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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되는 경기의 향방.
앞선 세트와 비슷하긴 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던지는 그림이 안 나온다.
〈전 판에 시원하게 던진 만큼 이번 판에 시원하게 만회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용준 캐스터의 말대로 한 판 졌다고 주눅 들 거 없다.
막말로 항상 잘하기만 하면 프로게이머 했겠지.
그 프로를 지망하고 있는 만큼 안타깝기는 하다.
〈미드 차이가 좀 많이 벌어지고 있네요. 물론 레전설 선수가 너무 잘해서 그런 거기도 한데…….〉
〈미드 이랠리야가 숨겨진 OP라는 증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미드에서 두 번 연속 솔킬을 따도 호감을 따기는 그른 모양이다.
확실하게 미드 차이.
눈높이 참교육을 시키는 중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라인 사정이 안 좋은 건 전 판과 마찬가지다.
특히 봇라인은 위태위태하다.
3킬 1어시를 먹은 토이치의 존재감이 피부를 항시 따갑게 찌른다.
─살금살금…!
특유의 은신으로 들키지 않고 적에게 접근한다.
원딜러 주제에 암살이 가능.
토이치라는 챔피언이 가진 유별난 장점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궁극기 발동 후 7초간 압도적인 사거리 가진다.
배인이 설사 덤블링을 한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
3사단의 원딜러 토이치가 4킬을 먹고 미쳐 날뛰고 있다.
〈봇라인은 완전히 균형이 무너져 내렸네요.〉
〈일러면 정글러가 계속 잡혀 있어야 되고……, 그 풍파가 언제 한 번 미드에 들이닥칠 텐데요?〉
이전 판에서는 오바를 하다가 정글러가, 원딜러가 끊기며 전세가 역전됐다.
하지만 현재 게임에서는 철저한 팀 플레이.
얼핏 그렇게도 보인다.
아직 불협화음이 들려오지 않았을 뿐이다.
─레전설님이 학살 중입니다!
카서트가 또다시 꼬리를 물리며 죽는다.
앞서 두 번이나 죽었던 만큼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장면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백업.
3사단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타이밍이 늦은 건 아쉽지만 최소 본전은 찾는다.
분명 그렇게 밖에 안 보였던 상황이다.
쿠! 챵!
탈리반 3세의 깃창 돌진이 살짝 어긋났다.
이랠리야의 무빙이 좋았다.
그래봤자 큰 문제는 아니다.
〈버거킹!〉
흙벽이 일으켜지며 이랠리야를 가둔다.
CC기 덩어리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다.
그 든든함으로부터 방심이 시작됐다.
점멸로 피하며 따돌린다.
판정상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딸피고 따라가면 잡겠지.
촹!
촹!
미니언 사이를 타며 숨바꼭질.
어느새 이랠리야의 패스에 말려들었다.
떨어진 평형의 일격에 스턴을 걸리자 주위에는 온통 적 미니언들 뿐이다.
조급해진 탈리반은 두 번째 깃창까지 실수를 저지르며 더블 킬을 헌납한다.
〈이게 여기서 역관광 각이 나오나요!〉
〈확실히 이랠리야가 잘만 쓰면 방금처럼 역관광이 잘 나와요.〉
〈……그래도 저는 좋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초지일관 증오를 거둘 일 없는 김은준 해설은 둘째 치고.
게임의 향방은 몰라도 경기의 중심은 레전설로 굳어졌다.
경기장 관중들 모두 그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빠져들었다.
"대단한 친구구만. 내 어릴 적에 딱 저랬던 것 같은데."
"제가 당시를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상상이 갑니다."
조금 특별한 한 사람도 상당히 큰 흥미를 보이고 있다.
무려 이 군챔스의 메인 스폰서.
육군참모총장께서 감탄한 듯한 눈초리로 경기를 본다.
당연 게임 내용을 이해하고 보는 건 아니겠지만 대충 짐작은 하는 눈치다.
저 요상한 작은 인간이 잘 싸우면 이기는구나.
그리고 저 인간이 왕년의 자신을 닮았구나.
"복싱도 그렇고, 태권도도 그렇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적의 주먹을 피하는 게 고수지 않나?"
"와~ 태권도는 단수가 높으시다고 들었는데 복싱도 하셨습니까?"
"왕년에 내가 주먹만 쥐면~."
아무리 지위가 높고, 위엄 있으신 분들도 나이 드시면 한 번 이야기 보따리가 터졌을 때 수다쟁이가 되신다.
육군의 우두머리 육군참모총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프게임넷의 김PD가 맞장구를 치며 경청한다.
결코 귀찮은 일이 아니다.
군챔스, 그리고 해당 선수에게 흥미를 가졌구나.
이것 또한 방송 편집에 시청자들에게 재밌는 이야깃거리로 다가갈 수 있다.
"장병들의 전투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말일세 허허."
"`그래도 군문화의 개방성을 알린다는 측면에서 때때로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야. 군대가 단절된 곳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알리는 건 중요하지. 그게 방송사의 역할이고."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높은 사람에게는 비위를 잘 맞춰두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이로울 일이 생긴다.
그 대상이 아버지의 친우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그 눈밖에 나버렸을 때.
다소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저 친구…… 머리가 좀 길지 않나?"
* * *
이랠리야를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상대의 밴과 어처구니 없는 글로벌 밴.
그로 인해 챔피언 폭이 저격을 맞은 탓도 있다.
하지만 그것 좀 잘린다고 할 게 없을 정도로 내가 밑천이 없지는 않다.
'사실 없었는데 생기더라고.'
포인트가 여유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긴 하다.
아무튼 이랠리야는 내가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챔피언이다.
그래서 따로 숙련도를 올릴 필요도 없이 몸에 익은 것처럼 쏘아진다.
챵!
촹!
원거리 미니언을 향해 질주.
그 직전에 먼저 쏘아진 이기어검이 닿는다.
근거리 미니언이 한 방에 잡히며 칼날 질주의 쿨타임이 돌아온다.
그리고 또다시.
촹!
철컹!
연속해서 원거리 미니언을 타고 평형의 일격을 때려 박는다.
일직선으로 온 봇라인 로밍.
신나서 라인을 쭉쭉 밀던 토이치가 난데없는 봉변을 맞이한다.
타라랑~♬
한 줄기 선율이 내 움직임을 방해하지만 금세 떨쳐낸다.
이랠리야의 패시브는 강인함 그 자체다.
그리고 물린 시점에서 이미 죽었다.
촹!
챵! 챵!
달려들며 동시에 쏘아지는 두 자루의 이기어검.
빈약한 쏘냐의 힐과 보호막 따위 가볍게 찢어발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설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접근만 하면 아예 딜계산이 안되는 폭딜이 가능하다.
동 시간대 어떤 암살자보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다.
문제는 접근을 하는 방법.
'그건 본인의 센스와 기량으로 해결하는 거고.'
방금 전만 해도 내가 시야에 보이고, 미니언을 타는 걸 0.1초만 망설였어도 각이 안 나왔다.
반대로 보면 상대가 0.1초 못해서 잡힌 걸 수도 있다.
이런 걸 보고 한 마디로.
'담당 일진이지.'
챔피언 자체가 딱 그런 류의 챔피언이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초라하지만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9명은 전부 약자다.
삥을 뜯을 시간이다.
촹!
촹!
촹!
세 번 연속으로 미니언을 탄다.
이게 결코 단순한 겉멋, 현란한 쓰레기가 아니다.
W스킬 파천어검류는 사용시 피흡량이 두 배로 증가한다.
이어진 스턴.
철컹!
평형의 판결이 거리 조절을 실수한 쏘냐에게 닿고 만다.
간을 보는 듯한 움직임은 앞서 말한 대로 의미가 있다.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빈틈을 꿰뚫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설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포탑을 낀 쏘냐를 잡고 몰려오는 미니언 웨이브를 타고 빠져 나온다.
토이치를 잡기 위해 꽤나 체력을 소비한 상황.
피흡과 순간 기동성을 활용해 없는 각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 각도 엄청 잘하는 상대에게는 보일 텐데…… 그게 너희는 아니야.'
양학에 특화된 챔프인 이유가 있다.
물론 방심을 해서는 안된다.
이랠리야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
동실력인 상대에게 잘 안 먹힌다는 것 이외에도 정식 한타, 그리고 후반에 존재감이 줄어든다.
그 고질적인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이 가능하다.
적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준다.
찰칵!
6킬을 따고 1.5코어를 뽑은 상황이다.
어지간한 챔피언은 원콤이 난다.
그게 설사 탱커라 할지라도.
촹!
철컹!
정글을 돌던 탈리반 3세에게 날벼락.
미리 와드를 깔고 미드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칼날 질주로 작은 유령을 타며 내려 찍는다.
스턴과 함께 풀콤보가 묵직하게 박힌다.
〈버거킹!〉
궁극기로 나를 가두고 점멸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칼날 질주에 따라잡힌다.
아까 유령을 잡을 때 깃창이 빠진 걸 봤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설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방템을 둘러도 고정 데미지에는 얄짤이 없다.
빈틈이 보이는 순간 평등하게 사망한다.
굴러가는 스노우볼에 상대의 대응력이 터무니 없이 딸린다.
'그럴 수밖에 없지. 다 따로 놀고 있으니까.'
상대의 운영은 얼핏 제대로 굴러가는 듯도 보인다.
실상은 협조성이 결여돼 있다.
하는 꼬라지를 보면 움직임에 일관성이 사라졌다.
서로 상황 브리핑을 자세하게 안 하고 있다는 증거다.
방금 탈리반 3세처럼 허무하게 킬을 내준다.
이유는 뻔하다.
궁여지책으로 솔로 플레이에 중점을 뒀겠지.
'거짓된 우정 만큼 추한 게 없어.'
과거 NEX클랜을 공략했던 방법이 이제서야 좀 떠오른다.
준수한 실력과 치밀하기 그지 없는 팀워크.
하지만 클랜 내부의 알력 다툼이 은근하게 문제시 됐다.
당시 승부욕에 불탔던 나는 그 부분을 아주 살짝 찔렀다.
그랬더니 지들끼리 싸우다가 터지고 깨졌다.
이후로 클랜까지 해체가 됐다고 하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늘을 계기로 서로 마음이 맞는 영혼의 파트너를 사귈 수 있겠지. 장기적으로 보면 쟤네들한테도 잘된 일이야.'
아무튼 경기 속행된다.
이랠리야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
한타에서는 애물단지지만 소규모 교전에서는 다르다.
존재 가치, 임팩트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특히 미니언 웨이브가 있을 때는 행동 반경이 기하급수 넓어진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서로 1차 포탑이 절반 이상 밀렸다.
자연스럽게 라인전 단계가 끝났다.
본래라면 한타를 위한 운영.
그런데 상대가 쫌생이처럼 서로 눈치만 보고 합류를 안 한다.
각자 라인에 흩어져서 솔랭처럼 파밍을 한다.
이러면 내가 날뛰기가 아주 편하다.
촹!
촹!
성장을 바탕으로 솔로 스플릿에 들어간다.
우리팀이 솔직히 딸리기는 하다.
좀 많이 딸리는데 그나마 준규가 커버를 쳐주고 있다.
따까리의 주도 하에 아군 네 명이 뭉쳐서 반대쪽 탑라인을 압박한다.
그리고 나는 홀로 봇라인을 민다.
막아서는 적 탑라이너.
치지직…!
전기쥐의 감전에 의한 스턴은 상당히 거슬린다.
탈리반 3세와 조합이 되면 한타를 둘이서 파괴한다.
하지만 지금은 훌륭한 골드 공급원에 지나지 않는다.
촹!
촹!
미니언을 타고 따라가서 스턴을 걸 것도 없다.
그냥 바로 칼날 질주로 접근한다.
궁극기로 반항해오지만.
'이랠리야를 하는 이유가 뭔데.'
CC기에 대한 면역력이 만독불침 수준이다.
아테나의 신발에 강인함 패시브.
금세 떨쳐내고 따라잡아 족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순조로운 스플릿 단계에서의 솔킬이다.
그런데 묘하게 안테나를 찔러온다.
게임에서 직감이란 것은 중요하다.
하나의 확신이 얹어진다.
'스턴이 너무 빨리 풀렸어.'
상대가 바보라서 이렇게 쉬이 물려줬을까.
채 정리되기도 전에 모습을 드러낸다.
쿠! 챵!
탈리반 3세의 깃창 돌진.
부쉬에서 갑자기 나타난 탓에 피하지 못했다.
물론 이 정도 큰 만큼 CC기 맞는다고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이미 눈치챘다.
미세한 차이이긴 하나 구별 못할 것도 없다.
이랠리야의 패시브는 적이 세 명 이상일 때 최대치로 발휘된다.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은신 상태에서 몰래 기어온 적 토이치.
에어본 상태에서 내려오는 건 앞으로 0.5초다.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불합리한 해답을 찾아낸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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