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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cience -->
〈형.〉
"왜 인제야."
〈형 진짜 쓰레기에요?〉
"아니, 이 새끼가 감히 형한테……."
사건 당일 오후 11시 47분.
밤늦게 방송을 켜서 진실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상은 아직까지도 잠을 안 쳐자는 백수나 다름 없는 팀원들.
〈형이고 나발이고 댁은 그냥 쓰레기에요 쓰레기. 재활용도 안되는 인간 쓰레기라고요.〉
-인성제로 입에서 쓰레기 소리가 나오네ㅋㅋㅋㅋ
-인제조차 환멸한 인-성!
-자존심 강한 두 쓰레기의 숨 막히는 대결ㄷㄷ
사건의 개요는 다름이 아니다.
낮에 있었던 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파프리카TV측에서 연락이 왔었다.
〈안녕하세요. 야흐오 플레이하셨던 BJ유리야남친절대아님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명품 광우스타 플레이하신 박인주 운영자님 통화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인주 운영자님이 정말 여성분이었던 모양이다!
시청자들의 드립이 우연의 일치가 돼버렸다.
첫 마디부터 한숨이 푸욱~ 새어 나온다.
〈이런 일로 연락 안 드렸으면 좋겠어요.〉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날에 같이 술을 마실 수는 있는 노릇이다.
운영자가 BJ의 사생활에 간섭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술이 약한 걸 알면 먹이지 말았어야지.
"제가 쓰레기입니다. 인간 쓰레기입니다. 저를 탓하고 욕하고 벌해주세요."
〈이런 사건이 처음이시고, 정황을 검토해본 결과 경고 선에서 끝내겠지만 앞으로는 주의 좀 하세요."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여혐이란 소리 나오는 거 아시죠? 저한테도 게임 중에 자꾸 쿵쾅이라 하시던데…….〉
"……."
목소리에 한기가 서린 듯했던 건 내 기분 탓일까?
정말로 모르고 한 거지만 실례가 됐다면 죄송하다.
아무튼 박인주 운영자를 통해 경고 조치를 받았다.
'그래, 받아도 싸지.'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다.
한동안 욕은 먹겠지만 내가 먹는 게 낫다.
본인한테도 일단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글쎄…… 모르겠다.'
불과 반나절 전의 이야기다.
* * *
"리야야."
한 마디 내뱉자 뚜-!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끊기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
차단을 당한 듯하다.
그래서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주말 오후, 교통이 빡빡한 택시를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저기 21층에 사는 유리야 만나러 왔거든요? 어제도 왔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유리야네 아파트 1층 안내 데스크.
세 번째 오는 것임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1층 안내 데스크에서 방문증을 끊어야 한다.
"최성훈씨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본인입니다."
"그런 사람 모른다는데요?"
"……."
즉, 끊지 못하면 못 들어간다.
유리야가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내가 택시까지 타고 찾아왔는데 감히 문전박대를 해?
'그래, 할 만하지.'
미안하다, 니가 정의다.
하지만 순순히 돌아갈 내가 아니다.
유리야의 집은 이 건물의 21층.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방향은 남동쪽이다.
'이런 좋은 아파트가 남향이 아닐 수는 없을 테니.'
방위야 그렇다 쳐도 방향은 틀릴 일이 없다.
내가 그토록 개미를 내려보듯 즐겼다.
그 울창했던 공원에서 딱 반대편.
주위에는 정자 하나와 돌로 된 계단 투성이다.
사람 왕래가 그다지 잦은 곳이 아닌 듯하다.
다행이다.
'21층이니까 아마 저 창문 너머려나…….'
어찌나 높은지 고개를 꺾듯이 올려 봐야만 보인다.
혹시 모르니 핸드폰으로 한 번 확인도 해본다.
파프리카TV앱을 통해 보자 방송 중.
유리야가 확실히 자기 방에 있다는 소리다.
후우…….
폐 속에 있는 공기를 마지막 한 줌까지 내뱉는다.
잠시 자세를 가다듬고 공기를 빨아들인다.
군대에서 아침 점호할 때가 생각난다.
전방에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처음에는 목도 쉬고 진짜 뭐 같았는데…….
나중 가면 은근히 스스로 외치게 된다.
그도 그럴게 사람이 살면서 큰 목소리로 부르짖는 경우가 잘 없다.
나만 해도 전역 이후로 목청을 터트려본 적이 없었다.
말년병장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빡대가리야아!!!"
내 민간인 인생 첫 번째 흑역사가 탄생한 날이었다.
* * *
"인제야."
〈네, 형.〉
"그래서 내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왜 기본적인 개념이 없냐는 소리까지 듣고 왔다."
〈솔직히 욕 먹어도 싸잖아요. 그나마 그거 때문에 한 가닥 민심이 남은 건데.〉
-ㄹㅇ상남자ㅋㅋㅋㅋ
-9시 뉴스 나올 뻔했자너~
-리야 방송 보다가 빡대가리야 소리 들려서 진짜 깜놀했는데ㅋㅋㅋㅋㅋ
고급 아파트 단지 내에서 난동을 부린 셈이다.
유치장 가는 것도 고려해서 저지른 소란이다.
다행히 유치장을 가는 일까진 면했지만.
〈방금 소리 선배가 친 거에요?!〉
"그래, 문 안 열어줘서 시위 중이다."
〈빨리 가요.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너 올 때까지 무릎 꿇고 있을게. 끊는다."
얘가 응어리가 져도 단단히 진 모양이다.
솔직히 헐레벌떡 나와주지 않을지…….
기대하고 밀당을 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
뚜-!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하는 말이.
〈저 바론 치고 있어요!〉
"아,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기다릴게."
그 바론 스노우볼이 경찰서까지 이어지리라고 당시에는 몰랐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경찰관 아저씨들이 오시더라.
여기서 이러면 안된다고, 신고 들어왔으니 따라오라고.
리야를 만난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저녁이었다.
치한 아니다, 스토커 아니다.
경찰서에서 취조를 당하며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었다.
상황을 하나하나 풀어 설명했음에도 귓등으로도 안 들어준다.
주민인 리야가 와서 해명하자 다음부터 이러지 말라면서 풀려났다.
"바론 한타…… 이겼니?"
"지고 넥서스 밀렸어요……."
"그래? 힘내."
"선배두요."
경찰서 밖으로 나오는 동안 이상의 대화는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며 설렁탕집에 갔다.
기념으로 두부전도 하나 시켰다.
살면서 처음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서에 간 거라 나도 많이 당황했다.
약국에 가서 청심환도 하나 사먹고 진정이 된 후에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시켜 놓고 조용히.
어색했지만 사과는 받아주었다.
〈그게 무슨 사과를 받아준 거야! 스케일에 압도된 거지~. 여자는 그런 뒤끝 한 10년 간다니까?〉
"니가 그렇게 여자를 잘 알아?"
〈몰라요. 형은?〉
"알면 이러고 있겠니?!"
-모쏠들의 대화……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다
-근데 내일 멸망전 진행은 가능?ㅋ
어색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자기가 더 이상 멸망전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이대로 참가하면 못한다고 욕만 먹을 거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이 자꾸 뭐라고 한다.
그 원인 제공자가 나라서 뭐라 할 말이 없더라.
빠르게 방법을 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이 늦은 밤에 팀원들이 모인 이유가 그것이다.
〈그냥 오늘처럼 운영자 끼고 하면 안돼? 박인주라는 분 잘하더만?〉
"저기요. 러이갓씨. 그러면 저 리야랑 평생 손절이에요."
〈남친 아니라메? 안 사귄다메? 그럼 됐네 뭐. 해결된 거 아니야?〉
"리야는 친동생 같은 아이라고요! 그리고 제가 쓰레기라도 정도는 지켜요."
-캬~ 쓰레기계의 양심 납셨네
-그러게 애초에 잘못을 하질 말지ㅋㅋ
-소 잃고 마구간 고치는 각 ㅇㅈ?
마구간이 아니고 외양간이다.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이다.
나도 그 속담의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니다.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집 떠난 소가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반겨주지!"
어떻게든 리야가 멸망전을 참가할 마음이 나게 만들어야 한다.
참가만 하면 다시 원래의 관계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묵은 감정이 해소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함께 달려온 시간이 있지 않은가?
수많은 시련을 넘어 우승을 거두는 값진 순간.
그 고취감이면 다소의 앙금은 훌훌 털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장 힘든 시련은 댁이 제공하지 않음?
-그냥 할복이 답이라니까?
-남절이 그래도 나름 진실되게 사과했는데ㅋㅋ
그렇게 리야를 제외한 4인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해봤다.
거의 쓰잘데기없는 의견만 나왔고 결국 방법은 하나.
리야와 내가 헤어지는 것이다.
〈형.〉
"어 인제야."
〈그럼 제가 유리야랑 바텀 갈게요. 형이 저 대신 미드 서세요.〉
"그래줄래? 할 수 있겠어?"
〈뭐……, 다소의 암은 감수하겠습니다.〉
브레인스토밍에서 모두가 인정한 방안이다.
자칭 모쏠이 아니라는 시청자들의 협조도 얻었다.
리야는 지금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시기다.
나와 리야를 형식적이나마 떼어둘 필요성이 있다.
다행히 인성제로가 자진해서 맡아주기로 했다.
나 대신 원딜 포지션을 가는 걸로 합의봤다.
처음 팀을 짤 때는 인성제로가 원딜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열 받네?
"애초에 니가 리야랑 봇듀오 섰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그건 인정.〉
"나도 쓰레기지만 너도 만만치 않게 쓰레기야. 애가 못해도 이해하면서 같이 하면 되지. 니가 계속 못해 먹겠다고 하니까 애가 상처를 입은 거잖아!"
-이걸 인성제로한테 패스한다고?
-오오 흥미진진한데?
-과연 누가 최후의 쓰레기가 될 것인가!
〈그래도 형 정도는 아니에요! 나는 그런 꼼수 떠올리지도 못했지만, 떠올렸어도 실천에는 못 옮겼을 거야.〉
"야, 싸울수록 더 추해진다. 그냥 우리 둘 다 쓰레기야."
〈그래요. 저도 형 재활용은 되는 쓰레기로 봐줄게요.〉
-크 신분 상승잼!
-이제 재활용은 가능하자너~
-진짜 둘이 작정하고 유리야 엿먹였네ㅋㅋㅋㅋ
곰곰이 되돌아보니 그런 감이 있네…….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만다.
유리야 입장에서는 팀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는데 그 나한테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 맞은 셈이다.
'제발 길 잃은 소가 다시 외양간에 돌아와 줬으면 싶다.'
그런 마음으로 팀 내의 포지션을 재분배했다.
사실 재분배라기 보다는 원래대로 하게 됐다.
결승전을 하루 남기고 해버린 결정이긴 하나…….
팀이 아예 공중분해 되는 것보다야 낫다.
〈저 솔직히 미드에서 버스만 탔었는데 주포지션 가서 빡캐리 해볼게요! 분위기 다시 살려봐요!〉
〈솔직히 인제 미드 너무 느낌 없었어. 제대로 된 미드 오는 순간 미드&정글 캐리로 게임 끝나는 거야~.〉
"아……."
-남절이 아차 했는데?
-유리야에서 탈출하니 정글 러이갓ㅋㅋㅋ
-미드&정글 캐리 그림 오지고 지리고 레리꼬~ 스무th~~
업보가 있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팀 내의 협상 방안을 유리야에게 알렸다.
다행히 5분이 지나서 까톡 답장이 왔다.
알겠다고, 해보겠다는 짤막한 대답.
'원래 늦어도 1분 30초 내에 답장이 오는 수다쟁이 녀석인데.'
답장 속도와 내용만 봐도 아직 앙금이 안 풀렸다.
이 앙금 풀 수 있을 때 안 풀면 평생 갈지 모른다.
내가 싸가지 없고, 양심도 없고, 개차반이긴 해도 내 사람한테까지 그러진 않는다.
스스로 말하긴 뭣하지만 챙겨주지 않는 척 은근히 챙겨주는 타입이다.
근데 이번 사건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감이 있다.
그 정도로 유리야가 힘든 걸 알았으면 안 했겠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긴 하지만……'
포기하는 순간 진짜로 끝이다.
엎질러진 물이라도 필사적으로 긁어모아야 한다.
어쩌면 이번 결승전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의미를 담게 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주인공도 가끔은 벌을 받아야겠죠
리야도 감정이 있는데
아무리 착해도 가끔 폭발하고 티격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