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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의 눈 -->
최근 롤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하나의 대상 때문에 터지기 직전이다.
왈가왈부가,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대상은 하나이나 주제는 여러가지.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만도 하다.
─아니, 진짜 이게 말이나 되는 조치냐?
막말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드립 수준이잖아
직권 남용 횡포라고밖에 안 보이는데
나랑 같은 생각인 사람 없어?
└일반인 기준에서 과도한 말은 맞지ㅋ
└사람이 아니라니!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롤 한국 지부랑 협회가 지들 맘대로긴 해
└원래 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짐ㅇㅇ
게임사가 한국 E-스포츠 협회를 통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아무리 군챔스라는 말이 있어도 일단은 공식 대회다.
게임사와 E-스포츠 협회의 주관 하에 열린다.
공식 규정 제6조(권리 및 의무사항) 제5항.
심의에 저촉되는 언행과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언행은 금지한다.
또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대회의 권위를 심각하게 손상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언행을 하였을 경우 주최측의 판단에 따라 팀 및 선수에게 징계를 가할 수 있다.
징계 수위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그 운영위원회에서 떨어진 결론은 이러하다.
해당 사건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식 선수가 아니며, 문제를 일으킨 게 처음이라는 점을 고려해 엄중한 경고 조치만을 내리겠다.
당분간 해당 선수의 활동을 주시해 추가로 필요한 조치가 생긴다면 즉각 내리겠다.
의문이 빗발치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경고 조치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조금 더 원만하게 풀 수는 없었는가.
하지만 민심은 이미 기울어졌다.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약칭 군챔스라는 E-스포츠 대회에서…….〉
걸그룹 이벤트 매치 막말 파동.
인터넷에는 관련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화젯거리다.
해당 기사에 달려있는 베스트 코멘트들의 내용은 대부분 색이 하나다.
[Best Comment]-고작 게임 가지고 사람을 논하지 맙시다
[Best Comment]-사람이 아니긴 하지…… 여신이니까!
[Best Comment]-걸즈데이를 건드렸으니 합당한 죗값
[Best Comment]-어휴, 레전설 이 새끼 사고 칠 줄 알았다^^
[Best Comment]-과한 감도 있지만 본보기로는 적당한 듯싶네요.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건이 워낙 크게 번졌다.
규모가 큰 사건은 이성적인 해결을 보기가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터지는 이슈의 결말은 으레 극단적이다.
그래도 E-스포츠 협회가 나름 중도적인 대처를 했다.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속도도 빨랐다.
이에 대부분의 민심은 흡족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임 커뮤니티에는 다른 의견도 올라오고 있지만.
─사람 아니라는 말이 그렇게 별거인가?
우리팀 사람 아니라고 탓하는 일 흔하잖아
롤하면서 팀탓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있어?
아니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도 문제가 있는 건가?
└일반인들 시선에서 인격 비하 발언래
└상대도 하필 걸그룹이라ㅋㅋ
└영상으로 퍼졌다는 것도 컸고
└운도 나빴고, 레전설 본인도 잘못한 감이 있지
롤유저들 입장에서는 그러려니 하는 일이다.
팀에 사람이 없네!
탈리반 3세 사람 아니네!
게임을 하다 보면 팀탓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일반인들 시선에는 충격적인 말이다.
어떻게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냐.
심지어 걸그룹이 얽힌 일이다.
그 부분만 부각돼서 악의적으로 퍼졌다.
걸그룹팬들이 보통 무서운 게 아니다.
어떻게 사고를 쳐도 이렇게 치냐?
안타까워하는 유저들도 적지는 않다.
─근데 아깝긴 아깝다
이렇게 피지컬 뛰어난 선수 별로 없는데
롤드컵 테이커 봤을 때의 느낌……?
프로게이머 하면 대성할 인재 아닐까?
└레전설의 기량이면 탑급 가능성 높지
글쓴이-원래 유명한 애였음??
└한 마디로 옛날 랭킹 1위임
└이번 기회에 알아가라ㅋㅋ
긍정적인 영향도 은근히 있다.
레전설이 대체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단기간에 엄청난 파급을 일으키며 모르면 간첩이 돼버렸다.
특히 실력적인 면에서는 더 이상 저평가의 여지가 없다.
그도 그럴게 인터넷 중계 방송으로 미리 본 사람들.
그리고 기대를 모았던 오프게임넷의 군챔스 3부작.
오프게임넷 특집! 3부작
1부 군챔스- 콩샐러드의 역습
2부 대격돌- 전설의 재림!
3부 결승- 멱살 캐리 종결자
화제를 몰고 왔던 시리즈의 마지막 화가 방영되었다.
─육군의 테이커 레전설!
롤챔스에 테이커가 있다면……
군챔스에는 레전설이 있다!
선전 문구 약 빨았나ㅋㅋㅋㅋㅋㅋ
└존나 없어 보인다 ㅅㅂ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피지컬은 ㄹㅇ 테이커급이라 더 웃겨ㅋㅋㅋㅋ
└오프게임넷이 이번에 제대로 대박 침
└유튜브 조회수도 폭발했잖아!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고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부제 그대로 멱살 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혼자 스플릿을 하며 게임을 종결.
이랠리야와 리픈은 가히 대적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막말 파동이 하도 큰 바람에 묻히게 됐을 뿐이다.
─꿀통통 표정 압권이었는데ㅋㅋㅋ
시청자들이 계속 방장은 할 수 있냐고 묻는데 벙쪄서 대답 못해ㅋㅋ
그때 사건 터져서 유야무야 묻혀서 다행이었지
지금도 채팅창에 어그로는 올라오고 있지만ㅋㅋ
└그 각을 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티어가 낮아서 잘은 몰라도…… 플레이에서 광기가 느껴지더라
└리픈 하는 애들은 진짜 정신병원 가서 한 번씩 진단 받아야 돼
사건이란, 따질 것도 없이 그거다.
걸즈데이를 무참히 캐리해버린 사건.
멱살 캐리 도중 진짜로 멱살 잡는 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승리 당한 걸즈데이는 하얗게 타서 재만 남았다.
임팩트가 워낙 커서 다른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잠잠한 상태다.
잠잠할 뿐, 계기만 있다면 언제 어느 때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커져가는 관심 만큼, 레전설에 대한 화두 또한 늘어만 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제재를 받은 건 아니네
대리 게임으로 영정 논해지는 다크나
비빔밥 먹다가 뒤통수 맞은 카수처럼
이번 사건만 넘기면 정상적으로 프로 데뷔도 가능한 건가?
└뭐, 불가능할 건 없긴 한데…………
└현직 프로들 중에 레전설한테 이 가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글쓴이-과거에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원한이 그리 많아
└사고 많이 치고 다녔지. 아니, 사고밖에 안 쳤지ㅋㅋ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도 셀 수 없다.
물론 언제까지 쭉 이어질 떡밥은 아니다.
대한민국, 빨리 달아오르는 만큼 빨리 식는 경향이 있다.
게임사와 협회의 빠른 대응 덕에 결론이 나버려 더 씹을 것이 없는 화제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재만 남을 것이다.
그 얼마가 지나갈 동안 장본인은 괴로움을 참아야겠지만.
* * *
└일반인 기준에서 과도한 말은 맞지ㅋ
└사람이 아니라니!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롤 한국 지부랑 협회가 지들 맘대로긴 해
└원래 운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짐ㅇㅇ
스마트폰 화면에 비쳐져 있는 글자.
내가 어제 올렸던 게시글의 댓글들이다.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다.
'……역시 여론 조작은 꿈도 꿀 수 없겠군.'
삼인성호,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
옛말을 실천하기 위해 몇 개의 아이디로 동정 여론에 힘을 싣고자 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
남은 선택지는 결국 하나가 됐다.
'인생 참 처량하구만.'
마지막 말출을 끝내고 자대 복귀를 하러 가고 있다.
이 버스에서 내려 1분 정도 걸으면 위병소의 앞.
군생활의 끝이 보인다는 게 참…….
'진짜 별 일 없겠지?'
오만 생각이 다 들려고 한다.
물론 나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한국 E-스포츠 협회의 공지.
이와 비슷하게 군대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공문이 내려오면 큰일 정도로는 안 끝난다.
그럴 일 없겠지, 없겠지 하면서도 불안해 죽겠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단 없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습니다."
위병소를 지나 대대 당직 사령에게 신고를 마치고 중대 행정실로 들어왔다.
당직 사관은 없고 후임인 만식이만 있더라.
계원인 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뭔 소리야?"
"아, 좀 어울려 주십시오. 들으면 진짜 깜짝 놀랄 거에요."
진작에 형동생으로 말을 놓은 사이라 다나까는 신경 안 써도 된다.
정작 신경이 쓰이는 내용은 따로 있다.
중대의 행정 계원은 실세 중의 실세.
모든 정보는 가장 먼저 행정 계원의 귀에 들어간다.
즉, 무언가 알고 있다는 소리다.
나의 군생활이 어떻게 될지.
"설마 그런 걸로 영창 주겠어요? 그런 일 생기면 나가자마자 갈아엎어야죠."
"일단 나가기를 해야 갈아엎던가 말던가 하지……. 그래서 나쁜 소식이 뭔데?"
"좋은 소식부터 말하겠습니다."
답정너도 이런 답정너가 없다.
좋은 소식이라 함은 다름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 눈앞에 빤히 보이고 있다.
"TV가 도착한 게 좋은 소식이겠지. 내 소유물도 아니니 관심 없지만."
"칼 같으시네."
"너는 안 그럴 거 같냐?"
"인정."
내가 만약 일병, 상병일 때 사단 체육 대회 같은데 나가서 부상을 타온 거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바로 내일 나가는 마당에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어차피 갈 사람, 집착하는 건 추억이 아니라 미련이다.
"근데 상당히 좋은 걸로 왔어요."
"우리 중대장 짬이 제일 높았나?"
"그런 게 아니라 거기서 좀 신경을 써줬나 봐요. 육군참모총장님이 형 경기 잘 봤다고…… 했나 본데요."
부상으로 예정돼있던 50인치 TV.
그중에서 유일한 최신 기종으로 골라서 왔다.
부상이 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군대 내에서 돌고 도는 물품일 뿐이다.
각 대대 생활관에는 TV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다 좋은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
'뭐, 행보관님 입장에서는 흐뭇하시겠지만.'
그것으로 된 거다.
그런데 그 이유가 신경 쓰인다.
육군참모총장님이 내 경기를 보셨다니.
"진짜 보긴 본 건가? 시상도 대리로 하길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웠는데."
"제 생각에는 정말로 본 거 같아요."
"잠깐 그냥 스치듯이 봤겠지. 그리고 MVP 탔으니까 알아서 챙겨준 거겠지~."
우리 대대 대대장님만 해도 마흔이 넘으시다.
육군 참모총장이면 최소로 잡아도 쉰.
게임의 룰을 알래야 알 리가 없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확실하게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쁜 소식이 뭐야."
"정식 공문은 아니긴 한데……."
뜸을 들이는 게 상당히 애간장을 타게 만든다.
지금 내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미리 말한 대로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지만.
"별 건 아니고…… 머리가 길다고 한 마디 하신 모양입니다."
"그렇구나~. 한 마디 하셨구나~."
육군참모총장이 한 마디 하셨다.
이어질 참사는 생각할 것도 없다.
군대에서 윗사람이 한 마디 하면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응어리가 커진다.
소위 내리갈굼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그런데 그게 윗물도 아니고 저 하늘 위, 네 개의 별로부터 떨어졌다.
마침 행정보급관님이 엄청나게 반가운 듯 웃으며 행정실에 들어오신다.
"최성후이!"
* * *
내가 행보관님이 그렇게 해맑게 웃는 표정을 본 건 군생활 내내 다섯 번이 안된다.
마지막 다섯 번째를 전역 전날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시발…….'
한 시간 전, 평생 잊지 못할 전역 신고를 마쳤다.
울음 바다가 돼야 할 전역식이 웃음 바다가 됐다.
소대 막내인 이등병도 표정 관리가 안되더라.
육군참모총장이 한 마디를 해버렸다는 것.
머리를 단순히 정리하는 대서 그칠 수가 없었다.
아예 그냥 빡빡!
군인 정신을 담아 바리깡으로 밀어야만 했다.
'훈련병 이후로 이딴 머리해본 적이 없는데.'
이등병 시절에도 이렇게 짧게 깎지는 않았다.
손바닥으로 쓸어담자 아주 까끌까끌하다.
내 인생, 평생 잊지 못할 전역날이다.
애꿎은 전역모를 꾹 눌러 쓴다.
'아니야. 오히려 잘됐어.'
여론 조작을 할 수 없는 이상 남은 선택지는 하나.
시끄러운 화제가 가라앉을 동안 잠수를 타야 한다.
잠수를 타는 사이 자연스럽게 머리카락도 자랄 것이다.
[현재 손목의 상태 7/100]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악화, 100에 가까울수록 회복이 촉진됩니다.]
손목도 하도 혹사시켜서 휴식 시간을 줄 때가 됐다.
숫자 하나당 100포인트.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가 워낙 많아 부담은 안되지만 자연 치유도 필요하다.
겸사겸사 한다고 생각하니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니다.
이 정도 선에서 끝난 것도 어찌 보면 다행일 수도 있다.
이딴 긍정적인 마인드 가지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최선이다.
'긍정적인 생각이라…….'
오늘 만큼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현재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상태다.
턱을 괸 채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휙휙 지나가는 나무들이 이상하게 아름답다.
민간인이 되자 감성까지 풍부해진 걸까?
그런 것이 아니다.
'장래 걱정을 확실히 덜긴 했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의 꿈을 접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당당하게 목표하고 있다.
포기한 게 아니라 조금 돌아갈 뿐.
한동안 휴가를 가진다는 심정으로 가볍게 즐기면 될 듯하다.
'휴가라고 해봤자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만.'
보통 전역을 하면 동기랑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그러는데.
안타깝게도 동기도 없고, 출타자 중에 친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한 명, 부르면 달려오는 똥강아지 같은 녀석은 있다.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말하면 돼'의 준말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2018-06-07 오후 9:43 기사 관련 이야기 추가
2018-06-09 오전 1:23 언어의 강도를 유하게 수정
2018-07-23 오후 2:03 전체적으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