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 BJ유리야 -->
내가 웬만하면 봐주려고 했다.
기분도 좋고, 애초에 잘해주려고 갔었고.
근데 유리야가 식사랍시고 꺼내온 메뉴가.
〈저요~. 지상군 페스티벌 갔을 때요~. 왕~~~창 사왔어요. 잘했죠. 그쵸? 칭찬해주세요!〉
군대에 있을 때 자주 먹었던 짬탕면.
그리고 매콤해서 좋았던 숯불 닭강정.
두 눈으로 보고도 의심한 점심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개꿀잼 몰카, 서프라이즈가 아닌지 한 3초 고민했다.
유리야 성격과 머리에 그런 걸 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진심이었다는 소리다.
'막 전역한 군인한테 냉동을 대접하다니…….'
상상의 상상을 뛰어넘어서 뇌세포가 잠시 정지됐었다.
참신하게 엿 먹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한 건가.
전역하고 잠 들었더니 다음날 이등병.
그 1/10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래도 그것만이었으면 유쾌하게 넘어가 줬을 텐데…….'
탈모인한테 대머리로 장난치면 안되듯, 군인한테 까까머리로 장난치면 안된다.
두 개의 선을 동시에 넘자 뚝-!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유리야 볼따구를 270도 정도 회전시켜 뭉개버렸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군인이 아닌 진정한 민간인 신분이다.
쉬고 있는 시간이 휴가가 아니라 전역.
다시 그지 같은 자대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시원하면서도 섭섭하다.
'그래서 시원섭섭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건가…….'
상반된 두 단어가 찰싹 붙어있다는 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지금 같은 상황을 두고 만들어진 단어인가 보다.
이제는 정말로 민간인의 신분으로 프로를 목표해야 하는데.
'귀찮아.'
최근 들어 귀차니즘에 푸욱 빠져버렸다.
보람찬 하루, 희망찬 내일을 위해 노력하자!
언제부터?
일단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부터 할까?
그 내일을 바라본지 오늘부로 1주일이다.
전역도 한 마당이니 시간도 널널하잖아?
이슈가 잠잠해지는 걸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온갖 합리화를 붙여가며 하루하루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했다.
인정한다.
너무 나태했으며 게을렀던 게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부지런한 삶을 보내야겠다.
'근데 지금은 좀 졸리니까 한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자!'
군대에서는 좋든 싫든 반강제적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8시간 취침한다.
그런 착한 아이와도 같은 규칙적인 생활.
민간인이 되자마자 깨버린지 오래다.
그래선지 오후 5시인데도 졸리다.
어제 아침 9시에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말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분명 충분한 취침을 취했다.
하지만 게을러진 몸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5분만 더, 5분만 더.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눈이 떠졌다.
'……솔직히 천천히 해도 되지 않나.'
일어나서 세수를 하자마자 드는 생각이다.
절대로 게으름을 필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달아오른 이슈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것.
그리고 신체의 상태를 최고조로 회복하는 것이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필요하지만.'
정말 와장창 따버렸기 때문에 그 부분은 문제가 없다.
불과 2주일 전에 있었던 군챔스의 결승전.
그때 딴 포인트가 정확히 26800이다.
2천 600이 아니라 2만 6천.
하고도 800이나 남는다.
한동안 노가리 좀 까도 상관이 없다는 소리다.
'노는 것도 질렸으니 슬슬 예열이라도 해둘까.'
게으름에 익숙해지고 말았다.
안 좋은 습관인 건 알지만 그래도 뭐 괜찮지 않은가?
말년에 질리도록 구른 만큼 나도 팔자가 펼 때가 됐다.
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현재 손목의 상태 46/100]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악화, 100에 가까울수록 회복이 촉진됩니다.]
'……뭐?'
손목의 상태도 볼 겸 상태창을 열었다.
열었는데 숫자가 조금 많이 의아하다.
불과 이틀 전에 100포인트로 꽉꽉 다시 채워 넣었을 텐데?
'아니, 무슨 LPG로 굴러가는 똥차도 아니고.'
기름 새는 속도가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처음 다시 채웠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군챔스 때 상당히 혹사를 했던 게 사실이니까.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이상 당연하다.
내 몸이니 만큼 완전 소중하게 애낀다.
아무리 그래도 포인트 다는 속도가 인지를 초월한다.
[신체 강화 스킬을 남발했습니다.]
[손목의 상태가 327%의 속도로 악화됩니다.]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의아함이 증폭돼 있던 그때.
눈앞에 그 의아함을 해결해주는 설명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지난 결승전에서 내가 무리를 해버렸다는 뜻이다.
'어렴풋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알림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밥을 더 많이 먹듯, 혹사시킨 몸은 더 많은 포인트를 필요로 한다.
머릿속에서 대략적인 계산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포인트 보유량을 열어본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 8119]
'…….'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아마 이틀이 안되어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이놈의 똥차는 유지비가 겁나게 많이 드는 모양이다.
아니, 스스로를 똥차라고 하긴 뭣하네.
스포츠카라고 정정하자.
'나 정도면 충분히 스포츠카라고 할 만하잖아.'
람보르기니 아니면 페라리 정도 될 것이다.
그만한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실력이 아닌가?
스포츠카는 사는 것도 문제지만 유지비 장난 아니게 깨진다고 들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발판.
꿈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성싶다.
오히려 계기가 되었다고 보면 나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보니 최근에 워낙 나태하게 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엄청 씹기도 했다.
딱히 열심히 하지도 않고, 성능도 좋지 않지만 밥은 많이 먹는 녀석의 까톡을.
「선배! 선배!」
「저 오늘 있잖아요~」
-진짜? 대박이다
-겁나 빡쳤겠는데
「???」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진짜루 이 얘기 들어보세요!」
「제가 오늘요~」
「학교에서요~」
.
.
.
읽지 않은 메세지 24건.
내가 좀 착해지긴 한 것 같다.
다시 보니 완전히 씹지는 않았다.
미리 답하고 이후로 확인하지 않았을 뿐이지.
'군대 갔다 오면 철이 든다는 얘기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나 봐.'
군대 갔다 와야만 철이 든다면 여자들은 평생 철 들 일이 없다는 소린가.
창의적인 개소리하지 말라고 쪼았던 게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다시 생각해보니 곱씹을 여지는 있었던 듯싶다.
유리야 집 방문 사건 이후로도 당연히 연락을 하고 있다.
내가 이래 봬도 쌓아두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얘가 좀 쓸데없이 귀찮다.
안 그래도 휴가를 만끽하고 있는 와중에 까톡을 미친 듯이 보낸다.
얘 때문에 핸드폰을 진동에서 무음으로 바꿔 놨을 정도다.
알림도 당연히 꺼놓은지 오래다.
'하지만 포인트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지. 조만간 다시 연락하려고 하기도 했고.'
연어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고향인 강으로 되돌아가듯.
나는 너한테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힘든 길인 건 알지만 유리야를 키우는 것만이 최선이다.
답장을 하긴 한 만큼 다시 연락해도 어색하진 않을 것이다.
내키지는 않아도 실현할 목표를 위해서 까톡을 두들겼다.
평소라면 늦어도 1분 30초 내에는 답장이 오는 녀석인데.
'뭐지?'
답장이 조금 많이 늦다.
벌써 2분이 지났다.
10초에 한 대씩 꿀밤을 적립할까?
폭력적인 생각이 일었던 것도 잠시였다.
'벌써…… 5분이 지났어.'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되려고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학교 동기에게 연락을 넣었다.
「유리야? 학교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던데?」
「딱히 별 일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
최소한 건강하다는 정보는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핸드폰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면 내 까톡을 씹었다는 얘기다.
그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졌다.
'읽……씹?'
방금 전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1이라는 글자가 사라졌다.
단톡이 아닌 개인톡이므로 당연히 유리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하나다.
'이런 괘씸한 녀석이 다 있나.'
응징의 시간이다.
* * *
파프리카TV.
소위 BJ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스트리머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이다.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며 각자의 방송을 키워나간다.
잘 나가는 대형 BJ들은 한 달에 수천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고소득자다.
물론 모든 BJ들이 그렇게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절대 다수.
〈안녕하세요~. 오늘 방송 시작해볼게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고정 팬층을 보유한 게임BJ다.
일각에서는 작게나마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도 그럴게 외모가 상당히 뛰어나다.
-인형이 롤을 허눼^^
-오늘도 좋은 방송 부탁해요~
-누나! 저 알림 보고 바로 왔어요!
인지도가 낮아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저렇게 예쁜데 왜 여캠 안 하고 게임BJ를 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아기자기 예쁜 얼굴이다.
아름답고 섹시하다기 보다는 귀여운 과.
마치 인형 같은 얼굴로 다소곳이 앉아있다.
목소리도 꾀꼬리처럼 맑고 청아해서 듣기 좋다.
〈밍구 오늘도 빨리 왔구나? 반가워!〉
무엇보다 시청자들을 진심으로 아껴준다.
그 사실이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시청자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도 그들 사이의 인연은 끈끈하다.
-저도 왔어요! 저도 인사해주세요!
-리야 오늘은 한층 더 예쁜 거 같다
-리야님 방송 덕분에 매일매일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파프리카TV에서는 드물게도 채팅창의 수질이 맑다.
모름지기 시청자는 BJ를 닮기 마련이다.
BJ가 워낙 이쁜 말만 하니 시청자들도 험한 말을 안 한다.
〈또 죽었어…… 리심이 자꾸 미드 갱만 와.〉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예쁜 얼굴 찡그리면 나도 똑땅해ㅠ.ㅠ
-리심이 리야 이쁜 거 알고 스토킹하네…… 정말 못됐어!
게임BJ인 만큼 방송의 주컨텐츠는 당연히 게임이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늘 잘하기만 할 수 있을까?
못하는 상황에서도 시청자들은 응원한다.
─리야바라기님이 별풍선 100개를 후원하였습니다!
가끔은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고 싶다.
파프리카TV는 별풍선으로 BJ에게 후원이 가능하다.
BJ와 조금 더 깊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제도이다.
〈헐, 리야바라기님 100개 감사해요~. 방송 열심히 할게요!〉
시청자들이 BJ의 방송에 공감하며 함께 꾸려나간다.
개인 방송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 아닐까?
이 훈훈한 분위기에 이따금 미꾸라지가 끼어든다.
-야, 별풍선 받을 시간은 있고 점멸 쓸 시간은 없냐? 뒤질래 진짜?
굉장히 드문 일이긴 하나 본래 파프리카TV에서는 흔한 일이다.
저런 식으로 말을 함부로 하고, BJ한테 훈수 두고.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이내 감화된다.
-이쁘고 고운 말 써주세요. 우리 리야 따듯한 시선을 응원해주세요^^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곱씹어볼 시간을 준다.
채팅창을 관리하는 방송 매니저가 30초 채팅 금지를 내렸다.
대부분의 경우 한 번 경고를 먹으면 죄를 늬우치고 잠잠히 방송을 보지만.
-CS 안 먹어? 딜교 안 해? 정글 안 봐줘? 애초에 니가 미드를 왜 하냐?
아주 드물게도 한 술 더 뜨는 시청자가 있다.
이 경우 매니저가 조금 많이 화가 난다.
BJ를 아끼는 만큼 당연한 일이다.
『채팅 금지 2회 조치가 되었습니다!』
30초 다음은 60초.
벙어리가 된 채 방송을 볼 수밖에 없다.
보통은 이 이상 가는 일이 없는데 정말 악성 어그로였다.
-빡대가리야!! 사람 같이 좀 하라고 사람 같이 좀! 니가 사람인데 왜 사람 같이 안 하냐고!
갈수록 하는 말이 가관이다.
사람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보다 못한 매니저가 한 마디 엄포를 놓는다.
-그렇게 불만이시면 방송을 안 보시면 되잖아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채팅 금지 3회로 블라인드 처리 되었습니다. 2분동안 채팅과 방송 화면을 볼 수 없습니다』
채팅 금지가 연속 세 번 얹어지면 블라인드 처리가 된다.
방송에 들어와있지만 방송을 볼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상태다.
-어휴, 어그로꾼 처단 사이다!
-리야방에 얼씬도 하지 마라
-리야야, 무시해. 저런 애들은 현실에서 불만 많은 애들이 화 푸는 거야
시청자들이 BJ의 멘탈을 다독여준다.
그런데 어째 다독여준 효과가 없어 보인다.
방송을 진행하던 유리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쓰고 보니 주인공 진짜 개또라이 새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