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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서 ㄹㅇㄱㄹㅇㄱ 하는구나 -->
파프리카TV.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
이곳에는 당신이 아는 것보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말 많은 인종
발 빠른 인종
잘 먹는 인종
영리한 인종
친절한 인종
.
.
.
이중에서 가장 말 많은 인종이 제압을 당했다는 희소식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인종이기도 해서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러이갓의 그 쇠똥 같이 굵은 똥존심이 드디어 꺾였다.
"러이갓이?! 아니 러이갓님이……. 아무튼 그분이 그렇게 쉽게 굽힐 분은 아니지 않아요 형님들?"
-겁나 어색하게 존칭 붙이네
-러이갓이랑 라이벌 관계잖아ㅋㅋ
-근데 진짜야. 러이갓 그렇게 찍소리도 못하는 거 처음 봄
현재 파프리카TV의 롤방송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대기업이다.
BJ러이갓, 그리고 BJ러너맨.
실제 런닝맨에 나가 활약한 적은 당연히 없지만 대신 러너리그라는 개인 대회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러이갓과 라이벌 관계이기도 한 만큼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그런 그가 의문을 표할 정도면 말 다했다.
다른 대표BJ들도 긴가민가 하고 있다.
"러이갓님? 그분 부캐하다 만나본 적…… 한 번 있기는 한데 정글이 주포지션이 아니라 애매하셨지."
-러이갓 이제 정글러인데?
-AP마이 리메이크되고 정글 전향했어!
-왜 채팅 애써 무시하죠?ㅋㅋㅋ
-그때 적 정글 사람 아니라고 하지 않음?
알파고급 피지컬로 널리 알려진 BJ크하하.
점잖은 말투로 아는 척을 해봤지만 잘못 짚었다.
어쩌면 일부러 아픈 부분을 꼬집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쩌리 시절 러이갓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진실인지 둘의 사이는 썩 좋지가 않다.
"러이갓?! 그 새끼는 정말 사람 아니야. 나는 실버 1티어라서 못하는 거고. 걔는 다이아인데 골드에서 트롤하고 다닌다며?"
-형님 어째서 실버 1티어를 강조하십니까……
-팡우 인생 최대 업적이 실버 1티어
-도찐개찐인 듯합니다 형님
도인디 사건 이후 민심이 안 좋아진 BJ팡우.
그럼에도 대표BJ 중 한 명으로 뽑힐 만큼 영향력은 건재하다.
그다지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신경을 쓰고 있다.
"여러분들 모두 보이루~ 오자마자 미안한데 지금 러이갓님 난리 났다면서 진짜야? 코와이네~."
-ㅂㅇㄹ~
-보황이 어서 오고
-ㅇㅇ러이갓 정신 차렸더라
-컹스해버렸자너ㅋㅋㅋ
소문난 흙손으로 무슨 게임을 해도 안타까운 실력을 자랑하는 BJ보황.
하지만 대인배스러운 인성과 시청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씨로 이름 높다.
현재 파프리카TV 멸망전 소속 대표BJ들의 방송에서 러이갓의 이야기는 자극이 된다.
그렇게나 챌린저, 프로게이머를 부려 먹으면서 다이아 구간도 탈출 못하다니?
솔직히 비웃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보황급 인성의 소유자다.
그런 러이갓이 정말로 정신을 차렸다고 카더라.
참 맛깔나고 속 시원한 희소식임과 동시에 불안하다.
가장 가성비가 안 좋은 팀이라 밑바닥을 깔아줄 줄 알았다.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빡게임을 한다니 상대팀 입장에서는 위협 요소다.
한 가지 더, 믿지 못할 소문이 따라왔다.
─러이갓팀 미드 유리야남친절대아님 얘 자기가 골드라는데?
지금은 러이갓이랑 듀오하다 플래로 승격했는데 아무튼
멸망전을 골드&플래 카드로 나가는 게 말이 돼?
다딱이 러이갓 멱살 끌고 마스터 보내고 있으면서
└드립 아님? 뭐 그리 진지하게 반응함
글쓴이-아니;; 저도 드립인 줄 알았는데 엔트리에 골드&플래 카드로 올라갔어요
└??? 뭔 개소리지.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한 거 맞나
└그러니까 남절이가 정말로 그 플래티넘이 본캐라고?
바로 그 러이갓을 정신 차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최근 러이갓과의 듀오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확실히 실력도 있고, 인성도 러이갓 못지 않고 기대가 될 만한 신인 BJ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 플래티넘이라고 자칭하는 건 좀 아니지!
처음에는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드립의 연장선.
어차피 멸망전 엔트리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면 다 밝혀질 사실이다.
과연 어디 사는 누구인지 찬찬히 지켜보자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골드&플래 카드로 참전했다?
시청자들도 시청자들이지만 다른 팀들에서 항의가 들어온다.
아니, 누가 봐도 본캐가 아닌데 저게 말이 됩니까?
무려 말이 된다고 한다.
* * *
띠리리리링-♪
세차게 울리는 전화 벨소리.
파프리카TV 멸망전 기획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전화 문의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 예. 그 부분은 이미 게임사를 통해 확인이 들어간……."
파프리카TV의 시청자, 그리고 멸망전을 기대하는 팬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공지사항을 띄웠음에도 계속해서 문의가 들어온다.
문의의 내용이라 함은 단 한 가지.
"아직도 확인이 안됐어?"
"평균 3일 정도 걸립니다. 어제 보냈으니 최소 이틀은 더 기다려야……."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다시 보내! 안 그러면 일정 박살날 수 있다고 꼭 붙이고."
BJ유리야남친절대아님이 정말로 골드&플래가 맞는가?
웬만한 정도였다면 이 정도로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파프리카TV 측에서도 영향력이 높은 BJ러이갓을 상대로 얼굴 붉힐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다이아는 커녕 챌린저, 프로 의심을 받고 있는 BJ다.
골드&플래 카드로 참전했으니 그냥 어안이 벙벙하다.
게임사를 통해 정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진다.
"문제가…… 없다고?"
"예, 해당 사용자 명의의 계정을 전부 조사해봤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플래티넘 1티어가 최고 티어의 계정이라고 합니다."
멸망전 기획팀의 팀장 이승재는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결국 규정 상의 문제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대로 발표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솔직하게 자신이라고 해도 코웃음을 치며 부정했을 것이다.
'다크 같은 녀석이 한 명 더 있었구나. 이놈의 BJ들은 어떻게 하루를 안심할 날이 없어.'
항상 BJ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 골머리를 썩는 파프리카TV지만 이번 만큼은 별 일이 없길 바랬다.
다행히 태풍의 눈, 폭탄과도 같은 다크가 잠잠히 있다.
고맙게도 오히려 화제 몰이를 할 만한 이벤트를 제안해왔다.
각 팀의 엔트리도 문제 없이 짜여지고 있어 안심하던 찰나에 다른 쪽 수도꼭지가 퍼엉-! 터져버렸다.
고민을 하던 이승재는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자신의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꼬BJ면 모를까, 러이갓은 잘못 건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대기업이다.
옛말에 고민해서 결론 나오지 않을 문제는 고민하지 말라고 했다.
막말로 다크 같은 녀석도 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대수겠는가.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도 해당BJ에게만 책임을 물어 잘라내면 그만이지.'
파프리카TV는 당연하게도 정규 방송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화제만 키울 수 있다면 깨끗하지 않은 일도 기꺼이 모른 척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스타크래프트 승부 조작을 일으킨 인간이 BJ마주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을 정도다.
대법원의 개인 방송 제재 판결 이후 빠르게 잘라내 손절했지만 도마뱀 꼬리 자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슈로 인한 이득은 얻고, 욕은 최대한 덜 먹겠다는 마인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성격의 기업인 파프리카TV다.
"일단 그렇게 전달하고 다른 문제 생기면 개인 회선 통해서 바로 연락 때려."
"……예, 알겠습니다."
말단 직원 하나가 씁쓸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자신 또한 불과 6~7년 전만 해도 저런 모습이었다.
안타깝게도 일이란 현실과의 타협을 필요로 한다.
'언제가 깨닫게 될 일이지.'
그 깨닫게 될 일로 인해 플랫폼이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것.
지금 이 시점의 이승재로선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 * *
사샤샤샥-!
마이를 플레이 할 때면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앞에 원거리 미니언이 세 마리 있으면 긁고 싶다.
역시나 참지 못한 러이갓의 마이가 일을 저질렀다.
"아니, 라이너 CS 작작 뺏어 쳐먹으라고요! 팀운 안 좋다고 했죠? 형이 스스로 팀운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정말 몰라요?"
〈먹으면 몰락 나와서 이것만 살짝 먹으려고 했지…….〉
"천 원 가까이 남았으면서 어디서 개구라를. 그리고 어차피 형 없어도 한타 이기니까 아군 성장 방해나 하지 마요."
-팩트 폭행 너무 묵직하고~
-러이갓 울겠다 울겠어
-그러니까 애초에 정글만 돌 면 좀 좋아ㅋㅋ
이게 진짜 농담이 아닌 게 정글러가 라인을 뺏어 먹으면 라이너는 할 게 없다.
할 게 없어진 라이너가 돌아다니다가 죽으면 게임이 터진다.
정말 스스로 팀운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간다니까.'
물론 가만히만 있다고 이길 수 있을 만큼 다이아 상위 구간이 만만하지 않다.
최소한 버스 타는 플레이는 해줘야 한다.
내가 쉬지 않고 떠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몰락까지만 가고 힌두인이랑 주술포식자 뽑아요. 딜템 더 두르면 제가 힌두인 올리고 탱합니다."
-기적의 탱크레이브즈ㄷㄷㄷ
-옛날에 거눙이 탱크브하지 않음?
-ㄹㅇ루다가 거눙이자너ㅋㅋ
-러이갓이 불쌍하긴 처음ㅠ.ㅠ
이 정도로 갈구지 않으면 정신 못 차릴 양반이다.
단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잠깐만 눈을 떼면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친다.
─진격에 섰다!
러이갓의 마이가 1코어를 뽑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다.
몰락한 기사의 검이 나온 마이는 확실히 세다.
1대1은 웬만하면 씹어 먹지만 상황이 웬만하지가 않다.
사샤샤샥-!
알파 스트라이크로 들어가자 주위에 적들이 우르르~.
뒤늦게 몰락을 쭈욱 빨고 도망가도 늦었다.
적 서포터 쏘냐의 파워센도가 그어진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언제 한 번 사고 안 치나 주시하고 있었는데 딱 걸렸다.
뻘쭘한지 행님들 제가 왜 죽었을까요?
추천 즐찾을 받고 있지만 나는 모든 죄상을 보고 있었다.
러이갓이 던지는 걸 역으로 이용해서 받아 먹어야 하니까.
'슬슬 쿨타임이 찼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어.'
아군 서포터와 함께 러이갓의 묘지에 도착했다.
용이 가까운 봇 라인 부쉬에는 적 세 명이 있다.
망설임 없이 앞대쉬로 미끄러지며 총알을 쏟아붓는다.
땅!
땅!
다른 원딜로는 미친 짓이겠으나 크레이브즈.
근접 전투에 특화된 특이한 타입의 원딜러다.
매초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증가하며 단단해진다.
그만큼 적 스킬에 다이렉트로 노출되지만 그건 나 하기 나름이다.
쿠확!
원딜러 주제에 뭘 믿고 앞대쉬를?
적 정글러 이블퀸의 궁극기가 땅을 적신다.
아무래도 러이갓께서는 궁극기도 못 빼고 죽으신 듯하다.
후욱-!
쇈의 도발이 그어지며 한꺼번에 전부 나를 노려온다.
이렇게 일렬로 서주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멸로 피하며 쏟아 붓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크레이브즈의 Q스킬 산탄 세례.
세 갈래의 탄환은 근접해서 쏠수록 세게 박힌다.
광역 누킹기인 궁극기까지 더하자 적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린다.
"땅땅땅빵! 크브는 이 맛에 하는 거지."
-캬 거눙의 재림ㄷㄷㄷ
-여기서 탱템도 올리면 완벽한데
-그건 트롤이고ㅋㅋ 남절이는 카이팅 개쩌는데 뭣하러
나도 기억하는 녀석이지만 옛날에 거눙이라는 이름의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원딜러인데 피지컬이 안 좋아서 탱템을 두른다.
근데 그것이 운 좋게 메타를 파훼했다.
덕분에 유명세를 탄 기이한 원딜러로 지금은 당연히 퇴물이 되어 은퇴했다.
─트리플 킬!
유리야남친절대아님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안 그래도 강력한 누킹 능력을 코앞에서 퍼부었다.
심지어 공격력을 올려주는 한나의 실드를 받고 말이다.
살아남은 쇈을 농락하듯 카이팅하며 팀원 곁으로 보내줬다.
"형님, 설계라는 미친 소리할 생각 마시고 탱템 사세요 진짜로."
〈그래……, 알지. 다음 한타 잘해서 이겨보자.〉
"예, 이거 이기면 마스터 승격전이니까 열심히 해봅시다."
-러이갓 말 잘 듣네~
-남절이한테도 버려지면 이제 아무도 캐리 안 해줌ㅋㅋ
-솔직히 남절이 아니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당연하지. 프로들도 빡쳐서 손절했는데
지난 나흘간 너무 고생 많았다 나란 인간.
다이아 3티어였던 러이갓을 마스터 승격전까지 올려줬다.
나 또한 골드 2티어에서 플래티넘 1티어로 수직 상승했다.
그 과정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로 고되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버스와도 안녕이구나.'
더 이상 티어를 올리면 골드&플래 카드로 참전할 수 없다!
러이갓도 진짜 마스터가 되면 다딱이 카드로 출전 못한다.
멸망전 끝난 후에 하자고 하고 가볍게 쌩깔 생각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를 위한 이벤트, 멸망전의 시간이 도래했다.
#2013년은 크레이브즈의 리메이크 전으로 원딜러로 쓰이던 시절
========== 작품 후기 ==========
흐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