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94화 (94/443)

###94

<-- 시간이 달라서 -->

각 챔피언마다 장점과 단점이 따로 있다.

이를 테면 코리아나.

라인전이 꽤 강한 편에 속한다.

대신 챔피언이 상당히 수동적이다.

콰락!

코리아나의 구슬이 미니언을 둔탁하게 때린다.

장판이 깔리며 다시 되돌아온다.

원거리 미니언 세 마리가 한 방에 정리된다.

그 별 일 없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클끼리가 입을 열었다.

〈채팅창에 자꾸 언급이 나오는데…… 어디까지나 드립이죠. 드립이기 때문에 저도 농담 삼아 한 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롤판 3대 전설이다.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진짜로 있을 일도 없고, 있다고 해도 설마.

하지만 마지막 하나는 지금 이 순간 실현되고 있다.

〈왼손 쓰는 뱅기, 전역한 레전설, 블루 먹은 다크. 마지막 하나는 다크의 팬들이 붙인 말이겠죠. 물론 의미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다 제쳐두고 순수하게 실력만 따졌을 때.

어둠의 다크는 프로게이머에 준하는 실력자다.

챌린저 1위를 밥 먹듯이 찍으니 오죽할까?

그런 그의 성향을 드러내는 플레이가 하나 있다.

바로 블루 먹었을 때 제값을 해내는 것.

어째서 미드에게 블루를 줘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콰락!

라인을 민 코리아나가 강가쪽 시야를 먹는다.

와드를 박고 유령을 빼먹는다.

그리고 다시 라인에 돌아가 압박한다.

일련의 행위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어째서 미드에게 블루를 줘야 할까? 사실 롤 초창기부터 줬던 건 아니에요.〉

〈프로 대회에서 주다 보니 정착된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저도 사실 주기 싫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럼 왜 프로 리그에서는 미드에게 블루를 주게 됐을까?

클끼리는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한 줄이다.

미드가 라인을 빨리 밀게 하기 위함.

더티 파밍, 딜교환 이득은 부수적인 것이다.

라인이 밀려있어야 팀적으로 게임을 굴리기 편하다.

이~쿠우!

이를 테면 정글러의 동선 짜기가 수월해진다.

탑라인에서 허겁지겁 CS를 먹던 르간의 잭트.

벽을 넘어 튀어나온 리심에게 봉변을 당한다.

〈광우스타의 쿵쾅 연계되며 사망! 잭트의 수난시대가 계~속됩니다.〉

김의정 캐스터의 어조에서 안타까움이 묻어 나온다.

라인 스왑 이후 내내 고통을 받고 있다.

포탑도 진작에 밀려 사릴 수조차 없다.

그런 와중에 적 정글러와 서포터가 시도 때도 없이 찌른다.

아군이 그만큼 해준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선취점을 먹은 리심이 킬값을 톡톡히 하며 스노우볼을 굴리네요.〉

〈코리아나가 블루를 먹은 이후로는 미드도 압박 당하고 있고…… 이건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라인 스왑.

롤챔스 경력이 있는 만큼 이해가 깊다.

무엇보다 정글러와 서포터가 풀려버렸다.

〈다크팀의 로밍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거의 8대2까지 나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크팀을 썩 좋아할 수가 없는 클끼리다.

하지만 해설을 맡은 이상 편파는 하지 않는다.

이전 세트와는 확실하게 다른 모습으로 승기를 굳혀나가고 있다.

그에 반해 러이갓팀의 대응은 시원찮다.

정글러와 서포터의 현저한 기량 차이.

티어대가 낮은 만큼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한타에 들어가면 르간과 인성제로가 뭔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보여준다는 것도 베이스가 받쳐줄 때의 이야기죠. 지금 리심이 워낙 잘 커서 정글러의 딜이 아니에요.〉

마스터와 챌린저가 잘한다는 것도 기본적인 성장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하도 초반부터 밀어붙이니 CS 먹기도 벅차다.

눈덩이가 빠른 속도 굴러 내려간다.

* * *

게임을 하다 보면 이따금 팀탓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아군이 딱 이 정도만 해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멸망전은 경우가 다르다.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긴 하지.'

브론즈&실버가 어찌 천상계의 로밍에 따라가겠는가?

억지로 따라가도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이를 테면 판단력 차이로 죽는다던가.

애초부터 정상적인 라인전을 했어야 했다.

라인 스왑 이후로 모든 것이 꼬였다.

특히 포탑을 못 깼던 게 컸다.

'아무튼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당장이 중요한데…….'

게임의 구도가 많이 갑갑하다.

라인 푸쉬가 느린 르풀랑.

반대로 상대 코리아나는 빠르다.

정글 차이 때문에 킬각을 보기도 힘들다.

하다 못해 블루라도 있었다면.

정글이 하도 밀리니 블루도 주지 못한다.

못 주는 건 그렇다 치는데 정글 돌다 죽는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샴발라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슈발 광우스타 뭔데?! 우리 정글에 상대가 먼저 오는 거 실화냐?〉

상대팀은 이제 대놓고 아군 정글에 들어온다.

이에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다.

물론 러이갓의 잘못이라 재단할 것도 아니다.

〈하~~ 미치겠네. 자꾸 말리네. 적 서폿 홍길동인데 우리 서폿 언제까지 라인에 짱 박혀있을 건데?〉

〈티어 차이가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아니, 늦더라도 와서 실드랑 궁 써줬으면 살았잖아!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게 힘드니까 실버겠죠~. 저는 그 서폿이랑 라인전 계속 하고 있는데 입 좀 다물고 하십시오.〉

러이갓과 인성제로가 답도 안 나올 이야기로 투닥거린다.

그 스플래쉬 데미지는 고스란히 유리야에게 튀긴다.

그도 그럴게 백업을 못 간 유리야의 잘못.

'인제 말대로 티어가 낮은데 어쩌겠어.'

하지만 롤이라는 게임이 원래 그렇다.

설사 이유가 있더라도 싸우게 된다.

왜 봇라인에 갱 안 와줌?

미드탑 터트리고 있었는데요;;

아니, 어쩌라고 봇갱 안 오면 나 안 함ㅅㄱ

솔로랭크에서 왕왕 보이는 풍경이다.

성숙해야 할 천상계조차 종종 그런다.

마찬가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결승전.

티어 낮은 건 알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래도 리야도 분명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다.

"리야야."

〈……네.〉

"기죽지 말고 해. 만약 져도 다음 판에 잘하면 되지."

〈선배도 그냥 욕하세요. 평소처럼.〉

-싸-늘

-물소짓 실패했죠? 역겹죠?

-이미 끝났어~ 그냥 욕하고 속이라도 풀자!

'누가 보면 내가 허구헌날 리야를 갈구기만 한 줄 알겠네.'

채팅창에 어그로가 극성이다.

게임이 안 풀리면 못할 수도 있는 거지.

열심히 하고 있는 애를 왜 매도하는지 이해가 안되네.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는 점점 상대 쪽으로 넘어간다.

게임의 패배는 사실상 확정이 되었다.

리야도 더욱 풀이 죽어간다.

-유리야방에 어그로 개많네

-서폿 차이로 게임 진다고 까이는 중

-리야 위로 좀 해줘라ㅋㅋ 기회다

이렇게 여론이 안 좋을 때 홀로 리야를 편들어주는 것.

그런다면 다소 응어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기회주의자다.

그리고 나는 살짝 기회주의자다.

겨우 그런 이유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진실로 리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리야야"

〈왜요.〉

"알고는 있었지만……"

〈뭘 알고 있었는데요.〉

"너 진짜 드럽게 못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갑자기?

-진짜 속을 풀어버리네……

-유리야 표정 썩음!

아니, 여기서 내가 유리야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

누가 봐도 못하고 있고, 누가 봐도 못하는 티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리야야."

〈저 게임에 집중할게요.〉

"집중하지 마. 어차피 졌어. 니가 드럽게 못해서 졌다고!"

〈흐아아아앙…… 이 나쁜 놈아!!〉

-나쁜 놈아래ㅋㅋㅋ

-사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진짜 나쁜 놈이긴 하다ㅋ

-나쁜 놈이 뭐야.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어!

이렇게까지 말을 하면 보이스 채팅이 끊길 위험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경기 도중.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대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그렇기에 일부러 분위기가 안 좋은 지금 대화를 꺼낸 거다.

〈와~ 사람이 어떻게 저 정도로 쓰레기냐. 형 혹시 사이코패스에요?〉

"야! 대화 끊지 말고 그냥 들어."

〈이걸 어떻게 듣고만 있어. 유리야 울고 있는 거 안 들리냐고요!〉

내가 인성제로 니보다 유리야를 알면 백 배는 더 잘 알지.

깐족거리며 나설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한숨 푹푹 쉬면서 까다가 갑자기 흑기사 코스프레하는 거 역겹네?

"리야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

〈맞아요. 제가 못해서 졌어요. 저 빼고 하세요. 어제처럼 운영자 끼세요.〉

단단히 삐졌는지 완전 뾰로통한 어조로 안 하겠다는 말까지 해버린다.

맞아, 이렇게까지 말하면 화내겠지, 엄청 화내겠지.

근데 이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사람들은 진짜 잔인하다.

속에 담은 말을 일부러 안 꺼낸다.

지금 내가 리야에게 내뱉은 말들?

확신하는데 멸망전 끝나면 그 이상으로 욕 먹는다.

유리야 참가 왜 했냐, 그냥 또 탈주나 하지.

다른BJ들도 대놓고 디스할 게 뻔하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잔인하겠지. 근데 그때 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져.'

패배가 확정되고, 각BJ들의 팬심이 들끓는다.

유리야에 대한 동정 여론도 어느새 사그라든다.

지금도 은근히 툭툭 한 마디 하고 있지 않은가.

나중 가면 더 하지, 덜 할 일은 결코 없다.

"리야야, 내가 너한테 심한 말을 하는 건 내 소중한 지인이 못한다고 욕 먹는 게 진심으로 안타까워서 그래."

〈맞아요. 저 안타까워요. 아마 평생 못할 거에요. 곧 있으면 강등 당해서 다시 브론즈 갈 거에요.〉

"잘 아네."

〈흥!〉

-리야 졸귀ㅋㅋㅋㅋ

-흥! 저 삐졌어요~

-근데 곧 다시 강등 당하는 건 ㄹㅇㅋㅋㅋ

지금 흥이라고 했니?

귀엽긴 한데 나중 가면 흥이 아니라 흥건해진다.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면서 감성팔이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오히려 재미삼아 놀려대는 인간들만 늘어날 뿐이다.

게이머의 세계, 파프리카TV는 상상하는 이상이다.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리야야, 우리 사고 한 번 쳐보자."

〈제, 제가 선배랑 사고를 왜 쳐요오.〉

"아니, 그 사고 말고…… 다시 봇듀오 가보자고. 우리 둘이면 이길 수 있어 정말로."

〈…….〉

롤판에서 욕 안 먹는 방법은 예쁜 게 아니다.

아무리 캠 각도 조절하고 조명 환하게 켜도 못하면 욕 먹는다.

마찬가지로 프로게이머들도 유쾌하게 떠들고 쇼맨쉽 좋아도 경기력 떨어지는 순간 나락이다.

'원래 게이머의 세계가 비정해.'

그 비정한 세계에 리야를 끌고 들어온 이상 마지막까지 책임은 지고 싶다.

잘못한 걸 용서 받고, 용서 받지 못하고 이전의 이야기다.

〈……한 번만 믿어볼게요.〉

"그래줘야지. 오빠 한 번 믿어봐."

-세상에서 제일 믿으면 안되는 오빠인데;;

-이 쓰레기를 믿는다고? 혹시 서달라고 하면 보증도 서주나?

-ㄹㅇ 이 인간이라면 나중에 진짜 저질러도 모른다

사람을 대체 어떻게 보고!

저렇게 물타기 하는 인간들은 평생 못 본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진국인지 리야는 알고 있다.

〈형이 다음 판 원딜 가게요? 그럼 제가 다시 미드?〉

"일단 고려만 하고 있어."

〈오케이 확인~. 큰 그림 그리고 있었네. 형 생각보다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네요?〉

나만큼 선량하고 타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 드물다.

인성제로가 나에 대해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오해라는 건 결국 풀리게 돼있다.

리야 또한 그래주리라 믿는다.

"리야야 근데…… 혹시 다음 판 캐리하면 용서해주냐?"

〈몰라요. 그때 가서 생각할래요.〉

"그, 그래.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지."

-마지막까지 실망을 안 시키는……

-인간이 어떻게 저리 추잡할 수 있을까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하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