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 이래서 ㄹㅇㄱㄹㅇㄱ 하는구나 -->
2013년의 11월.
파프리카TV의 팬들이 궁금해 하는 게 두 가지 있다.
아재BJ 팡우는 과연 버스를 타고 다이아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입으로는 챌린저 10만 번 찍은 러이갓은 정말 챌린저에 갈 수 있을 것인가?
전자도 후자도 불가능에 한없이 가깝다.
얼핏 후자가 더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브론즈와 다이아의 차이는 다이아와 챌린저의 차이와 같다.
다이아의 눈에 브론즈가 사람 같지 않듯.
챌린저의 눈에는 다이아가 사람 같지 않다.
게임이 훨씬 진지해진다는 걸 생각하면 챌린저 달성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히 어렵다.
그도 그럴게 프로게이머들조차 걸핏하면 미끄러진다.
챌린저 못 올라가서 허덕이는 프로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 평가.
불과 200명 밖에 들 수 없는 최상위 티어는 애들 장난이지 않다.
─속보! BJ러이갓 챌린저 입성 선언ㄷㄷ
다이아3에서 이틀 만에 다이아1까지 수직 상승!
이대로 기세 타서 챌린저까지 찍을 계획이라네?
지금 연승하는 것 보면 진짜로 될 분위기
└러태식이 돌아왔구나!
└진짜로? 혹시 또 AP마이 같은 인생 챔프 찾았나
글쓴이-아니, 걍 버스 받는 중^^
└에혀, 그러면 그렇지…… 이번 제물은 또 누구냐?
팡우가 도인디에게 버스를 받았듯 러이갓도 상습범이다.
잘하는 아마추어들, 심지어 프로까지 온갖 고급 인력을 후려왔다.
하지만 그 어떤 실력자도 러이갓의 압도적인 캐리력 앞에 무릎 꿇었다.
〈혼자서 세 명, 네 명씩 어그로 끌면서 스플릿 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네네톤 정글몹 쳐먹고 있네? 대가리에 총 맞은 새끼인가……. 행님들 팀운 씹오졌다고 생각되시면 추천 따봉 부탁드립니다. 앙! 러모띠~!〉
스플릿이라 쓰고 백도어라고 읽는다.
둘의 차이점은 한 마디로 운영이다.
그것도 통칭 『러이갓식 운영』.
정글이 라인 다 빼먹고, 제대로 합류도 안 하면서 게임을 혼자 한다.
위에서 버티는 아군들은 당연히 죽을 맛이다.
먹을 라인도 없고, 백업도 기대하기 힘들다.
상대가 바론을 치면 정글러가 없어서 강타 싸움도 할 수가 없다.
잘 성장한 러이갓이 혼자 무쌍을 찍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다이아 티어에서 그럴 수 있는 실력이 러이갓에게 있을 리가.
러이갓이 실버, 골드에서만 양학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천상계에서 그짓거리를 한다?
아군이 바로 패밀리 드립을 칠 수 있으며 게임도 진행이 안된다.
─러이갓 맨날 지 혼자 버스 전복시키지 않냐?ㅋㅋ
챌린저 서포터 데스노트도 멘탈 깨져서 탈주하고
챌린저 정글러 저라딧도 저자후 터트리고 폭파ㄷㄷ
도인디조차 포기한 망나니인데 캐리가 가능?
└저자후 사건 개지렸는데ㅋㅋㅋㅋ
└저 라인업으로 마스터도 못 찍었다는 게 대-단
└그래도 러이갓이랑 듀오하면 시청자 유입 가능하잖아
글쓴이-몰라서 그런 소리 하지. 오히려 피해보는 게 더 많을 걸;;
다 이긴 게임을 혼자서 비벼버린다.
게다가 정치가 너무 심해서 탈이다.
하꼬BJ들은 솔직하게 말해 서럽다.
〈아니, 진짜로~ 챌린저면 솔킬도 따고 운영도 해서 2인분 3인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잖아. 인정하잖아 행님들~! 다딱이랑 라인전만 하고 있으면 당연히 캐리 안되지 슈발! 안 그래도 방플러들 때문에 두 번 죽고 시작해서 캐리도 안되는데.〉
이런 남탓과 정치가 들어가면 현재 게임이 힘든 상태구나~.
시청자들이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님 챌린저인데 왜 캐리 못함?
너 때문에 러이갓이 지잖아!
버스를 태워주는 BJ의 방송에 가서 테러를 해버린다.
러이갓이 인기가 많은 만큼 팬들 또한 어지간히 극성이다.
유사 아이돌팬들처럼 채팅창이 시위 현장이 돼버린다.
방송적으로 봤을 때도 이게 이득이 맞나…….
연거푸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선뜻 듀오를 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 명.
그 어두컴컴한 암흑 사해에 출사표를 던진 용감한 신인BJ가 있었다.
─BJ유리야남친아님 얘가 그 도인디 털었던 애 맞지?
얘도 러이갓 방송의 제물이 돼버렸네……
롤 잘하는 신인BJ들은 다 한 번씩 당한다니까
러이갓은 테이커가 와도 절대 마스터 못 찍어
└ㄴㄴㄴㄴ이미 다이아1까지 갔어!
글쓴이-데스노트도, 저라딧도 다이아1까지는 성공했지
└러이갓이랑 선 그어버릴 정도로 멘탈 승천했잖아ㅋㅋ
└데스노트는 그래도 충신이라 나중에 듀오해주더라
안타깝게도 시청자, 그리고 유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미 수많은 챌린저BJ들이, 프로게이머가 고배를 마셨다.
챌린저는 커녕 마스터 티어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전망은 기대라기 보다는 묵념, 그리고 애도.
또다시 러이갓의 피해자가 나타났구나.
방송 컨텐츠로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구나.
그리 호락호락 당할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 * *
관계라는 건 한 마디로 주도권이다.
고삐를 누가 잡고 있냐.
갑과 을은 거기서부터 나뉘어진다.
'다이아1까지 묵묵히 버스를 태워준 이유지.'
상대가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버스 꽤 승차감이 좋네?
카트라이더에서 드리프트 좀 밟아봤나 보네?
도저히 다른 버스에 탈 수 없는 몸이 돼버린다.
〈데스노트, 저라딧 이런 새끼들은 안된다니까? 지들이 캐리 못하니까 쫑알쫑알~. 봐봐, 진짜 챌린저는 말없이 실력으로 보여주는 거야.〉
-ㅇㅈ
-원래 못하는 새끼들이 말 많음ㅋㅋ
-러이갓 말 ㅈㄴ게 많은데?
-그래서 못하잖아ㅋㅋㅋ
-아하! 인정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네;
다이아 3티어 70점에서 다이아 1티어까지 이틀 만에 수직 상승!
듣기로 다른 듀오들은 1주일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속도가 3배가 넘으니 눈이 돌아갈 만도 하다.
'본인이 좀 작작 던졌으면 훨씬 덜 걸렸을 텐데.'
아무리 게임 수준이 낮더라도 롤은 결국 팀 게임이다.
못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게임을 갖다 던진다.
0인분도 아니고 -1인분을 해내는 인간.
이래서 러이갓러이갓 하는구나~.
근 이틀 사이에 깨닫고 말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저 사람 때문에 생겼다.
'근데 솔직히…… 아예 실력이 없는 건 또 아니야.'
한 마디로 본인 고집이 조온나게 세다.
그리고 방송 욕심이 심하다.
천상계는 오바해서 한두 번 던지면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스노우볼이 굴러가서 처참한 패배.
이미 경험을 한 만큼 잘 알고 있다.
또다시 경험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러이갓(탈리반 3세)님이 가고 있음을 알림!
─러이갓(탈리반 3세)님이 가고 있음을 알림!
게임 시간 3분 대, 흔히 말하는 골든 타임이다.
양쪽 정글러가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시기다.
아군 정글러 러이갓님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한다.
쿠! 챠앙!
탈리반 3세의 깃창 돌격!
적 탑라이너 네네톤을 향해 그어진다.
너무나도 뻔한 스킬샷에 네네톤이 하품을 하며 피한다.
하지만 러이갓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간다.
점멸 순금의 장벽으로 적을 둔화.
레드를 묻히며 킬각을 노린다.
한 수는 커녕 반 수 앞도 안 보이는 모양이다.
터억!
반 타이밍 뒤늦게 도착한 적팀의 정글러.
거미여왕이 던진 실뭉치를 그대로 맞는다.
이어진 네네톤의 반항과 점화에 의해 타들어간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응을 하던 아군 탑라이너 파이어뱃까지.
거미여왕이 거미줄을 타고 따라붙자 뿌리칠 수 없다.
─적 더블 킬!
게임의 시작이 시원하게 열렸다.
못하는 사람이 어째서 정글을 잡으면 안되는지.
그리고 왜 러이갓이 마스터를 갈 수 없는지 보여주는 광경이다.
〈방플 실화냐? 무조건 잡는 거였는데 이걸 방플로 역갱 쳐버리네…….〉
방플 이전에 그냥 님 판단이 맛이 간 거 같은데?
깃창을 못 맞혔으면 빼야지 상대 정글 위치도 모르면서 따라가다 죽어줬다는 사실을 모르나 보다.
〈방플 때문에 맨날 불리하게 시작하니까 내가 챌린저를 못 가는 거야. 방금만 해도 방플 아니었으면 네네톤 잡고 깔끔하게 빠지는 그림이었어 음~.〉
"아, 진짜요?"
〈아니 챌린저가 이 각이 안 보인다고? 그럼 문제 있는 건데?〉
챌린저라서 그 각이 안 보일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 듯하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초반 게임이 꼬이고 시작한다.
챌린저, 프로게이머와 듀오를 해도 마스터에 못 올라간 이유를 알겠다.
'선임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말이야.'
챌린저 정글과 서포터라고 들었다.
두 라인은 확실하게 팀빨을 탄다.
아군이 못하면 혼자서 변수 만들기 힘든 라인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잡은 포지션은 미드.
이런 다이아 구간쯤 혼자서 충분히 작살낸다.
일단 이야기는 작살을 낸 이후부터 시작한다.
화락!
챠라락!
적 정글의 개입만 없으면 솔킬은 어렵지 않다.
그 적 정글은 탑에서 방금 더블 킬을 땄다.
본체와 그림자에서 쏘아지는 표창.
상대 미드라이너 트와이스 페이크에게 스친다.
푸슉!
치지직…!
킬각이란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상대로 하여금 실수를 유도해내는 것.
다른 하나는 상대의 실수를 칼 같이 받아먹는 것.
낮은 점수대인 다이아 티어는 후자가 빈번하다.
정확하게 캐치하여 받아 먹는다.
점멸 패시브 평타와 함께 점화를 박았다.
상대는 뒤늦게 점멸을 쓰지만 넌 이미 죽어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내가 자드를 잡으면 3~4렙 구간 솔킬은 거의 당연한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유야무야 러이갓의 실수를 커버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얄짤도 없다.
〈이거지, 이거~! 내가 적 정글 묶어 놓으면 미드에서 솔킬 따는 큰 그림. 방플이랑 파이어뱃 호응만 아니었으면 진짜로 게임 터지는 건데…….〉
"형님."
〈남절이는 이미 내 친동생이나 다름 없는 사이라 말을 안 해도 그냥 서로 이심전심 통한다니까?〉
"아니, 됐고요. 진짜 진지하게 챌린저 갈 마음 있어요?"
남절이는 유리야남친절대아님에서 중간 글자의 약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동생이나 다름 없는 사이가 돼버렸다.
그만큼 내 뒷자석에 앉은 승차감에 빠져들어 버렸다는 반증이다.
〈당연히 가야지! 언제까지 다딱이들이랑 샤바샤바할 수는 없잖아 그지?〉
"갈 거면 이제 슬슬…… 형님도 주제 파악할 때가 되었습니다."
-??갑분싸
-듀오 해체각?
-슬슬 빡쳤나 본데?ㅋㅋㅋㅋ
빡치기는 애저녁에 빡쳤다.
지난 이틀 나 치고는 정말 열심히 참았다.
하루웬종일 던지는 걸 멱살 잡고 캐리하느라 등골 빠지는 줄 알았다.
드디어 그 쌓이고 쌓인 한을 풀 시간이다.
"백보 양보해서 옛날에 챌린저였다고 쳐도 지금은 그냥 다딱이잖아요?"
〈너도 골드라매? 지금 챌린저 아니잖아?〉
"그래서 저는 골드&플래 카드고요. 형님은 다이아 카드인데 지금 현지에서 쩔쩔매고 있잖아요."
-팩트 폭행ㅋㅋㅋㅋㅋㅋㅋㅋ
-구구절절 옳은 말ㅋㅋㅋㅋ
-러이갓 급당황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골드라고? 지금 뭔 상황?
딱히 싸우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러이갓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강 파악했다.
자존심이 진짜 우주 끝판왕급이라서 인정을 절대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일단 한 번 꺾어 놓지 않으면 사람 말을 안 듣는다.
"옛날에 챌린저고 나발이고 간에 중요한 건 현재 점수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 플딱이고 형님은 다딱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하루라도 빨리 챌린저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고…….〉
"그걸 아는 양반이 되도 않는 3렙 갱 시도하다가 더블 킬 따이고 방플 탓하고 아군 호응 탓하고! 진짜 개까놓고 말해서 지금 게임 하는 10명 중에 형님이 제일 한심해요!"
지금까지 내가 쌓인 게 좀 많은 게 아니다.
여기까지는 안 말하려고 그랬는데 진짜 말귀를 드럽게 못 알아 먹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채찍만 때릴 수는 없다.
슬슬 당근도 먹이지 않으면 안될 때다.
"지금처럼 말도 안 듣고 방플 당하는 거 뻔히 알면서 갱 가서 죽어줄 거면 저도 즐겜할게요. 진짜 진지하게 챌린저 갈 생각 있는 거면 저도 진심으로 하고요. 형님이 선택하십시오."
-캬 충언ㄷㄷㄷㄷ
-진짜 자존심 좀 굽히자 러이갓
-맨날 지 혼자 갱가서 쳐뒤지고 팀탓ㅋㅋㅋ
-과연 러이갓의 선택은??
말이 선택이지 민심은 기울어졌다.
시청자들이라고 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무리 던져도 캐리해주니까 신나서 던진 러이갓.
그 죗값을 달게 받을 때다.
'이러고도 정신 못 차리면 정말 손절 하는 거고.'
유리야 건은 아쉽긴 하지만 안돼도 딱히 상관은 없다.
무엇보다 이제는 들어갈 팀이 널렸다.
지난 방송으로 인해 널리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벙쪄서 금붕어가 됐던 러이갓의 입이 마지못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