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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43화 (4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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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 당한 걸그룹 -->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를 제외한 네 명.

그냥 까놓고 말해서.

'중급AI가 얘들보다는 도움되겠다.'

AI라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근데 AI가 절대 못하지 않는다.

AI전, 인공지능 대전.

스타크래프트만 해도 컴까기 같은 게 있지 않은가?

롤에도 비슷한 게 존재한다.

초보 유저들이 처음에 롤을 배우기 위한 발판이다.

스타크래프트가 그러하듯 인공지능 특유의 패턴을 활용하면 1대7도 이긴다.

롤의 경우 1대5도 충분히 할 만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공지능의 바보 같은 결함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중급AI도 은근히 잘해.'

피지컬만 따지면 챌린저에 준한다.

농담이 아니라 그렇게나 논타겟 스킬의 명중률과 회피율이 높은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풀리츠크랭커의 그랩은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네임드가 아닌 이상 AI가 훨씬 잘 맞힌다.

무려 그 정도다.

물론 이러한 장점이 멍청하다는 결함 때문에 묻힌다.

그걸 다 포함해도 중급AI가 얘들보다는 낫다.

최소한 AI는 때리면 꿈틀은 해.

"저기요. 직모 누나."

"네."

"많은 거 안 바라니까 앞에서 알파는 돌리고 죽으세요 제발로."

"노력해볼게요."

노력만 하지 말고 성과로 보여 달라고.

아니다.

차라리 마이는 양반이다.

"저기 버섯 농사꾼씨."

"네, 네!"

"바론 근처에 보면 텃밭 좋죠? 거기서 열심히 농사나 지으세요."

"알겠어요!"

기합은 좋다.

컨셉이 아니라 정말로 착한가 보다.

"원딜 양반은 이제 슬슬 올라와서 뒤에서 배경이라도 찍고 계세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네……."

많이 소심한 타입인 것 같다.

조금 미안한데 내가 단발이 타입이 아니라 10만큼 말할 걸 11만큼 저지르긴 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한 말이다.

앞구르기는 따질 것도 없고, 어설프게 딜 넣다가 죽을 바에야 차라리 뒤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낫다.

말화이트의 궁극기는 오히려 안 쓸 때 더 위협적이다.

그런 거랑 대충 비슷한 맥락이다.

"곱슬씨, 혹시 리듬 게임 해본 적 있어요?"

"네, 해봤어요. 고등학교 때 버스에서 폰으로 매일……."

"하나도 안 궁금하고요. 제가 띵! 하면 힐 주시고, 팅! 하면 마나 주시고, 띠잉-! 하면 궁극기 바로 쓰세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제가 옥타브 하나 올려서 말하면 급한 거니까 더 빨리 반응하세요."

요즘 애들 스타일이라 그런지 상당히 적극적이다.

하려는 의지가 있다.

의지만 있고 드럽게 못해서 문제지.

그 부분을 내가 맞춤형 오더를 통해 해결한다.

이윽고 시작하는 한타.

파앗!

미드 2차 포탑 앞에서의 5대4 대치 상황이다.

사실 한타랄 것도 없다.

애초에 한타를 하면 절대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다.

내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기 위해서는 끊어 먹어야 한다.

르풀랑이 자랑하는 W스킬 뒤틀림.

순간적으로 접근해 속전속결이다.

두 개의 표식을 던지며 금빛 사슬로 긋자.

─적을 처치했습니다!

전설의 출현!

나름대로 단단할 적팀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터져버린다.

탱커라서 방심을 한 모양인데 풀콤보 맞으면 죽는다.

이 정도로 성장한 르풀랑은 인정사정이 없다.

"팅!"

"드렸어요!"

마나를 주입해 주신다.

힐까지 줄 필요는 없었는데 하고자 하는 열정을 저평가 하지는 않겠다.

이어서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긋는다.

터억!

사앗…!

표식과 함께 금빛 사슬로 긋고 빠져나오자 상대 서포터 쏘냐가 반피가 넘게 나간다.

견제 정도의 의미로 일반 스킬만 돌렸기에 약하다.

단순한 원투 펀치도 이 정도다.

파앗!

르풀랑은 궁극기의 쿨이 무척 짧다.

지금 나처럼 킬을 쓸어담고 16레벨을 빠르게 찍었다면 더더욱.

다시 한 번 질주해서 정확하게.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번에는 화력이 아닌 기동성에 초점을 뒀다.

두 번 연속으로 순식간에 접근해 긋고 빠져나왔다.

이전 견제에 반피가 나갔던 쏘냐는 버티지 못하고 사망한다.

하지만 나머지 적들이 몰려온다.

꾸뤄러러럭!

한 명을 암살했다는 건 내가 그만큼 스킬을 소비했다는 의미다.

궁극기를 쓴 네네톤이 작정하고 덮쳐온다.

미니언을 타고 연속 대쉬.

점멸까지 써서 어거지로 나를 물어버렸다.

상대 원딜러 헤이클린과 미드라이너 자드의 호응이 이어진다.

상당히 위협적인 광경이다.

적어도 병풍에 지나지 않은 아군들보다는 수십 배는 듬직하다.

"띵! 띠잉-!"

그럼에도 별 수가 없다.

르풀랑이라는 챔피언이 대치 구도에서 가지는 의미.

암살과 포킹 외에도 상대의 이성을 끊어버리는 효과가 있다.

얍실하게 쏙쏙 딜 넣고 빠져 나오면 상대는 화가 치밀어 이니시를 걸어버린다.

바로 지금처럼.

뒤에서 배경 찍고 있던 팀원들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샤샤샥-!

피지컬 안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잡으면 안되는 챔피언 투탑.

마이와 배인의 조력은 솔직하게 마음만 받는다.

직모 누나의 마이가 약속을 실현하듯 알파 슬래쉬 한 번 돌리고 죽었다.

배인도 목숨만 연명하고 있을 뿐 사실상 딜은 거의 안 넣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괜히 정색하고 한 마디씩 한 게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의도한 대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리듬에 맞춰 넣어준 힐라카의 연속 힐.

상대는 점멸로 나를 물었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군들이 목숨을 던져 조금씩 시간을 끌었다.

스킬 쿨타임이 돌아오자 다시 전세가 역전된다.

무리했던 이니시가 화근이 되어 목을 조인다.

적들은 도망도 못 가고 한 명씩 마무리 당한다.

─트리플 킬!

쿼드라 킬!

전설의 출현!

사실상의 펜타 킬이긴 한데 탈리반은 죽인지 오래 돼서 포함이 안됐다.

아무튼 경기의 승기는 사실상 잡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한타를 대승하고 미드 억제탑까지 쭉 밀었다.

이것도 부족해서 하나 보험을 들어두었다.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굉장히 아슬아슬한 바론 트라이였다.

본래라면 당연히 안 하는 게 맞다.

정글러도 죽었고, 탱커도 없고.

하지만 잘 키운 버섯 하나 열 티몽 안 부러운 법이다.

정말로 티몽은 하나도 도움이 안되지만 버섯 만큼은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지시한 대로 착실하게 버섯 농사를 지어둔 덕에 상대의 접근이 무척 늦어졌다.

이후의 게임은 바론 버프를 바탕으로 손쉽게 승리.

까지는 당연히 아니었고 내가 발악해서 이겼다.

이기고 나자 현자 타임이 격하게 밀려오려 한다.

"어떻게 팀원이 전부 사람이 아니냐 사람이……."

[게임을 승리했습니다!]

[포인트를 28만큼 획득했습니다.]

[그다지 유의미한 승리가 아니었지만 반응 만큼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용병술에 대한 창의력이 인정 받아 1746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관중들이 당신의 용감함에 묵념과 함께 찬사를 보내며 3289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무언가 엄청 많이 얻은 것 같긴 한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다.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막 고민이 떠오른다.

그리고 현자 타임은 나만 겪는 게 아니었다.

'표정이…… 죽었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는 하얗게 타버린 아이돌들을 현실에서 목도했다.

모니터 화면에 큼지막하게 떠오른 『승리』라는 두 글자.

멍하게,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해설자들도 방송 진행에 대한 감을 잃은 듯 말이 사라졌다.

떠들썩했던 관중석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누군가 분위기를 살려줄 사람 어디 없나?

〈에…… 걸즈데이와 30사단 최성훈 병장의 이벤트 매치 수고하셨습니다. 기념 촬영 후에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최종 마무리하겠습니다.〉

진용준 캐스터마저 수습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담담하게 원고 대로의 대사만을 읊는다.

방금 전 불렀던 내 이름 석 자.

뭔가 사형 선고 같은 느낌이었던 건 나 뿐일까.

* * *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았던 어제의 하루는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 내 군생활의 마지막 이벤트는 지나가지 않았다.

4박 5일인 줄 알았는데 5박 5.5일이더라.

마지막 뒤처리를 하고 가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었다.

〈축제를 즐겼으면, 즐긴 만큼 치우는 것도 군인의 자세가 아니겠나? 허허허!〉

우리나라 육군 대령의 정신머리를 의심케 하는 광경이었다.

아니, 군인 자세고 나발이고 즐긴 게 뭐가 있다고?

즐긴 건 민간인들인데 왜 우리한테 짬처리야!

"에혀……, 군대가 그러면 그렇지."

"나중에 전역하면 다 좋은 추억이 되지 않겠냐?"

"추억이요? 하긴 어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긴 했죠."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소대장형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무튼 이 짓거리도 곧 있으면 끝난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석식 시간 이후.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오전 일과.

강제적으로 작업을 하게 됐지만 오후에는 자대 복귀가 예정돼있다.

자대만 복귀하면 일사천리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요일 출타.

말년 특권과 더불어 행보관님과의 쇼부로 가볍게 가능하게 만들었다.

남은 말년을 즐기고 전역할 일만 남았는데.

"모르겠다 나는."

"뭐가요?"

"니가 자대 복귀하면 정녕 살아남을 수 있을지."

"……."

게임하다 화났다고 걸즈데이에게 폭언.

60만 장병들의 역린을 건든 게 아니라 아예 뽑아버렸다.

지금만 해도 지나가는 기간병들의 시선이 대놓고 콕콕 찔러온다.

하지만 2년간 함께 해온 전우들이다.

자대에 가면 별일 없을 거라 믿는다.

의외로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오전의 일과가 끝나고 잠시 중식 시간.

중식 시간은 식사 겸 개인 정비 시간이다.

나에게 짬처리 한 민간인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잘 들어갔냐?"

군인에게라면 통신보안.

아는 사이라면 여보세요.

이 녀석에게 만큼은 그런 자질구레한 인사말 필요 없다.

〈헉! 선배에요……?〉

"어."

〈저 감동했어요……. 선배가 안부 전화도 걸어주고.〉

헝헝헝.

리액션 하나 만큼은 재밌는 후배다.

유리야가 수화기 너머로 우는 흉내를 내온다.

누가 보면 내가 인정머리도 없는 녀석인 줄 알겠네

〈헐, 있었어요?〉

"전화라고 막 나간다 이거지?"

〈아뇨, 아뇨, 아뇨, 아뇨. 저 너무 깜짝 놀래서. 제 번호…… 기억하고 계셨네요……?〉

군대에서 전화를 건다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밖에서처럼 당연하게 핸드폰에 저장돼있지 않다.

왜?

군인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닐 수 없으니까.

한 마디로 일일이 기억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아니면 따로 적어 놓고 다니던가.

후자는 당연히 아니므로 전자다.

"내가 원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야."

〈그래도 감동했어요. 근데 어쩐 일로 전화를…….??〉

굉장히 궁금, 상상조차 안된다는 어미로 말을 끊는다.

별 일 없으면 전화조차 못할 사이야?

살짝 섭섭함이 묻어 나오려고 한다.

〈저 어제 딱히 잘못 안 했는데…… 저 먼저 간 건요~ 선배가 아무데도 안 보여서~.〉

"그건 작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고. 그리고 내가 너를 갈구기만 하는 존재니?"

알고 지낸지 엄청 오래된 건 아니지만 우정이 꼭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에 대한 선입견이 보이는 듯한 발언이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고쳐지길 바란다.

한 가지 묵혀있던 서운함이 있었다.

〈선배.〉

"왜."

〈어떻게 아이돌을 그렇게 막 함부로 대해요? 저 엄청 놀랐어요.〉

나만 하겠니.

빡쳐서 저지르긴 했는데 뒷수습은 철판 깔아야 했다.

인터넷에 어떤 반응이 올라오고 있을지 무서워서 확인도 못했다.

그런데 유리야.

나에게 가장 당하고 사는 장본인은 조금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정말로 선배는 게임만 관련되면 인정사정이 없으시네요.〉

"그래, 조심해라 너도."

〈네, 조심할게요! 저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 하는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의아하게도 기쁜 듯한 음색이었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어쩌면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한 걸지도 모르겠다.

'뭐, 본인이 가장 잘 알 테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유리야도 슬슬 발전할 때가 되었다.

휴가 복귀에서 1주일이 지났다.

숙제도 이제쯤 끝마쳐 놨겠지.

나도 유리야를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시기가 온 걸 수도 있다.

더 이상 못한다고 갈구는 일도 없고, 프로게이머의 길도 열리고.

그만한 활약상을 보이지 않았는가?

모든 일들이 술술 잘 풀려 나가고 있다는 생각.

너무 안이했다는 걸 조금 많이 뒤늦어서야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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