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 이 차가 식기 전에 -->
최근 롤 커뮤니티들을 달구고 있는 두 화제.
윈터 시즌의 준결승전은 역시나였다.
게시글 하나하나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일어서심시오 코돈비인!!
집중하심시오!
이길 수 잇슴미다!
코돈빈 개새끼야 한 세트는 이기라고!
└마지막 세트 너무 아까웠다ㅠ.ㅠ
└SKY T1 K 15연승이야ㄷㄷ
└근데 삼선 블루도 지지 않았나?
└대퍼 라인 전부 전멸ㅋㅋㅋㅋ
예상했던 그대로의 흐름이다.
SKY T1 K의 완벽한 독주다.
5전 3선승제였던 준결승전.
강팀인 KTX 롤러코스터 B팀을 상대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
무려 15연승으로 얼밤의 13연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에 맞서는 나머지 라인.
삼선 레드의 준결승전 활약이 기대를 모으는 와중에…….
─저라딧 빡종!ㅋㅋㅋㅋㅋㅋㅋ
남절이한테 5연패 당하고 방송 껐어ㅋㅋㅋ
계속 한 판만 더, 한 판만 더 하는 게
도박으로 패가망신 생각났는데 결국!
└너무 털리니까 슬슬 불쌍하더라ㅋㅋ
└솔랭에서 적으로만 연속 다섯 번 만난 거야?
글쓴이-같은 팀 걸리면 아군이 닷지함ㅋ
└캬~ 천상계 형님들 방송감 있네
롤챔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소식이다.
일반 유저들도 솔로랭크에 관심이 많다.
급변하는 메타, 그리고 천상계 랭커들.
그 고고한 천상계에서 잔잔한 이변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다름 아닌 정글 캐리 메타를 일컫는 말이다.
시즌4에 이르러 정글러의 캐리력이 대두된다.
롤챔스보다 한 발 앞서 솔로랭크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이를 대표하는 두 명의 BJ가 격전을 치렀다.
─저라딧 5연패 하고도 피해자 코스프레 했음?
또 부검 가서 국과수식 수사 함 했냐?
나도 저라딧 좋아하긴 하는데……
거기까지 했으면 솔직히 추하다ㅎ
└몇 판 하다가 이후로 이 악물고 겜함
└5연패 하고 안되겠는지 빡종ㅋㅋㅋ
└근데 부캐로 한 거잖아
└마딱이들 호응안된다고 욕하더라ㅋ
천상계, 그것도 극천상계 유저들에게는 그런 게 있다.
낮은 티어에서 게임하면 적응이 안된다.
아니, 아군 수준 대체 왜 이래?
피지컬로만 게임하는 유저들에게는 상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미리 판을 짜고 움직이는 설계, 혹은 운영형 유저들.
아군이 당연히 해줘야 할 걸 안 해주면 머리에 스팀이 오른다.
나름대로 체계적인 정글러를 지향하는 저라딧이다.
마딱이가 호응이 안돼서 게임이 비벼진 거다.
그의 말도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래서.
─남절이 저라딧 부캐 점수 빨고 300점까지 올렸네
이러면 대충 챌린저 애들도 만나지 않나?
마스터&챌린저는 방송으로만 봐서 모르겠다……
└現마스터인데 같은 시간에 돌리면 만나요. 새벽이면 만날 확률 더 높고
글쓴이-크…… 마스터 성님 애정합니다
└본캐로 만나면 완전 하이큐 잡히는 거네
└에이, 설마 남절이 챌린저까지만 돌린다고 했잖아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사실 그런 일은 생각만큼 잦지 않다.
가끔 있을 때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렇지.
그런데 만약 설마가 아니라면?
물론 보는 이들에게는 설마가 맞다.
이윽고 설마 아닌 설마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 * *
요즘 보온병은 성능이 좋다.
단열재가 여러 겹이며 진공 상태다.
내부의 온도를 최대 사흘까지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요즘 차는 식는데 사흘쯤 걸린다는 소리지.'
적장의 목을 베고 헐레벌떡 뛰어온 관우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겠지만 현대 과학의 발전은 이토록 위대하다.
애초에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롤은 판수 게임이다.
게임을 많이 하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구조다.
사흘도 사실 불가능에 한없이 가깝다.
중간에 고비가 있어 더욱 힘들 뻔했다.
한 자존심 강한 청년 덕분에 수월해질 예정이다.
쿠웅!
솔로랭크의 큐 잡히는 소리다.
살짝 아질했던 새벽의 졸음을 달아나게 해준다.
이윽고 한 번 더 같은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
'일단 저격은 성공했고.'
인터넷창에 띄워놓은 화면.
다름 아닌 저라딧의 방송이다.
방송을 보고 돌리는 저격으로 같은 큐를 잡았다.
'점수를 빨려는 불순한 목적만이 아니잖아.'
조금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BJ대표팀의 멤버 선발.
약간의 가산점까지 포함해 여지가 있다.
다만 아직 시험을 해볼 필요성도 있다.
본인의 피셜에 의하면 마딱이들 때문이다.
챌린저에서 하면 절대로 같은 상황 안 나온다.
그 증명을 도와주기로 했다.
이쿠, 이쿠!
마스터가 아닌 챌린저 구간의 큐다.
이쯤 되면 슬슬 프로게이머, 혹은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잡힌다.
게임의 흐름도 대회와 유사해진다.
'어디까지나 유사한 느낌이지만.'
필요하다면 사용하는 정도다.
이를 테면 역버프 스타트, 라인 스왑.
하위 구간에서 안 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왜 하는 건지 모르니까!
사람은 익숙한 게 가장 편한 법이다.
어설프게 따라하다간 죽만 쑨다.
당연히 챌린저 구간은 다 알고 한다.
이번 게임은 역버프 스타트가 필요하다.
일련의 판단 하에 서로 역버프를 하게 됐다.
'그런데 착각하면 안돼.'
롤이라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심리전이 바탕된다.
최선의 수는 있어도, 최고의 수는 없다.
시시각각 최고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게임.
탑라인전 구도가 조금 격하게 변해버렸다.
또도 박사와 티바나의 라인전.
시즌4에 이르러 OP로 각광 받는 두 챔피언이다.
서로 마음만 먹으면 우주 끝까지 사릴 수 있다.
하지만 역버프를 하자 이야기가 달라진다.
티바나가 또도 박사를 거세게 압박한다.
찰싹!
또도 박사의 식칼은 미니언에 막힌다.
그에 반해 티바나는 뚫고 지나간다.
화락!
E스킬 화염 숨결과 평타 한 방.
체력 %뎀이 또도 박사의 살점을 훑는다.
자잘한 딜교환이 누적되면 디나이로 연결된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전에 당도해버린다.
레드 버프를 먹고 바로 뛰어왔다.
견제에 신난 티바나는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다.
'물론 일방적인 이득은 아니지.'
이렇듯 동선을 꼬면 상대의 방심을 찌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아군쪽 정글이 털린다.
블루 골렘을 포함한 아군 블루 지역.
기력 코스트인 리심에게 큰 손해는 아니다.
그렇다고 작은 손해도 아니다.
선취점으로 만족하기엔 살짝 아쉬워진다.
'애초에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어.'
롤이라는 게임을 잘하는 방법.
한 마디로 비정하고 잔인해져야 한다.
현실에서는 잡초 하나 못 뽑을 정도로 여리디 여린 감성의 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냉철하다.
죽었던 티바나가 쭉 걸어 라인에 복귀한다.
또도 박사와 달리 텔레포트를 들지 않았다.
점화를 들고 솔킬을 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찰싹!
잔뜩 짜증이 나 걸어오다가 맞았다.
수풀에 숨어있던 또도 박사의 식칼.
느려진 이상 연계된 음파를 피할 수 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1레벨 티바나가 2레벨에게 협공 당했다.
아예 반항조차 못한 채 픽하고 쓰러진다.
그로 인해 미니언 웨이브가 또다시 탄다.
탑라인은 사실상 멸망을 했다고 보면 편하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상대도 손을 쓴다.
소위 말하는 대각선의 법칙이다.
아군 봇듀오가 다이브를 당했다.
하지만 이블퀸은 다이브에 썩 좋은 챔피언이 아니다.
탑에서 너무 손해를 보니 어쩔 수 없이 한 판단이다.
그 판단으로 인해 나는 한 번 더 턴을 가지게 된다.
─아군이 티바나를 지목!
티바나가 울며 겨자 먹기로 라인에 복귀한다.
이번에는 또도 박사가 귀환을 타는 걸 봤다.
애초에 복귀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정말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차피 반쯤 간 사람.
고통을 끊어주는 것도 어찌 보면 자비다.
자비롭게 티바나의 멘탈을 승천시키기로 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차식님이 학살 중입니다!
1레벨 티바나와 4레벨이 된 리심.
골판지에 구멍이 뚫리듯 체력바가 접힌다.
* * *
천상계 게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브실골플과 다르게 매너도 있고, 멘탈도 좋겠지.
원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법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의외로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그 결과를 따지는 과정이 이성적일 뿐이다.
티바나(0/5/0)-1픽이 주포 잡고 5픽한테 쳐발리니 이길 수가 없지ㅉㅉ
시즌4의 솔로랭크는 1픽부터 5픽까지 MMR순으로 잡힌다.
마스터&챌린저 구간에서 단계별 격차는 아득하다.
현재 진행되는 게임만 훑어봐도 대강 보인다.
1픽이 챌린저 800점.
5픽이 마스터 3~400점.
즉, 점수가 높은 1픽이 바로 그팀의 에이스라는 소리다.
그 에이스가 후보 주자나 다름 없는 5픽에게 탈탈 털린다.
루나(1/1/1)-바텀 하면 꼭 윗라인 터져서 지네
핑크스(0/1/1)-빠르게 접고 담 겜ㄱ
초반에 게임이 터지고 안 하는 것도 똑같다.
오히려 천상계는 평균 게임 시간이 짧다.
10분 내외로 승패의 8할이 정해진다.
그 이후로 게임을 더 해볼지.
아니면 깔끔하게 접고 다음 게임 갈지.
의사소통 결과, 과반수가 찬성에 투표했다.
─아군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서렌 투표가 가능한 시간이 20분이다.
그전에 게임이 터지면 미드를 오픈시킨다.
상대가 빨리 밀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는다.
-그의 정글 차이
-그의 당선
-그의 침묵!
-1분 뒤: 저 피해자에요
채팅창이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우연히 잡히게 된 설욕전.
빡집중을 하여 게임에 임했다.
그런데 결과가 심각히 안 좋다.
〈아니, 이건 솔직히 티바나가 리심 2렙갱 고려했어야지. 1픽이고 나발이고 지가 퍼블 줘서 게임 터진 건데 와~나. 요즘 챌린저 수준 왜 이러냐?〉
평소와 다름 없는 기호 1번 저라딧!
시청자들에게 애절할 정도로 호소한다.
1픽, 5픽 따지기 이전에 탑의 실수로 게임이 터졌다.
-저하다 추라딧……
-근데 탑이 터져서 진 건 맞지ㅋ
-남절이는 5픽이라도 부캐잖아?
무엇보다 5픽이 그냥 5픽이 아니었다.
후보 선수가 힘을 숨기고 나왔다.
알고 보니 메이저 리그 4번 타자였다.
대충 그런 느낌이 나는 상황이긴 했다.
저라딧 입장에서도 나름 할 말이 있다.
게임이 지나치게 빨리 터져버렸다.
실력을 발휘할 상황 자체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진정한 피해자가 입을 열었다.
〈라딧씨, 변호 끝났어요?〉
〈아직 안 끝났어요.〉
〈적당히 끝내시고 듀오 더 할 거에요?〉
챌린저BJ끼리 간혹 컨텐츠로 듀오를 할 때가 있다.
그때가 하필 지금이다.
봇라인에서 얌전히 파밍하던 엉덩국 인성제로.
윗라인이 완전히 터진 탓에 꽁패를 하고 말았다.
〈더 해요. 저 아직 못 보여줬어요.〉
〈지금 6연패 아니에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나 섭해. 부캐로 진 거잖아. 한 번 설욕할 기회를 줘요.〉
부캐가 아닌 본캐 듀오다.
당연히 점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존심은 훨씬 더 민감하다.
-인제야 이건 후퇴각이다
-이러다 점수 다 빨려
-라딧이랑 듀오하면 떡락이야 떡락!
채팅창의 여론이 워낙 좋지 않다.
더군다나 인성제로는 알고 있다.
남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듀오까지 몇 번 해본 사이다.
결국 큐가 잡히고 팀이 갈렸다.
이대로 게임이 시작하면 지지 않을까?
진지하게 닷지를 해야 할지 고민된다.
저라딧도 이번 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
〈알았어요. 이거 지면 나 시그니처 풍에서 이쿠개 뺄게요. 이래도 못 믿어주면 나 진짜로 섭해.〉
〈그러면 믿어주지~. 기대해도 되죠?〉
〈믿어요. 나 저라딧이야. 저심이야.〉
-이걸 믿는다고?
-저트코인 가즈아!
-이쿠개 진짜 빠지면 웃기겠다ㅋㅋ
챔피언 성능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가장 자신 있는 챔피언을 꼽으라면 리심이다.
저라딧에게 있어 리심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솔로랭크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극딜 리심.
괜히 이유 없이 비판을 했던 게 아니다.
한 마디로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을 이 한 경기에 건다.
─소환자의 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기든 지든 방송은 대박 나겠네.
피해자에서 한 걸음 물러선 인성제로는 코를 팠다.
#역버프-반대쪽 버프에서 스타트함. 보통 탑라이너가 리쉬
#디나이-상대가 CS를 못 챙기게 하는 행위
#이쿠개-별풍선 29개
#시그니처 풍- 해당BJ의 특징을 따온 별풍선. 예를 들어 리심을 잘하는 저라딧은 이쿠개입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원고료 후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