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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설의 재림 -->
로드 오브 로드는 팀 게임이다.
개인의 기량, 물론 중요하지만 다섯이 모였을 때의 시너지를 고려해야 한다.
나뭇가지 하나는 부러지기 쉽다.
하지만 둘이 모이면 제법 튼튼하다.
세 개, 네 개…… 그리고 다섯 개.
온 힘을 쥐어짜 꺾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버텨낼 수 있다.
팀 게임에서 협력이란 이토록 중요하다.
구오오……!
누군가 그런 설명을 했다면 예시가 틀렸다.
부러뜨리려는 적이 반드시 사람일까?
롤에서는 괴물이 짓밟을 수도 있다.
〈아니, 진짜 하 무슨…….〉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단어가 조합이 안된다.
생각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뱉게 된다.
페닉스 썬더의 탑라이너 티바나가 터져 죽었다.
〈죽었어?!〉
〈타워 끼고 적당히 좀 사려주지 그랬냐…….〉
아군의 죽음에 팀원들이 한 마디씩 탄식한다.
지금 죽으면 따로 막으러 가기도 힘든데.
죽은 입장에서도 변명이 산더미다.
〈아니, 세도 너무 세잖아! 이걸 내가 어떻게 버텨.〉
상대 미드라이너 자드가 지나치게 잘 컸다.
스플릿 구도에서 대치가 안될 정도다.
이렇게 키운 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초반에 말려서 그래. 니가 버텨만 주면 우리가 운영해서 이길 수 있어.〉
〈내가 버틸 수가 없다니까?〉
〈방템 좀 두르고 최대한 사려봐. 포탑 끼면 사릴 수 있잖아.〉
없다고요.
대답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내뱉는 순간 진다.
안되는 걸 암에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은 전설적입니다……!
상팔년도 군대도 아니고 안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다.
포위망을 짜서 압박해보지만 유유히 빠져 나간다.
아니, 조그만 틈을 비집어 열어서 역으로 잡는다.
페닉스 썬더의 다섯 선수가 자드 하나에 끌려다닌다.
그 사이에 용 먹히고, 바론 먹히고, 포탑 깨지고.
어느새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게임이 져있다.
『패배』
화면 정가운데 대문짝만하게 떠있는 두 글자.
부스 바깥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함성.
선수들 누구도 먼저 벙끗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뭐지……?"
침묵 끝에 누군가 한 명 입을 열었다.
정말 알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현재 상황이 파악이 안될 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질 거라고는 쌀톨만큼도 생각 안 했다.
경기 시작 전만 해도 여유가 넘치다 못해 부스 안이 붕~ 떠있었다.
불과 30분 전의 광경이 거짓말 같다.
어쩌다가 실수해서 패배.
혹은 바론 스틸 당하고 역전.
그런 게 아니라 처참하게 쳐발렸다.
"나 라인전 그렇게 안 밀렸어. 리심이 한 번 죽어주고 나서 힘들게 된 거지."
"야, 내 탓하는 거야?"
"아니, 까놓고 틀린 말 아니잖아!"
이내 난장판이 돼버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전가.
미드가 밀린 게 잘못이다.
정글이 킬 준 게 잘못이다.
봇이 로밍 당해줘서 터졌다.
탑이 스플릿 못 막으니 지지!
나올 수 있는 변명들이 다 나온다.
그 광경을 한심해서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다.
감독도, 코치도 지금 상황이 정리가 안되고 있다.
"코, 코치님. 이 판 그냥 실수 맞죠? 초반에 말린 게 스노우볼 굴러간 거죠?"
롤이라는 게임은 100%라는 게 없다.
챌린저도 브론즈5에서 질 수가 있다.
게임이 꼬이고 꼬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를 테면 롤챔스 1위팀을 잡고 중국팀까지 전부 잡은 슈퍼팀이 꼴찌팀한테 져버리는 강자멸시 약자존중의 대퍼도 일어난다.
방금 전 패배는 분명 상대가 천운을 끌어쓴 거다.
다시 하면 절대, 절대로 자신들이 질 리가 없다!
"어어, 얘들아. 침착하게 다시 한 번 해보자. 오랜만에 경기 서니까 긴장을 많이 한 거 같네."
페닉스 게임단을 이끄는 이승철 감독.
평소에는 상당히 냉정한 타입이다.
게임단의 웃어른으로서 판단이 흐릴 수 있는 선수들에게 일침을 가해준다.
그런 그조차 이번 만큼은 머리가 굳었다.
사람은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이성적인 판단이 안된다.
그렇게 또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 * *
실력 차이가 나게 되면 보인다.
상대가 어디로 움직일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해올지.
직감적으로 읽힌다는 이야기다.
화락!
챠라락!
그림자를 깔며 스킬쿨을 돌린다.
이전 세트와 마찬가지의 흐름이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상대가 깨달았다.
단순한 실수, 우연이 아닌 실력의 차이.
자신이 잡아먹히는 입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깨달아버린 순간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챠락!
쏘아진 표창이 맞았다, 아니 맞아있다.
자석의 N극이 S극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자신감을 지나치게 잃으면 벌어지는 상황이다.
'머릿속에서 피하는 그림이 안 그려지는 거지.'
아무리 논타겟 스킬이 확률 싸움, 운 싸움이라는 말이 있어도 실력 차이와 멘탈 관리까지 터지면 자연스러워진다.
자신이 맞는 것이 어느새 당연하게 된다.
그렇게 라인전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전 세트와 같은 갱승도 아니다.
그냥 삐걱!
발을 잘못 디딘 상대가 넘어졌다.
내비친 실수를 그대로 받아먹는다.
그래도 노력하면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상태가 도축을 기다리는 돼지다.
'멘탈이 완전히 갈렸나 보네.'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해봤다.
물론 나는 지켜보는 입장.
자존심이 센 애들이 이따금 저런다.
악착같이 반항하다가 안 풀린다.
어느 순간 손을 툭 놓아버린다.
이후, 허무한 실수가 이어진다.
구오오……!
솔킬을 따면 당연히 레벨 차이가 난다.
당한 입장에서 고려를 해야 한다.
멘탈이 나가면 생각이 안된다.
선6레벨과 함께 가벼운 킬각.
─적을 처치했습니다!
백업이 있었어도 무조건 잡았다.
없으니 깔끔하게 잡고 라인까지 민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니 아무리 나라도 좀 미안해지네?
'근데 세상이 원래 약육강식이야.'
못하면 져야지 뭐 별 수 있나.
못하면서 이기려고 하는 게 말도 안되는 거다.
그리고 총알도 살살 맞으면 덜 아프다고 깔끔하게 지면 멘탈도 덜 쪼개진다.
화락!
수풀에 숨어있자 먹잇감이 알아서 찾아온다.
적팀의 정글러 이블퀸.
아무 생각 없이 레드 도마뱀을 먹으러 왔다.
궁극기를 쓸 것도 없이 평타로 패서 죽인다.
빌지워터 해군칼로 이속을 늦춘다.
그림자로 따라가 정확하게 표창.
─적을 처치했습니다!
FFs 레전설님이 학살 중입니다!
암살자인 자드는 미드 주도권을 잡으면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다.
킬각이 간단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가 반쯤 정신을 놨다면 더더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훅- 기울어지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게 상대는 프로팀.
아군은 이제 겨우 첫 경기를 뛰고 있는 햇병아리다.
움직임의 효율이란 면에서 군더더기가 붙어있다.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측면도 크다.
그 정도의 변수야 예상했던 내다.
'첫 상대가 약해 빠져서 다행이네.'
성장의 발판으로서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샌드백이다.
파프리카 프릭스 도약의 제물로 삼는다.
* * *
예측에서 완전히 빗나가버린 게임.
선수들도 어이가 없겠지만 중계진들은 더 하다.
상황을 정리해서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훨씬 더 혹독한 입장이다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던 클끼리로서는 심란하다.
노련미를 보여줘야 할 페닉스 썬더가 정신을 못 차린다.
─FFs 레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또다시 미드 라인에서 터지고 만 솔로킬.
코리아나가 세 번째 킬을 헌납하며 죽어버린다.
심지어 체력도 깎지 못해서 정글러가 백업도 할 수 없다.
어설프게 막다가는 자드에게 썰리는 수가 있다.
이미 한 번 뼈아픈 경험을 했던 이블퀸.
눈물을 머금고 미드 1차 포탑을 포기해야 했다.
〈이게 바로 격차의 차이죠! 레전설 선수가 미드 라인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습니다!〉
강빈 해설 입장에서는 해설하기 편해서 좋다.
솔킬 따니까 스피드감도 있고 게임 재밌네!
텐션이 잔뜩 업됐는지 신나서 말을 쏟아낸다.
-미드 고속도로 뚫리네ㅋㅋㅋ
-강빈 저렇게 신난 거 처음 봄
-왜 오늘은 조냐 안 타냐?
하도 과묵한 나머지 조냐라는 별명이 있는 강빈 해설이다.
게임 내 아이템인 조냐의 물시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황금상 상태로 땡-! 하고 굳어버린다.
오늘은 오히려 클끼리 해설이 조냐 상태가 됐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멍때리고 있다.
예상했던 게임의 흐름과 180도 다르게 흘러간다.
〈확실히 미드 성장 차이가 많이 벌어졌어요. 미드 1차가 밀린 것도 뼈아픕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라인전이 끝난 거고 운영의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보는 게 맞아요.〉
만약 이성을 유지했다면 다른 해석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클끼리는 레전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해설자도 결국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싫어하는 선수를 띄워주고 싶은 마음?
마음속에서 우러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사적인 감정이 얽히다 보니 판단력이 흐트러진다.
그럼에도 썩어도 준치.
하고 있는 말이 틀린 관점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걸 캐치하지 못했을 뿐이다.
서걱!
서걱!
잘 큰 레전설의 자드가 스플릿을 돈다.
이전 세트 페닉스 썬더의 주된 패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으로 당해주지 않는다.
운영 실력에서 자신들이 무조건 한 발 앞선다.
속전속결로 충분히 끝낼 자신이 있다.
3명을 동원해 인원 차이로 찍어 누르겠다.
과도한 투자긴 하나 잘 큰 상대를 자르기 위함이다.
만에 하나 포탑이 하나 밀려도 상관 없다.
제압 골드를 먹는다면 괜찮은 교환이다.
아니, 상대의 에이스를 끊어버리는 셈.
스플릿은 한 번 흐름이 끊기면 잇기 힘들다.
성공하는 순간 게임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게 된다.
구오오……!
노력은 가상하나 결과는 비참하다.
뒤를 덮친 이블퀸부터 잡아먹힌다.
광우스타가 밀쳐서 제지하려고 했다.
이를 당연한 듯이 점멸로 회피.
자연스럽게 따라가 박아 넣는다.
채 성장이 더딘 이블퀸이 터져버린다.
─FFs 레전설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페닉스 썬더의 판단이 틀렸던 게 아니다.
서로의 팀워크도 나름 어설프지 않았다.
그저 이를 돌파하는 강제력의 격이 상정했던 이상이다.
나뭇가지가 아무리 뭉쳐봤자 결국은 나뭇가지.
전기톱으로 내려치는데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근본적인 실력의 격차가 하늘과 땅이다.
본래라면 없어야 할 빈틈이 만들어진다.
진심을 발휘하는 레전설의 실력.
목도했던 이들이 입 모아 소리친다.
-레전설이 레전설 하고 있네
-슈퍼 플레이를 밥 먹듯이 함ㅋㅋ
-이 정도는 해줘야 레전설이지!
채팅창에서 약속된 드립들이 흘러나온다.
슈퍼 플레이를 뛰어넘는 슈퍼 플레이.
레전설이 레전설을 했을 뿐이다.
과거 카오스 유저들이 신나서 타자를 친다.
꽈아앙-!
그렇게 레전설이 3대1로 시간을 벌고 있는 사이.
한 발 늦게 파프리카 프릭스도 합류한다.
김재슥의 말화이트가 점멸 궁극기를 때려박는다.
-무등산 거석!
-깐-깐한 궁극기 활용ㄷㄷ
-백업 좋았습니다 수장님
레전설만 유명한 게 아니다.
게임단 선수들 전원이 스트리머.
어디서 한 번씩은 들어본 네임드들이다.
팬들이 열렬히 환호하자 중계 플랫폼 채팅창들이 폭파될 정도로 난리가 난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레전설 선수의 슈퍼 플레이가 대승을 일구어냈습니다!〉
간만에 해설할 맛이 난 강빈 해설도 난리가 났다.
글자 그대로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운영과 노련미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없는 빈틈을 강제로 쑤셔 파니 버틸 재간이 있을까?
최소 라인전 단계에서 지지라도 않았으면 모른다.
도저히 버틸래야 버틸 수 없는 격차의 차이.
첫 세트에 이어 두 번째 세트까지 쐐기가 박힌다.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없어진 클끼리 해설.
안타깝게도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MVP는~~ 파프리카 프릭스의 레전설 선수. 프로 리그 첫 데뷔전이라는 사실이 안 믿겨질 정도로 압도적인 캐리력을 보여줬습니다~. 두 세트 연속 MVP 수상, 충분히 받을 만하죠!〉
오늘은 용준할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잔뜩 들뜬 진용준 캐스터가 신바람이 나서 외친다.
반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클끼리 해설.
롤챔스 승자팀의 관례에 따라 MVP 인터뷰, 그것도 단독 인터뷰가 예정된다.
========== 작품 후기 ==========
게임 시스템은 진행을 편하게 돕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행보에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합니다
특히 유리야와 얽혔을 때!
물론 아예 묻힌 건 아니고 간간히 나올 거에요
잠수를 탔던 이유도 내일 자에 간략하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