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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40화 (4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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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븐의 神 -->

살다 보면 안타까운 선택을 할 때가 있다.

내가 2012년의 초.

입대를 한 것도 어찌 보면 그 범주에 들어간다.

마찬가지의 선택 미스를 상대도 저지르고 말았다.

쿠훙!

살렸을 때 이길 가능성이 있는 챔피언과 없는 챔피언.

세상에는 노력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리픈을 마주했을 때.

챠락.

터엉-!

가벼운 평캔과 함께 티아매트가 터진다.

상대가 반응하지 못하는 새 우겨넣을 수 있는 최상의 콤보다.

점멸, 뒤늦게 반응하지만 이미 죽어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한 끝 차이로 타들어가는 킬각.

순간적인 앞점멸로 잡는 정신병 걸린 킬각이야말로 리픈의 극의다.

물론 그만큼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팀 게임에서 공격권은 항상 오는 게 아니다.

적 정글의 위치를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

그런 거 하나하나 다 따지면 어느 세월에 킬각을 잡겠나.

"미드 배달 가요! 저 못 봐줍니다."

준규가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은 목소리로 핑을 찍어준다.

해당 위치에 정글이 있다.

배달을 신속히 가고 있다.

상대팀 정글러는 소문난 중국집 배달원 신짜장이다.

이전 세트에서 하도 농락 당하다 보니 그냥 단순 무식한 챔피언을 꺼내왔다.

스킬 자체가 타겟팅이라 피할 건덕지가 없다.

그 선택 자체는 칭찬해줄 의향이 있다.

'그런데 내가 리픈이야…….'

리픈은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상대의 키보드를 때려 부수는 게 가능하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국내 키보드 유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고랭커일수록 장비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기 때문에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하앗!

뒤를 잡고 돌격해온 신짜장의 평Q.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정직한 콤보다.

첫 번째 창질이 박히기 직전에 내려친다.

콰항!

장전해둔 꺾여진 날개의 3타다.

주위 적들을 살짝 밀쳐내는 에어본.

그 바람에 신짜장의 평타가 캔슬된다.

퉁!

퉁!

포기하지 않고 바로 점멸을 써 붙어온다.

내가 점멸이 빠졌다는 걸 상대도 안다.

삼연창의 세 번째 창질이 박히기 직전.

쿠훙!

쿨타임이 돌아온 에너지 폭발의 스턴에 끊긴다.

아주 조금 벌어진 거리가 아슬아슬 닿지 않는다.

신짜장은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지만 최악의 선택이다.

챠락, 챠작!

눈 두 번 느리게 깜빡일 수 초 동안 전세가 역전된다.

상대의 삼연창은 쿨타임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쿨타임이 돌아왔다.

E스킬 용기를 밟으며 실드를 충전.

Q스킬 평캔으로 가볍게 썰어낸다.

정직한 배달원 신짜장은 배달비를 받지 못하고 운명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설님이 학살 중입니다!

'어떻게 살려도 리픈을 살리냐.'

상대는 밴 카드를 전부 나한테 썼다.

자드까지 저격한 것 보고 살짝 소름 돋았다.

그런데 이전 세트에서 탈탈 털리고 이랠리야로 갈아타더라.

충격이 큰 만큼 이해는 한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필 포기한 밴 카드가 리픈이라서 문제지.

'내가 리픈을 하면 그냥 변수가 없는데.'

신짜장의 삼연창, 세 번째 공격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타겟팅 에어본이다.

그런 스킬조차 방금 같은 파훼법이 존재한다.

리픈은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그게 가능하다.

평타 한 방만 찌르면 되는데 손 부들부들 떨다가 창 자루 떨어뜨리는 순간 멘탈 나간다.

이미 경기는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단적으로 말해 오합지졸이다.

터억!

준규의 거미여왕이 탑라인 다이브를 친다.

미니언 웨이브를 몰아넣고 공격.

애초부터 실패의 여지가 없다.

챔피언 자체가 다이브에 최적화돼있다.

실뭉치를 적을 묶고 이빨로 갉는다.

아군 쇈이 도발을 긁자 깔끔.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적 탑라이너 말화이트가 죽음을 맞이한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조급해진다.

득점에 목이 말라지는 것도 이해는 된다.

반대편, 봇라인에서 다이브를 시도해온다.

부활한 신짜장을 포함한 3인 다이브다.

아니, 카서트의 궁극기를 생각하면 4인.

파아앙!

하지만 고려를 해야 했다.

신짜장도, 카서트도 너무 못 커서 딜이 안 나온다.

그리고 아군 원딜러는 초지일관 변함이 없는 배인충이다.

특유의 생존력에 쇈의 두터운 실드까지 보태지자 간발의 차이로 산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잡았으나 상대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오히려 쫓기는 처지.

쭉 빼면 살겠지만 이미 도착했다.

챠락, 챠작!

딱히 컨트롤을 할 것도 없다.

그냥 수확이다.

잘 여물은 곡식들을 쓸어담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레전설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탑과 봇의 동시 다이브였다면 또 모른다.

쇈이 궁극기를 타줄 짬이 안 나왔을 테니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단 뭐라도 해보자.

앞뒤 다 자르고 어거지를 부렸으니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오합지졸이라는 말은 단 하나의 과장도 없다.

결승전은 예상했던 그대로 일방적인 난타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 * *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

스포일러충이 난입하면 흥미가 뚝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혹은 전개가 너무 뻔해서 끝이 보인다거나.

그럼에도 건너뛰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이걸 이기려면…… 30사단이 한 세 번쯤 크게 던져주면 가능성 있습니다.〉

〈그 세 번에 리픈이 포함 안되면 뭘 해도 가망성이 없지 않을까요?〉

김은준 해설은 물론 강민수 소령.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관중들과 시청자.

도박에 절여진 역배충이 아닌 이상 예상하는 것은 하나다.

-리픈 대체 어떻게 막냐……

-실드량 미쳤어ㅋㅋㅋ

-스치기만 해도 갈리겠다;;

라인은 당연하고 특유의 기동력으로 정글몹까지 싹 쓸어먹었다.

분당 CS가 11개를 돌파한 상태에서 킬은 전설이 출현한지 오래다.

지나치게 잘 성장한 리픈의 스플릿.

이전 세트처럼 한 가닥 희망이라도 보이면 모른다.

이랠리야? 잘 커봤자 한타 존재감 없잖아.

딜템만 올렸으니 CC 걸고 순삭하면 되지 않아?

리픈은 경우가 조금 많이 다르다.

단 하나의 방템을 안 둘러도 단단하다.

특히 성장을 잘한 상태에서는 의문이 든다.

얘가 대체 탱커야 딜러야?

맞아보면 깨닫는다.

쿠훙!

3사단에서 가장 단단할 수밖에 없는 챔피언이다.

탑라이너인 말화이트가 리픈과 대면한다.

본래의 상성 관계라면 단단한 바위 갑옷이 뚫릴 턱이 없겠지만.

〈그나마 상성이라 원콤이 안 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네요.〉

〈말화이트 마저 딜을 못 버틸 정도면 대체…… 정말 사이즈도 안 나오게 크긴 했습니다.〉

400이 넘어가는 무지막지한 깡AD.

맞딜은 생각도 못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간다.

그럼에도 따라잡힌다.

기동성에서 차이가 난다.

콰항!

내려쳐지는 3타의 에어본을 맞는 순간 죽는다.

순간적인 직감에 말화이트는 점멸을 썼다.

그리고 이는 절대 쫄플이 아니다.

쓰지 않았다면 사망.

사용했기에 시간을 벌었다.

아군이 뒤를 잡고 포위망을 좁혔다.

꽈아앙-!

말화이트의 궁극기 막을 수 없는 돌격으로 시작한다.

어떻게든 리픈을 한 번 제압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세 명도, 네 명도 아니고 다섯의 총공세.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이다.

3사단의 그림 자체는 꽤나 성공적이었으나.

〈데미지가 그냥…… 샷건이네요 샷건.〉

〈원딜러랑 서폿이 그냥 흔적도 없이 날아갔어요! 전쟁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실에서 진짜 샷건의 위력이 이 정도로 뼈도 못 추스릅니다!〉

현직 육군 소령답게 살짝 밀덕스러운 느낌이 나는 해설이다.

실제로 방금 전 리픈의 원콤은 샷건의 위력에 준했다.

정말 현실에서는 좀 더 다른 느낌의 샷건이 터지고 있었다.

* *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아니, 피포식자의 먹히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여기서 진짜 3연패 대패를 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물론 이미 파탄이 난지 오래다.

클랜 자체는 여기저기 손 볼 수 없이 금이 갔다.

하지만 프로의 꿈.

접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음이다.

"유인해! 유인해! 더 안쪽으로 끌어들여!"

적어도 지금 당장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잊었다.

이 결승전의 종말.

패배를 하더라도 유의미한 발버둥을 쳐야 한다.

말화이트가 자진해 미끼가 되었다.

그리고 궁극기를 박는데까지 성공했다.

추가적인 신짜장의 진입도 매우 매끄러웠으나.

쿠웅!

CC기 연계가 채 이어지지 않았다.

금은 장식 머리띠.

모든 CC기에 대한 카운터 아이템.

그래도 보통 아주 약간은 타임로스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것처럼 쏘아진다.

깨달았을 때는 상황이 종료된 후다.

콰라랑!

점멸 대쉬 스턴에 이은 이해가 안되는 순간 폭딜.

리픈의 궁극기 숙청자의 칼이 화면의 반을 가른다.

코앞에서 샷건이 터진 듯한 어마어마한 데미지에 휩쓸린다.

원딜러 토이치와 서포터 인어가 사라져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떴을 뿐인데 두 명이 죽었다.

하지만 아직 세 명이 남았다.

필사적으로 몸부림 친다.

세 명이 가진 바 스킬을, 스펠을 쏟아붓는다.

아슬아슬 잡을 것 같았던 시간도 아주 잠시는 있었다.

─트리플 킬!

쿼드라 킬!

펜타 킬!

마무리……!

점사, 그리고 스킬 연계가 완벽하지 못했다.

상대 쇈이 나타날 시간을 주고 말았다.

한 명씩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재가 되어 사그라든다.

도망갔다면 한두 명은 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

경기를 패배하긴 했지만 서로의 유대가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는 반증이 된 걸지도 모르지만.

콰앙!

게임 내에서 나는 효과음이 아니다.

현실에서 터진 폭음.

부클랜장 이진우가 도저히 성을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아니, 시발 대체 한 대만 치면 되는데 진짜 한 대만 치면 되는데 왜 평타가 안 나가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이 게임?!"

게임 초장부터 그러했다.

미드 라인에서 리픈을 잡았다면.

진짜 딱 한 대만 더 쳐서 에어본이 띄워졌다면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아귀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다.

닿을 듯 말 듯한 순간에 들어오는 스턴, 에어본.

방금도 띄웠다면 분명 리픈을 잡고도 남았다.

"됐어."

"되긴 뭐가 돼?! 이미 게임은 졌고, 우승은 물 건너갔고, 클랜 이미지는 그냥 요단강을 건너갔는데!"

클랜장 연학의 담담한 제지에도 넘친 흥분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생각이 많다는 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부클랜장, 클랜의 참모 역할.

머리 아픈 일들을 도맡아 해온 만큼 품고 있는 고민도 깊다.

이 순간 쌓였던 한들이 터져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연학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부족했고 안일하고 나태했어. 클랜장으로서 너희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오늘도, 이전에도 그래서 곪았던 오해가 터진 거겠지."

"……무슨 오해?"

아직 결승전 마지막 세트는 진행되고 있다.

모두가 우물에서 흑백 화면으로 있기에 조금은 짬이 난다.

진실된 속 대화.

연학의 한탄으로부터 시작됐다.

서로 가졌던 조그마한 불만이 도화선이 돼버린 게 아닐까.

아차 한다고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글쎄. 난 아직 못 믿겠어."

"그게 당연한 반응이야. 우리는 오래 알고 지냈을 뿐 관계는 얕았던 걸지도 몰라."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곪아 터진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의지가 있다면 언젠가 해결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

그 계기가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설사 지더라도 한 마음 한 뜻이 돼서 반항해보자.

자신들 NEX클랜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자.

안타깝게도 그럴 여건이 안됐다.

"근데 이거 뭐야? 어디서 날아온 키보드 키지……?"

"아……."

사람이, 특히 롤유저는 흥분할 때 자신도 모르게 내리치곤 한다.

충분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나 장소가 장소.

그리고 신분이 신분이다.

한 번 깨진 관계는 분명 돌이킬 수 있다.

적어도 3사단 NEX클랜은 새로운 전환점을 가졌다.

물론 확정된 영창까지 돌이킬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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