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설의 재림-37화 (3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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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울 좋은 팀워크 -->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세트가 끝이 났다.

놀라웠던 경기의 내용에 대한 이슈.

그보다는 뒤처리가 한창 바쁘다.

김은준 해설이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입을 놀린다.

〈정정을 하자면……, 아링은 상황에 따라 다재다능한 면이 있습니다.〉

챔피언의 공수 교대가 자유롭다.

궁극기가 워낙 기동성이 좋다.

물론 유혹의 너프가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아마추어 리그처럼 실수가 잦을 수 있는 자리에서는 폭발적인 파괴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김은준 해설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링을 칭찬한 광경이었다.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 순간.

진용준 캐스터가 대화를 이어받는다.

〈좀 싫어하는 게 나왔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막말로 롤챔스도 아닌데!〉

〈아닙니다. 저 아링 좋아합니다.〉

〈김은준 해설이 다 좋은데~ 쓸데없이 정색이 잦아요~!〉

같은 오프게임넷 공무원들의 불만 토로는 그렇다 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어떤 이들에게는 롤챔스 이상으로 의미가 깊을 수도 있는 장소다.

그 어떤 이들이 불만을 제기해왔다.

솔직하게 억울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방금 전, 첫 세트에 대한 심판들의 피드백이 나왔습니다.〉

다소 정중해진 목소리로 진용준 캐스터가 화제를 전환한다.

방금 전 논제는 잉여 시간을 보내고자 진행을 했다.

아무리 군챔스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정식 대회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유야무야 대처해서 평판에 먹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군챔스가 세간에서 얼마나 이목을 모으고 있는지.

중계진들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

〈첫 번째 세트에서 발생한 상황, 말화이트 궁극기 막을 수 없는 돌격이 유혹에 끊겼다. 상기 내용에 대한 심판들의 판정이 내려왔습니다.〉

한국E스포츠 협회 소속 심판관들.

롤챔스 등 국내 리그에서도 활약하는 이들이다.

물론 활약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무나 한 번 떴다 하면 반드시 이슈 거리가 된다.

그도 그럴게 그들의 몇 마디에 승패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민심에 거스르는 경우 완전히 커뮤니티 반응이 쑥대밭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례가 실제로 있었던 만큼 중요한 자리인 것이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심판관들은 전부 솔로랭크 다이아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게임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눈높이가 되는 사람들이다.

심판들의 눈에 살피어진 방금 전 첫 번째 세트는.

〈이전부터 지목돼왔던 버그로 해당 게임에서만 특별히 발생된 버그로는 보기 힘들다. 판정승을 내린다고 해도 제30기계화보병사단의 손이 들리는 상황이다. 고로 경기의 결과에는 변동이 없다.〉

-결국 게임사가 잘못했네

-나도 저거 당한 적 있는데 어이 없더라

-ㄹㅇ 버그 패치 좀 빨리빨리 하지

-근데 이미 게임 비벼진 상황이긴 했어

CC기 무시일 막을 수 없는 돌격이 유혹에 끊겨버린다.

골수 롤 유저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버그다.

와~ 이게 끊기네 신기하다!

딱 거기서 끝.

저 버그가 불편할 일이 웬만하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말화이트 궁극기가 유혹에 끊기는 버그는 예전부터 지적이 돼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상에 떠오르지 않은 이유가…… 궁극기 도중에 유혹 맞을 일이 보통 없죠?〉

김은준 해설의 의문대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오늘의 사건이 없었다면 어쩌면 평생.

까지는 아니어도 2015년 4월까지 고쳐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심지어 지금 리플레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레드팀 시야에 말화이트가 안 보여요. 반응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리픈 평캔을 포함해서 게임사가 인정한 버그라는 게 있다.

롤 뿐만 아니라 여타 게임에서도 버그가 게임의 전략이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이를 테면 스타크래프트의 일꾼 겹치기, 스탑 럴커 등.

이런 건 픽스되거나 공지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사용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다.

말화이트의 궁극기를 끊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순삭을 하려고 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연이 아닌 건 확실하다.

-말화이트 궁이 반응이 되나?

-프로들은 피하지 않아?

-ㄴㄴ미리 긴장 빨고 있는 거 아니면 못 피할 걸

〈아링을 플레이한 레전설 선수가……너무 잘했기에 일어난 웃지 못할 사고였네요.〉

〈적당히 잘했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사고 아닙니까! 물론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게임사가 버그 픽스에 좀 더 힘을 기울어줘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일부 스트리머를 통해 현장의 반응, 혹은 경기가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다.

중계진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와 커뮤니티의 반응도 격렬하다.

물론 대세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후다.

-3사단 애들 좀 불쌍하다.

-어차피 인과응보 아님? 지들이 개던졌잖아

-하늘도 빡쳐서 승리를 걷어찬 것 같은데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ㅋㅋ

뿌린 만큼 거둔다.

유리했던 게임을 던지면 선수들도 속이 터지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한숨 나온다.

동정의 여지마저 없는 상황.

그것과는 별개로 이슈가 된 이상 게임사도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총평! 경기는 이대로 속행이 되겠습니다. 다만, 현재 결승전에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우려가 있기에 챔피언 아링은 잠정 글로벌 밴을 하는 것이 심판관들의 최종 판단입니다!〉

진용준 캐스터가 술렁거리는 경기장의 분위기와 다음 진행을 단숨에 정리한다.

결과적으로 김은준 해설은 정말 싱글벙글 할 일이다.

최소한 아링을 더 볼 일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푹 마음을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아니, 우연이겠죠?〉

〈이쯤 되면 30사단이 김은준 해설을 저격하는 게 아닌지~.〉

〈…….〉

김은준 해설의 아링 혐오도는 싫어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

진정 격렬히 증오하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미췬놈인데?"

3사단의 부스 안.

첫 번째 세트가 끝나고 숱한 언쟁이 오갔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고 시시비비를 가리다 15분이 흘렀다.

별다른 결론을 찾지 못한 채 두 번째 세트에 임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 두 번째 세트의 밴픽 도중.

상대의 픽이 기발하다?

"제정신으로 미드 이랠을 꺼낸 거야? 대체 무슨 의도지?"

"우리가 만만하다는 건가."

의아한 상황이지만 당황부터 할 정도로 정신머리가 없지는 않다.

대회 무대에서는 몰라도 솔로랭크에서는 이따금 있는 일이다.

나 탑밖에 못하는데 빼애애애액!

탑챔프로 미드 갈거야 빼애애애액!

지금 레전설의 경우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용할 챔피언이 바닥나면 레전설이라도 별 수 없다는 거지."

레전설의 실력에 대해서는 이가 갈릴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

NEX클랜은 당하기만 하던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해왔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그의 약점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했다.

부클랜장인 이진우는 레전설의 모든 경기와 연습 기록을 살폈다.

조사에 따르면 레전설은 다시 게임을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챔피언 폭은 옛날과 거의 다름이 없다.

물론 자드는 상당히 뜬금 없긴 했지만.

'……아마 숨겨둔 카드였겠지.'

하나쯤 새로 연습하는 챔피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어차피 이미 소비해버린 카드.

올라오는 과정에서 콩샐러드를 꺾기 위해 사용했다.

그때 아링을 했다는 사실도 정보로서 인지하고 있었다.

자드에 비해 턱없이 숙련도가 모자랐다.

그래서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그새에 연습해 숙련도를 끌어올린 걸 보면 괴물은 괴물이다.

"그래봤자 르풀랑, 리픈, 자드 다 잘랐고 카서트는 가져왔어. 아링까지 묶였으니 달리 할 수 있는 챔피언이 있겠어?"

"그렇기는 하겠네."

"탑 챔피언인 이랠리야라도 부랴부랴 꺼낸 걸 거야."

냉랭하게 가라앉아있던 부스 안의 분위기가 조금은 미동한다.

자신들끼리 싸워봤자 이로울 게 없다.

일단 게임을 이기는 게 급선무다.

물론 잊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전략을 다소 바꿨을 뿐이다.

첫 번째 세트는 다소 흥분해버려 자신 답지 않았다.

'어차피 내 주분야는 피지절컥인 플레이가 아니잖아.'

정글러로서 팀을 케어해주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돋보이지 않는다는 문제.

그 문제는 지들이 알아서 해결해준다.

보나마나 슈퍼 플레이하려고 안달이 나서 던질 것이다.

그것을 자신이 커버해주고 레전설을 잡는다.

이기기만 한다면 MVP는 당연 자신.

이성적이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진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게임에 집중했다.

다른 클랜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안정적으로 커서 후반만 가면 내 캐리각이야.'

팀의 원딜러를 맡고 있는 현욱은 사거리가 긴 하드 캐리형 원딜을 주로 한다.

테러스티나, 토이치, 꼬그모 등.

이전 판에 했던 테러스티나는 팀적으로는 좋으나 주도적인 플레이가 힘들다.

때문에 초중반 캐리력이 모두 준수하며 슈퍼 플레이에 능한 토이치를 픽했다.

생존력이 다소 아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괜찮다.

팀을 미끼로 던지면 그만이니까.

일치한 이해 관계는 어디까지나 승리 뿐이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각자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다.

3사단, NEX클랜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한 번 뭉쳤지만.

* * *

〈제가 다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롤챔스에서도 항상 말씀을 드리던 부분인데…….〉

경기가 시작하고 가장 한가하다고 할 수 있는 인베 단계다.

한족 팀이 공격적인 초반 강수를 준비했다.

그런 경우라면 모를까 적어도 현재 게임은 그렇지 않다.

〈잭트라는 딜탱 다 되는 챔피언을 놔두고 같은 계열의 하위 호환인 저 이상한 탑 챔피언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이 삼종신기를 코어템으로 가며 딜탱류의 챔피언이다.

비슷한 면이 많다 보니 비교가 자주 된다.

이랠리야는 잭트의 하위 호환.

틀린 말은 아니나 유난히 민감한 것도 사실이다.

-이랠 까는 기계 나왔죠?

-이랠포비아 김은준……

-솔랭 하다 이랠한테 영혼까지 털린 적 있다던데ㅋㅋㅋ

해설자의 역할은 단순히 경기의 내용만을 설명하는 게 아니다.

가끔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비판이 조금 과해서 문제다.

이랠리야 관련해서 여러가지 별명이 탄생했을 정도다.

그 정도가 하도 심해서 철천지원수, 증오를 하고 있다.

추측성 비화가 탄생했지만 당연히 사실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도 탑이 아니라 미드니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슬슬 레전설 선수의 의도가 의심되려고 합니다.〉

-김은준 저격ㅋㅋㅋㅋ

-김은준포비아였던 거임ㅋㅋ

-이쯤 되면 ㄹㅇ 엿 먹이려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첫 번째 세트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쉽사리 발언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심히 심기가 불편할 뿐이다.

너무 불편해서 기계가 고장이 날 정도.

이랠 까는 기계가 고장난 사이 라인전이 진행된다.

촹!

촹!

경쾌한 소리와 함께 미니언 사이를 오간다.

상대의 눈을 교란 시키는 민첩한 움직임이야 말로 이랠리야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 의도는 단순히 겉멋이 아닌 공격 타이밍을 흐리기 위함.

철컹!

원거리 미니언을 타고 진입한 이랠리야의 평형의 일격이 들어간다.

스턴과 함께 평타가 서걱!

카서트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딜교환이다.

빠져 나가는 이랠리야를 향해 딱콩이 미친 듯이 터진다.

이전 판에서 털리고, 미드 차이로 패배한 앙갚음이 남아있다.

라인전은 원거리 챔피언인 카서트가 훨씬 우위에 있는 입장인 게 사실이다.

촹!

하지만 근거리 챔피언은 상대의 방심을 꿰뚫는 한 방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한 방은 실력 차이가 날수록 더욱 날카롭게 박힌다.

뒤를 돈 이랠리야가 미니언을 타고 진격.

서걱!

서걱!

고정 데미지가 묻은 평타에 카서트의 살점이 떨어진다.

뒤늦게 탈진을 걸고 대응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입각을 준 시점에서 승패가 역력하다.

이윽고 쿨타임이 돌아온 평형의 일격에 마무리된다.

〈킬각이 정말 날카로운데요? 어째서 이랠리야는 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확실히 이 선수가 피지컬은 좋아요. 그런데 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건…… 저 뿐인가요?〉

김은준 해설마저 인정시킨 레전설의 피지컬이 빛을 발한다.

정확한 킬각, 그리고 딱콩을 피해내는 무빙.

실력은 분명 인정해줄 만하지만.

-응 님 뿐임~

-ㅋㅋㅋㅋㅋㅋㅋㅋ

-김은준한테 찍혔어!

-감히 ㅇㄹ포비아 앞에서 ㅂㄷㅂㄷ

생방송을 타는 권위 있는 대회가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농담이다.

그런 가벼운 분위기이기에 오히려 관심이 들끓는다.

기대 이상의 흥행이 현재 진행형 떡상한다.

#ㅇㄹ포비아 아리포비아, 이렐포비아 앞 자음이 모두 ㅇㄹ이라 붙여진 통합 별명

========== 작품 후기 ==========

*성깔 나쁜 히로인 좋아하시는 독자님들께는 희소식!

원래부터 예정은 있었는데 어느 타이밍에 넣을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조만간은 아니지만 다음 파트에서 예정이 잡혔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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