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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와 가해자 -->
파프리카TV배 멸망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예선전은 이미 끝났다.
이제는 진정한 패자를 가리는 본선이 시작된다.
예선전이 끝나고 나흘, 12월 첫 번째 주의 토요일이다.
〈파프리카TV가 후원하고 파프리카TV가 개최하는 멸망전! 본선 첫 날입니다. 여러분들~ 안녕하세요!〉
김의정 캐스터의 인사로 막을 올린다.
본선부터는 소위 4강 체제에 돌입한다.
조별 리그가 아닌 뒤가 없는 토너먼트 리그.
〈사실 첫 날이라고는 안 해도 오늘 내일이기 때문에 이틀이면 끝나요?〉
〈그래도 첫 날이라고 하면 뭔가 느낌이 있잖아요?〉
〈느낌은 롤챔스나 롤마스에서 찾는 게 타당한 것 같습니다.〉
-클끼리 팩폭ㅋㅋㅋㅋㅋㅋ
-시작하자마자 때린다고?
-근데 왜 이렇게 대회 기간 짧냐?
파프리카TV가 멸망전 개최 경력이 긴 것도 아니고.
BJ들이 열성적으로 참가를 한다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대회가 인기가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짧게 짧게 예정이 잡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엄청난 이슈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후에는 또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것이다.
물론 본선이 성황 리에 막을 내린다는 전제 하다.
〈첫 번째 경기 참가하는 양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구도가 잡혔죠?〉
〈한 마디로 멸체원, 멸망전 최고 원딜을 가리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반적인 대회와는 성향을 당연히 달리한다.
어느 팀이 경기를 이기냐, 가 아니라 어느 BJ가 속한 팀이 이길까?
한 마디로 응원하는 관점이 다르다.
이렇게 경쟁 구도가 불 붙는다면 그 의미는 배가 된다.
-크하하VS유리야남친절대아님
-양팀 원딜러 캐리력 싸움이네ㄷㄷ
-내가 보기에 초반은 남절이고, 후반은 크하하?
.
.
.
경기 시작 1분을 앞서 2만 명 가까이 들어왔다.
파프리카TV 멸망전 공식 채팅방이 불이 붙는다.
사이트 성향상 거친 이야기도 많이 오간다.
-크하하 미만잡 크하하 미만잡 크하하 미만잡
-알파고가 와도 크하하는 못 이김ㅅㄱ 종길
-남절인지 뭔지 개듣보 새끼ㅋㅋ 플래 아니었으면 주목도 못 받았음
파프리카TV에서 나름대로 짬을 먹은 BJ다.
종종 이야기가 있는 3대장과 칠무해.
그중 칠무해에서 상석에 위치한다.
대표BJ에 이름을 올린 시점에서 인지도는 사실 따질 것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방송이 애초에 실력 컨셉이다.
다이아를 웃으면서 양학할 수 있는 자.
BJ크하하는 명실상부 파프리카TV를 대표하는 원딜BJ다.
〈크하하님의 팬들이 엄~청 많네요. 채팅창이 지금 불바다가 됐습니다.〉
〈확실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긴 해요. 파프리카TV에서 원딜 하면 크하하! 지금까지는 상식이었지 않습니까?〉
그런 만큼 팬층 또한 상당히 두텁다.
그리고 원딜 유저들 사이에서 지지가 높다.
글자 그대로 원딜만 플레이하는 고고한 순혈이다.
어디서 굴러온 건지도 모를 개뼈다귀가 감히!
미드도 하고, 정글도 한다는 잡종이라고?
심지어 리픈으로 원딜을 해!?
기존 원딜 유저들에게 반감을 산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근데 사실 왕좌라는 게…… 지키는 게 어려운 만큼 그만큼 메리트가 있는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러면 왕좌를 지키는 크하하팀의 주장 크하하님 전화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통화음이 지나고 연결된다.
파프리카TV를 대표하는 원딜BJ 크하하.
첫 마디부터 폭탄 발언으로 열어버렸다.
〈원딜러는 다섯 포지션 중 가장 신분이 높습니다.〉
〈신분이요?〉
〈예, 신분입니다.〉
〈그런 견해도 있긴 있죠. 물론 다른 포지션들의 반감을 사지만…….〉
-캬하~ 소신 발언 마음에 든다!
-세상 좋아진 거지. 옛날만 해도 정글러랑 서포터는 채팅도 못 쳤어
-순수 혈통 원딜 귀족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먼저 원딜 부심으로 시작을 연다.
시즌3에 와서 위치가 좀 가벼워진 감은 있다.
하지만 시즌2 당시의 롤은 원딜로 시작해 원딜로 끝났다.
개백정들이 감히 딜템을 사고…….
서포터가 로밍 따위나 다니는 이 시국!
BJ크하하의 발언은 원딜 유저들의 막힌 속을 뻥! 뚫어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저는 단언컨대 원딜 포지션에 천한 챔피언들이 오는 걸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리픈 원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밴 따위 하지 않을 테니 자신 있으면 꺼내셔도 상관 없습니다.〉
-캬하하~ 사이다잼!
-리픈 따위 천한 챔피언인 거임ㅋㅋ
-리픈 뿐만 아니라 원딜 제외하면 다 천민이야~
-와 ㅅㅂ 이 정도는 돼야 고고한 순혈 원딜러지
당연한 말이지만 쇼맨쉽이다.
동시에 팬들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발언.
크하하의 전화 인터뷰는 안 그래도 드높아진 민심을 더욱 떡상시켰다.
그렇기는 하나…… 들어봐야 아는 법이다.
과연 반대쪽 입장은 어떠할까?
이 정도까지 듣고 가만히 있을까?
채팅창이 폭주해버린 것도 그럴 만하다.
-아니ㅋㅋ 삼종신기 뜨면 0.1초컷 당하는 종이들이 뭐라고?
-요즘 원딜 새끼들 안되겠다. 담당 일찐 뭐하냐?
-남절아 하나 보여주자
-근데 남절이 원딜러 아님?
불을 지펴도 제대로 지피고 갔다.
채팅창 여론이 확실하게 양분화된다.
이렇게 된 이상 한 마디 듣고 넘어가지 않으면 섭하다.
〈러이갓님과 통화 후에 따로 남절님과도 이야기를 해봐야 화제 진압이든 뭐든 될 것 같죠?〉
〈저도 개인적으로 살짝 부들부들 거리고 있습니다. 크하하님은 순혈 원딜러지만 저는 순혈 정글러에요!〉
-클끼리 빡침ㅋㅋㅋㅋ
-광역 스플뎀 너무 오졌다리
-러이갓 패스하고 그냥 남절이 인터뷰 하자!
프로 리그가 아닌 BJ멸망전.
이런 인스턴트한 맛도 있는 법이다.
보다 강한 양념을 넣어주기를 기대하고 건 전화.
조금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유리야님이…… 연락이 안된다고요?〉
* * *
정말 눈물이 겹도록 안타까운 소식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가 있다.
팀원 중 한 명이 경기 시작 직전임에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남절아!〉
"네, 형."
〈연락 안돼? 진짜로? 니가 유리야랑 사이 젤 가깝잖아! 남친이라는 이야기도 있더만.〉
"저는 남친절대아님입니다. 해보고는 있는데 받지를 않네요."
〈하~ 미치겠네 이거.〉
금일 낮 12시, 바로 지금 경기가 진행 예정이다.
유리야가 아직까지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나를 포함한 팀원 네 명이 발을 동동 굴린다.
'당연하지. 인생 최대 주량을 돌파하게 먹였는데.'
소주 반 병만 마셔도 시체가 되는 녀석이다.
그런데 막걸리를 마신 상태에서 술을 깨게 만들고.
30도가 넘어가는 달달한 칵테일을 두 잔이나 먹였다.
난생 처음 하는 경험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을 넘어 승천했겠지.
'최소 오늘 낮까지는 일어날 걱정이 없어.'
그보다 문제가 된 건 데려다 주는 일이었다.
아무리 집 주소를 알고 있다고 한들…….
어색한 대면이 아닐 수 없었다.
유리야의 부모님과 3자 면담을 하게 됐다.
아무 일도 없었으며, 아무 사이도 아니다.
세 차례 부정을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 후 나왔다.
물론 다소 걱정은 된다.
우리집 기준이면 일어나자마자 등짝 스매싱을 맞을 텐데.
그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 서포터는 팀을 위해 희생하는 포지션이라는 건가.'
-유리야 진짜 안 와?
-와…… 멸망전 탈주 실화냐
-강해져서 돌아오는 걸 수도 있잖아?
-돌아오고 나발이고 당장 게임을 해야 하는데;;
크하하팀을 상대로 한 본선 첫 번째 경기.
준결승전이기 때문에 절대 져서는 안된다.
그런데 상대 봇듀오가 세도 보통 센 게 아니다.
'딱 봐도 하는 게 플래급이던데 무슨 실버야.'
브론즈급 실버인 유리야 데리고 라인전을 하다가는 진짜…….
게임이 산이 아니라 알프스 산맥으로 갈 수도 있다.
솔직하게 정말 쓰레기라 욕 먹어도 싼 짓이다.
내심 고민을 많이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더라.
안정적인 승리를 위해 내가 총대를 매기로 했다.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원망을 듣더라도 일단은 이기고 본다.
〈안녕하세요 BJ남절님.〉
"아, 지금 안녕하지 못합니다."
〈삼가 위로 말씀드립니다. 서포터인 유리야님이 지금 연락이 안되신다고…….〉
채팅창에서 일어난 소란.
그 해결을 위해 전화 연결이 걸려왔다.
멸망전 공식 방송을 보고 있었던 만큼 안다.
그런데 그보다 큰 사건이 터져버려 지체됐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운영자님이 대타로 참가를 하시게 됩니다. 그래도 자신 있으신가요?〉
"듣기로 크하하님 서포터가 굉장히 잘하시는 분이라던데……."
〈멸망전 참가 서포터 중 가장 가성비가 좋다. 멸체폿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분이니까요."
"불리한 상황이긴 하지만……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 방장 약 먹음?
-너무 얌전한데?
-분위기 파악해라; 유리야 신경 쓰여서 마우스도 손에 안 잡히는 거 안 보이나
-아…… 하긴 남절이가 제일 걱정되겠다
캠 방송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적어도 표정 때문에 티가 날 일은 없다.
내 방송 시청자들도 위로를 해준다.
반대로 악성적인 팬들도 있었다.
-빡대가리야! 멸망전 본선 와서 사고 칠 줄 알았다ㅉㅉ
-안 그래도 학종이 탈주하고 분위기 쎄한 거 모르나 보네
-진짜 리야 이건 아니지……
-와나 유리야 너무 실망인데?
아무래도 사건이 사건이다.
나쁜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절친인 내 입장에서 기분이 어떻겠니.
"리야한테 뭐라 하지 말아주세요. 팀에서 가장 연습도 많이 하고, 서러운 말 들어도 한 마디 불평도 안 하는 착한 앤데…… 가끔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알면서도 미리미리 안 챙긴 제 잘못입니다."
-리야가 열심히 하긴 했어
-아니, 너무 큰 실수잖아!
-준결승전인데 이러다 지면 어떡해
-근데 방장이 감싸주는 말하니까 괴리감이;;
감정에 호소하여 여론을 다소 진정시켰다.
무엇보다 사고가 있었다고 해도 경기는 진행해야 한다.
아무리 프로 리그가 아니더라도 규정을 물로 보는 대회는 파탄이 나는 법이다.
* * *
〈상대 서포터가 지금 안 들어 왔다는데요?〉
〈안타깝네. 유리야님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긴 해요?〉
-ㅋㅋㅋㅋㅋ너무 솔직한데?
-운도 실력이지! 지들이 관리 안 한 거잖아
-2승 0패로 깔끔하게 꺾고 결승 가즈아!
BJ크하하팀 소속 다섯 BJ의 보이스 채팅.
당연하게도 저쪽 사정, 상관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승산이 올라갔다면 솔직하게 환영이다.
"저분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텐데 저희는 저희끼리 집중하죠."
〈예, 알겠습니다~ 실언 죄송요.〉
그렇다고 당연히 티를 내서는 안된다.
특히 자신은 이미지 관리에 열심이다.
크하하의 제지로 조용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멸망전 본선 첫 경기.
러이갓팀을 상대로 한 준결승전이다.
곧바로 첫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된다.
〈서포터만 바뀐 거라 우리 밴픽 그대로 가도 되겠죠?〉
〈어차피 서포터는…… 밴픽이랑 상관 없으니까요.〉
만약 다른 포지션이 바뀌었다면 귀찮아질 수 있었다.
프로팀이 아닌 만큼 밴픽에 대한 경험이 적다.
즉석에서 고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서포터는 애초부터 상정 외.
브론즈를 상대로 밴카드는 낭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이것 만큼은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도라이븐이랑 핑크스 자르지 말아주세요."
〈그래요? 내줘도 상관 없는 거에요?〉
"네."
-단언ㄷㄷ
-상대의 주력 카드따위 살려도 상관없다!
-이게 순혈 원딜러의 위엄인가……
당연히 그런 바보 같은 가오 잡기가 아니다.
밴픽은 똑똑한 쪽이 승자, 멍청하게 상대의 약점을 찌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즉, 살려주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민호님."
〈네, 잡아드릴 거 있나요?〉
"도라이븐 선픽으로 가져와 주세요."
-크하하의 도라이븐!
-캬~ 아예 뺏어버리려고 했구나. 머리 좋네
-근데 도라이븐 같은 픽을 선픽 해도 되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크하하인데 믿을 만하지ㅋㅋㅋ
도라이븐.
상대도 제법 쓴다고 들었으나 자신 또한 특기다.
물론 리스크가 있어 대회 무대에서는 지양하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 서포터가 갑작스레 바뀌었더라?
연습이 안돼있는 상대팀에 반해 자신들은 완벽하다.
생기는 빈틈을 찌르고, 후벼 파고, 스노우볼을 굴린다.
'진짜 벽이라는 걸 통감하게 해줘야지.'
정체도 불분명한 사람이 기껏 열린 BJ들의 대회에서 온갖 어그로는 다 먹는다.
최근 기고만장하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다.
하지만 그런 사도는 자신에게 안 먹힌다.
예선전에서 클끼리에게 격찬을 받았다는 핑크스?
안타깝지만 도라이븐이 핑크스의 천적이다.
라인전 단계에서 아예 깨부숴 주리라.
다짐한 100% 순혈 원딜러 크하하의 눈에 대단히 불편한 픽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