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70화 (70/443)

###70

<-- 이래서 ㄹㅇㄱㄹㅇㄱ 하는구나 -->

멸망전 예선전은 이틀에 걸쳐 빠르게 진행된다.

질질 끌어봤자 서로 애만 타는 법이다.

프로게이머들과 달리 BJ들은 대회가 본업이 아니다.

그 본업에 도움이 되고, 롤판의 흥행을 위한 협조도 하고.

아무튼 상부상조 하자고 하는 건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나 같은 하꼬들은 대회 상금 보고 하는 거기도 하지.'

우승 상금이 무려 천만 원이다.

준우승은 600, 3위는 400.

그렇다던데 애초에 나는 우승 말고는 생각한 적이 없다.

'다섯이서 나누면 200……, 한동안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만.'

하지만 다른 대기업BJ들은 1주일도 안돼서 버는 돈이다.

특히 러이갓은 어떤 날에는 하루 만에 터지기도 한다.

별풍이 내린다~ 샤랴랄라라랄라~.

같이 듀오를 하는데 한 시간 내내 연속해서 들린 적도 있을 정도다.

참고로 저 노래는 별풍선 100개가 터졌을 때의 리액션.

즉, 100개 이상이 쉬지 않고 10~20초 간격으로 터졌다는 이야기다.

그럴 때면 러이갓이 한 마디 한다.

별풍선은 흐름이라고.

'내 BJ인생 한 번도 흐름 타본 적이 없는 하꼬다 정말로.'

BJ를 하면서 하꼬라는 표현이 익숙해지게 됐다.

시청자들이 하도 하꼬하꼬 가려서 하꼬로제가 걸렸다.

물론 얼마 안 있으면 하꼬 인생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의 위기만 넘긴다면.

-챌린저급 플래 보러 왔습니다^^

-님이 플래티넘이라고요?ㅋㅋㅋ

-얘가 진짜 플래면 손에 장 지지고 인증함!

어제 있었던 팡우팀과의 멸망전.

2 대 떡으로 깔끔하게 바른 건 좋았지만 그 후폭풍이 어마무시하다.

방송을 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3천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몰려왔다.

이게 결코 좋은 쪽의 성황이 아니다.

'애초부터 터질 게 예정된 폭탄이었지.'

의도해서 설치한 폭탄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탄은 풍향 등을 고려 안 하면 오히려 아군에게 피해를 입힌다.

지금은 아직 바람이 안 좋다.

더 존버를 할 필요성이 있다.

"님들도 브실골플인데 입만 열멸 챌린저잖아요. 다를 거 있음?"

-ㅇㅈ……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건 드립이잖아!!

-부캐 참가면 범죄인 거 모르나?

부캐 참가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다.

고작해야 멸망전 규율 어기는 정도겠지.

그 정도로 빨간 줄 그일 정도로 대한민국 사회의 준법 정신이 투철하지 않다.

"어그로든 뭐든 챌린저급 플래 방송 보고 가세요. 온 김에 추천 즐찾도 한 번씩 눌러주고."

-ㅋㅋㅋㅋ애써 쿨한 척

-응 본캐 밝혀질 때까지 징징댈 거야

-우리가 지금 장난하는 줄 암? 너 때문에 다른 팀 피해본다고!

대체 무슨 피해를 어디서 어떻게 언제쯤 무슨 연유로 봤니?

물어보면 대답도 못할 것들이 입만 살았다.

니들은 술 살 때마다 항상 민증 까고 사냐?

"때 되면 공개하겠죠. 적당히들 징징대세요."

저런 애들이 꼭 참지 못하고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다.

나중에 눅눅해질 때가 돼서야 아, 내가 그때 부어서는 안됐는데!

후회를 하거나 그 눅눅함 자체를 즐기는 인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탕수육을 부먹한다는 것은 고기가 익사하는 것을 즐기는 새디스트라고 볼 수 있다.

-부먹충들의 폐해……

-부먹충들이 사고 칠 줄 알았다ㅉㅉ

-방장아, 부먹이고 찍먹이고 진짜 큰 문제라니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안다.

근데 소지가 있는 거랑 진짜 문제가 되는 건 또 다르다.

아무리 어려 보여도 실제 나이가 스무 살 이상이면 담배랑 술 살 수 있잖아?

'멸망전 끝나면 싫어도 공개를 하게 될 거고.'

그때까지 시끄러울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내가 러이갓팀에 들어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BJ들의 세계는 결국 정치고 영향력이다.

원래 한국 사회가 싸움 터지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그리고 러이갓은 목소리가 BJ계에서 제일 큰 놈이다.

이곳 파프리카TV는 반쯤 무법지대라 상당히 유효하다.

〈행님들, 타BJ들이 우리팀 못 이겨서 선동하는 거라니까? 운영자님이랑 통화하고 문제 없다는 거 다~ 확인한 다음 대회 진행을 하는 거지. 게임사에서 해당 소환자 명의 계정 전부 확인한 건데 왜 지들이 뇌피셜로 이래라저래라 난리야? 지들이 좋은 카드 못 구해 놓고 말도 안되는 억지 부리는 거지 지금.〉

까놓고 말빨로 러이갓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청자 수 또한 가장 많으니 영향력도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나와는 이해타산적인 관계로 얽혀있다.

'내가 빠지면 우승 못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

대의명분.

구태여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정의다.

그런 게 아닌 이상 이 균형이 무너질 일은 없다.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태가 발생했다.

* * *

2013년 후반기의 파프리카TV.

한창 게임 방송이 득세하며 그중에서도 롤방송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다.

러이갓이 한 마디 하면 파프리카TV의 시청자들은 건너건너 다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런 영향력을 뻗칠 수 있는 사람.

오직 러이갓 혼자만인 것은 또 아니다.

그 이상, 엄청난 영향력을 떨쳤었다.

〈음…… 형들. 형들이 보기에는 어때? 솔직하게 실력만 놓고 보면 난 같은 플래지만 이렇게는 못할 거 같거든?〉

-저건 플래가 아니라 다이아 마스터도 못해ㅋㅋㅋ

-나 챌린저 2티어인데 저런 플레이 가끔 나옴

-챌린저에 2티어가 어딨냐;;

-저 사람 프로 의혹 있었다니까? 최소 챌린저임

BJ러너맨은 現파프리카TV 롤판의 양대산맥이라 불린다.

그도 그럴게 멸망전의 전신(前身).

러너리그는 수많은 스타들을 낳은 희대의 아마추어 리그다.

현재 롤챔스에서 활약하는 테이커, 뱅기, 팡진, 썬데이, 궆, 구로 기타 등등…….

날고 기는 프로들이 러너리그에서 처음 경기를 선보였다.

대회를 연 개최자인 러너맨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물론 과거형이기는 하나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

살짝 시들시들할 뿐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파앙!

파앙!

무려 7천 명에 달하는 시청자!

그런 러너맨의 방송에서 재방송이 틀어지고 있다.

다름 아닌 멸망전 도인디팀 대 러이갓팀의 1세트 말이다.

-ㅁㅊ저기서 위웍 궁을 끊어버리네

-방금 못 끊었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짤리는 각 아님?

-끊고 나서 카이팅도 호러 수준이다;;

〈그치?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근데…… 진짜 잘하긴 잘한다 형들. 나도 도라이븐 해볼까?〉

절대 하지 마라며 말리는 채팅들이 올라온다.

BJ러너맨의 실력은 살짝 유감이다.

플래티넘2,3티어에서 올라가지를 못한다.

하지만 이번 멸망전에서 만큼은 희소식이다.

골드&플래 카드에서 나름 가성비가 좋다.

때문에 팬들은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음 상대가 될 러이갓팀이 조금 심각할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

〈지금 도라이븐 하시는 분이 나랑 똑같은 골드&플래 카드래. 나 이분 솔랭에서 만나면 5분 안에 찢기고 팀한테 가족 신상 다 팔릴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ㅇㅈ

-도라이븐 저렇게 크면 진짜 바텀한테 욕 나오지

-저분 도인디도 찢어버린 분이야 심지어 맞라인전으로

〈도인디님? 챌린저분 아니야? 챌린저인데 찢겼다고? 역시 본캐 챌린저 맞는 거지 형들?〉

본캐가 아닌 팡우&도인디 듀오 사건 때 만났다.

확실한 물증을 찾자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하지만 심증이 너무 차고 넘쳐서 문제다.

─세나찡 복수다!

도인디팀을 상대로 한 2세트.

도라이븐이 잘리자 부시안을 꺼냈다.

주저 없는 앞대쉬로 적 이즈레알을 관광한다.

-이즈레알 정신 못 차리네ㅋㅋㅋ

-이즈 Q 다 빗나가는 거 실화?

-저 이즈 저래 봬도 다이아임

-부시안 무빙샷이 살아있네ㄷㄷ

부시안은 출시된지 3개월도 안된 신챔프다.

조작 난이도가 하도 어려워 최근에서야 사용된다.

특히 궁극기 불의 심판은 장인조차 맞히기 버거워한다.

누가 보면 평타라도 쓰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채팅창에는 군필 부시안ㄷㄷㄷㄷ

명중률과 숙련도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격찬한다.

1세트처럼 파괴적이진 않지만 그래서 더 대단하다.

뽀록이 아닌 실력이라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1세트 이어 2세트까지 하드 캐리한 장본인이지만…….

정말 어떻게 봐도 원딜 한두 판 해본 솜씨가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형들, 소신 발언 하자면 나 이분 절대 플래는 아니라고 봐. 조금 잘하는 것도 아니고 MMR이 두 배 넘게 잘해! 막말로 이분이 정말 플래면 난 방송 접을 거 같아.〉

-방접 선언ㄷㄷㄷ

-애들아 선전포고다ㅏㅏㅏㅏ

-러이갓이랑 한바탕 뜰까? 난 준비됐다!

〈아니, 형들. 그런 게 아니라……. 내 재능이 한탄스러워서 그래~. 같은 플래인데 이렇게 실력 격차 심하면 게임 접어야지.〉

나근나근한, 살짝 게이스럽기도 한 목소리.

러이갓과 성향이 반대인 만큼 팬덤 또한 갈린다.

방금 러너맨의 발언으로 파프리카TV에서는 대란이 일어난다.

-누가 봐도 챌린저인데 장난 똥 때리나!

-챌린저고 뭐고 지금 본캐가 플래인 게 중요하지ㅋㅋ

-본캐가 다른 사람 명의겠지~. 그 정도도 모를 줄 암?

-그래서 증명 가능? 러너충들 반박 못하죠? 앙! 러모띠!

멸망전BJ들의 방송은 물론 다른 롤BJ들의 방송까지.

현재 파프리카TV의 초특급 화제가 돼버렸다.

당연하게도 당사자들은 더욱 신명이 난다.

〈난 어떻게 보냐고? 알게 뭐야! 멸망전 우승 상금이랑 별풍 땡겨서 조선족 없는 곳으로 이사 가는 게 내 오래된 꿈이야.〉

-사스가 대림동 햄주먹ㄷㄷㄷ

-대림동 조선족 많음?

-ㅇㅇ인성제로 방송 중에 가끔 중국어 샤우팅 들리잖아ㅋㅋㅋㅋ

엉덩국 인성제로 등 같은 팀들은 쉬쉬하거나 편을 들어주거나.

확실하게 증거도 없는 일 가지고 생사람 잡지 마라.

하지만 같은 조에 속한 러너맨팀 소속BJ들은 민감하다.

〈남절님? 나도 그거 고려하고 있었어. 잠깐만. 메모장 좀 키고 말할게.〉

-그의 저모장

-그의 고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메모장을 키지ㄷㄷ

-원래 저라딧은 욕할 때 항상 메모장 킴ㅋㅋㅋ

Just light This 저라딧, 러너맨팀의 챌린저 정글러인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메모장을 키고 솔직한 마음을 토로한다.

당연히 좋은 쪽 이야기일 수가 없다.

이슈는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느 쪽 의견이 딱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다.

각BJ들의 팬덤까지 합세해 팽팽한 기싸움이 오가던 와중…….

한 BJ가 제3의 의견을 제시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얼마 전 군챔스 중계 방송 이후 단숨에 성장해 하꼬를 탈출했다.

꿀통통의 방송에 5천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몰리며 새로운 파국이 도래한다.

* * *

중대 발표.

스트리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쓰는 네 글자다.

정작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내용으로 어그로만 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절대 우발적으로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심사숙고 하고 있던 고민이 드디어 확신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형님들. 평소 제 방 봐주시는 형님들도 계시고, 딴 방에서 오신 형님들도 많을 텐데 업이랑 즐겨찾기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아, 빨리 중대 발표나 해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시덥잖은 내용이면 즐삭할 테니 알아서 해라 통통아

.

.

.

설마 이렇게나 많은 어그로가 몰릴 줄이야.

마이크를 타고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살짝 쫄아있다.

하지만 꿀통통은 결코 아무런 대책 없이 중대 발표를 연 게 아니다.

〈제가 그동안 증거도 수집했고, 여러가지 정황도 따져본 결과. 확실하다고 생각되어서 E스포츠판의 정의를 위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E스포츠판의 정의ㄷㄷㄷㄷ

-정의의 사자 납신 거야?

-통통아 그런 소신 발언 난 마음에 든다!

-ㅇㅇ뭔지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꿀통통은 미리 준비해둔 자료 폴더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폴더 안에는 수십 개의 영상들이 담겨 있다.

영상의 내용들은 전부 BJ유리야남친절대아님의 솔로랭크다.

짐덩어리인 러이갓을 업고 다이아 상위 구간에서 연전연승.

놀라운 실력이긴 하나 그 정도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청자들도 다 들을 건 듣고 볼 건 본 입장이다.

〈러이갓팀 BJ들은 복귀 유저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나도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봐.〉

-대리or복귀 유저는 확실하지

-극한의 재능충일 수도 있지 않음?

-아무리 재능충이라도 몇 판 하지도 않고 그 실력은 말도 안되지ㅋㅋ

-내가 보기에는 걍 레전설이야. 또 깽판 치려는 거라니까?

현재 가장 신빙성을 얻고 있는 추측.

왕년에 잘하던 복귀 유저일 수도 있다.

채팅창에는 레전설 관련 지분이 상당히 높다.

〈형님들 말을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닌데……. 난 이분 뒤에 더 큰 배경이 있다고 봐.〉

과거 유저 치고는 지나치게 챔프폭이 넓다.

숙련도도 결코 한두 달 한 정도가 아니다.

꿀통통의 중대 발표는 다름 아닌 음모론.

〈생각을 해봐. 레전설님이 2년 전 유저야. 근데 자드, 도라이븐, 신챔프인 부시안까지 저 숙련도로 한다는 게 말이 돼? 심지어 챔피언 하나하나가 다 장인류 챔피언이잖아~.〉

-그렇긴 하네

-ㅇㅇ하나만 잘하려고 해도 등골 빠지지

-리픈만 봐도 통통이보다 더 잘함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화끈하게 타오르던 파프리카TV에 작은 핵폭탄 하나가 터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