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126화 (126/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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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악연 -->

SKY T1 S.

섬머 시즌, 롤드컵, 윈터 시즌의 우승팀인 SKY T1 K의 형제팀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아쉽다.

아쉬운 모습만 보여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알아야 한다.

경기력이 들쑥날쑥하다.

잘할 때는 어지간한 상위권팀 못지 않다.

그런데 못할 때는 정말 같은 팀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말하자면 2014년의 대퍼팀.

강자멸시, 약자존중를 그대로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선수들 하나하나가 과연 대퍼와도 같은 특징을 지녔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SKY T1 S, 언제든 치고 나갈 저력이 있습니다. 솔로랭크 랭킹도 항상 상위권이고, 개별적인 경기력은 준수해요.〉

경기 시작에 앞서 김은준 해설이 SKY T1 S라는 팀에 대한 간단하게 설명한다.

일련의 이야기는 절대 과장이나 포장이 아니다.

E-스포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통설로 통한다.

정말 언제 갑자기 확! 떠도 이상하지 않다.

근데 언제가 조금 오래 안 오는 거 같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솔직히 윈터 시즌 때는 대진운이 너무 안 좋았잖아요?〉

〈아이러니한 일이죠. 여우 위에 늑대 있고, 늑대 위에 호랑이 있는 법인데 팀에 호랑이가 두 마리였으니까요.〉

클끼리 해설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SKY T1 K와 불밤.

가히 우승 후보로 손 꼽히는 팀들이다.

그런 강호들 사이에서 충분히 선전했다.

재경기까지 간 접전 끝에 조 3위.

안타깝게 승강전 신세를 지게 됐다.

승강전 첫 경기, 페닉스 썬더를 무참하게 짓밟으며 지난 윈터 시즌이 그저 불운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근데 이에 맞서는 팀도 만만치가 않아요. 오히려 분석이 안됐다는 측면에서 가산점 여지가 있습니다.〉

파프리카 프릭스.

라인업부터가 워낙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단 여캠이 꼈다는 것 자체가 전대미문 말도 안된다.

심지어 멤버 하나하나가 인지도가 자명한 인기BJ들이다.

〈게임을 거의 혼자 하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프로 리그에서 그런 광경이 보통 안 나와요! 근데 역시, 구관이 명관!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화룡점정, 레전설이라는 역대급 신인을 끼고 있다.

진용준 캐스터의 정리대로 멱살 캐리를 해버렸다.

아직 더 지켜볼 여지는 있으나 적어도 이름값은 소화했다.

최근 롤 커뮤니티 등에서 엄청나게 말이 많다.

〈참고로 그 레전설 선수는 첫 세트 출전을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지각을 한 건 아니라고 하죠?〉

〈예…… 뭐,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해선 안될 테니까요.〉

-클끼리ㅋㅋㅋㅋㅋ

-본인도 찔리죠?

-둘이 옛날에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말을 하는 입장에서도 은근히 찔린다.

지난 인터뷰 이후 다소의 소란이 야기됐다.

당사자들의 합의로 마무리는 되었으나 입방아에 오르는 건 불가피하다.

아무튼 영문은 몰라도 그 레전설이 미출전.

대신 팀의 여섯 번째 멤버인 도인디가 나왔다.

이름값은 밀리지 몰라도 확실하게 보증된 카드다.

〈도인디 선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과장 조금 섞어서 아마추어 사대천왕! 프로급 아마추어라고 해도 될 만한 선수에요.〉

〈허어, 그 정도인가요?〉

〈챌린저 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리고 있고, 플레이도 굉장히 안정적이며 무리를 안 해서 E-스포츠 관계자들의 주목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김은준 해설답게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도 가지고 있다.

솔로랭크를 주시하는 만큼 눈에 들어온다.

도인디는 그중에서도 유별난 인재다.

〈레전설 선수를 대신해서 나올 만한 기량이 있는 선수라는 소리네요! 양팀의 첫 번째 세트 기대가 됩니다. 경기~~~! 시작합니다!〉

* * *

처음 BJ대표팀을 짜던 당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도인디였다.

실력적인 면에서 이 이상의 인재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협상이 오갔다.

'역시나였지.'

느꼈던 대로 이성적인 타입이다.

감정적으로 거절을 하진 않았다.

고민을 해본다고 하더니 다음날 조건을 제시해왔다.

최소 과반수 이상의 경기를 미드에서 뛰게 해달라.

자신이 대회에 나가는 목적.

경기력을 과시해서 몸값을 올리기 위함이다.

저 조건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대회에 나갈 이유가 사라진다.

일리가 있는 말이고 반박할 말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를 하기에는 아까운 카드다.

파프리카TV에 도인디 이상의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발탁했고, 엔트리도 6인으로 짰잖아.'

6인 엔트리를 짠 이유는 혹시 모를 탈주, 기타 변수를 고려했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건 팀원들을 유도리 있게 쓰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 되었지만 그게 꼭 경기를 이긴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군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첫 번째 세트.

전체적인 경기의 구도가 밀리고 있다.

벤치에서 아군 화면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골드가 표시돼있진 않지만.

'아마 3~4천 쯤 뒤쳐지고 있을 거야.'

잠수 타고 있던 1주일 동안 팀 게임에 대해 공부했다.

조금이나마 코치의 시선을 가졌다는 소리다.

현재 게임의 상황이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가장 위험한 것은 탑라인.

김재슥이 시그니처 픽인 말카림을 들고도 힘을 못 쓴다.

SKY T1 S의 탑라이너 왕린에게 아예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봇라인도 상황이 썩 웃어주지 않는다.

달래가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프로 리그에서 통용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다.

과거에 잘했다고는 하나 1년 이상의 공백.

그렇다고 인성제로가 이를 커버쳐줄 수 있는 실력이냐?

그리고 상대가 성장을 방관해줄 만큼 만만한 상대인가?

퀴리릭!

헤이클린의 대탄환이 절묘한 각도로 쏘아진다.

라인을 쭉쭉 밀며 동시에 견제.

키링~♪

서포터인 쏘냐도 숨 쉴 틈을 안 준다.

SKY T1 S의 봇듀오 황금수염과 우르프.

가히 교과서적인 플레이로 아군을 압박하고 있다.

달래의 광우스타가 견제를 맞고 체력이 한 움큼 뜯겨나갔다.

동시에 부스 바깥 관중석 쪽에서 탄성이 들려온다.

물소 새끼들 진짜 감정이입 오지네.

으아아아~~~

경기 중엔 몰랐는데 이런 느낌이었구나?

달래가 조금이라도 안타까운 일을 당할 때마다 관중석에 파도가 친다.

지난 경기 이상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왔다고 들었다.

'재주는 내가 뛰고 아오…….'

아니다.

우리 달래 참하게 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많이 걱정했던 지인의 입장에서 한시름 놓았다.

근데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전체적인 라인전 기량이 전부 밀려.'

그나마 한 라인이 제역할을 해주고 있긴 하다.

도인디가 젖먹던 힘을 짜내 게임을 지탱한다.

하지만 이조차 큰 그림으로 보면 좋지 않다.

안다고 해도 말해줄 수가 없다.

경기는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다.

팀원들을 믿고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 * *

프로게임단.

그것도 상위권에 랭크된.

경기를 결코 대충 준비하는 일이 없다.

하물며 SKY T1이다.

형제팀은 이미 세계 최고의 팀으로 발돋움했다.

이를 뒷받침 하는 코치진의 수준도 세계 최고라는 소리다.

그러면 혹시 선수가 부족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건 아닐까?

흔히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쿠러렁!

네네톤이 탑라인을 거세게 압박한다.

SKY T1 S의 탑라이너 왕린.

아마추어, 아니 그 이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게이머다.

카오스 시절 왕좌에 가장 가까웠던 네임드.

레전설의 대항마라고 손 꼽히던 한 명이다.

그의 화려한 전적을 믿고 감독인 박다균이 영입했다.

아니, 실상은 거의 무릎 꿇다시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박다균은 왕린의 사생팬이었다.

SKY T1이라는 게임단 자체가 박다균이 신뢰하는 게이머들을 모아서 만든 일종의 드림팀이다.

꾸드득!

팀의 에이스로서 값어치를 톡톡히 해낸다.

붉게 물든 네네톤이 칼이 말카림을 물어뜯었다.

스턴이 연계되며 순간적으로 들어가는 폭딜!

쿠워어어어-!

점화와 함께 들어간 티아매트의 평캔이 결정타였다.

말카림이 부랴부랴 궁극기로 도망치지만 늦었다.

유체이탈을 하듯 본체는 죽고 유령만이 미끄러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SKY T1 왕린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라인전 능력에 기반된 미칠 듯한 스노우볼링.

탑을 초토화시키며 경기를 반쯤 가져오는데 이른다.

나머지 반은 반대쪽 봇라인에서 마저 가져온다.

쿠화악!

시즌4에 들어 1티어 정글러에 합류한 챔피언이다.

은신 상태에서 날아든 카직트가 마무리한다.

누적된 견제에 걸레짝이 된 이즈레알이 죽는다.

〈적 위치 확인.〉

광우스타가 살아남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간당간당하다.

간당간당한 적의 숨통을 끊기에 헤이클린의 궁극기는 안성맞춤이다.

〈갱 괜찮긴 했는데 내가 더블 킬 못 먹어서 좀 아쉽다?〉

〈그게…… 각이 애매하길래 제가 그냥 먹었어요.〉

〈그래? 그래도 웬만하면 양보해! 내가 원딜이잖아~.〉

팀의 원딜러를 맡고 있는 황금수염이 아쉽다는 듯 쩝쩝 입맛을 다신다.

발언권이 없는 정글러 호롱은 수긍해야 했다.

아직 조리돌림은 끝나지 않았다.

〈호롱아, 왜 탑 갱 안 와?〉

〈저 봇라인 갔었어요. 다이브 각이 나와서.〉

〈아니, 무조건 탑을 먼저 와야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왕린은 카오스 시절부터 안하무인,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프로게이머가 된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팀의 감독이 자신의 사생팬이었으니 기세가 더욱 등등하다.

심지어 나이 또한 아득히 많은 30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호롱은 감히 말대꾸도 못한다.

결국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뒷바라지 하는 신세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구른 만큼 보람도 있다.

너무 강압적이라 가끔은 짜증이 나도 근본은 좋은 형들이다.

실력 또한 보고 배울 점이 많다.

현재 진행되는 게임은 정글러인 호롱이 딱히 한 것이 없다.

굳이 찾자면 이기고 있는 라인에 한 스푼.

수저를 얹는 것만으로도 무너진다.

이윽고 35분이 지나지 않아 이어졌다.

바론 한타를 대승하고 억제탑을 민다.

상대가 무리하게 걸어온 교전은 넥서스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정글이 탑갱만 찔러줬어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는데……."

"형, 저 탑만 다섯 번 갔는데요?"

"열 번 갔으면 20분에 억제탑 밀고 30분에 끝냈어. 니가 운영을 알아?"

경기가 끝나고 피드백이 오간다.

압도적으로 이겼음에도 불만이 많다.

왕린은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탑신병자 중에서도 조금 심각한 부류.

하지만 투자를 받으면 그만큼 보답을 한다.

인성과 실력이 반비례한다는 롤판 불변의 법칙 산증인이다.

그런데 그 산증인.

당연하게도 왕린 혼자만이 아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정말 아이러니하다.

왕린이 가장 신경 쓰던, 다시는 보기 싫던 존재가 상대팀에 있었다.

"레전설은 다음 세트에도 안 나올란가요?"

"안 나온다면 왕린형한테 쫀 거지."

"어, 왜요? 레전설은 미드 아니에요?"

호롱이 순진무구하게 묻는다.

황금수염이 피식 웃으며 쳐다본다.

사정을 모른다면 나올 수 있는 의문이다.

"옛날에 말이야 왕린형이……."

"아서."

"왜요? 말하지 마요?"

"까불지 말고 다음 세트나 준비해라."

"아~ 준비할 게 뭐가 있다고…… 아무튼 알겠습니다."

껄렁껄렁한 황금수염도 왕린에게는 공손하다.

서른 살을 넘는 연장자이며 감독이 아끼기까지 하니 발언권이 독보적이다.

SKY T1 S는 명실살부 왕린이 중심이 되는 팀이다.

운영과 밴픽의 많은 부분을 왕린 하나에 할애한다.

그리고 왕린은 받은 만큼 기대에 부응한다.

SKY T1 S의 승리에는 항상 왕린의 캐리가 뒤따른다.

그런 왕린에게 과거 치욕을 안겨줬던 상대.

당연하게도 잊었을 리 없고, 신경도 쓰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장애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니가 군대에서 삽질하고 있는 동안 나는 죽을 둥 살 둥 굴렀어.'

기껏해야 기대 받는 신인.

그것이 현재 녀석이 가지는 위치다.

진작에 프로로 데뷔해 자리 잡은 자신과는 위치가 다르다.

고요하게 왕린의 감정이 불타오르던 그때.

"상대팀에서 엔트리를 변경했습니다."

코치의 보고를 들은 왕린의 인상이 구겨졌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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