정해준다.

그 부가 스탯에서 현저한 차이가 보이고 있다.

적어도 현재 진행되는 게임.

커뮤니티들과 플랫폼 채팅창은 진작에 터졌다.

-네네톤 들고 리픈이랑 반반ㅋㅋㅋ

-솔킬은 좀 역겨웠다ㅎ

-갱 받고도 이 정도면 대체……

물론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팬들은 원래 조급하다.

인터넷이라는 게 으레 그렇다.

그 사실을, 그 반응을 선수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꾸뤄러럭-!

프로게이머도 사람이다.

팬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당연히 궁금하고 당연히 찾아본다.

매 순간 자신의 플레이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분위기를 반드시 반전시켜야 한다.

네네톤이 궁극기를 켜며 다이브.

거대한 몸을 내세워 포탑에 뛰어든다.

빅 웨이브를 몰아넣은 게 아니다.

자칫 무리가 될 수 있는 승부수다.

왕린이란 선수의 장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정글러가 보는 갱각이 아닌, 탑라이너가 요구하는 갱각이다.

콜하는 타이밍이 보다 정확하다.

상대의 허를 찌를 수가 있다.

사르륵…!

하물며 카직트.

순간적인 은신 갱킹은 상대로 하여금 대처를 못하게 만든다.

찰나의 빈틈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SKY T1 S의 정글러, 호롱의 카직트가 주위의 풍경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콰라랑!

그리고 현실에서도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버린 참사.

카직트의 시체 위에 핑크 와드가 박혀있다.

그 희생으로 다이브는 결과적인 성공을 거뒀으나.

〈너무 오~래 지체됐어요! 파프리카 프릭스라고 눈 뜨고 구경하는 거 아니거든요? 저라딧의 거미여왕이 네네톤을 마무리합니다!〉

본래 계획은 속전속결이었다.

빠르게 잡고 겸사겸사 포탑까지 민다.

상대 정글이 온다면 추가 다이브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맥이 뚝-!

카직트가 죽음으로서 끊겼다.

레전설의 슈퍼 플레이가 또다시 이변을 만들어낸다.

이윽고 송출되는 리플레이 화면.

슬로우 화면으로 보자 이해가 된다.

김은준 해설이 이해를 북돋아준다.

〈이건…… 예상을 하고 있었네요. 네네톤이 왜 지금 궁을 켜지?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박혔습니다.〉

현재 핑크 와드는 은신 챔피언을 밝혀준다.

물론 생으로 박기는 아깝다.

왜? 가격이 비싸니까.

일련의 판단에 망설임이 없었다.

카직트가 행동하기 전에 조진다.

은신 상태에서 날아들다 날개가 꺾였다.

시야에 보이자마자 점멸 스턴.

레전설의 리픈이 풀콤보를 터트렸다.

레벨이 낮은 카직트는 사르르르 녹아났다.

〈점화까지 들어가며 바삭~하게 구워졌어요! 가을철 메뚜기 신세가 된 거 아닙니까?〉

나이가 지긋한 진용준 캐스터 세대가 아니면 모를 수 있다.

가을철 논에는 메뚜기들이 노다닌다.

기름 둘러서 볶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보기에는 그로테스크 해도 한 번 먹으면 은근히 손이 간다.

그런 고소함이 사무치는 메뚜기 튀김이 돼버렸다.

날카로웠던 갱킹이 갱승으로 돌아갔다.

파프리카 프릭스의 명백한 이득.

〈심지어 SKY T1 S는 탑만 손해본 게 아닙니다. 정글러가 자꾸 탑만 가니까 다른 라인이 수월하게 압박을 못해요.〉

〈CS 차이가 다소 있긴 해도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죠.〉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이 이전 세트와는 딴판이다.

레전설이라는 에이스 한 명이 만들어내는 기적.

믿기지 않게도 파프리카 프릭스가 게임을 리드한다.

물론 게임의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당장 글로벌 골드만 해도 별반 차이가 안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에는 기세라는 게 있다.

〈파프리카 프릭스가 고삐를 잡았습니다. 그 고삐를 잡은 선수는 레전설이고요. 게임이 정말……흥미진진 팽팽하게 됐네요.〉

김은준 해설은 상당히 냉철한 성격이다.

예능과 다큐 중에 다큐 쪽으로 좀 많이 기운다.

그런 만큼 편파와 포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십중팔구는 정말이다.

〈물론 아직 이겼다는 건 아닙니다. 아마추어 팀인 만큼 운영도 불안한 요소가 있어요. 그럼에도 놀라운 선전이 맞습니다.〉

〈놀랍죠! SKY T1 S! 롤드컵 우승팀인 SKY T1 K의 형제팀 아니겠습니까? 그런 강팀을 상대로 파프리카 프릭스가 전혀 밀리지를 않아요!〉

진용준 캐스터가 목청을 높이자 관중석에서 환호가 쏟아진다.

그 말이 맞말이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절대 다수가 파프리카 프릭스, 엄밀히 말해서는 달래의 팬이다.

조용한 이변의 소용돌이가 점점 커간다.

* * *

SKY T1 S는 탑 스노우볼이 중심이 되는 팀이다.

구태여 왕린이 아니더라도 알고 있다.

잠수 탔던 1주일간 각팀의 데이터를 살펴봤다.

'SKY T1 S를 이기기 위해서는 일단 탑이 무너지면 안돼.'

그 전제 조건을 말끔하게 성공시켰다.

직접 해버렸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안타깝게도 찍어 누르는 지경까지는 가지 못했다.

쿠러렁!

네네톤이 붉은 칼이 휘둘러진다.

실피가 남은 미니언들이 이내 타버린다.

방어 아이템인 불타는 망토의 효과다.

'왕린이 나이가 들더니 성격이 죽었나 보네.'

옛날 같았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히다가 진짜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딜템을 올리는 걸 멈추더니 방템으로 선회했다.

단단한 탓에 솔킬을 내는 건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다.

SKY T1 S라는 팀이 가진 색깔.

매콤해야 할 제육볶음이 전혀 매콤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육볶음은 웬만하면 맛있다.

'웬만하면 실패를 할 수가 없는 요리지.'

자취를 하면 최소 한 번은 만들어보는 요리다.

간단한데 맛있다.

물론 귀찮아서 나중 가면 안 한다.

아무튼 간에 절반의 성공을 더 거둬야 한다.

'딱히 어렵지는 않겠지만.'

직접 해보지 않아서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

근데 나라면 충분히 해내고도 남는다.

SKY T1 S의 근본적인 약점.

바로 운영이다.

게임을 이끌어나가는 뒷심이다.

카오스 시절에도 비슷한 문제가 야기됐다.

'나이는 많을지도 몰라. 조금은 발전했을 수도 있어. 근데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어려.'

자신이 이기는 게임밖에 할 줄 모른다.

불리한 게임을 하는 걸 질색한다.

정말 애 같은 게임만 하는 녀석이다.

심지어 이기기 위해 팀의 투자까지 받는다.

망하면 혼자 망하는 게 아니다.

왕린이 지는 순간 팀 전체가 훅-! 기울어버린다.

싸캉!

적 정글러 카직트의 갈고리가 두꺼비를 내려친다.

메카 카직트라는 엄청 강해 보이는 스킨.

외관은 화려하지만 속 빈 강정이다.

탑을 주구장창 왔으니 당연하다.

그것도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왕린이 자꾸 불러서 억지로 따랐을 것이다.

그만큼 레벨링과 아이템이 뒤쳐진다.

심지어 갱승까지 낸 탓에 성장이 멈췄다.

사정이 딱하나 나도 게임을 이겨야 한다.

콰황!

리픈의 3타는 벽을 넘을 수 있다.

넘으면서 자연스럽게 빼드는 대검.

궁극기에 의해 스킬 범위가 보다 넓어진다.

쿠훙!

공중에 뜬 카직트는 스턴도 피할 수 없다.

풀콤보랄 것도 없이 가볍게 쓸어준다.

그것만으로도 카직트는 찢겨나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마치 A4용지를 세로로 쭉-!

극심한 성장 격차로 인해 종잇장이다.

이제부터 노리는 건 네네톤이 아닌 팀원들이다.

딱히 운영이랄 것도 없다.

상대가 알아서 빈틈을 줄 것이다.

왕린에게 몰아준 여파로 다른 팀원들은 허점 투성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너희는 프로팀이 아니야.'

승강전 상대팀들의 전력을 조사했을 때.

SKY T1 S는 분명 첫 손가락에 꼽혔다.

이건 내 판단이 아니라 대중의 잣대다.

지금까지 내온 성적.

선수들이 가진 잠재력.

기타 등등 여건을 고려했을 때 이견이 없다.

'어려운 상대는 맞지. 약점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SKY T1 S는 운영이 미숙하다.

미숙한 원인은 내 눈에는 보인다.

아마 자신들 스스로는 안 보일 것이다.

딱히 가르쳐줄 의리는 없다.

그럴 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일단 1스택.

가볍게 적립하며 스노우볼을 굴린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