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45화 (4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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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의 눈 -->

사실 대한민국이 그런 게 좀 있다.

사건이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대충 처리한다.

하지만 이슈가 돼서 온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면 과도할 정도로 대응한다.

이번 사태도 어찌 보면 그러한 사회 풍조의 피해자.

"바쁘신 와중에도 E스포츠 협회 간담회에 참석해주심에 감사를 표하며, 바로 본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자코 있기에는 사건이 지나치게 크게 번졌다.

별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한국 E-스포츠 협회 본부에 각 게임단들의 관계자들이 소집된 이유다.

"회담의 내용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이벤트 매치에서 일어난 사고의 수습과 대응 방침에 대해서 입니다."

거대한 사무용 탁자를 사이에 두고 빙 둘러 앉아있다.

그중 상석에 위치한 40대 중반의 남자.

협회장 조찬기가 토의의 주제를 꺼낸다.

예로부터 한국은 E-스포츠 협회의 입김이 상~당히 큰 편이다.

15년이나 이어져온 스타크래프트의 전통과 역사가 있는 만큼 당연하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만으로도 한국 E-스포츠 판을 좌우하고도 남는다.

팔짱을 낀 채 앉아있는 덥수룩한 머리의 남자가 손을 번쩍 든다.

"삼선 게임단 감독님, 말씀하시죠."

"그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괜찮습니다. 저희도 대응의 방향성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참석을 요청 드린 것이니까요."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코리아.

현재 한국 롤챔스를 지탱하는 기둥들이다.

각 게임단들의 감독들이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소집됐다.

삼선 게임단은 이들 중에서도 제법 발언권이 있는 위치.

"솔직히 그렇게 문제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

회장에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모인 사람 전부 사건의 계요를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만큼 크게 벌려야 할 일인지 의문이다.

애초에 문제를 일으킨 그 사람 정식 선수도 아니라며?

"일단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의 녹음을 들어보시죠."

하지만 협회라고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만한 사람들을 괜히 부른 것도 아니다.

협회장이 준비한 음성 파일이 스피커를 통해 울린다.

〈어떻게 팀원이 전부 사람이 아니냐 사람이…….〉

일련의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파다하게 퍼졌다.

이게 과연 문제로 삼을 부분인가?

솔직하게 모르니까 했던 질문이다.

한 가지 전제를 깔고 들어가야 한다.

"롤유저가 아닌 일반인 시선에서는 다분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인 것도 사실입니다."

""…….""

회장에 다시 한 번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이번에는 이유가 조금 다르다.

그도 그럴게 로드 오브 로드.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욕설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웬만한 건 욕이나 탓으로 안 들릴 지경이다.

진짜 너 사람 아니다!

롤 유저에게는 그냥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고작 게임 가지고 사람 아니냐는 소리까지 해야 돼?

"심지어 상대도 많이 나빴고요. 하필 유명 걸그룹이 얽혀서 전국적으로 떠들썩해졌습니다. 분명한 방안이 검토되지 않는다면 E-스포츠계의 대응력에 대한 의문과 나아가 잘못된 오해가 생길 여지가……."

군챔스는 E-스포츠 협회의 공인 하에 열린 대회다.

사건이 터지면 그 뒤처리를 당연히 관할한다.

이는 정식 선수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공인된 대회는 참가할 때 접수 서류에 사인한다.

사건사고가 발생할시 협회의 처분을 따르겠다.

군챔스도 예외가 아니고 이번 사고 또한 협회에게 위임돼 있지만.

"규정대로 처리해 공표할 생각이었는데 몇몇 분들이 탄원을 하셔서 긴급히 의견을 여쭙고자 참석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몇몇 게임단에서 손을 썼다.

이런 일로 보내기에는 아까운 인재가 아닌가?

짚이는 게 있는 감독들이 애꿎은 천장을 쳐다보거나, 물을 마신다.

말하는 순서대로 걸리겠구나.

일단 한 명 걸렸다 삼선 게임단.

아무도 그 다음 주자가 되기 싫어한다.

먼저 입을 손을 들어올린 이는 전혀 뜻밖인 팀의 감독이었다.

"확실히 문제가 없다고 보긴 힘들겠네요."

부진은 있어도 부인은 없는 것으로 유명한 명감독.

SKY T1의 박다균, 선수 시절 꼬치라는 이름을 활동했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가장 최근에 막을 내린 롤챔스 섬머 시즌, 이어서 롤드컵까지 재패하며 E-스포츠 판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그의 발언권은 이 자리에서 가장 높다.

"롤드컵 이후 E-스포츠 판의 위상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때,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는 건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꺼내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도 하필 지금.

사건의 파급력도 엄청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건 결국 끼어 맞추기다.

'굉장히' 같은 강한 느낌의 형용사를 괜히 붙였을까?

이런 자리에서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가 담긴다.

그 의미는 다른 게임단들의 감독들도 다 알아챘다.

'여론 몰이 한 번 해보겠다 이거야?'

'속셈을 모를 줄 알고?'

'테이커라는 든든한 미드가 있으니 아쉬울 거 없다 이거겠지.'

얼밤과 불밤이 지배했던 한국 롤판에 초신성처럼 등장했다.

세대 교체의 대명사가 된 SKY T1 게임단.

이제는 명실상부 롤챔스 1위의 게임단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 중심에는 바로 미드라이너 테이커가 존재한다.

그를 꺾지 않은 이상 왕좌의 탈환은 불가능하다.

다른 게임단의 감독들이 설마 그 정도도 모를까?

괴물 같은 테이커의 대항마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가능성에 대해 아직 왈가왈부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 존재감, 스타성 기타 등등.

〈레전설만 먹으면 SKY T1을 잡을 수 있다!〉

현재 게임단의 감독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 하나다.

군챔스 결승전을 다각도로 분석한 끝에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그 결과, 대다수 감독들의 판단은 비슷하게 좁혀진다.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건실한 청년 하나를 너무 희생양으로 만드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유도리 있게 넘어갈 수 있는 걸 꼭 강경 대응까지 해야 합니까? "

"오히려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E스포츠 판이 부드러워졌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지 않나……."

실제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는 E-스포츠 협회 쪽에서 이러저러 사건 사고가 많이 터졌다.

고인물, 솔직하게 썩어있다는 이미지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사자들 앞에서 꺼내기는 민감한 문제.

건드려서라도 주장에 힘이 실리게 하겠다.

다수에 해당하는 게임단들의 감독들이 동정론에 표를 던졌다.

그 이유는 정말로 청년 한 명의 인생이 안타까워서, 혹은 정의를 부르짖기 위해서가…… 당연히 아니다.

'무조건 영입해야 하는 인재야!'

'저 정도 인재를 내가 관리해서 키운다면…… E-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써버릴 수도?'

'기존의 세력 구도를 완전히 뒤엎고도 남겠지.'

E-스포츠 판에서 10년쯤 짬을 먹으면 척 하면 착이다.

꿍꿍이가 있는 이들끼리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일단 살리고 보자.

누가 가져가더라도 목숨줄이 붙어야 뭐라도 하지 않겠는가?

"감독님들 의견 잘 들었습니다. 그럼 원만하게 처사를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볼까요?"

상석에 위치한 협회장, 조찬기로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로드 오브 로드로 넘어오며 협회의 권한이 많이 축소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협회의 위엄을 살리고자 했다.

'과반수까진 아니더라도 명분만 살려주면 어떻게 밀어붙일 만한데.'

옛날이면 모를까 지금의 협회는 이빨이 반쯤 빠진 호랑이다.

각 게임단 감독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게 최선.

그렇다고 다가온 기회를 놓칠 만큼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저도 한 마디 해도 될까요?"

"열 마디든 스무 마디든 괜찮습니다! 거리낌 없는 질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지금 대세 의견에 반하는 입장인데요."

KTX 롤러코스터의 이재훈 감독.

롤챔스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게임단의 감독인 만큼 발언권이 얕지가 않다.

더욱이 그는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맹활약을 해온 경력이 매우 두터운 인물이다.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손가락에 꼽히는 영향력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그의 의견은 결코 쉬이 생각할 수 없다.

심지어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니?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쪽도, 크게 일 벌릴 거 없다는 쪽도 전부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립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그냥 넘겨버릴 문제는 아닌 것 같거든요?"

이재훈 그가 중립을 자처한다?

사정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기가 찬다.

KTX 롤러코스터는 지난 롤챔스 섬머 시즌에 준우승을 차지한 게임단이다.

그 유명한 테이커VS듀 자드 대 자드 명승부의 피해자 쪽이다.

SKY T1 K에게 단 한 세트, 간발의 차이로 우승컵을 내줬다.

그 바람에 롤드컵 진출까지 무산됐다.

가장 이를 바락바락 갈고 있어야 할 이재훈이 중립을?

"넘기지 않으면 제재라도 한다는 거요? 당신네 애들이 겪었다고 생각해봐요. 감독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을철 갈대 마냥 여론에 휩쓸려도 되는 겁니까?"

"아니, 당신은 좀 가만히 있고."

"뭐? 말 다했어? 해보자는 거야?!"

마찬가지로 삼선 게임단의 최우룡 감독 또한 E-스포츠 판에서 팔뚝이 굵다.

스타크래프트의 前프로게이머 출신.

코치, 감독, 이제는 로드 오브 로드로 발을 넓힌 경력의 소유자다.

뇌신(雷神)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의 명장이며 이제는 감독으로서도 입지를 굳혔다.

롤챔스에서 삼선 게임단의 입지가 KTX 롤러코스터에게 밀리지 않는 만큼 발언권은 대등하다.

하필 둘 사이가 이전부터 앙숙인 바람에 다소의 말다툼이 오간다.

언제나 그러했듯 별 사달 없이 끝마쳐지긴 했지만.

"두 분 다 진정 해주시면……"

""…….""

"감사합니다. 귀중한 의견 저희가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둘의 사이를 초창기부터 봐온 사람이다.

협회장의 주도 하에 분위기가 다시 잠잠해진다.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향을 이끈다.

말하자면 어부지리의 상황을 그는 언제나 이용해왔다.

"오랜 기간 협회장으로 있었던 제가 이전 사태와 현 상황을 대입해봤을 때…… 경고 차원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견 있으신 분들 계신다면 손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그 선이 어느 쪽에 조금 더 기울어졌는지.

안다고 해도 더 이상 이견을 제시하기엔 판이 많이 달아올랐다.

'당장 다가올 윈터 시즌에 변수가 없다면 상관없겠지…….'

'관심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나쁘진 않아. 지금은 너무 과경쟁이 붙은 감이 있어.'

'게임단 사정도 빠듯하니 좀 더 확실하게 가능성을 파악한 후에 영입 제안을 던져보자.'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한 타이밍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 주기는 아까운 떡이지만 당장 먹다가 채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 E-스포츠 협회, 그리고 각 게임단 감독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다.

서로 웃는 얼굴 속에 숨겨진 뒷사정.

어째서 일부 게임단이 레전설을 견제했는지.

그리고 일부는 아무런 제지 없이 묵과했는지.

드러내지 않은 채 회담은 종료된다.

장본인에게는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 * *

소대원들의 두터운 실드 덕에 무사히 마지막 말년 휴가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집.

널널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이게 얼마만의 여유냐 정말.'

적당하게 의자에 기대듯 앉아 커피에 에이스를 적셔

말년이 되고 훨씬 바빠진 듯한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니다.

최근에 워낙 일이 많았다.

단순히 잡일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가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겠지만.'

전역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한 것 이상으로 구르지 않으면 미래는 개척할 수 없다.

하지만 깨달은 이상 어렵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만한 성과를 내지 않았는가.

군챔스의 슈퍼 플레이는 엄청난 이슈를 낳고 있다.

'……살짝 찔리는 것도 없지는 않은데.'

사소한 미스가 곁들여지기는 했다.

그 바람에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보기 두려울 정도로 말이 많다.

심지어 기사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최근에 국민 화두가 돼버렸다.

'그래도 뭐 별 일 있겠어.'

솔직히 난 잘못 없다.

정의가 땅에 떨어지지라도 않는 이상 설마.

너무 안일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한국 E-스포츠 협회 공식 입장입니다. -Official

얼마 전, 지상군 페스티벌에서 일명 군챔스라 불려진 행사가 행해졌습니다.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를 말하는 건데요.

관련 하여 생긴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해 게임사와 상의 하에 내려진 공식 입장을 전하겠습니다.

'불……미?'

진정한 의미에서 휴식을 할 겸 게임은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공부까지 게을리 한다는 건 아니다.

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정보들을 보며 최근 메타에 대해 학습을 하는 게 주된 일과다.

그런데 그 일과의 도중 어처구니 없는 글이 눈에 띄었다.

─게임사와 협회의 주도 하에 행해진 공식 대회에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미흡한 E-스포츠 정신과 미풍약속에 위배되는 언어 사용으로 문제시 된 해당 선수에 대한 조치를 발표합니다.

원칙대로라면 강경한 대응으로 일벌백계에 처해야 함이 옳으나, 해당 사건을 일으킨 선수가 아마추어이며 문제를 일으킨 게 처음이라는 점을 고려해……

고려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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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9 오전 1:23

일부 복선이 드러나도록 수정

'챔피언스 공식 규정 제6조(권리 및 의무사항) 제5항'에 의거하여 결정되었다.

심의에 저촉되는 언행과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언행은 금지한다. 또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대회의 권위를 심각하게 손상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언행을 하였을 경우 주최측의 판단에 따라 팀 및 선수에게 징계를 가할 수 있다. 징계 수위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이런 규정이 있고 협회 주관의 대회면 아마추어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실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 등을 재조립한 거니 놀라우시더라도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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