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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달라서 -->
치고 박았다는 느낌조차 없는 일방적인 승리였다.
이전 세트의 패배가 거짓말 같을 정도.
게임 내내 몰아붙이며 당연한 듯 승리를 가져왔다.
〈초반에 한 번만 풀리니까 간단하네. 다들 수고하셨어요~.〉
〈저희는 수고한 거 하나도 없죠.〉
〈부족한 원딜이라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딜 더 넣어볼게요.〉
살짝 불안하기도 했던 팀 내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압승을 해버리니 티어가 낮은 팀원들도 자신감을 찾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첫 번째의 패배가 너무 말도 안됐다.
다크와 샴발라의 듀오는 챌린저 대리로 악명이 높다.
챌린저가 대리를 하는 게 아니라, 챌린저를 대리한다.
즉, 챌린저 양학이 가능한 실력을 가졌다는 소리다.
그런 듀오가 멸망전에 나왔으니 패배가 가당키나 할까?
예정했던 대로 두 번째 세트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음 세트만 잡으면 멸망전 우승을 확정 짓는다.
〈다음 세트도 이런 느낌으로 갈까?〉
"이 정도면 되겠지. 보완할 필요는 안 보였으니."
들떠 보이는 샴발라의 어조와는 대조적이다.
조금은 기뻐해도 되거늘.
다크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덤덤하기만 하다.
-승자의 여유?
-다크는 원래 이겨도 안 기뻐함ㅋ
-이기는 것 자체가 당연하다는 거겠지~
-크~! 다크가 다크해버렸다.
패배로 인해 들끓었던 여론을 가볍게 불식시켰다.
채팅창에는 어둠…… 아니, 다크가 다크했다!
제 실력을 보였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
은근하게 있는 그의 팬들은 스스로 자랑스럽다.
이상한 변수만 없으면 다크가 당연히 이기지.
정작 다크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해.'
덤덤한 게 아니다.
생각이 많아진 거다.
그 이유는 하나, 상대의 실력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마치 야생 동물과도 같은 공격적인 기세.
그러면서도 노련한 사냥꾼처럼 절도 있다.
비슷한 느낌은 길었던 그의 롤인생에서도 단 한 명 뿐이다.
'테이커라…….'
순간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말도 안되는 생각에 고개를 젓는다.
그는 이미 프로게이머로 데뷔를 해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자신과는 달리 양지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워서?
그럴 리가 없다.
단순한 자신의 착각.
익숙하지 않은 대회라는 무대 탓이다.
한 번 더 경기를 치른다면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상대가 그에 준하는 실력자라 하더라도 경기는 이미 이겼어.'
자신이 모르는 실력자라니 의아하긴 하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는 결정이 났다.
설사 테이커 본인이 와도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롤을 잘 모르는 사람은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세계 최고의 게이머, 랭커면 무적인 거 아니야?
롤은 RPG가 아닌 AOS게임이다.
누구나 동등한 스타트 지점을 가진다.
활약한 환경을 안 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또한 팀 게임이라는 환경도 자신들에게 웃어준다.
〈마지막 세트는 블라인드지? 그럼 무조건 이겼네.〉
팀의 정글러 샴발라가 자신만만한 듯 소리친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는 전부 밴을 당했다.
다른 챔피언도 준수하게 소화하니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픽은 하나.
콩머스야 말로 샴발라의 기량을 100% 이끌어낸다.
또한 이는 상대가 자랑하는 야흐오의 카운터이기도 하다.
'내가 코리아나로 블루 버프 이후 주도권만 가져오면 달리 변수는 없겠지.'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구태여 상대를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 테이커 또한 솔로랭크에서 수도 없이 이겨봤다.
자신이 괜히 테이커의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불릴까?
이윽고 마지막 세트의 픽이 시작된다.
밴이 없는 픽, 블라인드 세트다.
이미 검증이 끝난 조합에 시그니처 픽이라는 화룡점정을 더한다.
내어놓은 조합과 전략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것이 과연 정답의 동의어인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지금의 다크는 알지 못했다.
* * *
진심전력을 쏟아내야 하는 마지막 세트다.
그 정도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
어깨 위에 걸린 무게는 어중간하지 않다.
'물론 까다롭긴 해.'
마지막 세트는 블라인드 픽으로 치러진다.
준결승전도 그랬다고 하던데…….
안타깝게도 2승 0패를 해서 할 일이 없었다.
다소 익숙하진 않아도 안 해본 건 또 아니다.
그도 그럴게 일반 게임이 바로 블라인드다.
특히 리야와는 자주 해본 경험이 있다.
"리야야. 오빠 믿지?"
〈이번 판은…… 믿기로 했으니까 믿을게요.〉
이미 게임이 시작하여 리야와 봇라인에 섰다.
아옹다옹 하는 상태이긴 하나 경기는 경기.
리야도 그렇게 공사 구분이 안되지 않는다.
"가서 죽어."
〈히이잉…….〉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라인 스왑.
이전 세트와 마찬가지의 흐름이다.
이미 서로 한 번의 킬교환을 마친 상태다.
'진짜는 여기서 상대가 텔을 탄 거지.'
아군 탑라이너는 前프로인 르간님이다.
다이브에 대처 능력이 훨씬 더 좋다.
최소 스펠은 하나 더 빼고 죽는다.
문제가 있다면 텔레포트.
상대는 아예 주제 파악을 해버렸다.
어차피 죽으니까 죽고 다시 텔을 타자.
이전 세트에서도 말렸던 부분이 이때였다.
당시 인성제로는 다이브를 포기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판단임은 인정한다.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최선은 아니다.
나는 승부에 한해 피도 눈물도 없다.
망설임 없이 제물을 던져준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한 번 다이브를 했던 이상 체력도, 스펠도 온전치 않다.
하지만 한 명이 희생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결정적으로 내가 일반적인 원딜러가 아니다.
다대기!
야흐오의 회오리가 쇈을 띄우며 지나간다.
CC기는 초반 다이브에서 훨씬 위협적이다.
그 위로 그어지는 깃창도 빗나갈 일이 없다.
러이갓이 쓸데없이 스킬 낭비하지 않도록 직접 오더했다.
이어진 에어본 연계와 마지막 바람 가르기.
리야의 희생으로 적을 죽일 수 있었다.
"서럽냐?"
〈몰라요. 저 맨날 죽이고, 그냥 필요 없잖아요.〉
"야, 서포터는 원래 희생하는 역할이야."
〈희생이 아니라 제물 아니에요?〉
뾰로통한 목소리로 툭 쏘아 붙인다.
삐져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리야가 한 말은 솔직히 틀리지 않았다.
'오…… 은근 날카로운데?'
원래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다.
희생과 제물은 한 끝 차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
"리야야, 너 못해."
〈알아요! 안 말해줘도 안다구요!〉
진심으로 서러운 듯 소리친다.
삐진 것을 넘어서 화가 났다.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나랑 함께라면 아니야. 내가 보여줄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걸."
내가 진정으로 해주고 싶었던 말.
대답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 잠깐 사이에 첫 번째 포석이 이루어졌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봇라인 포탑은 다른 라인보다 무르다.
리야가 죽어도 충분히 밀고 빠질 수 있다.
제물이 아닌 희생.
단순히 교환을 넘어 모두 계산한 결과다.
메타 분석은 늦은 만큼 더욱 세심하게 하고 있다.
오늘 새벽에는 아예 밤을 새서 준비했다.
그 보람이 플레이와 오더에서 드러난다.
이미 밑그림은 그려 놓았다.
다소의 무리를 동반하겠지만…… 투자다.
리야와는 좋게 지내서 결코 나쁠 것이 없는 관계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러고 싶다.
진심 어린 관계로 되돌리고 싶다.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 * *
마지막 세트에 대한 전망.
멸망전이 아무리 프로 리그가 아니더라도 결승전이다.
그리고 그럴 기량이 없는 캐스터와 해설자도 아니다.
진지하게 승산을 짚고 넘어간다.
〈양팀의 전략과 이기는 그림은 서로 간단합니다.〉
클끼리가 짤막하게 설명을 해준다.
서포터&정글러가 강한 다크팀.
탑솔러&원딜러가 강한 러이갓팀.
전자는 초반 영향력이 좋고, 후자는 후반 영향력이 좋다.
문제가 있다면 롤은 초반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 점이 이전 세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래도 이전 세트보다는 훨씬 스타트가 좋지 않나요? 킬도 하나 앞서고 있는데…….〉
김의정 캐스터의 생각도 결코 틀리지 않다.
그 예가 바로 첫 번째 세트다.
초반이 유리하게 시작하자 버틸 만하다.
후반에 가니 상대가 안되는 지경에 이른다.
클끼리가 설명을 보충해나간다.
〈하지만 첫 번째 세트와는 또 다릅니다.〉
〈라인 스왑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어째서 최근 서포터의 캐리력이 대두될까? 그 이유의 반절 정도가 라인 스왑에 의한 초반 움직임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라인전이 아니라면 양팀 서포터가 라인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다.
즉, 서포터의 로밍 전성 시대.
그런데 양 팀 서포터의 티어 차이가 어마무시하다.
〈CRL백인은 챌린저도 찍어본 나름 실력이 있는 아마추어고, 유리야님은 유망하기만 한 아마추어죠.〉
〈유망한 게 맞죠!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거니까요~.〉
-이걸 또 엿을 먹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리야 힘든데 ㅠ.ㅠ
-클끼리 인-성 확인
심지어 CRL백인은 챔피언의 특징을 활용한 초반 로밍이 특기다.
광우스타는 2렙부터 교전을 유리하게 열 수 있다.
하드 CC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쿵! 쾅!
그 광우스타의 날카로운 로밍.
이전 세트와 마찬가지로 후벼 판다.
후벼 파는 대상은 탑라이너 르간의 잭트다.
〈하지만 추가 진입은 힘들어 보입니다. 뒤에 한나가 서포터처럼 딱 붙어있거든요.〉
〈누가 보면 잭트가 원딜이라도 되는 것처럼 성심성의 보조하고 있습니다.〉
한나의 회오리 때문에 추가적인 CC연계를 할 수 없었다.
광우스타와 콩머스는 입맛만 다시고 돌아간다.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끝이 아니다.
퀴이이잉…!
콩머스가 무서운 속도로 굴러간다.
콩머르기니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눈으로 봐도 피하기가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
쿠훙!
박아버리고 도발을 건다.
이번 대상은 봇라인을 밀던 야흐오다.
원딜러 헤이클린의 호응과 광우스타의 쿵쾅!
일단 CC기는 연계가 됐지만 부족하다.
한 발 늦게 도착한 한나가 실드를 건다.
그리고 탈진으로 데미지를 격감시킨다.
〈하필 탈진이 광우스타에게 들어간 게 옥의 티이긴 한데…… 이러면 살았죠?〉
〈헤이클린 딜은 어차피 장막에 씹히니까요. 결과적으로 한나가 두 번 슈퍼 세이브를 해냈습니다!〉
-리야 각성?
-광우스타 탈진 무엇……
-그래도 엄청 잘하고 있는데?
이전 세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한나가 광우스타의 움직임에 발을 맞춘다.
스펠이 빠지더라도 킬을 안 주는 상황까지는 간다.
어찌 이리 빨리 성장을 한 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우연한 선전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도 한두 번이다.
계속해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잭트가 한 번 죽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나름 선방이죠? 정말 각성이라도 한 걸까요?〉
김의정 캐스터도 궁금해서, 그리고 정말 놀라워서 한 마디 한다.
이전 세트의 패배 이후 피드백이 오갔을 수도 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위해 노력을 한다.
하지만 과연 노력을 한다고 좁혀질 수 있는 격차일까?
설사 팀에서 오더를 했다고 해도 잔실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전 세트라고 오더를 안 했을 리가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다.
클끼리가 알아챘다는 듯 손뼉을 친다.
〈제가 가만히 봤는데 이건 백업을 가는 게 아닙니다.〉
〈백업을 가는 게 아니라고요?〉
〈그냥 무작정 아군에게 달려가는 거에요. 물론 아예 근거 없는 건 아니고 라인 상황에 맞춰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복잡한 오더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애초에 브론즈&실버가 아니다.
그리고 게임 중인 선수들이 세세한 오더를 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거라면 우리집 강아지도 할 수 있다.
이리와!
앉아!
엎드려!
잘했어~ 간식.
이런 느낌이라면 아무리 실력이 떨어져도 이해하기 쉽다.
유리야가 하고 있는 건 그보다 더 간단하다.
저 네 마디 중에서 딱 한 마디다.
〈잭트가 이리와~ 하면 쪼르르 달려가고, 야흐오가 이리와~ 하면 쪼르르 달려가고. 주인님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이 있어요.〉
-주인님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야 굴-욕!
-유리야 한 마리 키우실래요?
물론 일련의 플레이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한다.
주도적인 공격은 꿈도 꿀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줘도 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일방적이리라 예견됐던 게임에 새바람이 몰아친다.
========== 작품 후기 ==========
이전에 말씀 드린 새로운 히로인이 드디어 예정되었습니다!
멸망전 다음 파트에서 곧 나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