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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참모총장배…… -->
살다 보면 내심 기대할 때가 있다.
동시에 에이, 설마.
그리고 제발.
상상이 맞아 떨어지지 않기를 하늘에 빈다.
그러면서도 왠지 그랬으면.
인간이란 참 이중적인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선배는 안 므거요?"
"……너 혼자 마이 무라."
유리야가 또다시 눈앞에 아른거린다.
안타깝게도 허상이 아닌 진짜다.
이렇게 볼따구를 쭉 늘어뜨리면.
"흐으아앙 아파여……."
"햄스터 볼따구 마냥 꾸역꾸역 쳐넣길래."
"저 원래 맛있는 건 입안 가득 넣어야 행복해요."
먹고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며 되도 는 헛소리를 해온다.
먹는 방법 가지고는 뭐라 안 하겠는데 행복은 뭐야.
'거기서 행복이 대체 왜 나와.'
하지만 정말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긴 했다.
사흘 전 간장 게장 정식을 먹었던 식당 안.
이번에는 고등어 구이 정식과 공용으로 순두부 찌개를 시켰다.
고등어 구이도 무척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냥 안 먹고 살코기를 모으더니 기어코 입안 가득 쳐넣었다.
나도 먹고 있는 만큼 확실히 인정은 한다.
'맛이 있기는 해.'
이 식당 처음에는 우연히 들렀는데 확실히 맛집이긴 하다.
대신 가격대가 있지만 어차피 내가 내는 것도 아니다.
오전 일과를 끝내고 중식 시간.
유리야가 또 찾아와 버렸다.
"대학 생활 매우 한가한가 보다."
"아니요. 저 엄청 바빠요. 동아리 활동도 하고, 방송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만 말해. 내 머리가 아프다."
대학을 놀러 다니는 기지배라는 사실을 본인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어떻게 한국대에 들어왔는지 날마다 신기하다.
와구와구 먹는데 여념이 없다.
"볼따구에 넣어 놨다가 나중에 되새김질 해서 먹는 거 아니지?"
"……저 여잔데."
"어쩌라고. 난 남자다."
여자면 좀 덜 복스럽게 먹던가.
식습관이 정말 햄스터가 따로 없다.
햄스터는 먹이를 주면 주는 대로 볼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먹이 창고로 이용하는 곳으로 향해 뱉어낸 후 두고두고 챙겨 먹는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는 볼주머니에 든 것들을 순간적으로 부왘 토해내기도 하는데.
"무, 무!"
"옛다, 물."
"고마워요. 숨 막혀 죽을 뻔했어요."
"토하지만 마라. 니 토하는 순간 내 군생활 꼬이니까."
"사레들린 거에요오!"
어지간히 억울했는지 빼액! 소리를 지른다.
소리도 지르지 마라!
최근 완전히 요주의 인물이 다됐다.
'말년이라 간 떨린다고 진짜.'
어찌 된 영문인지 간부들이 한 번씩 인사하고 간다.
자네가 E-스포츠 리그 결승전 진출자인가?
병장 최성훈!
허허, 잘 부탁하네 부디.
왜 부담을 주고 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번 대회에 내가 모르는 숨겨진 비밀이 있나?
심지어 별 달린 분까지 한 번 왔다 가셨다.
두 개 짜리지만.
'우리 30사단 사단장님도 두 개인데 두 개만 해도 엄청난 거긴 하지.'
이곳 계룡대가 워낙 용담호혈이라 잠깐 잊고 있었다.
그리고 대회의 스폰서가 무려 육군참모총장!
빛나는 4성의 장군님이시다.
그런 대단한 대회 출전해서 결승전까지 올랐다.
경기는 오늘 오후 4시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앞선 경기가 끝난 이후다.
"콩샐러드 경기 보려고 정말 또 먼 걸음 행창했구나."
"전 그냥 선배 응원하려고……."
"그럼 3, 4위전은 안 봐도 되겠네?"
"아뇨, 그러니까 그건 그게 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난리가 났다.
역시 갈구는 맛이 찰진 녀석이다.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은 아닌데.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되곤 한다.
"그래, 봐. 놀러 왔는데 재밌게 봐야지.
"저 선배 응원하려고 온 거에요. 정말이에요."
"알았어요~. 2절은 하지 마라."
"넵!"
갈굼의 미학.
내가 이래 봬도 완급 조절을 잘 하는 편이다.
* * *
2013 지상군 페스티벌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표지판 그 아래에는 이렇게 써있다.
든든한 육군, 국민과 함께, 흐뭇한 축제!
'제발 좀 흐뭇한 축제가 되길 바란다 리얼루다가.'
벼르고 벼렀던 순간이 찾아왔다.
내 군생활 최대의 보람을 수확할 시간이다.
받아 봤자 의미도 없는 5박 6일 휴가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선배, 침 떨어져요."
"닦아주던가."
"……조금 역겨우려고 그래요."
선수가 아닌 관중의 신분으로 관람석에 앉아있다.
현재 중식 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과.
군대식 표현이 익숙해졌지만 일이 아닌 일과다.
'헬로우비너스께서 안 오시는 게 아지가 정말 전전긍긍 했는데.'
눈앞에 강림하셨다.
저 멀리 25m앞, 영점 사격에 거리에 계시지만 분명한 실물이다.
감동의 눈물이 새어 나오려고 한다.
"와, 기럭지 봐. 미쳤다. 저게 사람이냐?"
"……나도 여잔데."
"어쩌라고. 너는 여잔데 저 분들은 여신이잖아."
어디 감히 버르장머리 없게 비교를 하려 그래.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라고.
꿈만과도 같았던 여신들의 무대.
헬로우비너스와 걸즈데이의 콘서트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콘서트는 끝났다, 이제 더는 없다,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중식 시간과 중식 시간 이전에는 태권도도 하고, 합기도도 하고, 격파쇼도 했다는데 어차피 관심 없다.
그리고 이 다음 차례는 다름이 아니다.
사실 순서로 따지면 메인 이벤트.
〈현역 군장병 여러분,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11회 지상군 페스티벌, 대한민국 최고의 로드 오브 로드 사단을 뽑기 위한 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스터의 우렁찬 외침은 왠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그렇다.
바로 그분이다.
롤챔스를 켜면 항상 보이는 그분.
"오늘 경기 기대해도 되겠는데?"
"그렇겠지! 용준은 과학이니까."
"……."
나는 원래라면 민간인석에 앉으면 안된다.
소대장의 방임주의로 인해 유리야와 함께 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민간인인 유리야의 옆에는 같은 민간인들이 앉아있다.
옆자리의 관람객들이 쑥덕쑥덕 떠드는 말을 이해했다.
오프게임넷의 진용준 캐스터.
'용준하다' 라는 신조어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다.
'그런데 아마 그렇게는 안될 걸?'
경기가 늘어질 때 쓰는 일종의 동사다.
하지만 그 경기가 늘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아무리 나한테 졌다고는 하나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콩샐러드가 나보다 못하는 거지, 일반인들 상대로 하면 그냥 풀양학할 걸?"
"……."
"뭐야, 그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초리는?"
유리야가 옆에서 터트려주고 싶은 눈망울로 쳐다본다.
그리고 되도않는 소리를 물어본다.
기억력에 빵꾸가 나셨나.
"선배는 어떻게 프로게이머를 이겼어요?"
"경기 본 거 아니었냐?"
"당연히 질 줄 알고 중간에 뭐 먹고 왔어요. 배고파서."
"뒤질래 진짜?"
"아뇨, 저는 선배가 지는 게 너무 보기 괴로워서.……"
그런 녀석이 콩샐러드 사인을 받고 난리가 났었냐?
마음 같아서는 마빡을 확 움켜 쥐고 싶다.
안타깝게도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내 군생활의 안녕을 위해 참자…….'
주위 사람도 사람이지만 카메라.
스포츠, E스포츠 종목을 불문하고 카메라들은 이상하다.
경기장에 여자만 있으면 아주 눈이 돌아간다.
남녀차별이 진짜 개오진다.
잘못해서 카메라가 이쪽을 비치기라도 하는 순간 진짜로 큰일 난다.
나는 악력남, 유리야는 마빡녀로 이름이 널리 퍼질 테지.
그리고 진지하게 타박 주려고 한 소리도 아니다.
'일반인 시선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TV에 나오면 다 잘하는 줄 안다.
하지만 게이머의 세계에서는 실력과 인지도가 항상 정비례하진 않는다.
특히 나 같은 예외 중의 예외.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의 승리자를 목표하는 군인에게는.
"그야 내가 더 잘하니까."
"정말요? 뽀록 아니에요?"
"하하, 우리 유리야가 드디어 간덩이가 배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차마 때릴 수는 없지만 안마를 해줄 수는 있다는 걸 모르나 보다.
살며시 오른팔을 어깨 위로 두른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유리야의 어깨.
"아…파……요오……."
"아프라고 하는 거야. 까불지 마라."
건장한 성인 남자인 후임들한테 해도 아파 죽으려고 하는데 유리야는 마음만 먹으면 확 찌부러뜨릴 수도 있다.
작작 까부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당장 내 신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연인들의 뜨거운 애정 표현 만큼! 경기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남자친구 분이 군인이라 정말 듬직하시겠어요?〉
되도않는 개소리의 당사자가 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샌가 카메라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눈치챘는지 유리야가 얼굴을 가리고 있다.
"웃어."
"네?"
"분위기 좋은 척해. 내 군생활을 위해."
"어머나……."
그렇게 잠깐 화목한 커플 코스프레를 해야 했다.
이내 주인공들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카메라도 무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보다 앞서 경기를 치를 선수들.
〈결승전 보다 앞서! 3,4위전부터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제9보병사단 백마 부대의 충성심 넘치는 장병들!〉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은근히 애국심, 군부심을 자극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군인이 나조차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인데.
'하긴 연예인으로 따지면 행사 자리에 온 거니까.'
갑작스런 카메라의 난입쯤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앞으로 두고두고 얼굴을 마주칠 사이가 아닌가?
프로게이머로 데뷔를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이미 그런 사람이 있었다.
* * *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거의 알파고급 어그로성 제목 선정이나 다름이 없다.
대한민국 20대 남자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 단어를 합쳐놨다.
군대, 롤, 대회.
실제로 치러지고 있는 대회라니?
어찌 관심이 안 갈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휘발유까지 철철 뿌려진 마당이다.
─(사진有)21살, 겁 없는 남대생의 군챔스 방문기.jpg
혹시 나 혼자 왔으면 어떡하지…
걱정 많이 했는데 사람 엄청 많아요
늦게 오신 분들은 좌석 없어서 고생하실 듯!
└와, 진짜 많이 갔나 보네
└거의 롤챔스급 분위기ㄷㄷ
└단언컨대 절반은 잉벤러다ㅇㅈ?
글쓴이-ㅇㅈㅇㅈ 옆자리에 앉은 형들 잉벤러ㅋㅋㅋ
로드 오브 로드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들.
한 번 화제가 되자 한 마디로 계기가 된다.
관심이 가기는 하지만 저 멀리까지 갈 이유가 있나?
그 이유가 제공된 셈이다.
콩샐러드, 근황이 궁금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의 경기를 다시 한 번 볼 수가 있다.
현장 반응이 속속들이 올라온다.
─경기장 오면 염장인지 염병인지 떠는 커플들 꼭 있더라
무슨 군인이 지 애인이랑 노가리 까고 있네
군 규율 위반으로 신고 못하나?
이런 게 생방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후……
└작성자 모쏠 ㅇㅈ?
└군기강 어쩌고로 신고하면 되긴 될 텐데
└여자 이쁘냐?
글쓴이-좀 많이
└부들부들 떠는 진동이 여기까지 울리네ㅋㅋㅋ
입장료를 받는 대회가 아닌 만큼 정확한 현장의 관중 수는 추산할 수 없다.
하지만 어림 잡아 살펴 봐도 수백 명.
실시간으로 정보가 올라온다.
가징 기대했던 정보가.
─콩샐러드 떴다! 현장 직찍.avi
〈아니, 이게 누굽니까?! 콩샐러드 선수 왜 여기 계세요?〉
〈저도 군챔스에서 진용준 캐스터님을 뵐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출처 : BJ꿀통통 생방
└어색한 재회ㄷㄷ
└콩샐러드 어디 갔나 했더니 롤챔스에서 군챔스로 이적했네
└진짜였구나. 그런데 이등병잼ㅋ
└아직 군생활 시작도 안 했을 때네
국민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보유한 대한민국.
현장의 영상이 생중계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인터넷 방송이 대세가 된 시대인 만큼 그럴 만하다.
안 그래도 끓어올랐던 관심이 더욱 높아져 간다.
이러저러 소문은 많이 퍼졌지만 실제로 보는 건 또 다르지 않은가?
화룡점정, 장본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한 때 롤챔스를 평정했던 콩샐러드 선수가 대체 어쩌다가 결승전을 탈락했는지……. 시청자분들도 의아할 테지만 제 개인적으로도 너무 궁금합니다!〉
〈운이 나빴습니다.〉
〈아~ 팀운이! 롤이 사실 팀운 게임 아니겠습니까? 솔로랭크 하시는 시청자분들은 공감을 분명 하실 거에요!〉
〈팀운이 아니라 상대가 좋지 않았습니다.〉
난데없는 폭탄 발언이 파문을 일으킨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