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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J유리야 -->
유리야를 찾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방송 주소는 모르지만 애초에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고 해봤자 손가락에 꼽는 정도니까.
'얘가 팝콘을 튀기거나 윙크를 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런 성인 방송 플램폼도 존재한다.
유리야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목표는 더욱 좁혀졌고 불과 30분이 안되어 찾았다.
마침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채팅 금지 3회로 블라인드 처리 되었습니다. 2분동안 채팅과 방송 화면을 볼 수 없습니다』
하도 드럽게 못해서 몇 마디 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터렛이 두텁다.
머릿속에 살짝 엔돌핀이 끓던 그때.
〈밍구야, 싸우면 안돼 안돼! 성격 엄청 더러운 오빠야!〉
2분이 지나 방송의 화면이 다시 밝았다.
어처구니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감히 누구를 평가해?
-니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히, 히익!〉
고양이 만난 쥐새끼 마냥 움츠려 든다.
내가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한 모양이다.
이 이상의 뒷담을 깠다는 소리인데…….
찔리는 게 있는지 선수를 쳐온다.
〈제 방송 절대 안 오기로 했잖아요!〉
-내맘
〈으으, 진짜 안 오기로 약속해 놓고…….〉
그런 약속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 세상에 절대는 없다.
그리고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다.
-유리야님이랑 아는 사이??
-혹시 남친인가요!
-ㄷㄷㄷ대체 무슨 상황이래
시청자들 사이에서 소란이 인다.
남자친구 아니냐는 헛소리까지 나온다.
진심으로 역겨우니 드립이라도 자제해줬으면 싶다.
-야, 유리야
〈저 욕 안 했어요. 성격 나쁘다고 말한 적 없어요.〉
-됐고, 왜 이렇게 말이 많냐?
딱히 화가 난 게 아니다.
말실수 하나하나 짚을 만큼 내가 쫌생이지 않다.
진정 짜증이 났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일단 실력 관련해서는 나중이다.
-방송 내내 쉬지를 않고 떠드네 지치지를 않네. 에너자이저세요? 한 5분 듣고 있었는데 딱따구리가 고막을 때리는 줄 알았어
동네 아줌마들 수다 떠는 것도 아니고 하루웬종일 떠든다.
정글이 갱을 안 와줬어.
리심이 너무 세.
와~ 파르페 먹고 싶다.
대화에 주제도 없고 깊이도 없고 쓸데없이 말만 많다.
내가 중간중간 짜증을 냈던 게 시끄러워서다.
물론 롤도 드럽게 못하기는 했지만.
-거 듣자듣자하니 못 들어주겠구만
-listen listen i can't listen!
-인형처럼 예쁜데 단점 조금 있을 수도 있죠~
'쪼금?'
우리집에 저런 인형 있었으면 매일밤 명존세때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선비 코스프레 집어치우고 유리야랑 만나봐야 안다.
누군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 줄 아니?
-유리야를 어디 때릴 때가 있다고 드립도 잘하시네~
-둘이 엄청 친한 사이 같은데
-상당히 오래 만났나 봐……
-설마 그렇고 그런 사인가ㅋㅋ
얘 방송을 자주 본 시청자가 아닌 건가.
나랑 생각이 많이 다른 듯하다.
근데 왜 이상한 걸 물어보지.
-제가 쟤랑 어떤 사이든 님들이 알 바임?
-헐, 진짠가!
-또 여캠 사건 하나 터지나ㄷㄷ
-남친인지 아닌지 그것만 말해주세요!
하도 채팅창에 질문이 많아서 이것저것 대답을 해주다 보니 오히려 어그로가 더 쏠린다.
갑자기 화제의 중심이 내가 됐다는 느낌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이상한 오해를 낳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지만 여기까지만 한다. 만나서 얘기하자. 까톡 또 씹으면 진짜로…… 알아서 해라
더 말을 한다고 해결될 이야기가 아니다.
시청자들 채팅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일단 할 말은 했으니 이쯤에서 마무리해야지.
사건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크게 번졌다.
* * *
로드 로드 오브 관련 커뮤니티……가 아니고.
인터넷 개인 방송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트다.
인터넷 방송 갤러리, 통칭 인방갤.
그다지 질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가장 많고, 정보가 올라오는 속도도 빨라 BJ입장에서 무시하기 힘들다.
현재 그 인방갤에 갑자기 담담하게 피어오르는 화제가 있다.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정도.
귀여운 인형이 롤을 한다!
딱 그 정도로 알려진 BJ유리야에게 이목이 쏠린다.
─속보! BJ유리야 방송 도중 남친 난입ㄷㄷㄷ
귀여워서 가끔 찾아보는 방송인데 와……
남친이 방송 찾아와서 지금 난장판됨
세상에 믿을 여캠 하나 없다더니~
└뭐야, 여캠이 여캠했냐?
└유리야가? 절대 그런 애 아닐 텐데
글쓴이-나도 장난인 줄 알았는데 반응 보니 이건 ㄹㅇ이야
└근데 유리야가 누구야? 처음 들어봐
여캠.
여성 인터넷 방송인이 캠을 켜고 주로 토크나 노래, 춤, 애교 등을 컨텐츠로 삼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의 정의는 그러하지만 요즘은 여자BJ가 캠 키면 다 여캠이라고 부른다.
그 여캠들이 사고를 조금 많이 치고 다녔다.
여캠이 여캠했다.
그런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사고 유형이 비슷하다.
남자친구가 얽혀서 수라장이 된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재 달아오르고 있는 유리야의 이야기도 비슷한 케이스인 줄 알았지만.
─유리야라는 애 여캠은 아니고 그냥 게임BJ네
다시보기 다 돌려봤는데 게임밖에 안 해
춤 한 번은 출 만도 한데 하루종일 게임만 해!
저 얼굴로 왜 수금 안 하고 게임만 하는 거지?
└유리야 걔는 ㄹㅇ 진성 겜비련이다
└다른 여캠은 몰라도 유리야는 그럴 리 없어
글쓴이-엉덩이 한 번 흔들면 천 개 단위로 떨어질 텐데 왜 게임만 할까……
└걔 방송 계속 봐보면 알 거다ㅋㅋ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예쁘다고, 잘생겼다고 무조건 뜨지는 않는다.
연예계 아이돌들만 봐도 인기가 꼭 외모에 비례하지는 않지 않은가?
BJ가 뜨기 위해서는 매력 어필이 필수불가결이다.
방송 컨텐츠도 보다 자극적으로 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니 시청자가 몰릴 리가 있을까.
인형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썩 높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만큼 방송이 클린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그녀의 방송을 찾아보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유리야 방송은 워낙 청정 구역이라 이런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약간 백치미라고 해야 하나?
띨빵하긴 한데 애가 많이 착해
그래서 채팅창도 다 하하호호 하는 분위기고
그게 다 연기였으면 진짜 소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급이다
└남자친구 있는 게 잘못은 아닌데……
└솔직히 충격이 없지는 않다.
└어제 유리야 어버버 하다가 방송 끔ㄷㄷ
└유진요, 유리야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BJ유리야의 방송은 하도 청정 구역으로 유명해 이곳 인방갤에서조차 웬만하면 건들지 않는다.
건들기 미안할 정도로 애가 좀 바보 같이 착하다.
하지만 원래 하얀 눈밭에 첫 걸음을 내딛는 게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무지막지하다.
─내가 그때 방송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었거든?
남친 의심되는 애가 유리야 방송 온 거랑
유리야가 당황해서 어버버한 거 전부
일단 유리야 피셜로는 그냥 아는 오빠라고 하더라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
└흠,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인데?
└원래 다 아는 오빠라고 하지ㅋㅋㅋ
└와 유리야, 이 요망한 기지배!
가을철 지푸라기에 불이 옮겨 붙듯 한 번 일어날 불길은 잠잠해질 기미가 안 보인다.
가졌던 이미지가 있는 만큼 일부 시청자들이 실망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과연 BJ본인이 어떤 해명을 해올지.
갑작스레 논란의 중심에 서버린 유리야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 * *
한국대 근처에 있는 커피숍이다.
딱히 유별날 것 없는 카페라떼 맛.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온 사정은 길고 길다.
별다른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벌써 시간이 5분이나 지났다.
"야."
"……."
굉장히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거의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유리야가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볼을 부풀린다.
"삐졌냐?"
"아니요."
"삐졌네."
"아니에요."
"누가 봐도 삐졌구만."
"아니라니까요!"
어제 유리야의 방송을 찾아갔었다.
학교에 직접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귀찮다.
일단 찾아보고 없으면 가려고 했는데 있더라.
적당히 인사를 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문제가 생겼다.
근데 솔직히 내 잘못은 아니지.
애초에 까톡을 안 씹었으면 됐잖아.
"그렇다고 방송까지 오면 어떡해요! 저 이제 무슨 낯으로 방송해요!"
"그냥 하면 되지 뭔 소리야."
"막 이상한 얘기 올라온단 말이에요……."
나 때문에 이상한 추측글이 올라왔다는 유리야의 하소연.
어제 내가 나가고 나서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아예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떠들썩했다고.
뇌정지가 온 유리야는 그 자리에서 방송을 종료했다.
다음날 보니 방송국 게시판에 이상한 글이 올라왔더라?
인터넷 방송 갤러리라는 곳에서 이슈가 되었다.
남친이 있었다느니, 그 남친이 조직폭력배라느니.
유리야가 사실은 맞고 산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단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렇긴…… 하네요?"
스스로 말하긴 뭣하지만 내가 유리야를 많이 갈구기는 했다.
유리야 본인도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하나 만큼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확실하게 부정해. 내가 왜 니랑 사겨."
"아니라고 말했는데 안 믿는단 말이에요. 이상한 사람들이……."
"거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아니, 사실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인터넷 방송에 대해 나도 모르지 않다.
여캠 관련해서 사건사고가 상당히 많이 터진다.
그때마다 나오는 말이 입벌구.
입만 벌리면 구라의 준말이다.
하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믿을 수가 없다.
'나도 몇 개 사건을 봤는데 어처구니가 없었지.'
알고 보니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던가.
매니저가 시청자가 아닌 남자친구 본인이었다던가.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파프리카TV에서는 비일비재하게 터진다.
의혹이 터지자 유리야도 의심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아는 유리야는 결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굉장히 안타깝다.
'얘가 절망적일 정도로 색기가 없어. 색기가.'
얼굴도 귀엽고 몸매도 좋은데……깊은 맛이 없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살짝 고갈돼있다.
하지만 후배로서는 정말로 아낀다.
"리야가 많이 억울했겠구나."
"헐, 이해해주시는 거에요?"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우리 리야를 보다듬어 주겠니."
정말로 서러운 듯 눈망울을 글썽글썽.
즙을 짜면 절교라고 했던 걸 기억하나 보다.
필사적으로 울지 않으려고 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이번 일은 솔직하게 나도 책임감을 느낀다.
"해명을 하는 걸 도와주면 되는 거지?"
"괜히 오해만 더 커지지 않을까요……?"
"오빠만 믿어. 언제 오빠 믿어서 안된 적이 있니."
"네, 믿을게요!"
사실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잔뜩 있기는 하다.
이를 테면 사주기로 해놓고 안 사준 밥.
까먹고 약속 어긴 것도 한 세네 번 된다.
그때마다 미안하다고 하면 잊어주는 착한 후배다.
간만에 선배로서 선심을 써줄 때가 왔다.
물론 내가 그냥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겸사겸사 챙길 것은 다 챙긴다.
'애초에 유리야한테 연락한 이유가 그거거든.'
황금 알을 낳는 거위.
한동안 수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만에 수확하려던 찰나에 일이 터지다니.
다소 수고스럽기는 하나 해결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글자 그대로 겸사겸사다.
내 목적을 이룰 겸 유리야의 고민도 해소시켜 준다.
"야."
"네."
"근데 숙제는 다 한 거지?"
"숙제요?"
정말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혹시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인상을 찡그리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머리를 굴린다.
"그, 그, 그 그게요……. 팀운이 안 좋아서 조금 잘 안됐어요."
"그래? 조금 정도는 안될 수도 있지. 애초에 별 기대도 안 했어."
가르친 대로 팍팍 흡수하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유리야는 그런 기특한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면 오히려 내가 곤란하다.
유리야를 갈궈서 포인트를 팍팍 벌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잘 배우면 뽕 뽑을 게 없다.
그보다 한 가지가 궁금하다.
"근데 너 왜 어제 미드 하고 있었냐?"
"그래서 그래요."
"뭐라고?"
"팀운이 안 좋아서 캐리하려구요!"
이마가 지끈거림을 느낀다.
#겜비- 게임BJ의 준말
#수금- BJ가 직간접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후원을 요구하는 행위
#터렛-BJ실드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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