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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와 가해자 -->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 수는 있다.
뜻하지 않게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터져버린 사건에 대한 대처.
수천 명의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형님들, 저 진짜 지금 우울하고 힘든데…….〉
꿀통통이 머리를 푹 숙인 채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다.
두 세트 연속 탈탈탈 탈곡.
매 세트 심각한 실수를 최소 하나씩은 저질렀다.
팀이 거의 해체 직전까지 갈 정도로 의사소통이 터졌음은 물론이다.
그렇다 한들…….
봐줄 만한 사정이 따로 있는 법이다.
성난 군중을 진정시킬 만한 감성팔이는 되지 않는다.
-힘든데 어쩌라고?
-너 때문에 다른BJ 힘들었던 건 생각 안 함?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이네ㅋㅋㅋ
-이미 해명났는데 사과할 생각도 없는 거 추하다
인터넷 사회가 으레 그렇지만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영향력이 있는 쪽.
유명하고, 전문성 있는 사람이 말하면 그럴 만하구나!
롤에서는 프로게이머가 그런 위치일 것이다.
그보다 더 높이 있다.
심지어 한 번 정점을 찍고 내려왔다.
前프로게이머, 現롤챔스 해설가라는 신분.
클끼리는 피지컬은 몰라도 게임 지식 하나는 완벽하다고 손 꼽힌다.
인지도 또한 롤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다.
오히려 피지컬이 낮아서 인정을 받기도 한다.
내가 손은 골드지만 게임 보는 눈은 챌린저 뺨치지!
우리나라 골드 유저의 약 5할 정도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런 유저들의 눈으로 봤을 때 공감대가 형성된다.
피지컬이 전무함에도 프로를 할 수 있는 남자.
더 나아가 해설가라는 직업까지 가지게 된 그.
클끼리의 팬층은 유명 프로게이머에 밀리지 않는다.
하물며 탑클래스도 아닌 BJ가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클끼리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아……, 진짜?〉
-응 진짜^오^
-신챔인 핑크스를 그렇게 잘하는데ㅋㅋ
-그냥 극한의 재능충이란다 통통아
꿀통통이 제기한 다중 사용자론.
아예 근본부터 부정을 해버렸다는 느낌이다.
게임 플레이로 보여주고, 게임 전문가가 인정했다.
더 억지를 부린다고 한들 추해질 뿐이다.
꿀통통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중요한 건 악보가 하나가 아닌 두 개라는 사실.
-리픈 못한다고 팩폭도 했음ㅋㅋㅋ
-??? : 정정하겠습니다
-확인사살잼ㅋㅋㅋㅋㅋㅋㅋ
다름 아닌 BJ꿀통통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그 9할은 틀림없이 리픈 장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인이라는 정체성을 두 번의 게임으로 박탈 당했다.
단순히 게임을 패배하기만 한 거면 모를까.
자신이 저격을 해버린 상대에게 참패.
게임 내에서 역력했던 캐리력 차이.
마지막으로 클끼리의 단언이 쐐기를 박았다.
역풍을 제대로 맞으며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 방, 저 방에서 찾아온 수천 명의 시청자.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던 팬들조차 편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현대 사회의 정의다.
〈아, 알았어요 형님들. 제가 나중에 찾아가서 사과를 하든, 쪽지를 보내든 할게요.〉
-겨우?
-왜 이렇게 성의가 없냐ㅋㅋ
-방장 개뻔뻔하네. 님 때문에 남절이 맘고생한 건 생각 안 함???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과를 한다는 건 의외로 힘들다.
사과 한 마디 못해서 인간 관계가 파탄나는 경우.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흔하게 널려있다.
안 그래도 자존심과 가오가 하늘을 찌른다.
꿀통통으로서는 인정하는 것이 싫다.
애초에 흐지부지 넘어갈 생각이었다
-남절이 왔는데?
-남절이가 방송 보고 있다
-대국민 사과 가즈아-!
그 장본인이 자신의 방송에 왔다고 한다.
채팅창 물타기가 장난 아니게 이루어진다.
이대로 그냥 방송을 꺼버릴까 고민하던 찰나.
-너무 뭐라 하지 마요. 리픈만 해도 그 정도인데 모든 챔프 다 잘하는 사람이 신기할 수도 있죠
심각히 거슬리는 채팅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매니저가 알아서 강퇴하겠지 내버려두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강퇴는 커녕 채금도 주지 않는다?
-뜬금 팩폭ㅋㅋㅋㅋㅋㅋㅋ
-남절이 대인배네
-이걸 용서한다고?
용서는 개뿔이 대놓고 시비조잖아!
하지만 어째선지 채팅창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채 무어라 말을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고 있던 그때.
-님도 진정한 재능을 찾을 날이 올 테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아, 근데…… 리픈은 좀 심각하긴 하더라ㅎ
리픈을 대표하던 장인 셋.
그중 하나가 나가 떨어지며 둘로 간추려진 순간이었다.
* * *
내가 인성이 굉장히 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한테 쓴소리를 못한다.
적당한 훈계 몇 마디와 주의만 주고 왔다.
'하, 이놈의 세상은 착한 사람만 손해 보고 살아 정말.'
개소리고 솔직히 이미지 관리 좀 했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더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괜히 끝까지 가려고 하면 나만 피곤해진다.
특히 파프리카TV는 민심이 중요하다.
민심 얻을 겸해서 대인배스럽게 대처했다.
하지만 내가 진정 보고 싶던 초상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멸망전 개찢긴 거보고 저튜브 구독 바로 취소했습니다. 행님 실망입니다
-??? : 저 피해자에요
-그의 멸망전 연패!
일단 채팅창 반응부터가 굉장히 심상치 않다.
이 방 나름의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다.
BJ의 멘트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니, 그럼 내가 피해자지 가해자야?! 정글이 더 해줄 수 있는 게 뭔데? 그냥 전 라인 실력 차이로 진 거잖아!〉
-이니시 ㅈ같이 걸어서 게임 터졌죠?
-네 다음 4킬 먹고 존재감 제로^^
-솔직히 정글 차이 안 났다ㅇㅈ?ㅋㅋ
BJ저라딧이라는 분의 방송이다.
방송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시청자들이랑 진심으로 치고 박고 있다.
〈뭘 내가 무리해 이 개새끼들아-!! 거기서 이니시 안 걸면 이즈 계속 크는데 이걸 인정 안 해준다고? 소름 돋네. 부검 가? 부검 가봐?〉
확실히 같이 게임한 입장에서 인정한다.
상대 정글이 러이갓보다 몇 배는 잘했다.
티어 차이가 나는 만큼 당연한 거긴 해도 구태여 실수를 찾을 만한 플레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는 이분이 가장 소름 돋는 거 같은데…… 살다살다 게임에서 피해자랑 가해자랑 부검까지 따지고 있네. 이분 혹시 국과수 소속이야?"
-국립과학수사ㅋㅋㅋㅋㅋ
-진짜 오지게 억울할 만은 함ㅋㅋㅋ 잘하긴 했잖아
-저라딧은 게임에 인생 건 놈이라……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인생 걸었음. 대학교까지 자퇴함
이분한테는 딱히 쌓인 원한 같은 거 없다.
하도 반응이 재밌다고 해서 구경 간 거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금 많이 재밌네?
시청자들과 싸움 끝에 부검, 리플레이를 켜서 분석을 하고 있다.
〈솔직히 3분에 봇 다이브 치는 거 원딜이 좀만 잘해줬지? 그럼 이거 깔끔하게 따고 포탑까지 밀있어. 여기서 이미 끝난 게임이야. 내가 개어거지로 정글 차이 캐리해서 반반 따라 붙은 거라고 인정해, 안 해-!!〉
"그렇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히 관전만 해도 웃기네ㅋㅋㅋ
-강 건너 불구경 잼이자너~!
-겁나 서럽긴 한가 보다. 깔깔깔!
초반 라인 스왑에서 다이브 싸움이 크긴 했다.
그렇다고 거기서 이미 끝난 게임이라니.
상당히 집착이 많은 타입인가 보다.
언제 한 번 솔로랭크에서 정글로 만나고 싶다.
'이분은 좀 너무 혼모노 같으니 여기까지만 구경하고…….'
억울할 만도 한 노릇이니 편을 들어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메모장을 켜더라.
게임 내용을 전부 타이핑해서 정리하고 있길래 살짝 무서워져서 그냥 나왔다.
저라딧은 단순히 게임을 져서, 그리고 시청자들이 물타기를 해서 빡친 거다.
그 빡침이 너무 진심이라서 소름이 돋을 뿐.
초상집 구경도 했으니 러너맨팀과의 경기로 재미 볼 건 다 본 듯하다.
"리픈 장인 원탑 인정하죠? 저분처럼 부검까지 안 해도 되죠?"
-부검ㅅㅂㅋㅋㅋㅋㅋㅋㅋ
-부검은 에바참치지!
-근데 진짜 다시 보고 싶긴 하다. 리픈 개잘하더라
다시 보고 싶으면 그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내가 그냥 솔로랭크를 하면 된다.
열혈팬이라는 위치에서 보면 좀 더 재밌을 텐데.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았다.
-누구 맘대로 리픈 원탑?
-리픈은 테이커 미만잡ㅅㄱ
-ㅇㅇ우리 상역이 꺾고 와라
'테이커?'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애초에 모를 수가 없다.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도 한다.
"테이커는…… 인정. 오케이."
-너무 가볍게 인정하는데?
-혹시 방장 테이커 아님?
-목소리가 다르잖아 목소리가
-목소리 변조는 개쉽지
방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다녀온 탓인지 조금 여파가 미쳤나 보다.
목소리 변조가 쉬울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는 억울해, 피해자야.
테이커는 처음 봤을 때부터 싹수가 파랬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게임을 하다 온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하연튼 리픈을 좀 보여줄까.
솔로랭크를 하려다가 말았다.
멸망전 기간 동안은 플래티넘을 유지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예선전을 통과했다고 대회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대회의 시작이지.'
우리팀이 팀장도 가성비가 살짝 맛이 갔지만 다른 포지션도 좀 그렇다.
그나마 믿을 사람이었던 인성제로.
챌린저 원딜러가 미드에서 쳐놀고 자빠졌다.
'원딜을 제대로 하려면 서포터가 최소 사람은 돼야 하는데 유리야고…….'
여러모로 속에 쌓인 게 좀 많은 게 아니다.
나라고 진성 브론즈랑 봇라인을 서고 싶을까.
어쩌면 생각지 못한 전략의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른다.
다른 멸망전팀들의 경기를 염탐해보기로 마음 먹었는데.
'탈주?'
보황팀 대 크하하팀의 첫 번째 세트.
바로 우리팀 다음으로 진행되는 경기다.
공식 방송을 키고 들어가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아, 보황팀 이거 좀 아쉬운데요.〉
〈오늘 경기를 잡고 대역전의 드라마를 쓸…….〉
〈그런 재미있는 드라마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는 않죠?〉
해설자들이 난리가 나서 떠들어댄다.
딱 봐도 분위기가 보통 일은 아니다.
잠자코 들어보니 팀원 한 명의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살다 보면 한 번은 저지를 수 있는 실수긴 해.'
프로게임단과 달리 개인을 속박할 수 있는 규율이 없다.
특히 약속 시간은 누구라도 한 번은 어겨본다.
그게 하필 멸망전 대회라는 건 안타깝지만…….
이해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데 솔직히…… 제대로 해도 지긴 했을 듯ㅎ
-크하하를 어떻게 막아! 파프리카TV 최고의 Zl죤 원딜이신데
-ㅇㅇ카이팅 알파고 뺨칠 걸? 알파고의 화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음!
상대팀인 크하하팀이 잘해도 보통 잘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미 다크팀을 상대로는 2연패로 깨졌다.
'소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꼴이지.'
같은 조에 속한 팀이 크하하팀, 그리고 다크팀이 너무 강하다.
경기의 내용도 일방적에 학살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쉽다는 목소리 채팅창에 들린다.
-으악…… 보황 진짜 불쌍하다. 멸망전 준비는 제일 열심히 했는데
-3일동안 3시간 자고 연습만 빡세게 하더라
-근본적인 전력 차가 너무 심했어ㅠ.ㅠ
사실 롤이라는 게 연습을 한다고 단기간에 실력이 늘진 않는다.
A조의 탈락팀으로 확정되다시피 한 상황.
탈주로 인해 아예 쐐기까지 박혀버렸다.
〈연락이 두절된 학종님이 심지어 챌린저 카드라서…… 경기 시작 전까지 안 들어오면 진행이 어떻게 될까요?〉
〈규정상 파프리카TV의 운영자님 중 한 분이 대신 경기를 뜁니다. 참고로 티어는 골드에요.〉
〈안타깝습니다. 챌린저 카드가 골드로 대체되는 만큼 전력의 약화가 필연적이겠네요.〉
보황팀의 리더인 BJ보황님이 워낙 준비를 열심히 하셨다.
지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심을 한 찰나에 하필 악재가 겹쳤다.
'이건 내가 봐도 정말 동정이 가네.'
멸망전 공식 방송은 물론 내 방송의 채팅창에도 동정의 여론이 들끓는다.
그럼에도 경기는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운영자가 대타로 참가.
챌린저 카드가 한순간에 골드 카드가 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뭐? 골드?!
조금 나쁘지만 합리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딱 봐도 12시에 못 일어날 각이라 예약 연재를 걸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