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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춘자야? -->
특별히 관계가 깊었던 이성.
그중에서도 집착 따위가 남아있는 사람.
관계가 끊어진 이후로도 못 잊고 찾아보게 된다.
이를 테면 인스타를 확인한다거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본다거나.
실수로 전여친에게 팔로우 신청을 거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있음에도 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 이 한 명.
박춘자는 도저히 잊기 힘든 악연이다.
말을 건네기 직전까지도 마음속 깊이 남아 나를 괴롭혔다.
'이름부터가 너무 임팩트 있잖아.'
이름 때문도 있기는 하지만 진짜는 추억이다.
솔직하게 아직도 미련이 남아있다.
내가 인정을 하게 만든 단 한 명의 여자였다.
-어그로 뭐지? 강퇴 안 해요?
-탐방 와서 어그로 끄네 개념 수준;
-BJ남절 쟤 그냥 쓰레기임 걍 강퇴ㄱㄱ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BJ달래.
어깨가 닿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
손가락에 꼽는 여캠답게 빼어난 외모.
〈추, 춘자라뇨…… 유머 감각 있으시네~. 제 이상형도 유머 감각 있는 남잔데.〉
표정을 애써 억누르며 방송을 진행하려 한다.
그 미묘한 변화를 나만 눈치챈 듯하다.
원래 이 녀석 얼굴이 좀 두껍다.
-와 근데 진짜 이쁘다……
-시청자 많아서 봐주는 듯?
-BJ님 남자 얼굴 안 보시나 봐요?
-저도 한 개그 센스해요!
내 방송 시청자 중 상당 수가 건너갔다.
건너가서 채팅만…… 치는 게 아니라 팬가입도 무더기로 하네?
근데 그 와중에 이상형 믿는 애들은 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냐?
그냥 여캠들이 흑우들 꼬시려고 내뱉는 멘트멘트 시멘트잖아.
'개그맨이 이상형이라는 여자 연예인 중에 남편 안 잘생긴 사람 봤어?'
남자들 대부분이 예쁜 여자 좋아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대부분이 얼빠다.
그리고 춘자 쟤는 특히 더 얼빠다.
믿기지 않거나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생각되면 스스로를 돌아보면 된다.
스스로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면 니가 여자가 돼도 비슷하다는 소리니까.
-BJ남절이 뭐 하는 애야?
-겜비네 겜비
-얼마 전에 멸망전 우승한 애 아님?
-아~ 그 인간 쓰레기
'…….'
저쪽방 채팅창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조금 쑥스러워지는 광경이다.
의외로 알아보는 분위기다.
〈아~ 그 멸망전 이벤트에서 활약하신 분이구나. 유명하신가 봐요. 시청자도 엄청 많으시고.〉
-엄밀히 따지면 유명해졌지
-요즘 남절이 잘 나가잖아. 칠무해에 이름도 올렸는데
-기껏해야 천냥광대 버기 수준일 듯
-버기 최강설 모름?
사황 샹크스의 멱살을 잡은 남자를 다시 무시하지 마라.
인터넷 방송 갤러리라는 BJ 뒷담 까는 사이트.
그곳에서 내 지분률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그렇게 띄워준다고 내 텐션이 업될 리가.
'있긴 한데 그래봤자 주사위는 던져졌어.'
화면의 그녀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방긋 웃고 있다.
그런데 그 시선의 끝.
채팅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게 뻔히 보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다.
-수습하려고 하지 마. 현실을 받아들여 박춘자
-???
-춘자 드립 진심이야?
-혹시 두 분 아는 사이신가요?
이제서야 채팅창에 의혹 다운 의혹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웃는다.
미안하지만 나는 당황했을 때의 니 버릇을 알아.
'그때보다 바스트 사이즈가 참해진 거 같긴 한데…….'
파프리카TV의 여캠답게 반쯤 헐벗고 있다.
새하얀 의상 속 뽀얀 가슴이 가쁘게 솟아오른다.
얘는 옛날부터 당황하거나 흥분하면 호흡이 거칠어졌다.
〈저기…… 탐방 온 거 맞으시죠? 춤 보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 사이에 무슨 춤이야. 내가 니 춤 보다 점심 먹은 거 나오면 어떡하려고
-남절이 너무 세게 나가는데?
-각도기 좀 챙겨라 남절아;
내 각도기 깨질 걱정은 안 해줘도 좋다.
애초에 깨져서 곤란한 건 내가 아니다.
이 기회에 묻고 싶은 거 다 물어본다.
-어떻게 춘자 니 성격에 남자한테 애교 떨 생각을 다했냐? 뭐만 하면 귀싸대기 올라가는 그 성격으로
〈자꾸 이상한 소리하시면 강퇴할 수 있어요?〉
-강퇴하면 너와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부 폭로할 텐데 그래도 괜찮다면
-강퇴 안 하는데?
-뭐지? 주작이야?
-대본 가능성 99%
파프리카TV도 나름 방송 플랫폼이다.
BJ들 중에 체계적인 방송을 찍으려는 사람도 있다.
B급 감성이지만 리얼리티가 있어서 나름 볼 만하다.
'미안하지만 이건 리얼리티가 아니라 진짜 리얼이야.'
아직도 주작, 대본, 방송 타령하는 시청자가 보인다.
그럴 만도 하다.
나도 솔직히 믿기 힘들었으니까.
예전에 알던 지인이 여캠을 하고 있다니?
그런 드라마에도 안 나올 해프닝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원래 현실은 항상 픽션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얘는 예전부터 싹수가 있기는 했다.
내가 괜히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단 한 명의 이성이 아니다.
물론 기억하는 이유가 비단 와꾸가 받쳐줬기 때문도 아니다.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저 방송 중이니까 개인적으로 할 말 있으면 쪽지로 보내주세요.〉
-나 방금 전에 까이고 와서 밀당할 기분 아니야
〈이상한 분이시네. 정색까지 해야 돼요? 저는 당신 모른다고요.〉
-정말 몰라? 확신할 수 있어? 아니, 확신해도 되겠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 이 녀석이 악연이듯, 이 녀석에게도 나는 악연이다.
서로가 서로를 평생 잊을 수 없는 존재다.
-춘자야
〈…….〉
-나 폰 번호 안 바꿨거든? 혹시 번호 안 지웠으면 한 번만 전화 걸어줄래?
잠시 캠 화면이 꺼진다.
시청자들이 웅성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현실 속 내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너가 떠나고 난 하루종일 멍했어. 너가 떠나고 난 좀비처럼 살았어…….〉
마찬가지의 곡을 그녀도 듣고 있을 것이다.
차마 받을 용기가 없어 받지는 못했다.
이윽고 벨소리가 끊어진다.
꺼졌던 캠 화면이 다시 돌아온다.
웃음기가 가득했던 표정이 굳어있다.
떨어지지 않는 몇 마디를 힘들게 뱉는다.
〈진짜…… 오빠야?〉
-정말 나야. 그동안 잘 지냈니?
-네 다음 삼류 드라마
-응 대본
-메이저 여캠이랑 절대 그럴 리가 없지ㅋㅋㅋ
시청자들도 블랙 말랑카우는 아니다.
비슷한 레퍼토리의 이야기 몇 번 봤을 거다.
남캠들이 여캠들과 드라마 은근히 자주 찍는다.
우리 결혼했어요, 약칭 우결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말 마음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열에 아홉은 별풍을 위한 컨텐츠다.
심지어 대기업 여캠인 만큼 의혹이 가시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 절대는 없어.'
유리야도 일단은 여캠이잖아.
두 명째가 없을 거라고 단정하면 안되지.
시청자들에게 과거가 있듯, 나에게도 지나온 인생이 있다.
-많이 고민했어. 너에게 다시 연락을 해도 되는지
〈…….〉
-용기를 얻었어. 그리고 확신이 생겼어
-리야한테 까인 거?
-까이고 진짜 고백하러 온 거야??
-뭐야뭐야 님들 이거 뭐에요. 실화에요
분위기가 점점 진중해진다.
춘자…… 아니, 이제는 달래라고 불리는 그녀도 입술이 굳는다.
한 가지가 정말 다행이다.
나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망설임이 조금은 덜해진다.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적는다.
-너 나 뒷담 오지게 깠더라?
〈……그거 봤어?〉
-그럼 모를 줄 알았냐? 아이디 항상 ParkCJ94에 비번 제기랄12였던 거까지 다 기억하고 있거든?
〈야!!〉
날카로운 고함에 순간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시청자들도 놀라서 물음표와 의문이 도배된다.
자기 자신도 깜짝 놀랐는지 입을 틀어막는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다.
무섭다, 여자라는 생물.
〈어쩌라고. 내가 너 욕하면 안돼?〉
-어쭈? 말을 놓네. 오빠한테 감히 욕?
〈하, 댁이나 처신 똑바로 하세요. 그러니까 어디 가서 욕이나 먹고 다니지.〉
-일단 전화나 받아. 통화로 얘기하자
〈싫-은데?〉
이래서 여자가 무섭다는 거다.
세상에 이쁜 여자는 두 타입이다
대우만 받고 자라서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사람.
주위의 대우를 악질적으로 이용하는 악녀.
참고로 리야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천연기념물이다
'이 녀석도 전자 후자 전부 아니었지.'
2년만에 재회한 춘자는 확실히 세월이 느껴진다.
여캠이 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어차피 얘한테 많은 걸 기대하고 온 게 아니다.
싫다는 주제에 일단 전화 연결은 어떻게든 됐다.
"딱 말할게. 그거만 대답하면 나도 진상짓 안 한다."
〈뭐?〉
"남수길 대표 이사님 기획으로 롤 대회 나가거든? 여캠 한 명 뽑아야 되는데 따라와라."
〈꺼-져!〉
이제는 가릴 것도 없다는 듯 깔깔깔 웃는다.
열혈들도 ㅋㅋ대는 것 보면 다 아는 모양.
하긴 사람이 자기 성격을 가리고 살 수는 없지.
〈빨리 안 꺼지면 니 누군지 밝힌다? 그래도 돼?〉
"실수하네. 누가 더 잃을 게 많은지 함 해볼까? 지금 바로 여기서."
〈잠깐만…… 뭐 말할 건데.〉
"처음 만났던 이야기, 썸 얼마나 탔는지, 진도 어디까지 나갔는지, 사귀었는지 안 사귀었는지…… 아, 이건 전자를 말하면 후자가 필요 없네."
〈야 이 미친 새끼야-!!〉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둘이 사귀었음??
-남절이 또 여캠 파괴한다ㅋㅋ
또라니, 리야는 확실하게 케어해줬잖아.
근데 얘랑은 애저녁에 끝나서 케어고 뭐고 필요 없다.
워낙 독한 애라 그딴 거 없이도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얘다.
'그럼에도 잊을 수가 없긴 해.'
잘하는 여자 게이머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대리 게이머」.
롤판의 어떤 유명 프로게이머가 방송에서 했던 발언이다.
물론 과한 감은 있다.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됐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 프로 리그 같은 거 열면 과반수 이상이 대리 유저야.'
과반수도 아니고 8할 이상이 대리를 받고 올 정도다.
실제로 파동이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도저히 쉬쉬하기가 힘들 정도로 썩은 물이다.
온라인 대회는 아예 대신 해주는 경우도 흔할 지경이다.
나로서도 게임하는 여자애들 상대하기 싫었다.
그런데 내가 인기남인 걸 어쩌겠니.
따라붙는 여자들이 하도 많았다.
'……물론 현실 말고 게임 내에서.'
게임을 배워보고 싶다고, 팬이라고 쪽지를 보내온다.
나 뿐만 아니라 잘하는 게이머한테는 흔한 일이다.
게임 좋아하는 여자들이 은근히 성화다.
절대 다수가 암 걸릴 정도로 못해서 문제지.
심지어 떼를 쓰며 캐리해달라고 한다.
내 성격상 딱 잘라서 전부 거절했다.
"우리 첫 만남이 진짜 강렬하긴 했는데. 그치?"
〈내가 그때 널 못 패죽인 게 천추의 한이야.〉
-둘이 무슨 얘기함?
-첫 만남? 슬슬 진짜 같은데
-모르겠다. 일단 팝콘 뜯는다!
게임을 하다 보면 간혹 팀원과 싸울 때가 있다.
왜 제 말대로 안 해주세요.
내가 왜 니 말대로 해야 돼요.
그러다가 간혹 현피라는 말이 오갈 때가 생긴다.
나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한 마디도 안 지고 따박딱박.
혈압이 머리 끝까지 올랐다.
내가 레전설인데 감히 개겨?
그래서 결국 현피 뜨러 갔다.
'개길 만한 이유가 있으셨지!'
대기 장소에 껌 좀 씹으시는 언니가 계시더라.
소위 말하는 일찐 타입이셨다.
눈 깔으려다가 남자 자존심이 있어서 싸웠다.
싸우다 보니 친해지고 가깝게 지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여러 별 일이 생기기도 했고…….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내가 인정하는 단 한 명의 여성 게이머다.
"야."
〈어쩔.〉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오빠라고 불러. 3초 유예 준다. 3……."
〈깔깔! 꼴에 나이 대우 받고 싶으세요? 개망나니 주제에?〉
"진짜 갈 때까지 가면 누가 더 손해인지 곱씹어봐. 2……."
〈오빠~, 오라버니. 제가 많이 깝-쳤죠? 화 푸세요.〉
-ㅋㅋㅋㅋㅋ이걸?
-혹시 둘이 남매 아니야?
-진짜 이건 남매간의 대화인데ㅋㅋㅋ
오라버니 같은 말하는 여동생 둔 적이 없다.
그냥 단순히 쟤가 많이 캥겨서 그렇다.
내가 입 여는 순간 여캠 인생 진짜로 끝난다.
"사실 벨소리 설정 방금 바꾼 거니까 기대하지 마."
〈오라버니한테 그딴 기대한 적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리고 니 건강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네, 어쩌라고요 오라버니~.〉
"말보로 레드 독하니까 에쎄로 바꿔라."
〈뭐?! 이런 개……〉
-실화?
-여캠한테 담배 드립ㅋㅋㅋ
-헐, 진짜 저분 담배 펴요??
딜교환은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져나오는 게 더 중요하다.
상대한테 맞는 순간 기껏 거둔 체력 이득이 물거품이다.
귀 따가운 고함이 질러지기 전에 전화를 끊는다.
'하, 속이 다 시원하네.'
BJ대표팀의 여성 멤버가 정해졌다.
#블랙 말랑카우- 흑우=호구
========== 작품 후기 ==========
어쿠루브 (Acourve) - 너가 떠나고
춘자는 비흡연자입니다
드립은 드립으로
주인공은 쓰레기통으로
컬쳐쇼크가 살짝 있을 수 있지만 얘네 둘은 원래 이런 식으로 케미가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