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84화 (8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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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cience -->

승부에 임하기 전의 파이터.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승리할지.

혹은 어떻게 상대에게 당해 패배할지.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다대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게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제3의 방향이다.

상대 봇듀오가 날린 회오리에 휘감긴다.

'아니 무슨 한나도 아니고.'

한나의 회오리가 아니다.

어처구니 없는 챔피언이다.

야흐오 원딜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우리에게 돈!

공중에 붕-! 떠버린 상태로 또 1초.

하늘에 묶이며 갈기갈기 찢어진다.

크하하의 도라이븐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환장하겠네 진짜…….'

아랫입술을 질끈 베어 문다.

컨트롤이나 포지셔닝.

신경을 쓴다고 어떻게 될 수 있던 거면 모른다.

도저히 도라이븐으로 이길 수 없는 극악 상성이다.

극상성도 아니고 극악 상성.

도라이븐의 존재 이유인 회전 도끼 자체가 사라진다.

파앗!

하지만 그것이 게임의 패배로 직결된다는 소린 아니다.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한 명이 더 존재한다.

크하하팀의 두 번째 챌린저 카드.

터억!

퍼엉!

강민식이 던진 표식 두 개가 야흐오에게 연달아 박힌다.

체력이 거의 바닥났던 상태인 야흐오.

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만다.

〈너답지 않다. 집중 안 해?〉

"아, 미안. 살짝 말렸네. 집중할게. 어떻게든 1킬만 먹으면 되는데……."

크하하가 픽한 도라이븐은 킬을 먹으면 강해진다.

반대로 죽었을 때의 리스크가 크다.

돈으로 환전해야 할 스택이 물거품이 돼버린다.

벌써 두 번이나 죽은 크하하는 게임이 말렸다.

하지만…… 아직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한두 번 킬을 먹기 시작하면 복구할 수 있다.

그것이 리스크와 리턴이 공존하는 도라이븐의 매력.

밑바닥부터 다시 원딜 캐리를 노려 볼 만하다.

강민식은 조금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미 망해버린 크하하를 다시 키우는 것 보다는…….'

킬을 주워 먹은 자신이 캐리를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당초 팀의 취지가 어떻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

어두운 야심이 강민식의 속내를 자극했다.

원딜 중심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팀의 성향.

그로 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항상 크하하다.

이번 판에서 자신의 캐리력을 증명해 근본을 갈아 치운다.

'기회가 왔다면 당연히 잡아야지.'

이미 반쯤 그럴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상대 미드라이너로 온 인성제로.

솔로랭크에서 숱하게 만나본 까다로운 상대다.

그러나 마주한 라인이 미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터억!

파앗!

표식을 던지고 밟아서 터트린다.

르풀랑의 기본적인 콤보다.

그 직전에 이즈레알은 비전 반응을 해내 피했다.

피하면서 동시에 역공을 잊지 않는 까다로운 상대.

하지만 1대1의 라인전이다.

뒤를 봐주는 서포터 따위 없다.

비전 위치에 정확히 쏘아진 금빛 사슬이 발을 묶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내가강민식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즈레알은 묶인 위치에서 그대로 사망하고 만다.

미드 라인에 원딜 챔피언 따위가 오면 이렇게 된다.

평소처럼 팀파이트 챔프가 아닌 르풀랑을 선택한 이유다.

완벽하게 라인전을 찍어눌렀다.

로밍으로 다른 라인을 풀어줬다.

그런 상황에서 솔킬까지 따버리면…….

게임의 균형이 반쯤 무너져내린 셈이다.

'야흐오는 어차피 라인전이 끝나면 챔피언이 애매해.'

출시되자마자 해봤으니 스킬 구조는 꿰고 있다.

E스킬 질풍보는 만능 스킬임과 동시에 계륵.

라인전에서나 효율이 나오는 스킬이다.

반대로 라인전이 끝난 이후에는 애물단지다.

사거리가 짧아 한타에서 딜러진을 노리기 힘들다.

그러면 스플릿이라도 해야 돼는데 생존기가 전무하다.

'내가 암살을 하며 운영까지 병행하면 캐리는 하고도 남아.'

성장에 탄력 받은 르풀랑 만큼 무서운 챔피언이 없다.

확실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며 게임을 캐리해낸다.

이어진 두 번째 세트에서도 발언권을 얻는다.

더 이상 크하하의 크하하팀이 아닌 강민식의 크하하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분명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다.

과학(The Science).

현대 문명의 정수를.

* * *

라인전은 굉장히 흡족하게 흘러간다.

유리야와 할 때라면 바랄 수도 없는 서포터다.

뒤에서 버프만 주는 버프걸이 아닌 광우스타.

봇파괴 조합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인주님 쿵쾅 진짜 잘하시네요."

-네? 쿵쾅이요?

"아니, 다른 뜻이 아니라 잘하신다고요 광우스타."

-네…… 칭찬으로 생각할게요.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보이스 채팅을 할 수가 없다.

들을 수는 있는데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박인주 운영자가 채팅으로 대답하신다.

'당연히 칭찬으로 말한 거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아무튼 광우스타가 연계만 해줘도 라인전은 간단해진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미드 라인.

솔킬까지 따이며 크게 밀리고 있다.

〈아~ 민식이 게임 진짜 뭐 같이 하네. 르풀랑 개사기 아니야?〉

응, 개사기 맞아.

근데 미드를 간 니 잘못이지.

인성제로가 미드에서 탈탈 털린다.

'상대가 플래, 다이아면 몰라도 같은 챌린저면…… 일이 터져도 이상하진 않지.'

지금까지 일이 없었던 게 용한 거다.

심지어 상대가 상당히 잘하는 녀석이라고 한다.

3챌린저인지 뭔지 나름대로 이름이 있다는 소식이다.

-사스가 3챌린저……

-인간쓰레기 강민식!

-인쓰강이 다른 건 몰라도 실력 하나는 괜찮지

'인쓰강?'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이름인가 했다.

누군가 했더니 그 쭈구리인가 보다.

약간 여우 같은 자식이 있다.

'개노답 삼형제의 막내였구나!'

인쓰강이라는 별명도 얼핏 기억은 나지만 당시에는 이 별명이 더 유명했다.

그도 그럴게 내가 퍼트렸으니까.

그런 별명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에게 돈!

절대로 여성 유저여서가 아닌, 상대적으로 각을 잘 주는 낮은 티어이며, 물몸이라 킬각이 잘 나오는 인어를 잡았다.

자꾸 채팅창에 언급이 나와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미드에서 내려왔다.

〈르풀랑 내려간다고오!! 또 킬 주면 진짜 미드에서 숨도 못 쉬는데 왜 안 빼는 거야 대체!〉

조온나 시끄러운 인성제로의 찡찡거림 다 듣고 있다.

하지만 다 생각이 있다.

개노답 삼형제는 내가 가장 호구로 삼는 인종이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다.

2년 사이에 발전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생각보다 잘 변하지 않는다.

'특히 재능이란 녀석은'

개노답 삼형제의 막내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못하는 주제에 주제 파악도 못한다.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읽힌다.

행동 패턴이 손에 잡히듯 뻔히 보인다는 소리다.

안정적으로 접근해서 표식을 터트리고 킬각을 잡는다.

르풀랑을 할 때 가장 기본적인 암살 공식이기는 하지만…….

파앗!

내가 피지컬을 끌어쓰는 상황에서 심리전까지 앞선다.

접근함과 동시에 박아 넣는다.

강렬한 칼빵이 배때지에 쑤셔박힌다.

스태틱의 단도가 치명타로 터지며 막대한 데미지.

싸캉!

지지지직!

하늘 위에 성층권 있는 법이다.

질풍보를 밟아 금빛 사슬을 앞으로 피해낸다.

깜짝 놀란 르풀랑은 원래 위치로 되돌아간다.

르풀랑이라는 챔피언이 까다로운 이유다.

자기는 넣을 딜 다 넣고 갑작스레 내뺸다.

알고 있는 이상 대처법도 간단해진다.

─다대기!

한 줄기 회오리가 집어삼킨다.

물론 하늘에 뜨는 시간은 잠시.

그 잠깐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쿵! 쾅!

점멸로 썰어버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호응이다.

아군 서포터 광우스타가 점멸 쿵쾅을 내리쳤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넌나보다원딜못해님이 학살 중입니다!

넌나보다원딜못해님이 내가강민식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432G)

'너는 그냥 안될 놈이야.'

내가 웬만하면 노력을 하면 너도 잘해질 수 있어!

솔직히 빈말이라도 말해주는 게 어렵지 않다.

그 말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두 명 있다.

'한 사람은 지금 술 먹고 뻗어있고, 다른 한 사람은 칼빵 맞고 뻗어있지.'

차라리 유리야처럼 착하면 정이라도 간다.

못하면 그냥 쭈구리 마냥 있으면 되는데…….

얘는 주제 파악도 못해서 항상 까분다.

그래서 카오스 시절부터 만나면 항상 열 번씩 즈려밟아 줬다.

〈이래서 안 빼고 있었구나~ 형님! 저 미드 1차 거의 깠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십쇼~!〉

-인제는 세계 최고의 버스 유저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 -크하하-

-이걸 설마 인제가 탄다면 나는 인제를 신으로 받들 것이다 -인제방 매니저-

-인성제로가 아니라 양심제로인데?

-ㅈ같으면 다른 방송 봐라 -인성제로-

저렇게 주제 파악을 하면 얼마나 좋아.

가뿐하게 포탑까지 쭉 밀어버린다.

도라이븐은 진작에 뒤로 내뺐다.

'이런 게 다 설계야 설계.'

처음 로밍은 애초에 따고 죽을 생각이었다.

야흐오는 원래 죽는 챔피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역관광을 염두에 뒀다.

한 번 죽어주면 신나서 들어오겠지.

들어오는 걸 그냥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물론 아군 서포터의 슈퍼 플레이를 잊지 않았다.

"근데 진짜 쿵쾅 잘하시네요."

-……말 안 하시면 더 잘할 거 같은데요.

"그냥 순수하게 감탄해서 한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완전 의도적인데?

-운영자 여자야?

-사스가 여혐좌;

-자연스러운 여혐 좋았다

'아니, 여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박인주, 이름이 많이 여성스럽기는 하다.

근데 뭐 어쩌라고 내가 무슨 홍길동이야?

호부호형도 하면 안돼?

쿵쾅을 잘하는 걸 쿵쾅을 잘한다고 말한 것 뿐이다.

-무거운 분들이 불편해 하실 수 있습니다

-인어만 네 번 죽인 거 실화?

-근데 진짜 잘하긴 한다. 인쓰강 어리둥절행ㅋㅋ

-내다버린 3챌린저!

'3챌린저 이런 거는 올라갈 자신 없는 애들이 양으로 밀어붙이는 거고.'

랭킹이 무슨 편의점도 아니고 2+1이벤트 해서 싸게 가져가는 혜자 상품인가.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

챌린저 계정이 3개든 5개든 간에 가장 높은 점수가 바로 그 사람의 실력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게 대단한 줄 알고 와와 거린다.

저런 허세가 이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유난히 신경 써서 밟아주기도 했다.

'아무튼 미드도 제압했고 봇라인은 아예 작살을 내놨는데…….'

게임의 양상이 아직도 답답한 건 기분 탓일까.

미드 라인은 CS도 레벨도 발리고 있다.

탑도 마스터인 주제에 신통치 않다.

듣기로는 갱킹과 로밍에 시달렸다나.

이해할 만은 하나 마스터가 그래서야 안된다.

물론 문제의 중심은 언제나 그 사람이긴 하다.

〈행님들 제가 왜 죽으신 지 아시죠? 아니, 진짜로 지금 멸망전 준결승전 본선 첫 경기 시청자 1만 3천 명이나 보고 있으신데…… 추천이 너무 안 올라가요!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저기 와드로 거미여왕 오는 거 봤는데 추천 받으려고 죽었어. 중계방 본방 행님들 오른쪽 하단에 추천 한 번씩만 모바일 행님들은 터치따봉 해주시면 비제이한테 굉장히 큰 개이득이죠? 주말 대낮에 추천 화력 씹오지네요 행님들! 정글 마이 11분에 몰락 이거 뭐 게임 끝났어~ 아 달동네러빡이님 또 별풍선 100개로 딜교환 클라쓰!〉

자신은 컨셉을 위해 마이를 무조건 해야 한다!

너도 야흐오 하니까 나도 마이 한 번만 할게!

어거지를 부리며 마이를 픽하더니 역시나.

'균형의 수호자야 정말로.'

정글러가 갱도 안 다니면서 RPG.

그거야 일상다반사인 일이지만 한타에도 도움이 안된다.

듣도 보도 못한 미친 스피드로 달려 들어가 순식간에 써컹써컹!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죽어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른 챔피언이었다면 봉변을 맞을 뻔했다.

일반 원딜러들은 아무리 잘 커도 앞라인이 못하면 힘들다.

더군다나 상대가 못하는 애들도 아니고 기본 실력이 아군보다 높다.

'하지만 과학적인 챔피언 야흐오와 함께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내가 이래 봬도 나름 과학에 짬밥이 있다.

한국대 자연계의 나노 킬각을 보여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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