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 허울 좋은 팀워크 -->
"아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뭐가 또."
군챔스, 군인들의 대회이기에 더더욱 신경을 쓴다.
특히 민간인 공개가 될 때는 와, 진짜 요즘 군대 꿀 빠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시설 등이 호화로워진다.
그만큼 무대 위의 부스도 나름 본격적이다.
그 부스 안에 들어오자마자 한 소리 들었다.
준규가 정신을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으쌰으쌰 잘 해나가려는 애들한테 꼰대짓 좀 하지 마요."
"아, 뭐가 꼰대짓이야. 나이도 다 비슷해 보이던데."
"내가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형은 그냥 존재 자체가 꼰대에요 최꼰대!"
유리야가 요즘 잠잠하니까 이 자식이 깝치네.
하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좀 쓸데없이 주접을 떤 것도 사실이다.
'지들이 망하나, 안 망하나 내 알 바는 아니지.'
죽을 쑤든 떡을 찌든 지들의 인생이다.
참견할 바는 아니나 한 가지.
내 인생과 관련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니가 점수를 못 올리는 거야."
"한 마디 하니까 삐져가지고 바로 또 한 소리 하네. 그래서 형이 꼰대 소리 듣는 거라니까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 참 진짜 순진해 빠져서 어디 가서 아다는 떼겠냐?"
설명을 하려면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건 설명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와 닿지가 않는다.
'인생은 이론이 아니야.'
마찬가지로 롤도 이론만 가지고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깨닫고, 깨닫지 않고의 차이는 극명.
바둑, 체스 등처럼 사람이 하는 게임은 결국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본래라면 틈이 없어야 할 상황에서 실수가 빗발친다.
나는 그저 등을 조금 밀어줬을 뿐이다.
그 밑이 낭떠러지인 건 내 책임이 아니다.
"아! 리심 죽이라니까 아 진짜 나 안 해."
"내가 꼰대면 니는 애새끼다."
"아니, 상대가 대놓고 클랜인데 리심 뺏기면 스노우볼 막기 힘들다고 말 했어요, 안 했어요!?"
결승전 첫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됐다.
시작하자마자 귀 따가운 잔소리를 늘여놓는다.
니가 생각하는 걸 내가 과연 모를까?
다 알고서 저지른 짓이다.
"그리고 그놈의 아링 좀 하지 말라니까 진짜."
"아~~~ 존나 시끄럽네! 내가 알아서 캐리 한다고요 아저씨."
역시 내 제자라 그런지 인성 하나는 물려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배울 길이 멀다.
진정한 롤 유저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소양.
'바로 정치지.'
기호 1번 입후보 하는 순간 게임의 목적이 바뀌게 된다.
물론 솔랭이 아닌 팀 게임, 그것도 대회 게임은 다르다.
팀원들이 협력해 승리를 목표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글쎄?'
그런데 그 협력.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첫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 * *
롤챔스는 아니어도 군챔스.
캐스터는 물론 해설가도 있다.
밴픽에 대한 평은 당연히 이루어진다.
하지만 본격적인 평과는 거리가 멀다.
프로 리그도 아닌데 정색하고 따지면 오히려 흥이 깨진다.
그럼에도 김은준 해설이 어금니를 꽉 깨물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단언컨대 최악의 밴픽입니다.〉
밴픽 관련해서는 전직 프로게이머였던 클끼리보다 윗줄로 평가 받는 김은준 해설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분명 문제가 있겠지.
잠잠히 듣고 있던 진용준 캐스터가 코웃음을 친다.
〈공식석상에서 물어보기 뭐했던 부분인데…… 혹시 전 여친이 아링을 닮았었나요?〉
〈안 닮았습니다. 그리고 저 아링 그렇게 싫어하지 않습니다.〉
롤챔스를 즐겨보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유독 아링에 대한 격한 혐오를 보이는 김은준 해설.
사실 그와 아링의 사이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진용준 캐스터가 한 가지 가설을 세워봤으나 틀려버린 모양이다.
〈오해가 없도록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패치 버전에서 아링이 너프를 먹었습니다. 챌린저 경기, 스크림 등에 데이터가 없어요. 즉, 아무도 안 쓴다는 이야기죠!〉
물론 김은준 해설의 말도 맞다.
지난 롤드컵에서 너무 나대버린 아링.
코어 아이템인 죽음의 불타는 손길만 나오면 CC기인 유혹을 못 맞혀도 확정 암살이 가능했다.
프로 대회에서 너무 각광 받다 보니 결국 너프.
자체 딜링이 심각할 정도로 깎였다.
유혹을 못 맞히면 암살이 안된다.
다른 1티어 미드라이너가 살아있음에도 굳이 잡을 만한 챔피언이 아니라는 소리다.
확실히 정론이라면 정론이다.
그럼에도 의혹은 꺼지지 않는다.
〈근데 제가 보기엔 하향과는 별개로 싫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원래 진심으로 사랑했던 애인은 1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런 구미호 같은 여자친구 사귄 적 없다고요. 저 진짜로 화낼 겁니다?〉
공식석상이라면 도가 지나친 농담이지만 군챔스.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지 않는 만큼 사적인 개드립도 가능하다.
그런 상사의 장난에 굉장히 울컥하고 있는 장본인이 말을 잇는다.
〈결정적으로 리심을 빼앗겼어요. 지금 프로 레벨에서 리심은 반드시 밴하거나 가져와야 하는 정글 탑티어거든요? 밴픽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가 안되어 있다는 소리입니다.〉
〈보직이 게임병이 아닌 이상 보통 연구는 못하죠?〉
진지를 빨아야 하는 프로 대회에서 이런 실수가 나온다면 아~ 이건 아닌데요?
먹고 살기 편하냐고 타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군챔스다.
프로는 커녕 아마추어도 아닌 군인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알아야 한다.
알지 않으면 이 자리에 올라올 자격이 없다.
-ㄹㅇ 롤알못이네
-콩샐러드 잡았다더니 뽀록이었어?
-밴픽에서 이미 밑천 드러났죠?ㅋㅋ
-아링포비아 김은준 앞에서 아링을 꺼내는 대실수를……
결승전의 자리에 그냥 올라온 게 아니다.
콩샐러드를 잡고 올라왔다.
원래 게임 대회의 결승전이 다 그렇다.
올라오는 과정에서 너무 유명한 선수를 잡았다?
해당 선수 팬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너 언제 어느 때 못하나 두고 보자.
그 순간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와버렸으니 난리가 날 만하다.
벌써부터 타겟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다른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정말 레전설 퇴물됐나?
-흠ㅋㅋ 나는 역배당에 걸어본다
-레전설이면 모른다 레전설이면!
프로에게 프로들만의 세계가 있듯, 팬들에게는 또 팬들만의 세계가 있다.
콩진호면 반드시 준우승 해주겠지!
코돈빈이면 신의 강타를 보여주겠지!
해당 선수에게 특별히 가지는 기대.
과거 레전설의 팬들에겐 혹시 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정말로 실현될지, 경기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된다.
* * *
아링이 너프를 좀 많이 먹긴 했다.
심지어 챔피언 숙련도도 많이 딸린다.
사실인 건 인정하나 이중에 후자는 해결이 됐다.
'포인트 여유가 생긴 덕분에.'
지난 예선전 준결승전, 콩샐러드를 상대했던 경기.
그 보상으로 포인트를 아주 왕창 얻었다.
3천 포인트 이상을 얻은 만큼 투자가 아깝지 않다.
아링의 숙련도를 최대치로 당겼다.
그럼에도 애매한 게 사실이다.
더 좋은 챔피언이 얼마나 많은데.
'맞아. 근데 챔피언마다 역할이 다 다르거든.'
챔피언들이 Ctrl+C, Ctrl+V면 챔피언 디자이너들 월급 다 깎아버려야지.
같은 암살자 챔피언들도 장단점이 확연하게 나눠져 있다.
내가 아링을 고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후웅!
Q스킬 미혹의 물방울이 미니언을 훑으며 돌아온다.
전체적으로 스킬 데미지가 줄은 아링이다.
하지만 미혹의 물방울만은 그대로다.
'라인 클리어는 문제가 없다는 소리지.'
다전제, 5전 3선승제의 첫 번째 세트다.
이번 세트는 시야를 조금 널게 볼 예정이다.
상대가 느긋이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아군이 당했습니다!
봇라인의 상황이 썩 안 좋아 보인다.
정비 시간 할애해서라도 연습을 하라고 했는데.
그 연습 시간을 또 배인에 쏟아부었는지 자신이 있다며 픽을 했다.
"아, 리심이 뒤에서 들어오네…… 이러면 당할 수밖에 없지."
"선고 제대로 썼으면 뺄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쉿!"
굳이 증거 은폐까지 안 해도 다 보고 있었다.
우리 자랑스러운 윤병철 병장.
다음부터 신병 앞에서 구르기 시범 보일 때 절대 후임시키지 마라.
구르기 각도가 정직해서 랄라의 보라색 창을 맞았을 뿐더러 와드 방호를 타고 온 리심을 밀쳐내는 것도 늦었다.
그냥 한 마디로 샌드백처럼 맞다가 뒤졌다.
변명이고 나발이고 사이즈도 안 나온다.
"내가 이래서 리심 밴 하자고 한 거잖아."
"그래, 그랬었지."
"아니, 리심이 라인에서 킬 주워 먹으면 주도권 주구장창 밀린다고 아, 진짜!"
준규가 어지간히 불만이 많은가 보다.
아까부터 자꾸 아니시에이팅을 걸어대고 난리다.
롤에는 암묵적인 룰이 하나 있는데 채팅이 '아니' 로 시작하는 순간 선전포고다.
'허허, 황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알꼬.'
모를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황새의 마음도 이해는 한다.
현재 게임 시간 11분.
전체적인 경기의 구도가 답답하게 흘러간다.
이쿠, 이쿠!
리심이 아군 정글 안쪽으로 들어와 와드를 박는다.
심지어 핑크 와드로 아군 와드까지 지운다.
시야가 점점 장악 당할수록 힘들어진다.
특히 아군 정글러의 동선이 제한된다.
제아무리 잘하는 정글러도 위치가 들키면 일자리를 잃는다.
준규의 징징징이 그런 연유겠지만.
샤락!
황천 질주로 한 번 쏘아진다.
노리는 대상은 당연히 적 미드라이너 카서트.
리심의 위치를 파악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딱콩!
카서트는 대놓고 노리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많다.
주력 스킬인 딱콩이 초 단위로 연사된다.
탈진까지 걸면 정면 싸움이 상당하다.
본래라면 스펠을 빼는 데서 만족하는 게 맞다.
'저런 허접한 카서트의 딱콩에 맞을 리가 없어서 문제지.'
논타겟 스킬의 성질상 탑 클래스의 장인과 그 이하의 차이가 극명한 챔피언이다.
전성기 시절 내 상대로 카서트 하는 정신나간 인간은 세 명도 안됐다.
물론 한참은 옛날인 전성기 시절의 이야기.
포인트가 차고 넘치는 마당이라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터지는 딱콩들을 빨간 보도블록 느낌으로 피한다.
탈진으로 데미지를 감소시켜 봤자.
후웅!
돌아오는 아링의 구슬은 고정 데미지다.
그리고 점화 또한 고정 데미지.
뒤늦게 맞딜을 포기하고 점멸로 도망가는 카서트를 향해 체크메이트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정확하게 유혹이 들어가며 마무리한다.
사망한 카서트가 유령이 되어 종말곡을 외운다.
피할 수 없는 확정 타겟의 5인 궁극기.
파아앙!
떨어졌을 때는 이미 체력을 채워낸 후다.
물방울로 미니언을 앞뒤로 후웅!
반피에 가깝게 회복이 된다.
'어딜 감히 동귀어진을 노리려고.'
간발의 차이라기 보다는 계산된 결과다.
이렇듯 미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상대는 미드 근처에서 더 이상 세력권을 넓히지 못한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미드에서는 그렇다는 소리다.
방금 전, 카서트의 궁극기가 영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꿈보다는 해몽이다.
적 리심이 봇라인에 다이브를 시도했다.
─적 더블 킬!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NEX진우(리심)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추가 골드 : +432G)
아군 정글까지 포함한 3대3의 교전.
하지만 이미 열세에 몰린 상황이다.
3대1의 안타까운 킬 교환으로 그쳤다.
"타워는…… 무조건 나가겠고 용은 지킬 수 있으려나."
"걱정 마. 내가 있는데."
"걱정은 무슨 형은 말년이라 우승 못해도 상관 없겠지만 나는 포상 따야 된다고요!"
분대장이면 분대장 포상도 나오고 소대장도 잘 챙겨줄 텐데 왜 이렇게 포상에 목숨을 걸었냐.
그리고 우승에 목 마른 건 너 뿐만이 아니다.
'나도 내 모발에 목숨 걸었어 이 자식아.'
행보관의 꼬장을 피하기 위해 나도 필사적이다.
결코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다.
슬슬 기다리던 결과가 나올 때가 됐다.
가장 먼저 이상 행동을 보인 건 리심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