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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TV 초유의 이벤트.
총 상금 2000만원의 어마어마한 기획이다.
정식 대회면 모를까, 한국에서 이만한 대회를 열 수 있는 플랫폼은 아직 파프리카TV를 제외하면 없다.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는 초호화 라인업도 한몫한다.
내로라하는 BJ들은 전부 참가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최근 롤 유저들 사이에서 악평이 자자한 BJ다크.
그가 과연 어둠이 맞는지.
대체 얼마나 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라도 안 보고 넘어가기가 힘들다.
비단 좋은 쪽의 관심만은 아니어도 최소 열렬한 이목을 모으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오오 생방 시작했다!
-근데 멸망전 해설 누구냐?
-대회는 결국 해설빨이라 해설 아마추어면 경기도 노잼인데ㅋㅋ
그런 파프리카TV의 멸망전 대기방.
채 방송이 시작하기 전임에도 수천 명의 시청자들의 몰려왔다.
약 10분 남짓한 대기 시간이 지나 드디어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진행된다.
그래봤자 아마추어 대회, 진행과 해설의 퀄리티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안녕하세요~! 파프리카TV만의 특별한 리그 BJ멸망전! 진행을 맡은 김의정이고요. 수준 높은 해설과 외모를 겸비한 해설자분을 모셨습니다.〉
〈외모라고 하면 시청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것 같은데요?〉
〈어, 그럼 해설은 자신 있다는 이야기네요?〉
〈저도 이제 정식 해설자인데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로 큰 대회를 여는 건 이벤트성이라 할지라도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파프리카TV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롤챔스의 2부 리그인 LML을 맡고 있는 굿게임TV가 바로 파프리카TV 소속이다.
엄밀히 따지면 송출을 빌려 쓰고 있는 거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틀리지 않다.
그 굿게임TV의 소속으로 LML 캐스터를 맡고 있는 김의정.
그가 멸망전 진행을 맡게 됐다.
심지어 해설자는 롤챔스와 롤드컵을 아우르는 그 前프로게이머다.
이제는 완벽히 해설자로 자리 잡은 클끼리도 파프리카TV의 녹을 먹는 처지다.
〈저는 해설자임과 동시에 BJ이기도 하기 때문에 멸망전에 참가하는 BJ입장에 이입해서 해설이 가능합니다.〉
〈이입 좋죠! 근데 혹시 이입이 아니라 아예 참가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나요?〉
〈아니, 참가는…… 이제 현역이 아니라서 후학에게 맡기겠습니다.〉
클끼리는 2013년도 불과 한두 달 전, 롤챔스 섬머 시즌까지만 해도 현역 프로게이머였다.
이렇게 말하면 얼핏 대단해 보이지만 성적은 한참 전부터 죽을 쑤고 있었다…….
폼이 극한까지 떨어져 클끼리의 팬들조차 고개를 내저을 정도.
박수칠 때 떠난다는 느낌으로 좋은 타이밍에 은퇴해 정식 해설자로 직업을 전향했다.
선수 데뷔 전부터 파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해온 만큼 BJ의 세계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그런 그가 멸망전의 해설을 맡았다는 건 필연임과 동시에 다행이다.
최소 해설의 퀄리티를 걱정할 일은 없다는 소리니까.
-클끼리 김의정이면 평타는 치네ㅋㅋ
-부업 BJ들의 대란!
-김은준은 BJ가 아니라서 못 오나?
-클끼리보다 몸값이 비싸잖아ㅋㅋㅋ
채팅창에 긍정적인 반응들이 올라온다.
최소 기대 이상은 맞춰줬다는 분위기.
하지만 이미 일어나버린 보풀, 논란까지 잠재울 수는 없었다.
〈지금 채팅창에 BJ다크가 어둠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들이 올라오고 있거든요?〉
〈확실히 이 부분은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긴 합니다. 참고로 저도 궁금해요.〉
-클끼리 저러다 잘리는 거 아님??
-다크가 어둠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봐라
-ㅇㅇ롤챔스에 문의 잔뜩 넣어줌
공식 대회 해설자들은 반쯤 공인이다.
아무리 자리가 프리하다고 해도 발언을 조심해야 할 위치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전달 밖에 없다.
〈다크님 피셜로 어둠은 자신과 솔로랭크에서 만나 떡 발리고 멘탈 나가서 군대를 갔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사실 눈 가리고 아웅……저도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뭐야, 어둠〈〈다크였어?
-해설자들도 어이없어 하네ㅋㅋㅋ
-어둠 걔는 평생 방구석에서 안 나올 걸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하지만 대다수에 해당하는 라이트 유저들.
알라리깔라리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다.
〈논란이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한 점을 사과드리며 멸망전 첫 번째 경기. A조 크하하팀 대 다크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별나기 그지없는 이색 대회.
파프리카TV의 멸망전이 막을 올린다.
* * *
멸망전의 세부 규칙은 다음과 같다.
여섯 명의 대표BJ가 이끄는 팀들이 두 조로 나뉘어진다.
A조와 B조, 각각 세 팀이 속해 예선전을 치른다
각 조에 속한 팀들은 서로 두 번씩 겨뤄 승점을 쌓는다.
상위 두 팀은 본선에 진출하며 나머지 한 팀은 탈락.
이미 개막식 첫 번째 경기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는 화제가 한창이다.
─ㅁㅊ 크하하 카이팅 사람 아니네;
은신 활용한 어그로 핑퐁 미쳐버렸다
랭크 게임에서 저런 배인 만나면 오줌 지릴 듯……
핑크 와드만 안 쳤어도 3타 터지면서 펜타킬 아니었냐?
└다크도 진짜 어처구니 없어하더라
└크하하 배인 살린 게 실수였다
└ㄹㅇ 크하하한테 배인 주면 안되지ㅋㅋㅋ
개막식을 겸하는 A조의 첫 번째 경기가 끝이 났다.
BJ크하하팀 대 BJ다크팀.
사실상 우승팀이나 다름 없다는 다크팀을 상대로 크하하팀은 1대1의 반반 스코어를 가져왔다.
첫 번째 세트를 패배하고 이어진 두 번째 세트가 가히 명경기!
왕귀한 크하하의 배인이 무쌍을 찍으며 역전의 드라마를 써내렸다.
롤이라는 게임에서 원딜러의 캐리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멸망전 개막식에서 증명해냈다.
─BJ대전이라더니 경기력은 롤챔스 뺨치는데?
다크는 원래 솔랭 최고수라서 알았지만……
크하하 생각 이상으로 훨씬 잘하네
우승팀 벌써 속단해서는 안되겠다
└양팀 주장이 모두 롤챔스 출신이잖아
글쓴이-아, 진짜? 크하하도 프로였어?
└프로는 아니고 롤챔스 16강까지 올라감
└ASDF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 많나 보네~
팀다크라는 초특급 대형 화제 때문에 묻혀버렸을 뿐 BJ크하하도 롤챔스 출신이다.
안타깝게도 16강에서 탈락했으나 본선 무대까지는 올라간 셈이다.
심지어 TEAM KB 자체가 크하하 원맨팀이나 다름 없었다.
딸피 상태에서 부쉬 플레이로 풀피 나이즈를 역관광내는 기엄!
프로조차 혀를 내두른 알파고급 피지컬을 생방송으로 과시했다.
ASDF라는 누가 봐도 대충 지은 닉네임까지 이목을 모으기 충분했으나.
─크하하도 진짜 운 없는 타입이야ㅋㅋ
아마추어 대표 원딜러가 될~ 뻔했는데!
레전설 사건이랑 팀다크 사건 여러가지 터지면서 묻혔지
└원래 하늘 위에 하늘 있는 법이잖냐
└꼬우면 멸망전 빡캐리해서 우승해야지ㅋㅋ
└아니면 러이갓팀처럼 가성비 개쩌는 카드 뽑던가
A조의 경기가 워낙 박빙이라 망각했을 뿐.
멸망전은 순수한 대회 경기와는 궤를 달리한다.
꼭 잘한다고, 열심히 한다고 이길 수 있는 대회가 아니다.
한정된 카드를 어떻게 살리냐가 극히 중요.
그 점에 있어 러이갓팀은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다른 팀들에서 단체 항의가 들어온 것도 그럴 만했다.
─웃음 후보가 아니라 우승 후보인데……?
러이갓팀 최약체라며?
러이갓 다딱이 카드라 개망했다며??
팡우팀 찍소리도 못하고 쳐발리는데 뭐야 대체!
└원래 남절이가 도인디 담당 일찐이야……
글쓴이-그게 문제가 아니라 카드 가성비가 말이 안되잖아
└진짜 결국 골드&플래 카드로 나왔나 보네ㄷㄷ
글쓴이-플래가 마스터 개패고 있어.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안타깝게도 말이 된다고 한다.
성황리에 끝난 멸망전 개막식.
이어서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원수가 외나무 다리에 만나듯 담당 일찐과의 대면 또한 운명이었다.
* * *
언젠가 한 번은 돌려줘야 할 앙갚음이다.
오히려 지금의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계획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니…….'
도인디는 압도적인 캐리력과 팡우조차 받들 줄 아는 인성을 알려 프로판에서 자신의 평가를 높이고자 했다.
그 뼈를 깎는 인내심을 가졌던 계획이 단 한 사람에 의해 물거품이 됐다.
아니, 빼앗겨버렸다는 표현이 옳다.
그 작자는 BJ유리야남친절대아님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방송을 시작한 상태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용의주도한 녀석이다.
한 술 더 떠 정체까지 숨기고 있다.
'나중에 확 공개해서 이슈를 끌어모을 속셈이겠지.'
의도했든 아니든 자신은 이용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아니, 칼을 갈고 있다는 표현이 옳다.
되돌려줄 상황이 온다면 반드시.
멸망전에 참가한 주된 이유가 바로 복수다.
복수의 순간은 생각 이상으로 허무히, 그리고 빠르게 다가왔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도인디는 팡우팀 소속 챌린저 카드로 멸망전에 참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경기에서 원수를 만나고야 말았다.
러이갓팀에 바로 그 BJ유리야남친절대아님이 있다.
자신과 비슷한 계획을 가진 그 녀석도 역시나 노리고 있는 것이다.
준아마추어급 대회지만 롤챔스급 화제를 모으는 멸망전.
우승을 거머쥐어 프로게임단들의 눈을 돌리려는 속셈 말이다.
'솔로랭크에서의 설움을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갚아주마.'
지난 패배는 아무래도 판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프로 무대 기준으로 게임을 연습했다.
단순한 솔로랭크에서의 개싸움은 특기가 아니다.
이곳 멸망전은 어설프기는 하나 팀 게임.
운영 싸움으로 간다면 자신이 결코 질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임한 첫 단추가 조금 이상하게 꿰인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봇라인에서 악보가 들려왔다.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예상했던 일이다.
그도 그럴게 멸망전은 흔히 말하는 구멍이 존재한다.
자신이 속한 팡우팀은 상대적으로 봇라인을 약하게 잡았다.
서포터를 골드&플래 카드로, 원딜러를 다이아 카드로.
정확히 버틸 수만 있는 수준으로 카드를 배정했다.
한두 번 죽더라도 위에서 캐리하면 그만이다.
자신은 당연하고 現챌린저 탑라이너 KFC도 믿음직하다.
만에 하나 적 원딜러가 성장을 잘해도 한타로 가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블러디체리랑 코리아나가 광역딜을 퍼부으면 원딜러가 어떻게 버텨.'
무난한 라인전과 그림 같은 한타.
도인디가 지향하고 있는 멸망전 필승법이다.
그 필승법이 이뤄지기 전에 당연한 듯 깽판을 치고 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유리야남친절대아님님이 학살 중입니다!
'…….'
당연히 미드 라인에서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봇 라인 원딜러로 꽁무니를 뺐다.
버텨주길 바랬던 아군 봇라인이 빠르게 박살 나고 있다.
〈아니, 밍밍이님. 방금 딜교환 하시는 거 아니었는데…….〉
〈죄송해요. 그렇게 센 줄 몰랐어요.〉
〈도라이븐이 퍼블 먹고 삼검류인데 당연히 딜교환이 안되죠.〉
뒤늦게 피드백을 나눈다고 내준 킬이 돌아오진 않는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악몽이다.
도라이븐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 당하는 봇라인.
'버텨줄 수…… 있을까?'
희망적인 관측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도출되는 해답은 오직 하나 뿐이다.
상대가 봇라인을 파괴하는 이상으로 위쪽에서 게임을 터트린다.
'이번에는 블러디체리가 있으니 한타 걱정은 안 해도 돼.'
이를 해내기 위해서는 역시 운영이다.
미드&정글 싸움을 승리하고 KFC를 콜해 용을 잡는다.
다행히 상대팀 정글러는 다이아 값을 못하는 러이갓.
흐름을 잡기 위해 도인디는 아군 정글러를 불렀다.
"미드갱 봐줄 수 있어요? 지금 오면 필킬인데."
〈어~ 인디야. 지금 지웍 달달~하게 왕귀 중이야. 6레벨만 찍고 갈게!〉
세차게 맞기라도 한 듯 뒷골이 흔들린다.
상황이 너무 급박한 나머지 그만 잊고 말았다.
아군 정글러는 그 짐승 팡우.
지린다조아에 뒤지지 않는다는 전설의 똥개, 지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