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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J유리야 -->
엘리베이터.
동력을 사용하여 사람이나 화물을 아래위로 나르는 장치.
원시인이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는 현대의 이기다.
'……조금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긴 한데.'
본가가 아파트인 만큼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수도 없이 타봤다.
애초에 평범한 상가에도 엘리베이터 정도는 설치돼있다.
귀찮아서 비상 계단을 쓸 때가 많지만 촌놈이 아닌 이상 놀랄 일은 보통 없다.
보통은.
'…….'
전후좌우 상하까지 고급 기재로 이루어진 내부.
엘리베이터 바닥을 밟고 있는 게 황송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구석 벽에 기대기도 민망해서 가만히 서있다.
가만히 서있자 이윽고 도착한다.
끼익.
문이 열리며 내려서는 곳은 지상 1층.
1층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알고 보니 지하 2층이더라.
지하 1,2층에 상가가 있는 주상 복합은 그렇게 드문 이야기는 아니다.
시내에 나가면 그런 오피스텔 심심찮게 보이지 않는가?
아파트는 정말 멀리서만 몇 번 봤는데…….
실제 안에 들어가니 아리송하다.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경비가 아니라 여성 안내원이 계셨다.
아파트 1층 안내 데스크.
내가 지금 아파트를 온 건지 아니면 상업 빌딩을 온 건지 상당히 헷갈린다.
"확인되었습니다. 방문증 발급해드릴게요."
'방문증……?'
무려 방문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까지 있는 상가들.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돼있지만 그 위쪽인 주거 층은 다르다.
이처럼 안내원에게 방문증을 발급 받은 사람만 갈 수 있다.
어떻게?
발급 받은 방문증의 사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띠익-!
갖다 대자 소리가 난다.
현관문에나 달려있을 카드키가 엘리베이터 앞에 있더라.
안내원의 설명이 부실했음에도 단박에 알아채기는 했다.
'내가 지금 청와대라도 방문하는 건가.'
있는 사람들 생각은 도저히 모르겠다.
아파트의 방범에 상상 이상의 귀찮음과 돈을 쏟아붓는다.
이런 가시방석과도 같은 공간에 와버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갈구기만 했던 후배한테 애정도 한 번 베풀어줄까 했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녀석을 너무 막대한 감이 솔직하게 있다.
하도 현실에서, 그리고 게임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었을 거란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바로 연락을 했다.
연락을 하니까 집이라고 하더라.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녀석의 집은 서울.
바로 간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집 주소를 까톡으로 찍어줬다.
"헐, 진짜 오셨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21층.
문이 열리자마자 문을 열고 기다린 후배의 모습이 보인다.
딱 봐도 집에서 대~충 입고 있다가 덕지덕지 무언가 바르고 차려 입은 모습이다.
"싫으면 갈까?"
"아뇨, 아뇨, 아뇨, 아뇨. 들어오세요. 정말 와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꿈에도 모를 정도로 내가 그렇게 신뢰성이 없었나.
마음 같아서는 물 흐르듯 갈구고 싶지만 그러기가 힘들다.
가시방석인 건 안내 데스크, 엘리베이터는 물론 이 녀석의 집도 마찬가지다.
"야."
"네!"
"다음부터는 1층까지 마중 나와."
"선배가 필요 없다고 해놓고……."
얘도 아니고 무슨 마중이야.
마중이 필요한 공간일 줄 내가 그때 알았겠니.
방문증을 받고 들어온다는 게 그리도 불편할지 몰랐다.
"선물이다."
"헉! 감사합니다. 근데…… 휴지."
"꼽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왜 휴지……?"
처음 방문하는 타인의 집에 빈손으로 찾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는 길에 1층 마트에 들러 사왔다.
휴지는 굉장히 보편적인 선물이다.
무엇보다 이 녀석에게는 필요하다.
"너 많이 싸잖아."
"아, 아, 안 싸요!"
"뭐? 여자라고 똥을 안 쌀 리가 없잖아. 너 그리고 드럽게 많이 먹잖아."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내숭질이야.
김태희, 아이린 이런 급이면 몰라도 니가 무슨.
꼴에 여자라고 부들부들 떨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평소라면 여기서 결정타까지 스무스하게 직행하겠지만 오늘은 기쁜 날이다.
전역을 한 데다 애초에 잘 대해줄 요량으로 왔다.
그리고 얘가 좀…… 생각보다 귀한 집 따님인 듯하다.
"아니, 현실 말고 게임에서. 너 맨날 똥 싸잖아."
"아니에요! 요즘 엄청 잘해요."
"네 다음 똥쟁이."
"똥, 똥, 똥 거리는 사람이 더 똥쟁이에요!"
오랜만에 만나서 시작하는 첫 번째 이야기의 화두가 똥이라니 참 화목한 사이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친한 사이일수록 저질스러운 화두가 자주 나온다.
아무튼 현관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고양이 똥 냄새나."
"저희집 고양이 많이 키워요!"
"휴지 사오길 잘했네. 고양이 것도 닦고~, 주인 것도 닦고~."
"씨이……."
사는 집이라서 그런지 고양이도 상당히 귀티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상당히 비싼 고양이인 듯싶다.
인터넷에서 본 페르시안 고양이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고양이를 따라 들어간 내부는 끝이 없었다.
'넓긴 무쟈게 넓네…….'
한참 걸은 것 같은데 이제 겨우 거실에 들어섰다.
탁 트인 거실, 그 뒤편의 베란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광경에 기분이 좀 고양된다.
내 집이 아님에도 살짝 우월감에 빠지려고 한다.
"야."
"네! 왜요, 선배?"
"물."
집주인이 떠다주는 물을 마시며 다시 한 번 감상한다.
확실히 잘 사는 동네라는 사실이 느껴진다.
이곳저곳 외관에 보통 공을 들여놓은 게 아니다.
애들 노는 놀이터가 작은 유원지 수준이다.
그 유원지를 따라 쭉 늘여진 자연 경관.
소규모 공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적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들을 높은 하늘에서 내려보는 입장이다.
21층이 얼마나 높은 위치인지 실감이 나는 광경이다.
'후후,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는구나.'
고취된 감정에 순간 살짝 빠질 뻔했다.
옆에서 유리야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긴 얘는 지금의 시야가 당연할 테니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겠지.
"야."
"네!"
"니 방은 어디있냐?"
"제 방이요? 저쪽에 있어요 저쪽."
무언가 신이 난 듯한 목소리다.
유리야가 검지 끝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그냥 복도밖에 없는데?'
마치 모르는 상가 건물 3층에 올라온 듯한 기분이다.
어디 쯤에 있다고 듣고 와도 막상 와보면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얼 타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먼저 가 있어. 난 화장실 좀 갔다 올 테니까."
"어? 화장실 어디 있는지 알아요?"
"당연히 척하면 착이지. 나를 뭘로 보고."
오는 길에 미리 체크를 끝마쳤다.
잘 사는 친구 집에 놀러 왔다고 기 죽을 내가 아니다.
조금 착각을 해버린 모양이다.
"헐, 거기 고양이 화장실인데."
"……."
고양이 화장실을 왜 따로 방으로 만들어 놓은 거야!
자신 있게 들어간 화장실 안에는 고양이 배변 용품들이 잔뜩 있었다.
대체 고양이를 몇 마리나 키우길래 따로 화장실까지 있는지 모르겠다.
"토마토랑, 먹물이랑, 크림이랑……."
"다음은 파스타냐? 아니면 스파게티냐?"
"애들 이름을 왜 먹는 걸로 지어요!"
"토마토도, 먹물도, 크림도 먹는 거거든? 식용이거든?"
"색깔 따서 지은 거란 말이에요……."
볼을 부풀린 채 삐졌다는 표정을 짓는다.
애완동물을 건드리는 건 역린인가 보다.
내가 말을 함부로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 소중한 선은 안 넘는 편이다.
'근데 좀 드럽게 많긴 하다.'
지금까지 이 집에서 확인한 고양이의 수만 네 마리다.
유리야한테 물어보니 무려 다섯 마리.
누가 보면 사육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하긴 유리야 성격에 어차피 돌보는 건 어머니가 하시겠지.'
내 집 일도 아니니 알 바 아니다.
진짜 화장실에 들린 후 들어간 유리야의 방.
고양이 냄새와 함께 여자여자한 향기 살짝 감도는 듯도 하다.
"이런 건 불시 검사를 해야 재밌는데."
"저 평소에도 청소 잘해요~."
"그래?"
어머니가 해주시는 건 아니고?
본인이 한다는데 차마 부정까지는 안 하겠다.
계속 태클 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불편해서다.
'아니, 적당히 좀 잘 살지. 빈부격차 느끼게시리.'
유리야의 집인 걸 알고 있음에도 떨떠름한 심정이다.
너무 좋은 집이라 진정이 안된다.
어색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다소곳이 침대에 앉은 유리야가 말을 걸어온다.
"뭐…… 할까요?"
분위기 타서 집에 오긴 했는데 막상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집주인인 유리야는 더욱 좌불안석인가 보다.
'하지만 그런 발언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데…….'
한창 때의 남녀가 방 안에서 단 둘이.
심지어 내 인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넓은 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50분.
가족들이 각자 볼 일을 보러 나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흐르는 정적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두근대는 가슴의 고동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유리야의 바로 옆, 침대 끝에 걸터앉자 소심하게 무릎을 움츠린다.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우정이 사랑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
'너한테는 해당이 안된단다.'
이렇게 밥상이 차려져도 아무런 감정이 안 드는 것 보면 유리야도 참 대단하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뜯어보면 괜찮고, 따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마디로 귤플랭크 같은 녀석이다.
패시브부터 궁극기까지 모든 스킬을 하나씩만 따지면 OP다.
뭉쳐 놓으니 계륵도 이런 계륵이 없다.
리메이크라도 되지 않는 한 평생 주류픽이 될 수 없는 운명이다.
"안타까운 유리야야."
"네!"
"언젠가 너에게도 봄이 찾아올 거야. 그날까지 힘내렴."
"??? 힘낼게요!"
두 손을 꼭 부여잡고 마음을 표하자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이 집에 게임하러 온 건 아니다.
한동안 게임은 쉬기로 했다.
다과를 씹으면서 못다 한 잡담을 나누는 정도.
"근데 선배는 왜 군대에서도 게임 해요? 저 알아요. 꿀 빤다는 거죠?"
"너 혹시 목숨이 두 개니?"
"헉, 조심할게요."
군챔스를 한 건 나도 예정에 없던 일이다.
말년에 군대에서 게임을 하게 줄은 장본인인 나도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
눈치를 채버린 모양이다.
"선배."
"왜."
"평소에 쓰던 모자가 아니네요?"
"뭐, 그렇지. 전역모니까."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작년, 그러니까 2012년의 말쯤이었나.
전투모가 아닌 베레모를 착용하는 게 의무화됐다.
나도 당연히 평소 베레모를 쓰고 다녔고, 그 모습을 유리야도 봤다.
지난 지상군 페스티벌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몇 번 면회를 온 적이 있었다.
'참 고마운 후배긴 해.'
면회를 온다는 게 말마따나 쉬운 일이 아니다.
면회 꼬옥~ 온다는 친구 치고 두 번 이상 오는 애가 거의 없다.
그 거의에 해당하는 몇 안되는 아이.
이런 유리야를 내가 왜 갈구기만 했을까.
갈구더라도 좀 적당한 선에서 갈굴 수 있었는데.
왜 갈구게 됐는지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뭐하냐?"
"만져도…… 된다고 하시길래……."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다.
그런 로맨스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빡빡 밀은 까까머리.
만지면 만질수록 중독성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알긴 아는데 니가 내 머리를 만지면 안되지.
"한 번만 봐준다."
"네…… 다음부터는 허락 맡고 만질게요."
"하아…………."
살아있는 인내심 테스트기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성질을 돋운다.
오늘이 내 전역날인 걸 다행인 줄 알아라.
"배고픈데 밥이나 먹자."
"그럴까요?"
조식을 째고 와서 더욱 짜증이 나는 걸 수도 있다.
맛있는 걸로 배 좀 채우면 신경도 가라앉겠지.
유리야가 무언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방긋 웃는다.
"선배, 저 선배한테 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니가?"
"네! 선배도 100% 좋아할 거라고 확신해요!"
'확신까지 한다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가 보다.
고급 식재료면 유리야의 손으로 요리해도 맛나겠지.
의외로 요리 솜씨가 정상인의 범주에 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궁금하기도 하다.
부자들은 대체 어떤 걸 먹고 살까?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 맡긴다."
"맡겨주세요! 진짜 맛있게 해드릴게요!"
평생 유리야에게 아무것도 맡길 수 없게 된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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