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86화 (86/443)

###86

<-- The Science -->

앞선 경기들.

워낙 압도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도라이븐으로 봇라인 고속도로를 뚫어버렸다.

리픈으로 한타를 싹쓸이하며 무려 펜타킬……!

그조차도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각!

사각!

근거리 챔피언 주제에 제법 긴 평타.

얍실하게 생긴 일본도가 두 번 내리 그어진다.

단순한 평타임에도 일도양단의 위력을 내포한다.

〈레드 도마뱀이 나름 체력이 있는 오브젝트인데…… 그냥 썰렸습니다.〉

〈그런데 야흐오가 레드를 먹어도 되는 건가요?〉

〈안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원딜인데.〉

-ㄹㅇ루다가 원딜이자너ㅋㅋㅋ

-이즈는 미드니까 블루 챙기고 공평하네

-정글은?

-어디 감히 개백정이 버프를 탐내!

바론 버프까지 두른 러이갓팀이 진격한다.

게임이 이미 9할쯤 넘어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하나.

야흐오 원딜은 포탑을 깨는 게 어렵다.

부디 확실한 단점을 보여주길 바랬다.

그래야만 이 약이 덜 팔릴 테니까!

쿵! 쾅!

아예 깰 생각도 없이 그대로 들이박는다.

러이갓팀의 새로운 서포터 박인주 운영자.

광우스타가 점멸 쿵쾅으로 적을 띄운다.

야흐오 원딜이 칼 같이 호응한다.

─우리에게 돈!

지나쳐버린 성장 차이.

야흐오의 칼이 스치는 대로 토막이 난다.

탱커인 네네톤조차 채 2초를 못 버티지 못한다.

물론 화력이 세도 다이브는 위험 부담이 크다.

그 위험 부담을 광우스타가 대신해준다.

제대로 된 한타가 일어나기는 커녕 일망타진이다.

〈싹~ 쓸어버리네요. 화력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 대응할 엄두도 못 냅니다.〉

-야흐오 원딜 떡상각??

-포탑 안 깨고 그냥 박아버리네;;

-광우스타&야흐오 조합 개사긴데?

광우스타가 특별히 이니시를 잘 열었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골드가 이니시각을 보면 얼마나 잘 보겠는가.

심지어 손발을 맞춘 것도 아니고 급조한 멤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한타.

야흐오라는 챔피언의 특징을 백분 살려내고 있다.

조합의 시너지까지 살리자 야흐오 원딜의 가능성이 보인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한타를 대승하고 쭉쭉 밀며 진격한다.

도저히 막을 엄두 따위 내지 못한다.

억제탑, 쌍둥이 포탑에 이어 넥서스까지 그대로 첫 번째 세트가 종결이 난다.

* * *

솔로랭크에서는 은근히 흔한 광경이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허무한 패배를 맞이하곤 한다.

이는 탑급의 프로게이머라 할 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롤이라는 게임이 가진 스노우볼이라는 개념.

초반의 실수 한 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 게임은 쿨하게 GG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이건 제가 카운터 가능성을 간과한 감이 있네요. 죄송합니다. 응원해주신 시청자분들께도 사과 말씀 드릴게요."

-괜찮아! 괜찮아!

-깔끔하게 인정하는 모습 보기 좋다

-ㅇㅇ초반에 킬 내준 게 너무 컸어

첫 번째 세트부터 된통 당하고 시작해버렸다.

그럼에도 크하하의 스탠스는 산뜻 그 자체.

시즌2부터 롤을 한두 판 해온 게 아니다.

심지어 롤챔스 경력까지 있는 크하하다.

고작 한 판으로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침착한 태도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저 때문에 예림님이 너무 힘들었어서…… 안 그래도 상대가 일부러 여자만 죽인다는 소문이 있는 분인데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다음 판은 더 집중해서 잘해볼게요.〉

-분위기 달달하고~

-흑기사 같은 모습 너무 멋있다

-남절 걔 여혐이라잖아ㅉㅉ 말투도 개싸가지

자신만이 아닌 남을 위하는 태도.

팀원들의 멘탈 또한 다독여준다.

첫 경기의 패배로 잃었던 다소의 민심은 회복이랄 것도 없이 돌아와 있다.

그가 한 실수가 있다면 단 하나다.

상대의 노림수를 간파하지 못한 죄.

하지만 두 번은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못 박는다.

"단언컨대 두 번은 없을 겁니다. 이미 완벽하게 파악이 끝났습니다."

-벌써?

-역시 두뇌도 알파고급인 크하하!

-야흐오 원딜 약점이 대체 뭐야?

경기 시작 전 선언한 그대로다.

천한 근거리 사냥꾼들.

밴 카드를 소비할 이유가 없다.

대신 자신들의 픽을 바꾸겠다.

도라이븐의 실패를 순순히 인정했다.

그도 그럴게 장막에 먹혀 사라진다.

스킬 구조가 빼도 박도 못하게 맞물린다.

하지만 이번에 고를 챔피언은 다르다.

이어진 두 번째 세트의 밴픽.

크하하는 짧은 시간에 대비책을 마련했다.

-고르키?

-원딜 1티어 고르키 나올 때 됐지!

-근데 고르키는 하드 캐리 힘들지 않나?

現원딜계의 투탑이라고 할 수 있다.

치비르와 고르키.

그만큼 좋은 챔피언이라는 소리지만…….

분명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점이라함은 다름 아닌 캐리력.

성장 기대치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대신 라인전 하나는 강력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제가 커서 캐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봇 파괴 조합은 상대를 말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도라이븐도 그런 취지에서 뽑긴 했는데……."

-ㄹㅇ장막에 도끼 사라지는 판정 말도 안돼

-버그 아니야? 최소 튕긴 도끼는 되돌려줘야지

-이미 버그 리포트 작성했다. 게임사에 신고 때렸음!

야흐오라는 챔피언이 나온지 고작 일주일이다.

챔피언 자체의 성능에 대해 아직 이견이 갈린다.

하지만 돌풍 장막이 가진 말도 안되는 방어 성능.

-아까 보니까 인어 파도도 그냥 없어지더라 ㅡㅅㅡ

막아도 정도껏 막아야지 무슨 캡틴 아메리카냐?

-진짜 저 판정 버그 아니었으면 전 판 이기고도 남았는데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스킬 구조다.

아싸리 버그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하물며 크하하 방송의 애청자들.

채팅창에는 폭동 수준의 물타기가 이루어진다.

"저도 시청자분들의 마음이 이해합니다. 하지만 버그든 아니든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 경기를 통해 실력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해당 BJ가 괜찮다는 듯 말을 할수록 시청자들의 내심……

더욱 더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 아니 BJ유리야남친절대아님이다!

하나로 똘똘 뭉쳐 더욱 거세게 응원한다.

그 응원의 보람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윽고 시작된 두 번째 세트.

라인전이 이전 세트와는 확연히 다르다.

포옹!

고르키의 Q스킬 폭죽탄.

현재 폭죽탄은 투사체가 아닌 즉발 스킬이다.

즉, 장막을 깐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더불어 서포터도 인어가 아니다.

인어를 해봤자 또다시 상대의 노림수가 될 뿐이다.

팀 내에서 이미 피드백이 오갔다.

때문에 선택한 챔피언은 루나.

터엉-!

루나의 방패치기가 광우스타를 후려친다.

고르키가 호응해서 때리자 체력이 단숨에 후욱-!

양쪽의 거친 딜교환 끝에 결국 한우가 무릎 꿇는다.

-알파고급 나노 거리 조절 지렸다ㄷㄷ

-장막 빠지고 점멸 킬각 깔끔했음!

-예림이도 많이 빡쳤네ㅋㅋ 엄청 공격적이야

-근데 광우스타 운영자 아님?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전 세트의 부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기분 좋은 선취점이 울려 퍼진다.

* * *

다소 불리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원래 라인전 킬이라는 게 으레 그렇다.

자신이 노리는 만큼 따일 확률도 높아진다.

특히 양쪽의 실력 차이가 난다면 더더욱.

"살 빼셨나? 쿵쾅이 잘 안 들어가네."

-…….

"아니, 쿵쾅 범위가 살짝 부족하길래 안타까워서……."

-얘 확신범 맞다니까?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여혐

-또 자기만 죽일까봐 예림이 탱커했음ㅋㅋ

'누나인지 형인지 알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대상의 성별에 따라 단순한 피드백이 여혐이 될 수 있다니 억울하다.

아무튼 현재 진행되는 게임.

초반 전황이 썩 좋지가 않다.

상대가 이전 판의 패배를 타산지석 삼아 조합을 재고했다.

라인전이 강하며 생존기가 있는 고르키.

인어와 달리 몸이 단단한 탱커 루나.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다름이 아니다.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지.'

파프리카TV 운영자가 평소 게임을 하면 얼마나 했겠는가.

상대보다 실력이 별로일 뿐더러 호흡이 잘 안 맞는다.

이전 세트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

대충 들어가도 킬각이 나올 수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쿵쾅으로 그냥 아무나 물면 내가 미니언을 타고 호응한다.

도라이븐의 도끼는 장막으로 가볍게 흘려낸다.

그런데 상대가 조합을 바꿔오니 난이도가 높아져 버렸다.

두두두두두!

다발총을 켠 고르키가 거세게 압박해온다.

이어지는 폭죽탄도 무시할 수 없다.

두 스킬 전부 장막으로 차단이 불가능.

상대는 파훼법을 찾았다는 듯 의기양양하다.

'어느 정도 상정을 했던 내지만.'

오히려 첫 세트가 지나치게 잘 풀린 감이 있었다.

알아서 역카운터를 박아주고, 인어가 죽어주고.

그렇게 좋기만 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충분하다는 걸, 내 야흐오는 한계가 없다는 걸 증명할 시간이다.

─BJ러이갓스마트컴(탈리반 3세)가 고르키를 지목!

이전 세트와 다르게 러이갓도 제대로 된 픽을 했다.

하지만 갱각이 날카롭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느낌이 쎄한 것이 예감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

난전을 벌여 피지컬과 판단력의 싸움으로 이끈다.

쿠! 챠앙!

강가에서 내려온 러이갓의 탈리반 3세가 적을 찌른다.

깃창으로 파고들며 궁극기 연계.

들어간 것 자체는 좋지만 너무 생각 없이 꼴아박았다.

터엉-!

라인을 밀고 있었던 만큼 적들의 미니언이 많다.

더불어 루나는 난전이 상당히 강한 챔피언이다.

물러서기는 커녕 방패로 후려친다.

결정적으로 믿고 있던 뒷배가 있었다.

터억!

적 정글러가 부쉬에서 땅굴을 판 채 대기 중이었다.

거미여왕의 고치가 정확하게 탈리반 3세를 노린다.

0.5초도 안되어 녹아내리랄 건 자명한 이치.

그 직전에 미니언을 밟으며 앞점멸로 가로막는다.

─발암을 맞아라!

탈리반 3세를 죽음 직전에서 구명해낸다.

동시에 아수라장의 한가운데 파고들었다.

이제부터는 글자 그대로 하기에 달려있다.

사각!

사각!

지금까지 야흐오를 하며 깨달은 게 있다.

야흐오라는 챔피언의 약점은 하나 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이 너무 강해서 주체하지 못한다는 사실.

'마치 어떤 만화의 주인공처럼 말이야.'

컨트롤이 가능해질수록 한계를 돌파한다.

더 높은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있는 건 단순한 입롤이 아니다.

─다대기!

장막 사이를 오가며 적들을 베어 넘긴다.

고르키의 평타도, 미니언의 반격도 반쯤 무효로 돌린다.

그럼에도 상대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문다.

콰아앙!

루나의 백점 폭발까지 미니언을 밟아 피했다.

적 미니언을 역으로 이용해 흘려 넘겼다.

아비규환의 한가운데서 칼끝은 고지식하다.

싸캉!

바람 가르기가 고르키를 훑는다.

상대는 점멸로 도망치며 카이팅한다.

거미여왕까지 거미로 변해 물어뜯는다.

찰나의 순간에서 활로를 찾아낸다.

휘익!

휘익!

질풍보로 새끼 거미를 지나치자 코앞.

고르키는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다.

지켜줄 상대의 스킬도 전부 빠진지 오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한 명, 잡아냈지만 아군의 피해도 막심하다.

앞서 아무 생각 없이 진입한 러이갓의 탈리반은 이미 죽었다.

쿵쾅거리고 있는 광우스타의 스킬샷도 영 느낌이 없다.

쿵!

확실히 쿵쾅이 제법 난이도가 있는 연계기다.

내가 괜히 목소리를 높여 칭찬한 게 아니다.

그렇게 실패한 스킬 연계도 야흐오와 함께라면 다르다.

─우리에게 돈!

광우스타가 밀친 거미여왕이 공중에 묶인다.

야흐오의 궁극기 바람의 상처.

추가 피해와 함께 그어진 일도에 마무리된다.

얼마 남지 않았던 체력도 보호막이 차며 여유롭다.

─더블 킬!

적 루나는 분명 단단한 챔피언이다.

하지만 이제는 물렁살처럼 썰린다.

바람의 상처는 사용 직후 방어력을 절반 가량 무시하는 일종의 버프 효과를 가져다준다.

사각!

휘리링!

미니언을 타고 따라가며 포탑 끝까지 추격.

야흐오가 가진 딜 기대치를 한계치까지 이끌어낸다.

─트리플 킬!

넌나보다원딜못해님이 학살 중입니다!

충전된 회오리의 끝에 걸치며 최후를 맞는다.

역갱을 맞은 3대3 봇라인 교전을 승리로 이끈다.

글자 그대로 원딜러로서의 격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게 원딜이라고 해도 될지는 사실 나도 확신이 없긴 하지만.'

곧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

경기를 치를 당시에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