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88화 (88/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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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cience -->

준결승전, 크하하팀을 상대로 한 가벼운 승리.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긴 하나…….

파급 효과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크하하 상대로 원딜 차이 썰어버리네ㄷㄷ

-야흐오 원딜 겁나 좋은데? 뭐지? 뉴메타?

-야흐오 원딜 배우러 왔습니다^^

.

.

.

두 번째 세트까지 깔끔한 전승.

2승 0패로 크하하팀을 찍어 눌렀다.

봇라인에서의 트리플 킬이 쐐기가 됐다.

이전 세트와 달리 정글러가 트롤챔이 아니다.

마이가 왜 마인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봇라인의 승기를 바탕으로 깔끔하게 스노우볼을 굴린다.

이니시 챔피언과 에어본이 확실하니 진입각을 잡기 쉽다.

첫 번째 세트 만큼 일방적이진 않았지만…….

보다 안정적으로 승리라는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었다.

"제가 왜 원딜을 이렇게 잘하냐고요?"

〈아니, 야흐오 원딜은 통상적인 원딜이…….〉

"그건 제가 바로 원딜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동문서답 무엇?

-자랑하고 싶어서 신난 거 같은데?ㅋㅋ

-원딜로 캐리한 거 인정이자너~

준결승전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파프리카TV 멸망전 김의정 캐스터.

워낙 캐리를 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 주된 화제는 다름이 아니었다.

〈진짜로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네."

〈리픈 원딜도 그렇고, 야흐오 원딜도 그렇고. 흔하지 않은 픽인데 어떻게 확신이 있으셨습니까?〉

설마 중요한 대회 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픽했을까?

그럼에도 대놓고 물어보니 대답하기 참 민망하다.

확신?

에라 모르겠다.

저지르자는 심정이다.

"야흐오가 아직 신규 챔피언이잖아요."

〈그렇죠. 아직 롤챔스에는 나온 적도 없으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원딜 챔피언 같습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아~! 야흐오가 원딜이라는 걸 확신하고 사용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꼭 그런 건 아닌데 대답이 됐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람은 자기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납득 된 상황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이제 제가 파프리카TV 원탑 원딜러 맞는 거죠?"

〈과연 원딜러의 싸움이었는지는 아직 재고의 여지가 필요…….〉

"아무튼 이긴 건 저고, 결승전에 올라간 팀도 저희팀이네요. 종결이 난 것 같습니다. 전화 통화 재밌었고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자문자답 뭐야ㅋㅋㅋㅋㅋㅋㅋ

-일방적인 딜교환!

-이것이 파프리카TV 원탑 원딜러의 프리딜인가?

서로 할 말 끝났는데 겉치레 인삿말을 더 주고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지금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허례허식보다는 실리가 중요한 법이다.

'경기도 이겼고, 인터뷰도 시원히 마쳤고~.'

멸망전 결승전의 진출.

최소 상금 600만원을 확정지었다.

물론 준우승에 만족할 생각은 일도 없지만 세상사 보험은 언제나 필요하다.

듣기로 4위는 아예 상금도 없다고 한다.

준결승에서 탈락한 크하하팀은 3위 상금이라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당장의 경기 걱정은 덜었지만 한 가지 필연적인 문제가 생긴다.

'뭐라고 말을 해야 속이 풀릴까?'

내가 아무리 리야를 진실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어도 이번 경우는 확실히 심하긴 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방송 채팅창의 성난 민심을 이미 보았다.

'당연히 같이 해명을 하긴 하겠지만…….'

같이 술을 마셨는데 리야의 숙취가 생각보다 깊더라.

해명을 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소의 오해가 생길 여지는 있어도 말이다.

진짜 문제는 본인의 응어리.

오해가 풀린다고 응어리까지 사그라드는 건 아니다.

그래도 어떻게 어르고 달래면 화를 풀어주지 않을까?

너무 쉽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꿀통통과는 비교도 안되는 진정한 감성팔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랐을 때의 파괴력을 차마 몰랐다.

* * *

사람이 살다 보면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는다.

인생, 어찌 꽃길만 걸으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개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고, 마음속 상처로 남는 것.

그것은 바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지인에게 배신 당했을 때다.

-멸망전 탈주 실화?

-여기가 탈주 닌자 유리야 방송 맞나요?ㅋㅋ

-??? : 강해져서 돌아오겠다!

이제 막 숙취에서 깨어나 비몽사몽한 상태인 유리야.

그럼에도 큰일 났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방송을 켰다.

평소와 전혀 다른 채팅창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보다 더 마음속을 찌르는 건 다름이 아니다.

자신이 짐덩어리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껏 별별 말을 다 들으면서도 옆에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사무치는 일이다.

뚝.

뚝.

참으려 했지만, 멈추고 싶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유리야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넘친다.

여자의 눈물.

채팅창 여론이 삽시간에 둘로 갈린다.

-아니, 적당히 좀 하세요;; 님들은 실수 안 하고 살아요?

-네 다음 선즙필승ㅋㅋ

-여자가 울면 봐줘야 하나?

-어그로 새끼들 싹 다 쳐내요 매니저님!

한두 명이 아니다.

무려 수천 명이 들이닥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청자 수가 계속해서 불어난다.

매니저가 관리를 할 수 있는 수준은 진작에 넘어섰다.

오히려 섣불리 손을 대다가는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

이도 저도 할 수가 없는 상황.

비정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저……, 저……, 죄송해요. 늦잠…… 자버려서 멸망전 참가 못했어요."

-지가 늦잠 자놓고 우는 거?ㅋ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늦잠 자다 대회 참가 못해도 여자가 울면 봐줘야지ㅋㅋ

비꼬는 듯한 반응.

당연하게도 해명이 될 리가 없다.

채팅창 반응이 무서울 정도로 폭주한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니고 재미만 보면 되지.

흥미 위주의 공격적인 채팅이 주를 이룬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주먹을 꾹 쥔 채 캠 화면을 직시한다.

악플만이 가득하던 채팅창.

갑자기 얼려지며 누군가의 메세지가 올라온다.

─채팅창을 얼렸습니다.

BJ와 매니저만 채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야, 유리야

* * *

준결승전이 끝나고 한 시간 가량 지났을까.

현재 시간 오후 두 시 반.

다른 팀이 현재 경기 중이라 어그로가 그나마 덜 쏠린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럼에도 1만 명이 넘은 시청자들이 몰렸다.

아니, 어그로가 끌리는 것 자체는 그렇다 친다.

일이 일이고, 어느 정도 감안을 했던 부분이니까.

'좆됐다…….'

진짜 문제는 유리야가 평생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징징대지도 않고 눈물만 뚝, 뚝, 뚝.

사람의 몸에 얼마나 많은 수분이 있는지 몸으로 증명을 한다.

-야, 유리야

잠시 할 말을 곱씹는다.

일단 난리가 났대서 서둘러 들어왔다.

다행히 고정 매니저 등록이 되어있어서 다소의 과정은 생략할 수 있었다.

〈왜요.〉

-전화 받아봐.

〈싫어요.〉

-일단 받아봐

-아니, 도리도리 하지 말고 받으라고!

들어오기 전부터 걸고 있음에도 얘가 받지를 않는다.

화면에서 눈을 돌린 채 채팅창을 보지도 않는다.

아니, 일단 전화를 해야 해결이든 해명이든 하지!

대략 3분간의 신경전 끝에 통화 연결을 해냈다.

겁나 소름돋는 건 그 사이에 시청자가 나가기는 커녕 늘어났다.

채팅도 못 쓰고 답답할 텐데 싸움 구경은 오질나게 재밌나 보다.

"야, 유리야."

〈말하세요.〉

"전화 끊지 말고 있어봐. 내가 시청자들한테 해명을 할 테니까."

좀 더 스무스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시방석이다.

가시방석에 앉아 한 마디, 한 마디 정리한다.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둘이 잤음?

-속보! 여캠이 여캠했다

-ㅁㅊ; 역시 그렇고 그런 사이였나 보네

저런 소리가 나올 거 같아서 최대한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판국이다.

리야에게 조용한 대처를 바랄 것도 아니고 바랄 상황도 아니다.

"아니, 어그로 시발 새끼들아! 내가 유리야랑 그런 사이 아닌 건 아이디부터가 증명하잖아."

-네 다음 기둥 서방

-세상에 믿을 여캠 하나 없다더니……

-남절이 저 새끼 여혐인 척 하더니 뒤에서 할 건 다 하네

채팅창의 반응을 진정시키는 게 여간 녹록지 않다.

다행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부모님과 3자 면담까지 한 만큼 신용은 확실하다.

"야, 유리야. 어머니나 아버지 계시면 잠깐만 통화 좀 부탁드릴게."

〈싫어요. 선배가 뭔데요.〉

"니 이미지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그즎으……."

〈제 이미지든 뭐든 선배가 먼저 저 버렸잖아요.〉

-치정 싸움ㄷㄷ

-버렸다는데?

-먹버? 개씹쓰레기네

온갖 쓰레기 같은 추측까지 난무한다.

어금니가 꽉 깨물어지지만 참아야 한다.

어떻게 어르고 달래서 어머님과 통화 연결을 할 수 있었다.

통화를 마치자 여론이 다소 수그러들었으나 진압과는 거리가 멀다.

"전부터 말했지만 리야랑은 오래 알고 지낸 선후배 사이고, 원래 같이 자주 놀아요. 어제는 애가 취했길래 집까지 바래다 준 거에요."

-바래다 주는 사이에 아무것도 안 했다는 보장은?

-나 같으면 만지고 주무르고 별 짓 다했을 듯

-ㄹㅇ 남자가 어떻게 손만 잡고 바래다 줌?

"그건 뇌가 썩어 빠진 니들 같은 새끼고요. 리야는 그냥 친한 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있다.

내 군생활 최대의 흑역사.

그런 걸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면 밑도 끝도 없어 생략했다.

아직까지도 불씨가 남아있기는 해도 대략적인 해명은 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야, 콧물 그만 먹어."

〈싫어요. 먹을 거에요.〉

"아니, 당기지 말라고. 너 일단 여캠이잖아."

〈싫어요. 선배 말 안 들을 거에요.〉

눈물이 글썽글썽 콧물도 주륵주륵.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을지.

혹시 몰라서 역으로 화를 내보았다.

"야! 내가 어제 니 술 먹인 게 그렇게 잘못이야?!"

〈네, 잘못이에요.〉

"맞아. 잘못이야. 죽을 죄를 젔지. 어떻게 용서 좀 해주면 안되겠니?"

-남자 비굴한 거 보소ㅋㅋㅋㅋ

-태세 전환 우두루급인데?

-멸망전보다 이 시트콤이 더 재밌어ㅋㅋㅋㅋㅋ

어느새 도합 2만 명을 훌쩍 넘겨버린 시청자 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머리를 박고 있다.

평소라면 내가 사과를 했을 때 안 받아줄 유리야가 아닌데……

얘가 이 정도로 삐진 건 처음이라서 나도 심히 당황스럽다.

그만큼 죄를 지었다는 건 안다.

알지만 그래도 웃고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솔직히 너 못해도 너무 못하잖아!

나도 한 번쯤 정상적인 서포터랑 라인전 서고 싶었어.

문제는 이 속내를 유리야가 눈치챘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버려졌다고 말한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얘가 띨빵하긴 해도 절대 바보는 아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미안해. 솔직히 기대 좀 하고 먹였어."

-ㄹㅇ쓰레기 새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야 술 먹여서 암살한 거야?

-욕받이 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님??

"안녕하세요. 쓰레기입니다 .근데 진짜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 줄은 몰랐어요."

나라고 어찌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었겠는가.

유리야를 집에 바래다 준 시간이 새벽 한 시였다.

얘가 아무리 숙취가 있어도 더 빨리 일어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가서 씻고 누우니까 새벽 다섯 시가 넘었다!

집이 먼 데다 리야네 부모님과 면담을 하느라 굉장히 지체됐다.

술 마신 상태에서 6시간 자고 일어나서 멸망전 참가한 거다.

-네 다음 쓰레기^^

-근데 이건 11시간 넘게 잔 유리야 잘못 아님?

-진흙탕 싸움 재밌다. 썰 더 뭐 없냐?

만에 하나 일이 잘 풀렸어도 운영자가 골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이 한 가지 확신은 있긴 했다.

어떤 사람이 와도 최소 유리야랑 봇듀오 서는 것보단 낫겠지.

〈흐에에에엥…….〉

"미안하다. 의도든 아니든 기대한 것부터가 내 잘못이야."

얘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만약 죄를 짊어지더라도 그건 내가 받을 업보다.

더 이상 유리야가 욕 먹는 건 봐줄 수가 없다.

'나도 내가 이렇게 비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몰랐는데.'

평소의 나였다면 적당한 정치와 선동으로 이끌었을 텐데.

내 안에 있는 유리야가 생각 이상으로 컸던 모양이다.

늦은 걸 수도 있지만 진짜로 마음속 깊이 사과한다.

"한 대 때리면 속 푸냐? 진짜 샌드백처럼 맞아줄게."

〈괜찮아요…….〉

"아니, 하나도 안 괜찮잖아! 내가 너네 집 찾아가서 무릎 꿇으면 용서해 줄 거야?"

〈싫어요. 선배 얼굴도 보기 싫어요.〉

-할복하자

-ㅇㅇ 할복밖에 답 없다

-악당 가는 길 마지막이 최소 추하지는 말아야지

아니, 내가 왜 악당이야!

팀을 위해서 총대를 멨을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말하기는 뭣한데…… 유리야는 좀 너무할 정도로 못해!

'롤 유저면 솔직히 이건 인정해줘야지…….'

하지만 롤 유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잘못한 게 사실이다.

할복까지는 힘들어도 석고대죄는 할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초유의 컨텐츠가 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어제 나온 자유원딜당은 약간 정치 드립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고요~

자유한국당=보수

더불어민주당=진보

고로 진보적인 성향인 봇파괴는 더불어원딜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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