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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울 좋은 팀워크 -->
사람이 입대를 하면 두 가지 변화를 느낀다.
하나는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느리게 간다.
지금 11시 맞지?
……아직 9시 50분도 안됐습니다.
시밤바!
일과 시간 오지게 안 흐른다.
그리고 다른 하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막연해진다.
전역만 하면 어떻게든 잘 풀리겠지.
계급이 올라가고 부대 내에서 입지가 생길수록 행복한 상상 밖에 들지 않는다.
실상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겨우 현실을 직시했다는 느낌이다.
NEX클랜의 부클랜장 이진우는 흐르는 식은땀을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닦았다.
'……그래서였어.'
어째서 클랜장이 자신이 아닌 현욱과 동반 입대를 선택했을까.
부클랜장으로서 애들을 보살펴줘라.
허울 좋은 이유를 댔지만 군생활 내내 마음속 한 켠에서 의문이었다.
그 이유를 방금 전, 아니 그보다 앞서 깨달았다.
내심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설마가 점점 확신이 되어가고 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NEX진우(리심)님이 제압 당했습니다!
1대3의 교환이다.
봇라인 1차 포탑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팀 차원에서 엄청난 이득임은 따질 것도 없다.
하지만 분명 더 이득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장본인들도 찔리기는 한 모양이었다.
"아, 미안. 힐 쓰는 게 늦었다."
"근데 결과적으로 잘 됐어. 원딜이 더블 킬 먹었잖아~."
평소 잠잠하다고만 생각했던 클랜장 연학의 목소리가 능청스럽게 느껴진다.
단순한 착각일 리 없다.
분명 깔끔하게 전부 잡고 빠질 수 있었던 다이브다.
어째서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해버린 건지.
'내가 봇듀오보다 캐리를 하면 곤란한 게 있는 거겠지.'
그가 말하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팀 채로 전부 프로 데뷔를 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우리 NEX클랜은 흩어지지 말고 끝까지 가자!
그렇게 생각했던 게 자신 뿐이었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
레전설의 말은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어차피 게임은 이겨. 누가 더 돋보이냐의 싸움이야.'
콩샐러드라는 이례적 특수를 맞아 군챔스는 기대 이상의 흥행을 몰고 왔다.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군챔스 이야기 붐이며, 매스컴에서도 은근히 주목한다.
특히 오프게임넷에서 절찬 리에 방영 중인 특집 프로그램은 군인인 자신들도 챙겨볼 정도다.
프로 게임단 관계자들이 놓칠 리가 없다.
대체 콩샐러드가 어째서 떨어졌을까?
그를 떨어지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그 주목을 자신들이 뺏어와야 한다.
이미 반쯤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기의 향방은 7할 이상 넘어왔다고 진우는 확신했다.
그러니까 딜템 하나 둘쯤 올려도 상관이 없다는 소리다.
찰칵!
현재 메타에서 리심은 딜템을 거의 가지 않는다.
솔로랭크에서조차 정글 아이템인 도마뱀 장군의 혼령까지.
하물며 대회는 바로 와드돌 올리고 탱템 두르는 게 대세인 메타다.
당연히 자신도 그 방향으로 연습을 했다.
하지만 게임이 제법 흥해버린 상황이다.
결정적으로 탱커는 아무리 잘해봤자 병풍.
'누가 MVP를 넘겨줄 줄 알고.'
MVP 쟁탈전.
승리도 중요하지만 진짜는 그 후다.
과거 NEX클랜이 어떠한 말로로 해체가 됐었는지 진우는 잊지 않았다.
* * *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명문은 명문인 이유가 있어요.〉
경기의 구도가 정확히 예상했던 대로다.
굉장히 흡족한 얼굴인 김은준 캐스터가 말문이 트였다.
하도 과거의 이야기라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NEX클랜……, 카오스의 5대 명문 중 하나였죠? 모르는 시청자 분들도 계실 텐데 카오스는 롤 이전 세대의 AOS게임이었습니다.〉
아예 다른 게임.
설사 그렇다 해도 E-스포츠끼리는 은근히 연관성이 깊다.
이를테면 스타크래프트의 선수, 그리고 코치 등이 롤에서도 활약을 한다.
마찬가지로 카오스 또한 밀접한 관계가 성립돼있다.
그냥 대놓고 유명 롤 프로게이머 상당수가 카오스 출신이다.
특히 5대 명문이라 불렸던 클랜들은 롤 프로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 롤드컵 우승을 거머쥔 SKY T1, 그리고 KTX가 그 후신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한참은 지난 옛날이라 잔재가 남아있는 정도이긴 한데…….〉
SKY T1팀의 왕린, 후만두,꼬치…….
KTX팀의 코돈빈, 마파두부, 듀…….
카오스의 고수들이 롤로 이적해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뽐내고 있다.
그런 만큼 현재도 카오스의 고수들은 대우를 받는다.
영입을 해서 자체적으로 키우는 팀까지 있을 정도.
5대 명문이라면 당연히 상당한 이름값을 자랑한다.
〈카오스 얘기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왔다는 사실은 확실히 느껴지죠? 다이브 플레이에서부터 집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역시 명문 클랜 답게 라인전이면 라인전, 운영이면 운영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용준 캐스터, 강민수 소령도 한 마디 거든다.
구태여 과거 경력을 몰라도 눈에 보인다.
팀 게임에 대한 숙련도가 높구나.
준수한 라인전 기량과 협동심 있는 팀 플레이가 돋보인다.
현재 게임 시간 16분, 스코어는 5대 11.
프로 레벨에서 이만한 격차면 사실상 게임이 끝난 거나 다름없다.
물론 프로 무대가 아닌 만큼 조금 더 관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변수가 있기는 할지.
김은준 해설이 딱 잘라 단언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경기의 데이터를 봤을 때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 굳혀질 가능성이 80%입니다.〉
강팀의 입장에서 승리를 향한 지름길을 제시한다.
그가 가진 해설에 대한 철학이다.
물론 약팀도 역전의 여지가 있기는 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기대를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콩샐러드를 잡은 선수니 무언가 슈퍼 플레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아링은 한계가 명확한 챔피언입니다.〉
챔피언 자체가 대인 암살에 최적화돼있다.
한타에서 잘해봤자 최대치가 원딜 암살.
설사 자르고 한타를 해도 3사단이 유리하다.
〈하다못해 구리가스, 코리아나 이런 거면 궁극기 대박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밴픽에 근거가 없었다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김은준 해설 앞에서 아링을 한 잘못 같네요~.〉
아링만 보면 히스테릭이 강해지는 김은준 해설이다.
진용준 캐스터가 그만 좀 하라고 자른다.
원래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해설자로서 경기를 예측한다.
그런데 엇나가면 많이 뻘쭘해진다.
다행히도 예상한 그대로의 경기가 펼쳐지던 와중.
하아!
리심의 음파가 탈리반 3세에게 적중했다.
유리한 만큼 달려들어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팀 게임에서는 확신이 없는 이상 사리는 게 정석인데.
이~쿠!
기어코 들어가 풀콤보를 박아 넣는다.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데미지.
탈리반 3세는 점멸과 궁극기가 빠지고 도주한다.
하지만 한 발 앞서 레전설의 아링이 백업을 왔다.
〈점멸로 유혹 피하면 궁극기 하나 분의 이득을 봤다고 보는 게…….〉
김은준 해설의 말이 정석이긴 하나 가끔 아다리가 안 맞을 때가 있다.
유혹을 맞지 않았음에도 사르르르.
점화에 의해 타들어 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설님이 학살 중입니다!
아링은 너프 이후 유혹을 맞히지 못하면 데미지가 격감한다.
탱커는 커녕 딜러를 녹이는 것도 벅차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이유.
〈아니……, 지금 보니까 리심이 딜템을 두 개나 올렸네요?〉
잠깐 할 말을 잃었던 김은준 해설이 이유를 찾아냈다.
리심이 무려 딜템을 올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정글 아이템인 도마뱀 장군의 혼령에 야성의 몽둥이로 방어구 관통력까지 챙겼다.
〈탈리반한테 딜이 푹푹 박힌 이유가 있었네요! 근데 팀에 딜이 충분한 상황인데 왜…….〉
〈딜템을 선택한 게 스노우볼로 작용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근거 있는 플레이였고 여전히 주도권 가지고 있어요.〉
김은준 해설의 말대로 여전히 유리한 게 맞다.
추가적인 손해가 나가는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라인전을 압박하고 있다.
아링이 하드 캐리가 힘든 이유.
궁극기가 빠지면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
다른 라인은 이미 기울어진 마당이라 시간만 흘러도 3사단은 승기를 굳힌다.
분명 그랬어야 할 게임이다.
* * *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고리타분한 옛날 속담이지만 나름 의미는 있다.
팀 게임인 롤에는 늘 손해 보는 포지션이 존재한다.
으어어억-! 내가 솔킬을 당한 것은 정글 탓이다!
이딴 소리 안 듣기 위해 정글은 개같이 굴러야 한다.
개같이 굴러도 결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딜러다.
솔로랭크는 그나마 덜하나 대회 게임.
팀 게임에서는 결국 종지부를 찍는 건 딜러의 역할이다.
당연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샤락!
아링이라는 챔피언은 세 가지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
하나는 3단 질주에 의한 순간 기동성.
첫 번째 질주로 따라잡는다.
그리고 두 번째 질주로 각을 좁힌다.
슈웅~!
쏘아진 유혹을 리심은 피하지 못한다.
이미 점멸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죽음의 불타는 손길까지 더하자 사르르르르.
─적을 처치했습니다!
레전설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아링의 딜 기대치가 너프를 먹었다고는 해도 그건 유혹을 못 맞혔을 때의 이야기다.
이렇게 맞힐 수만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통 이런 각이 잘 나오지는 않지만.
'상대 쪽에서 달려와 주잖아?'
쓸데없이 아군 정글로 들어와 무리하다가 죽어줬다.
이런 무리, 할 이유도 없고 원래라면 리스크도 낮다.
탱템을 덕지덕지 두르면 아링으로는 원콤이 안 난다.
그런데 리심이 딜템을 뽑았다.
게다가 정글 깊숙이 들어와줬다.
저런 오바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라인전 단계가 끝나면 정글러는 존재감이 묻히거든.'
탱템만 두르고 버스를 탄다.
승리만이 목적이라면 최선의 선택지다.
하지만 결국 버스는 버스.
결코 MVP, 돋보이는 입장이 될 수 없다.
리심은 캐리할 욕심으로 딜템을 올렸고 최악의 선택지로 작용했다.
물론 이는 리심이 못해서가 아니다.
내가 전부 그려놓은 판이다.
후웅!
물방울을 던지자 미니언 웨이브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아링은 암살자 챔피언 주제에 라인 클리어 능력이 수준급이다.
미드에서 주도권을 잡고 상대가 틈을 보이는 순간 아까처럼 잡아먹는다.
그러기를 두 번째.
'슬슬 상대도 정신을 차리겠지.'
두 번이나 잘리면 분위기 파악을 할 때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승리가 걱정된다.
유리하다는 확신이 사라진 이상 리심도 욕심을 내기 힘들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참 와 닿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이윽고 괜한 기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상대가 탑라인 1차 포탑을 압박해온다.
리심이 허무하게 두 번 잘렸음에도 상대는 여전히 유리하다.
킬 스코어가 확실하게 앞서나가고 있다.
글로벌 골드 격차도 꽤나 벌어진 상태.
무엇보다 적 원딜 테러스티나가 워낙 성장을 잘했다.
게임 시간 20분에 신발을 포함한 1.5코어가 갖춰졌다.
유리함을 살려 기세를 몰아붙이는 건 지극히 타당한 선택이다.
퉁!
퉁!
테러스티나의 대포가 불길을 뿜을 때마다 미니언이 풍선처럼 터져나간다.
아이템은 물론 레벨링까지 무지막지하게 성장했다.
제30기계화보병사단 기갑수색대대 2중대 2소대 소속 정상호 상병의 네네톤이 잠깐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악어 가죽이 폐품이 돼버렸다.
"와, 미친 대체 얼마나 키운 거야!"
"테러스티나가 배인 카운터라 그래."
"니가 후픽 아니었어?"
"어, 그러네."
정겨운 바보들의 대화는 둘째 치고 지금 상황이 급박하다.
기세가 등등한 적들이 라인을 쭉쭉 밀며 들어온다.
정녕 포탑을 내주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적팀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동시에 신이 난 테러스티나가 앞점프로 네네톤을 퉁! 퉁! 퉁!
거리 조절에 실패한 네네톤이 위태위태하다.
결국 궁극기 콤보가 터지며 퍼엉!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체력 관리가 안된 상태에서 샌드백처럼 맞다 죽어버렸다.
리심이 실수를 하자 아군도 바보 같은 실수를 해준다.
돌고 도는 실수 속에 정다운 사회.
휘웅-!
주었으면 이제는 받아먹을 차례다.
어째서 하고 많은 챔피언 중 아링을 했을까?
받아먹기에 최적화된 스킬 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슈웅~!
네네톤을 잡고 완전히 기세를 타버렸다.
테러스티나의 겁도 없는 앞점프.
기세를 잃고 살랑살랑 떨어진다.
쏘아진 유혹-점멸에 격추되어 짓밟힌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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