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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124화 (12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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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 이런저런 구설수에 올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까놓고 말해 어쩔 수가 없었다.

'잘하면, 너무 잘하면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져.'

별것도 아닌 일이 부풀려진다거나.

혹은 어처구니 없는 억측을 낳는다거나.

큰 틀에서 보면 연예인 스캔들이랑 비슷하다.

롤 커뮤니티에서 천상계 이야기.

거의 단골 소재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가?

당시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고 나는 그 희생양이다.

"인터넷에 나도는 소문들이 전부 유언비어라는 소리시죠?"

"단언컨대 전 살면서 욕설과 남탓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정말."

MVP를 수상한 선수는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귀찮지만 의무라고 하니 수락했다.

개인적으로 억울했던 부분을 이 기회에 털어놓기로 했다.

'나는 진짜 억울해.'

약한 개가 크게 짖는 법이다.

욕 같은 걸 하면 도리어 약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절대 비속어를 쓰지 않는다.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약해 보이잖아.

모 사신 만화의 악역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제가 그런 건 있습니다. 하도 솔직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오해를 낳곤 해요."

"확실히 그런 타입의 사람들이 있죠.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들이 오해이기를 저도 바라겠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시는 분이다.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내심 존경했다.

오프게임넷의 공무원, E-스포츠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불리는 진용준 캐스터.

인터뷰를 하게 된 덕에 만나 봬서 영광이다.

"근데 시청자분들은 아직 궁금해 하실 수도 있어요. 레전설이라고 하면 얼마 전 걸즈데이 파동이 진짜로 크게 일어났었잖아요?"

"……"

잘 나가다 핀포인트를 찔러온다.

이걸 물어보기 위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살짝 찔리기는 한데 그 사건도 엄밀히 따지면 무죄다.

"경기가 잘 안 풀리다 보니 강압적으로 오더를 한 감이 있습니다. 당연히 비속어는 사용하진 않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사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프로로 데뷔를 하기로 한 이상 다소의 오해는 풀고 넘어간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마음에 안 들어도 고개 숙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걸즈데이 멤버분들과 팬분들도 분명 마음이 조금은 풀어질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진용준 캐스터의 물음에 관중들이 환호로 대답한다.

생각보다 경기장 분위기가 좋다.

나도 슬슬 참을 만큼 참았다.

이미지 관리는 이쯤이면 됐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도 될까요?"

"레전설의 귀환을 기다리는 팬분들이 엄~청 많다고 들었어요! 한 마디든, 두 마디든 분명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속시원히 해주세요!"

현재 경기장의 상황이 어떠한지.

1세트 끝나고 나서 대충 들었다.

물소들이 한가득이라고 하더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라 그러려니 한다.

지들이 원하는 달래가 안 나오니 절반 이상이 빠졌다.

그럼에도 남은 관중들의 분위기가 좋다.

'그래, 레전설 안 죽었지.'

저 중의 일부는 나를 보러 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뿌듯하다.

그 팬들을 실망시켜서야 안될 노릇이다.

"제가 경기 끝나고 들은 이야기인데요."

"예."

"클끼리 해설이 저를 마음에 안 들어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랬나요? 저는 까맣게 몰랐는데……."

진용준 캐스터의 어투에 명백히 당황이 섞였다.

10년 경력의 캐스터도 사람은 사람인 모양이다.

딱히 탓을 하려는 건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탓이 아니라 주제 파악이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이해는 해요. 근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클끼리씨는 그러면 안되죠."

백보 양보해서 실수로 씨풋 새끼라고 했다고 치자.

씨풋 새끼는 국민욕이라서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간나새끼는 같은 국민욕이라도 저쪽 국민욕이다.

"최근에 터졌으면 평생 명예 인민으로 살았을 대사건이잖아요? 아옹거렸던 과거는 훌훌 털어내고 앞으로는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찍히는 입장이지 보는 입장이 아니라 방송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방송사고가 터진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내 할 말은 무조건 한다.

그게 레전설이고 그게 나다.

* * *

롤챔스는 기본적으로 생방송이다.

당연하게도 필터링 없이 송출이 된다.

그런 만큼 이따금 사건/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상대팀의 픽을 보고 미췬놈인데? 격한 반응이 나온다거나.

선수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건 그 실수가 선을 넘었나, 넘지 않았나다.

갑작스런 폭탄 발언에 서둘러 정리된 인터뷰.

설마설마 했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채팅창에서 실시간으로 반응이 흘러나온다.

-레전설 이 새끼 결국 안 참네ㅋㅋ

-개인 방송도 아니고 인터뷰에서……

-클끼리 명예 인민행ㅋㅋ

-레전설 얘는 진짜 혼모노 미친놈이야. 건들면 안돼

워낙 행보에 물불을 안 가린다.

에이, 그래도 방송인데 설마.

옛날부터 도전장을 던져오면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레전설의 성격을 알고 있는 팬들은 그러면 그렇지.

모르는 팬들은 이거 정말 대형 사고 터진 거 아니야?

사건의 시시비비가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뜨겁게 달군다.

─솔직히 클끼리 사건 너무 무난하게 덮이긴 했지

간나새끼 사건 최근에 터졌으면 진짜……

프로 망신에, 국제 망신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중국애들이 떼거지로 항의 해왔을 듯

└중국애들이면 그 이상을 하고도 남는다

└그때는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 아니었나?

글쓴이-롤판이 워낙 작았던 때라ㅋ

└핵놀이 하던 김정은만 방끗

2012년 롤드컵 당시 벌어진 참사다.

경기 도중 상대팀을 향해 북한어로 격한 욕설.

그 부끄러운 장면이 전세계에 송출되며 국제적 망신을 낳았다.

하지만 사전에 송출 협의가 되지 않았다는 점.

당시 롤판이 성장 전이라 분위기가 자유로웠다는 점.

여자처자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떠올릴수록 살벌했던 사건이다.

─요즘은 4Chinese can't win만 해도 징계에 벌금인데

옛날에 비하면 롤판 진짜 선비화되긴 했다

물론 지금이 틀리다는 소리는 아님

└옛날엔 너무 자유로웠어……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그립다는 건 과거뽕임

과거에는 정말 별의별 사건이 다 있었다.

지금 시점으로는 아예 상상조차 안되는 수준.

핵폭탄이 다반사다 보니 클끼리의 욕설은 크게 문제가 안됐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아니다.

아닌 쪽으로 돼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되는 것도 안 좋다.

─레전설 재평가 한 번 나올 만하긴 함

쓰레기짓 겁나 하긴 했음

허구헌날 싸움하고, 인성질은 서비스고

근데 정말로 욕설 사건은 한 번도 안 터졌었네

└걸즈데이 때도 욕설은 안 했더라

└반대로 말하면 욕만 안 하고 딴 건 다한 쓰레기지만……

└쓰레기는 쓰레기인데 재활용은 되는 쓰레기임?

└재활용되는 쓰레기잼ㅋㅋ

뜬금없게 터진 대형 사건.

어떻게 정리될지는 모를 일이다.

일단 커뮤니티의 반응은 도찐개찐이다.

둘 다 과거 경력이 남 말할 처지가 아니네.

파프리카 프릭스의 신고식이 격하게 타오른다.

* * *

욕설이라는 건 하면 안된다.

그런 거 해봤자 효과가 적다.

오히려 스스로 빡치는 지름길이다.

'정말 아마추어 같은 행동이야.

점잖은 말투도 일종의 도발이다.

상대의 흥분을 유도할 수 있다.

팩트폭행 한두 마디 던져주면 게임 셋.

일련의 방식이 안 먹히는 녀석도 있었다.

"야."

"웅?"

"너 대체 목적이 뭐냐?"

경기가 끝나고 가볍게 회식을 가졌다.

별건 아니고 저녁을 겸한 자리다.

초밥 먹으면서 욕도 겁나게 먹었다.

잠수탄 1주일 동안 뭐 했냐는 등.

오늘은 뭐하다 지각 직전에 왔냐는 등.

인터뷰에서 꼴값은 왜 떨었냐는 등.

일련의 마녀 재판을 일으킨 장본인은 달래였다.

웬만하면 참아주려고 했는데 좀 심하더라?

마지막쯤 가서는 험악해질 정도로 싸웠다.

둘이 알아서 풀라며 나머지 팀원들이 도망가자.

"야, 가슴 닿아."

"닿으라고 하는 건데?"

옆에 찰싹 붙어서 애교를 떨어댄다.

처음에는 정말 미치기라도 한 줄 알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납득이 안되는 건 아니다.

'여캠이 스캔들에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

나랑 스캔들을 만들 생각이었다는 게 어처구니 없지만.

그러니까 춘자는 나를 아직도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적어도 지난 만남이 기억 착오가 아니었다는 건 알게 됐다.

"알리바이 만들려고 일부러 욕한 거야?"

"아니, 진심 욕이지."

"……."

욕도 진심이고, 좋아하는 것도 진심이다.

이전부터 의사 표현에 솔직한 아이긴 했다.

그 부분이 하필 욕설로 나타났어서 문제지.

나랑 딜교환이 성립되는 몇 안되는 상대였다.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여캠의 과거다.

당시에는 춘자였지만 아무튼.

"그래도 내가 욕하니까 다른 애들이 오빠한테 뭐라 안 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나 잘했지? 상줘 상줘."

이렇게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애교 떠는 일은 없었다.

달래가 되더니 많은 부분이 변했다.

나쁜 변화는 아니긴 한데 인간적으로 너무 오글거린다.

"달래야."

"웅?"

"그냥 옛날처럼 하면 안돼? 애교 같은 걸 꼭 떨어야 돼?"

"좀만 꼬시면 넘어올 거 같아서."

"……."

춘자가 아니면 넘어갔을 수도 있다.

남자들이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솔직하다.

애교 잘 떠는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세상에 없다.

'외모도 황송할 수준으로 예뻐졌고.'

젖살이 빠져서 얼굴 선이 갸름해더니 몸매도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옷까지 야하게 입는다.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야릇한 상상이 안 든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흔들리진 않는다.

난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얘가 진심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오빠, 여기 아무도 없네?"

"근데 어쩌라고 춘자야."

"뽀뽀하자 뽀뽀."

동의한 적이 없음에도 막무가내다.

멋대로 나를 성추행하고 있다.

초밥집 개인실에서 밀회를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귀었을 때는 이런 짓, 저런 짓 하긴 했지만 이제 아니잖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다시 사귈 생각 없다.

만약 사귄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

"오빠는 나 다시 만나니까 안 반가워?"

"싫은 건 아닌데…… 좋지도 않아."

"난 오빠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약한 소리해오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적응이 안돼도 너무 안된다.

갭이 있는 게 아니라 솔직히 정신병원 데려가주고 싶은 수준이다.

안 좋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걱정된다.

최근에 힘든 일이 있어서 의지하는 게 아닌지.

저러다 나쁜 사람한테 걸리면 인생 산으로 가는 수가 있다.

'나니까 다른 마음 안 먹는 거지.'

춘자는 정말 부랄친구 같은 사이기 때문에 아껴주고 싶다.

성격이 내유외강.

강한 척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는 타입이다.

심지어 나이도 아직 스물 한 살로 앳되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 오빠랑 헤어지고 많이 노력했어. 처음에는 원망했는데 생각해볼수록 내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외로워서 시작했던 방송.

자리를 잡자 우쭐해졌다.

니까짓게 나를 버려?

다른 남자들도 만나보고, 열혈 오빠들과 친목도 다져보고, 그럴수록 더욱 떠올랐다고 한다.

한 마디로 나를 잊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정도로 마음에 남았다면 기쁘긴 한데.

"오빠 만큼 성격 잘 맞는 사람 평생 못 만날 것 같아."

"니랑 성격 맞는 사람이 있으면 걔는 싸이코지."

"그래, 이 싸이코 새끼야."

하는 말은 험악한 주제에 하는 행동은 정반대다.

얘가 많이 외로웠긴 했나 보다.

그런데 전역하고 연락도 없고, 잠수나 타고 있고.

이러저러 불만을 틱틱대며 살갑게 애교를 부린다.

"사정은 알았으니까 닭살 돋는 짓은 좀 그만해. 욕 나온다 진짜."

"웅…… 그럼 오늘만이라도 어리광 부리게 해죠."

군대를 갔다온 2년.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세상만 달라진 게 아니라 정말 많은 게 변했다.

그 속에서 변하지 않은 인연의 소중함이 아직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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