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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39화 (39/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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촹!

미니언을 타고 앞질주.

이어서 토이치를 물고 잡아 뜯는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상상이 되고 만다.

타라랑~♬

맞이하는 적들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굴러간다.

이미 수차례 겪었기에 더더욱.

사람은 간혹 지나친 반응을 해버릴 때가 있다.

〈쏘냐궁 빠졌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 돌았어요!〉

〈낚였고, 이거 설마 빠져 나가나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분명 완벽하게 싸먹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기세에서 밀렸다.

이랠리야의 원콤이 지나치게 막강하다.

불이 뜨겁다는 걸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조심하게 된다.

화들짝 놀라 볼썽사납게 자빠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방금 전 쏘냐의 0인 스턴, 감성센도는 그로 인해 비롯됐다.

혼자면 쪽팔리겠지만 동료가 있다.

토이치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설사 물렸다고 해도 죽지 않는 상황이었다.

보다 이성적이었다면 눈치챘을지 모른다.

아무리 이랠리야가 세도 스킬이 쿨타임이면 넣을 딜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앞무빙을 밟으며 화살을 퍼붓는다.

어쩌면 이조차 이랠리야의 손바닥 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적어도 지금 경기를 보는 관중들이라면 부정하지 못한다.

촹!

촹!

빠져나간 미니언 웨이브를 타고 역질주.

3초, 찰나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전세를 뒤집는 열쇠가 된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철컹!

두 번 왕복 질주를 한 이랠리야가 드디어 가닥을 잡는다.

도망가는 쪽이 아닌 역공.

칼을 내려친 시점에 든 상상이야 말로 진짜 그려왔을 미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토이치가 찢어발겨 진다.

스펠을 쓰고, 쏘냐에게 힐을 받고.

안타깝지만 방금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랠리야는 이미 스킬 쿨타임이 돌아왔다.

쏘냐는 궁극기가 빠져 제대로 지켜줄 수 없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존재인 탈리반 3세는.

쿠! 챵!

움직임에 확신이 없다.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만약 탈리반이 모든 것을 퍼붓고 희생하는 그림이었다면 최악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랠리야가 아무리 세봤자 결국은 혼자다.

그에 반해 이쪽은 네 명.

아니, 다섯 명이다.

파아앙!

홀로 외롭게 미드를 지키고 있던 카서트.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네 명이나 끊으러 갔는데 설마 지겠어?

그 설마가 이루어지기 직전이다.

궁극기를 아끼고 있을 때가 아니다.

타겟팅으로 떨어지는 종말곡이 목숨줄을 죈다.

그럼에도.

〈쏘냐 잡혔고……, 탈리반은 탱이에요. 피흡이, 피흡이!〉

〈안되는 거 아니까 점멸 써서 내빼네요. 최악은 아니고 차악인데 이미 그런 사소한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점까지 왔습니다.〉

첫 번째 세트에서 보여줬던 철두철미한 운영.

그리고 상대의 에이스를 봉인하는 능력.

다 갖다 버린지 오래다.

프로는 커녕 팀랭크에도 써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오합지졸 만이 남았다.

아니, 한 군데 없지는 않다.

경기장의 반응이 롤챔스를 방불케 한다

의외로 응원했던 시청자들 반응은 담담하다.

-너란 남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

-레전설이 레전설 했을 뿐인데 문제라도?

-ㄹㅇ루다가 레전설 해버렸자너ㅋㅋㅋㅋㅋ

물론 그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 팬들의 반응이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어안이 벙벙하다.

3대1, 아니 사실상 5대1이나 다름없잖아?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직 정신을 차릴 때가 아니었다.

대각선의 법칙이 당연한 듯 지켜진다.

〈설상가상 바론도 나갔습니다. 뭐, 당연한 결과지만요.〉

〈살기만 했어도 카서트라서 바론 막을 수 있었거든요? 두 마리를 토끼를 잃은 게 아니라 그냥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줬습니다.〉

이랠리야는 무쌍을 찍고 억제 포탑까지 밀어버렸다.

탈리반 3세 혼자서는 막을 수가 없다.

이미 경험을 질리도록 해버리지 않았는가?

떨어졌던 체력은 미니언 피흡으로 금방 다시 채웠다.

억제 포탑을 깨고 유유히 귀환을 탄다.

그 꼬라지를 두 눈 뜨고 봐야 한다.

이미 김은준 해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3사단의 평가는 시궁창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평가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아직도 이랠리야가 그토록 치를~ 떨 정도로 싫으십니까?〉

〈저건 저 선수가 잘하는 거지 챔피언이 좋은 게 아닙니다.〉

〈이랠리야 닮았던 여친에게 정말로 호되게 차이셨나 봐요.〉

〈아니, 제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잖아요? 저 선수가 다른 거 잡았으면 이미 게임 끝났어요!〉

롤챔스였으면 아마 이 정도까지는 우기지 않지 않았을까.

선수를 띄워주는 것도 적당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군챔스.

정식 생방송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살짝 꽁트가 돼버린 감이 있다.

현장의 정보는 낱낱이 새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 이렐리가 없는데

-??? : 이렐 수가……

-이랠포비아 김은준 무릎 꿇다!!

대부분의 시청자들, 커뮤니티 유저들이 모르진 않다.

챔피언 자체가 대회 게임에서 안 좋은 면이 많다.

김은준 해설이 볼 때마다 단점을 낱낱이 꼬집고 있으니 모르던 사람도 강제로 알게 된다.

이랠리야를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장본인 앞에서 이랠리야로 캐리를 하고 있으니 꿀잼인 것을.

경기는 제대로 된 한타 한 번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끝을 맞는다.

아직 한 세트가 남아있긴 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것도 없다.

-용준좌가 용준 못해서 아쉽네

-레전설은 「과학」마저 뛰어넘는 것인가……

-ㅇㄱㅇㅈㅁㄹㄷ…… ㅂㄷㅂㄷ

장기전을 기대했던 일부 관중들, 그리고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사소한 불만이 토로된다.

물론 인생은, 경기 관람은 양보다 질.

전설적인 3연벙을 목도했던 당사자들 중에 경기가 빨리 끝나서 아쉬움을 토로했던 사람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토해낸 사람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현재 흘러가는 경기도 어떤 면에서는 공통점이 보인다.

〈레전설 선수가 콩샐러드 선수를 잡았다고 했을 때 솔직히 의아한 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관중분들, 시청자분들 전부 이해가 됐을 거에요~.〉

〈확실히 포텐이 있는 선수는 맞는 것 같습니다. 이상한 탑 챔피언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응 아니야^^

-꿀잼픽, 압도적 감사!

-근데 왜 OP챔 안 하고 저런 것만 할까?

단순히 재미를 위해 픽을 했다고 보기에는 워낙 중요도가 높은 자리다.

한 글자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심지어 결승전.

OP챔피언으로 도배를 해도 모자를 판에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해답 자체는 의외로 간단했다.

〈저도 레전설 선수에 대해 들어본 바는 있어요. 2년 전의 랭커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챔피언 폭이 여전히 고풍스러운 모양입니다.〉

-고풍스럽대ㅋㅋㅋㅋ

-메타 적응을 못했나?

-하긴 나도 롤 반 년 만에 하는데 정신 못 차리겠더라

김은준 해설이 롤에 발을 디딘 건 의외로 엄청 오래되지 않았다.

2012년 스프링 시즌이 처음.

막 스타크래프트에서 넘어와 롤이 뭔지도 모르고 해설에 임했던 시기다.

특유의 노력으로 금방 제자리를 찾았지만 스타트는 상당히 늦은 편이다.

그 이전 세대인 레전설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소문은 들어봤어도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E-스포츠계에는 상당히 빈번하다.

적어도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증명이 됐다.

〈그만큼 고정 관념이 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이랠리야를 미드로 꺼내는 발상! 하기도 힘들고, 시도할 생각은 보통 못하거든요?〉

〈고정 관념이라는 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괜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번 경우는 결과가 좋았으니 꿈보다 해몽이 우선돼도 괜찮을 것 같네요.〉

ㅇㄹ포비아 김은준 해설마저 결국 인정을 하게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증오의 불길을 꺼트리진 않았지만 강적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이어지는 마지막 세트.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니, 그래도 저건 테이커 말고는 하면 안되는 챔피언인데……..〉

* * *

-와, 구관이 명관인 이유가 있구나

-이랠 하는 것 보면 탑도 잘할 것 같다

-방장도 솔랭에서 레전설 만나봄?ㅋㅋ

김은준 해설을 저격한 두 차례의 픽은 넷상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계탑.

인터넷 개인 방송 플랫폼 파프리카TV에서 현재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보유했다.

군챔스 방송 특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꿀통통의 채팅창에 자그마한 논란이 인다.

"형님들, 저는 그런 구닥다리 고인물이 아니라 파릇파릇한 재능충, 리픈계의 신성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게임을 한 시대가 다르죠."

시대라는 단어가 쓰일 시점까지 온 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난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롤 유저들 절대 다수가 2012년 초반 이후로 게임을 접했다.

그때부터 한국에서 정식 리그가 열렸고, 사회적인 열풍이 불어 접근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 이전 세대의 게이머라니.

사실 입감이 안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력에 대해서도 오늘 이 자리에서 보지 못했으면 상상조차 가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레전설 이랠 만나면 이길 자신 있나요?

-대답 못하는 것 보니 쫄았죠?

-쫄?

-쫄통통ㅋㅋㅋ

원래 스포츠 팬들이 선수들간의 실력 비교를 좋아한다.

랭킹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E-스포츠는 더더욱 그런 감이 있다.

채팅창에서 한창 물타기가 진행되며 두 사람의 실력 비교를 읊는다.

"챌린저인 내 눈으로 봐도 잘하긴 잘해. 현 챌린저 유저들이랑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네. 근데…… 그래도 탑에서 만나면 내가 찢어발기지~."

-이걸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네ㄷㄷ

-함정 수사 미꾸라지급

-그럼 리픈은 누가 더 잘함?

-레전설도 리픈 장인이었다던데?ㅋㅋ

특히 같은 챔피언의 장인들 사이에는 유난히 신경전이 심하다.

팬들끼리는 건수만 나오면 서로 물어 뜯는 수준의 논쟁이 이루어진다.

장본인들로서는 확답하기가 곤란한 내용.

하지만 남자라면 물러서서는 안될 때가 있다.

"아니, 형님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리픈은 꿀통통이지! 저분도 내 리픈을 봤으니까 리픈 안 하고 이랠리야 꺼내는 거잖아?"

-캬, 이걸 또 이런 식으로ㄷㄷㄷㄷ

-미꾸라지도 형님 소리 하겠네

-리픈 장인으로서 자존심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콩샐러드 하면 마이!

클끼리 하면 쇈과 아모모!

프로게이머들에게는 각자의 시그니쳐 픽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개인 방송을 하는 BJ들도 시그니쳐 픽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프로들과 달리 메타에 따라 챔피언 폭을 바꿀 필요가 없어 그 BJ의 얼굴이 된다.

"나 정말 섭섭하려고 그러네? 리픈 원탑 꿀통통은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머리에 피 몰리는 게 화나려고 그런다."

-이건 진짜 빡쳤나 본데

-ㄷㄷㄷㄷ님들 무빙

-리픈은 건들면 안됐다ㅇㅈ

한 마디로 아이덴티티.

캐릭터성, 정체성이기 때문에 부정을 당하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없다.

그 이전에 인정 받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시간을 쏟아부었겠는가.

─리픈원탑꿀통통님이 별풍선 100개를 선물하였습니다!

꿀통통 원탑 리픈 ㅇㅈ? 어 ㅇㅈ

"아이고~ 리픈원탑꿀통통 성님께서 꿀통통이 바로 리픈 그 자체라고 별풍선 100개 선물을~! 형님들, 나도 화 풀 테니까 솔직히 인정할 건 하고 넘어가자."

-ㅇㅇㅇㅈ

-더러워서 인정해줌

-열혈형이 분위기 전환 해주네

누구나 자신의 노력을 인정 받기를 원하다.

하지만 세상은 종종 불합리함을 요구한다.

성과가 반드시 노력에 정비례하지 않다는 것.

그 아이덴티티를 빼앗기기 직전이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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