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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카드에 모든 것을 걸겠어! -->
지난날의 달래.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창 겪은 이후 말이다.
앙칼진 살쾡이가 기가 센 집고양이 정도로 길들여졌다.
그 이유는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지만 추측 정도는 하게 된다.
나와의 교우가 조금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장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아마 틀리진 않을 것이다.
"나 너 좋아하냐?"
"좋아하니까 죽이지는 않겠지."
"그런가……."
뭐만 하면 손이 올라가서 같이 PC방을 가도 무조건 한 좌석 띄어 앉을 때였다.
저 이상한 질문 이후로 얘가 많이 살가워졌다.
외모에도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사진을 자주 찍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현실에서 사람이 된 후로도 게임 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한테 망나니라고 하던데 춘자는 그냥 미친개였다.
난 최소한 팀원이랑 싸우고 미드는 안 달렸어.
얘는 마음에 안 드는 유저들 아이디를 적어 놓는 데스노트까지 있었다.
'심지어 난 그걸 실제로 봤어.'
아기자기 예쁘게 생긴 다이어리에 천상계 네임드들이 종류별로 적혀있다.
누가 보면 E-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 팬이구나!
착각할 수 있겠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1. 무기 징역
2. 개같음
3. 애매함
자세히는 기억 안 나는데 대충 늬앙스는 비슷하다.
지금은 프로게이머가 된 과거 네임드들도 다수 존재했다.
참고로 내 아이디는 1번 첫 문장에 굵은 글씨로 써있더라.
'화장실 갔을 때 지우개로 박박 긁어 지워버렸지.'
1번에 적힌 애들은 만나면 무조건 트롤이다.
게임 해봤자 어차피 진다는 게 이유.
2번에 적힌 애들은 솔킬 따이면 같이 죽는다.
캐리해줄 가치가 없다는 게 이유.
클끼리의 경우가 바로 2번이었다.
3번은 1번, 2번으로 승격을 대기 중인 사람들이다.
천상계 롤 유저의 과반수 이상이 포함된다.
또라이인 건 알았지만 상상 이상의 진성 또라이다.
이 상종을 못할 미친개가 그나마 사람 됐네.
교우 관계를 가지며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걸지도 모르겠다.
〈호랑이가 어흥! 하고 물어서 달래 아야~ 했어요.〉
-달래 아팠구나!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ㅠ.ㅠ
-우리 달래 이쁜 거 알고 달래만 노리네
그리고 호랑이는 모가지 따였어요.
바로 탈진이랑 파워센도 박히고 배인 3타에 요단강 건넜어요.
누가 봐도 그냥 양학하고 있는데 말도 안되는 애드립을 치고 앉았다.
연기도 소름이지만 시청자들 반응에 머리가 아득해진다.
여캠의 방송용 멘트니 이해를 해줘야지.
이해해 주다간 내 멘탈이 터질 것 같다.
"나랑 같이 있는데 꼭 그딴 짓거리를 해야겠니?"
〈그딴 짓거리가 뭐에요? 달래는 모르겠어요.〉
"야, 박춘자."
〈한 번만 더 춘자라고 부르면 터트린다고 했지?〉
-춘자 ON
-달래일 때랑 갭이 너무 큰데?
-춘자도 매력있어ㅋㅋㅋ
-누님한테 깝치지 마. 그러다 진짜 터진다
이쁘면 다 용서 받는다는 현실이 새삼 느껴진다.
저런 모습이 매력 있다는 애들은 머리에 뭐가 들었을까?
남성성을 잃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달래야."
〈오라버니 왜요~?〉
"내가 너를 알잖아. 너도 나를 알고. 그런데 꼭 되도 않는 애교를 부려야 되겠니?"
-아닌데? 달래 애교 귀여운데?
-달래님 사랑해요♡♡
-남절이방은 건빵이라도 달래방은 팬갑한다 ㅇㅈ?
인정 치고 앉아있는 저 물소 새끼들.
처음에 싹 다 쳐냈어야 했는데 늦었다.
여자 얼굴만 보고 낚이는 흑우들이 저렇게나 많다.
민심까지 등을 돌린 이 판국을 어찌 타개해야 할지.
짜증이 잔뜩 치밀어 올랐던 건 나만이 아니었다.
달래로서도 섭섭한 감정이 있었나 보다.
〈오빠 왜 나한테만 그래?〉
"뭐가."
〈유리야라는 분한테는 잘해주면서 나는 애교도 부리면 안돼?〉
-질투?
-갑분싸
-달래 누님 서러웠나 보다
-ㄷㄷ근데 유리야도 막 갈구지 않나?
내가 자꾸 단어 선택을 험악하게 한다.
좋게 말할 수 있는 걸 나쁘게 말한다.
확실히 달래의 말도 틀리지는 않다.
아는 사이다 보니 편하게 군 감이 있다.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 요량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을 왜 너한테 들어야 되지?
'매일매일 부모님 안부를 물어보던 너한테?'
소환자의 전장을 수도 없이 질주하던 너한테?
더 말하면 얘도 삐질 각이다.
지난 유리야 사건 이후 안테나가 예리해졌다.
하지만 유리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달래는 표현이 서툰 타입은 아니다.
적어도 답답할 구석은 없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데…… 갑자기 왜 삐진 거야?"
〈갑자기? 그걸 말이라고 해?〉
"나 눈치 없는 거 알잖아."
-솔랭 중에 갑자기 보라를 찍는데?
-여기 아침 드라마인가요?
-분위기 좋다가 왜 싸움??
-일단 석고대죄 하자 남절아
처음에는 적당히 장난 치는 줄 알았다.
들어볼수록 점점 장난이 아니다.
나와 유리야의 관계.
이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어.'
일단 달래도 과거에 롤 유저였다.
롤챔스라던지 충분히 챙겨볼 만하다.
그 연장선에 있는 파프리카TV 멸망전도 가깝게 다가왔을 터.
나와 리야가 어떤 사이인지 알아도 이상하진 않다는 소리다.
그거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왜 저러지?
혹시 시청자 말대로 정말 질투라도 하는 건가?
〈그분한테는 별 말 안 하면서 나한테는 왜 심한 말만 해? 나도 여자야. 소중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
정론으로 부딪혀 오니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른다.
내가 대체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할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리야는 착하잖아."
〈나는 안 착해서 심하게 대하는 거야?〉
"걔는 내가 더럽혀도 될 애가 아니야. 그런데 너는 이미……."
〈야 이 미친놈아!!〉
리야는 얘가 너무 순수해서 저절로 말을 가려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불러 일으키는 아이다.
하지만 화가 나도 짓궂은 장난 정도로 끝낸다.
그에 반해 춘자는…….
이미 볼장을 다 본 그냥 부랄 친구다.
부랄 친구끼리 단어 사용 가리는 거 봤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케미는 꼭 개그로 끝나네
-이미 더럽혀졌대ㅋㅋ
-달래 더럽혀짐?
오해할 수 있는데 순수하게 성격 얘기한 거다.
달래가 노는 아이가 아니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장 격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 보낸 만큼 모를 수가 없다.
〈나 여캠이다. 말 가려서 해라?〉
"성격 얘기하는데 망상 오지네. 노처녀 히스테릭 있으신가?"
〈늙은이 새끼가 누굴 보고 노처녀래. 그리고 나는 내 방 열혈 오빠들이 책임져줄 거거든? 그쵸~?〉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저쪽 방 분위기는 훈훈한가 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쓰레기가 되었다.
"내 성격 알잖아. 싫어하면 옆에 두지도 않는 거."
〈어쩌라고요. 누가 물어봤어?〉
"그냥…… 오해하지 말라고."
지인들한테 던지듯 해두는 말이다.
내가 말투가 험해서 종종 오해를 산다.
리야 또한 이 점을 알고 있기에 오래 가는 거다.
'달래에게도 말하긴 했던 거 같은데…….'
어쩌면 유통기한이 찾아온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뜩 든 생각이 정말 맞아 떨어진 거지.
본인이 대답해주지 않는 이상 모를 일이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던 역겨운 리액션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 * *
일반 여캠, 그리고 게임 여캠.
사실 꼭 구분을 지을 이야기는 아니다.
일반 여캠이 게임 하면 게임 여캠이고.
게임 여캠이 게임 끄고 수금하면 일반 여캠이다.
그럼에도 구분을 두는 이유는 성향이 나뉘기 때문이다.
털털한 맛으로 보는 게임 여캠.
이쁘고 섹시해서 보는 일반 여캠.
어느 쪽이 이상적인 여성상인지는 개인 취향의 이야기다.
하지만 솔직히 이 하나는 확실하다.
외모라는 면에서는 둘은 명백하게 클라스 차이가 나뉜다.
─남절이랑 듀오하는 여캠 졸예네ㄷㄷ
저렇게 이쁜 롤여캠이 있었나?
농담 아니고 여신급이신데……
심지어 게임도 엄청 잘함!
└롤여캠이 아니고 그냥 여캠일 걸
글쓴이-예티 만나던데 그냥 여캠이라고?
└헐, 언제 그렇게 올라갔지……. 아무튼 일반 여캠 맞음
└진짜 졸예시긴 하더라. 한 번 보고 빠져듬♡
수많은 여캠들 사이에서도 탑클래스에 손꼽힌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여캠으로 이름 높다.
당연히 롤유저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여신급의 미모를 자랑하는 BJ달래.
남성게이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최근 롤 커뮤니티에서는 떠들썩해졌다.
이쁘고 섹시한데 게임도 잘하네?
물론 실력의 평가는 아직 모호하다.
그도 그럴게 듀오하는 사람이 무려.
─마챌도 양학하는 남절이가 원딜 해주는데ㅋㅋ
버스도 못 타면 그게 사람임?
방송 내내 무서워요~ 무서워요~ 이러더만
└지금 유리야 욕한 거야?
└사과해라. 리야는 남절이 버스 타도 다이아 못 간다
글쓴이-ㅈㅅ……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유리야 의문의 1패;;
챌린저가 듀오를 해주는데 당연히 올라가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실력이 있으니까 올라가는 거다.
실드쪽, 공격쪽 팽팽하게 맞서던 나날.
다이아5에 갔을 무렵, 이변을 깨닫는다.
남절이가 원딜을 안 해도 라인전을 지지 않아!
다이아4가 되어 완전히 우화한다.
애교 섞였던 리액션은 줄어들었다.
대신, 라인전에 집중할 시간이 늘었다.
─달래 조금 격하게 올라가는 거 아니야……?
지옥헬혼돈카오스라는 다이아5를 돌파했어
이 기세면 다이아3 이상 갈 수도 있겠다
최대 다이아5가 한계라고 보고 있었는데……
└챌린저 버스가 대단하긴 하나 봐~
글쓴이-아니야. 그냥 달래가 잘한다니까?
└뭐지? 재능충 발굴?
└말하는 거 들어보면 원래 롤 좀 했다던데
남절과의 듀오 첫 날부터 엄~청 잘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럭저럭 괜찮게 하는 수준.
처음이신데, 여성이신데 재능 있으시네요!
그 재능이 웬만큼 있는 게 아니더라?
다이아 서포터 귀싸대기를 때리고 있다.
심지어 기세가 막히기는 커녕 점점 잘해진다.
다이아 3티어가 되었을 때 달래의 실력은…….
파앙!
소리를, 두고 갔다!
그런 어떤 만화의 헌터 협회 회장 정도는 아니어도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게 사실이다.
─뭐지? 너무 잘해지니까 당황스러운데?
롤여캠은 그냥 그런 거잖아
아이고, 예쁜데 롤도 잘하네~
응원해드릴게요. 꼭 승급 성공하세요!
내가 알고 있는 느낌이랑 갭이 커지고 있어
└나도 슬슬 헷갈리기 시작함;
└빡듀오 컨텐츠가 돼버렸어……
└예능 듀오가 갑자기 다큐를 찍고 있다고!
진짜 실력이 얼마나 되는 건지.
버스가 아니라 본인 실력이 맞는 건지.
일고 있는 논란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전투력 측정기라 불리는 한 PD와의 만남이었다.
* * *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
파프리카TV만 있는 게 아니다.
-슥하~(재슥이 하이라는 뜻)
-오늘도 깐깐한 탑캐리 가즈아!
-팟수들 아니랄까봐 드럽게 빨리 모이네ㅋㅋ
마찬가지로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인 까메오팟TV다.
규모 면에서 파프리카TV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작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어 매니아층이 두텁다.
그 두터운 매니아층 사이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통칭 팟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PD김재슥.
까메오TV에선 스트리머를 PD라고 지칭한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땡벌~〉
김재슥은 롤 천상계 유저 치고 연배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과거 카오스의 네임드를 해먹었던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나이대에 걸맞게 최쉰곡이 울리며 방송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재슥 형님, 오늘도 듀오하시지 말입니다?
-오늘은 저랑 하시지 말입니다! 챌린저 버스 달달하게 대기 중!
그의 팬들이 나서서 앞길을 닦아준다.
말하자면 노약자 우대!
속된 말로 버스를 태워주는 문화가 있다.
김재슥 본인도 버스 유저라서 딱히 가리지 않는다.
정말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승객이 되기 좋은 오후였다.
〈므어어-?! 레전설이라고오? 그 양반 살아있어?〉
하나, 채팅창에 거슬리는 채팅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예티- 플래티넘 마운틴을 오르는 등산객들을 습격하는 전설의 설인 예티(다이아5)
#최쉰곡- 최신곡+쉰(오래된)의 합성어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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