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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설의 재림-29화 (29/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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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참모총장배…… -->

입대 이후 개같이 구르며 열심히 군생활을 해나갔다.

훈련병부터 시작해 이등병, 일병, 상병, 마지막으로 병장까지.

그리고 현재 말년병장으로서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며 조국 통일의 역군이 됐다.

같은 복무신조 같은 군생활은 아니더라도 나름 정말로 잘하고 있다.

말년에 군챔스를 출전해 선전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무려 40여 사단과 여단이 출전화 대회로 치고 올라갔다.

이미 결승전 티켓을 끊어놓은 상태다.

심지어 쉽게 올라간 것도 아니다.

'콩샐러드가 호락호락한 상대일 리가 없잖아.'

돌이켜 생각해보면 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였다.

정말 각고의 노력 끝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다고 군생활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아~~~~."

어렸을 적 선풍기 앞에만 서면 아~ 재밌는 목소리가 나와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와 비슷하게 군대도 딱 하나 좋은 게 있다.

바로 아무 생각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다.

'작업할 때 꿀팁이지.'

땅 파고, 모래 포대 나르고, 땀 뻘뻘 흘리면 몸이 고돼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묵묵히 작업을 한다.

내 군생활 작업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소대장님."

"어, 왜 성훈아."

"제가 왜 작업을 해야 합니까?!"

어제 예선전을 끝내고 결승전 진출을 확정 지었다.

남은 기간은 조용히 꿀 좀 짭짭 빨면 되는 거잖아?

그렇다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작업을 시키고 앉았다.

"원래 군대가 그렇잖아. 설렁설렁 해."

"설렁설렁이고 뭐고 연습 안 합니까?"

"글쎄,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와야 하지. 일단 건의는 때렸는데 모르겠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나도 분대장을 해먹은 만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빌어먹을 군대식 일처리!'

계획성의 부족, 미흡한 현장 피드백.

결정권자가 저 하늘 위에 있기 때문이다.

계급 사회가 만들어낸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높으신 분들이 롤을 알겠는가?

육군참모총장이 롤을 정말 알고서 대회를 열었겠는가?

'그럴 리가 없지.'

그냥 축제 기획의 일환으로 열었을 뿐이다.

연습의 필요성을 전혀 모른다.

당장의 축제 진행이 훨씬 와닿을 것이다.

어? 작업 바쁘다고?

그럼 애들 최대한 보내!

그 애들에 내가 딸려 들어갔다.

'말년에 쓰레기를 줍다니! 남들 놀러 다니는 곳에서 청소를 하다니!'

지상군 페스티벌, 수많은 민간인들이 놀러 오는 축제다.

적당히 놀러 오는 게 아니라 무려 수만 명.

그만큼 쓰레기도 엄청나다.

엄청난 수준이 아니라 그냥 산더미다 산더미.

이곳저곳 대충 둘러만 봐도 굴러다닌다.

소대장님, 간부 인솔 하에 병사들이 줍고 있다.

"저쪽부터 저쪽까지만 줍고 잠깐 숨 좀 돌리자."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소대장님이 인솔이라 눈치 안 보고 대충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고생이 아니지 않다.

남들 노는 곳에서 일한다는 게 정신적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특히 나 같은 말년병장.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다.

차라리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낫지.

적당한 나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몸이 편해질수록 잡생각이 머릿속을 메우던 그때.

"어."

"어……."

어색하기 그지없는 대면을 하고 말았다.

우리 말고도 다른 병사들도 쓰레기를 줍는다.

탈락한 사단들은 하루 먼저 이미 하고 있었다.

그 팀들 중 하나를 만났는데 하필.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시죠?"

"예, 안녕하죠. 그런데 연습 안 하세요?"

"하지 말라고 하네요."

"그렇군요."

'…….'

제아무리 날고 기는 前프로게이머도 군대라는 사슬에는 벗어날 수 없나 보다.

쓰레기를 줍다가 인사하게 생겼다.

콩샐러드, 마침 같은 의자에 앉게 됐다.

"전부터 하나 궁금했는데요."

"말씀하세요."

"아이디가 왜 콩샐러드에요?"

"제가 콩샐러드를 좋아하세요."

'그렇구나~.'

별 의미 없이 물어본 질문이다.

말 한 마디 안 하고 있기에는 어색하지 않은가.

그리고 내심 궁금하기도 했는데 대답이 참 심플하다.

'그럼 김스낵을 좋아하면 킴스낵이 되는 건가? 무슨 아이디를 그딴 식으로 짓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나처럼 쓸데없이 사연이 있는 경우가 드문 거지.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르던 그때 소대장님이 난입했다.

"와, 진짜 콩샐러드다."

"이병 김상정!"

"아니, 예의 지키지 마요. 저 팬입니다 팬!"

'…….'

중위가 이등병한테 예의지키지 말라는 광경을 보고 있다.

나도 익히 들어온 사실이다.

우리 소대장님이 콩샐러드를 무척 좋아하신다.

'얘기도 많이 하셨지.'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지도 높은 프로 중 한 명이다.

특히 골수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

그도 그럴게 마이충의 아버지다.

"제가 AP마이에 진짜 반해가지고…… 실버였는데 그때 이후로 마이만 해서 골드 갔거든요? 만나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이병 김상정. 감사합니다."

물론 계급 높은 사람이 편하게 대하라고 한다고 진짜 편하게 대하기는 힘들다.

상병, 병장이면 모를까 일이등병.

잔뜩 군기가 잡혀있을 시기다.

'근데 마이 안 했으면 플래를 가지 않았을까?'

소대장이 롤충이다 보니 종종 같이 PC방을 간다.

그때마다 왜 거지 같은 챔피언만 골라서 하나 했더니…….

상관만 아니었으면 뒤통수 후려칠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괜찮으시면 사인 좀 가능할까요?"

"예, 가능합니다."

"하나 더. 친구도 팬이라서 하하."

ROTC, 학사 장교 출신들이 원래 좀 널널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누군가 본다면 군대 간부에 대한 환상이 다 깨지겠지.

"간부가 체통 좀 지키십시오. 애들 봅니다."

"야, 타부대 간부는 그냥 아저씨나 다름 없어. 그리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

"그럼 어제 하던가요 좀!"

"부끄럽잖아~."

중위가 이등병한테 사인 받는 건 안 부끄럽고?

기어코 두 번째 사인까지 소중하게 받아 앞주머니에 고이 접어 넣는다.

그렇게 20분, 덧없는 휴식 시간을 보내다 청소가 속행된다.

'자대가 아니라 일과도 못 재끼고 진짜.'

행보관과의 협상 결과, 실드가 닿을 수 있는 것도 당연히 자대 내에서다.

하다 못해 웬만한 대대 파견이면 또 모른다.

이곳 계룡대에는 한 가지 별명이 있다.

'별들의 고향…….'

장성급 장교가 무려 100여명이 넘는다.

너무 많아서 그 이하급한테는 경례도 안 한다더라.

나도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간부들이 발에 채인다.

최근 3일 동안 내가 지금까지 군생활 하면서 본 이상의 별 달린 분들을 보았다.

오늘만 해도 세 분이나 지나쳤다.

여기서 잘못 꿀 빨려고 하다가는 군생활이 그대로 수직 하강,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지막 날 전까지 쓰레기 신나게 줍게 생겼구만.'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

청소를 속행하기 위해 일어서려던 찰나.

시야에 의아한 반응 보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누구지?'

나를 보고 흠칫 놀란 듯 지들끼리 쑥덕거린다.

설마 어제 내 경기를 본 팬들인가?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의아하다.

민간인이 아니라 일반 병사.

탈락한 병사들은 작업 때문에 차출됐었다.

혹시 내 소문을 들은 어린 양들인가?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후였다.

* * *

〈떠들썩했던 지상군 페스티벌도 드디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장병들의 사기는 여전히 뜨거운데요…….〉

카메라의 앞에 선 기자가 촬영에 여념이 없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상파 채널.

CBS에서는 지상군 페스티벌 취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게 축제의 마지막 날, 더욱 성대하게 열리며 더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한국군과 미국군의 강렬한 기동 시범!

우리군의 기상과 멋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의장대 군악대 시범!

강인한 훈련으로 다져진 강한 전사들의 화려한 특공 무술 시범!

기타 등등 방송 분량 뽑을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다른 방송사들 또한 취재 경쟁이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약체라 할 수 있는 오프게임넷.

게임 방송사라는 입장상 본래라면 이런 축제와는 연관이 없다.

본래라면.

지상군 페스티벌 마지막 날에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존재한다.

"PD님 촬영팀 준비됐습니다!"

"경기장 자리는?"

"막내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막내 부리지 말고 솔선수범 움직여야 할 거 아니야!?"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오프게임넷의 촬영팀을 총괄하는 김PD의 고함에 남자 스태프가 깜짝 놀라 달려나간다.

신경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방송사로서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CBS, MBS, XBS 등 지상파 방송과는 다르다.

오프게임넷은 케이블 방송.

어디 가서 촬영 협조 구하기 힘든 입장이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기대치에 맞는 조건을 따낼 수 있었다.

'오늘이 정말로 승부수인데…….'

지나친 긴장에 김PD의 입술이 바싹 말라온다.

주류 방송사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찰영 협조를 얻어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맥을 통해 가까스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지인 중에 굉장히 높은 군 관계자가 계신다.

인생사, 특히 군대사에서는 인맥이 9할은 먹고 들어간다!

덕분에 오늘 방송은 최적의 조건에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특별 기획한 군챔스 3부작이 흥행 중이다.

이미 1부와 2부가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얻으며 방영되었다.

인터넷에서도 한창 화제가 되어 달아오르고 있다.

콩샐러드라는 흥행 보증 수표.

더불어 레전설이 흥행의 기폭제가 되어 터져버렸다.

"PD님!"

"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PD님을 찾으시는 거 같은데……."

다른 남자 스태프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손님이 온 모양.

드문 일은 아니지만 대체 누가?

남자 스태프의 거친 호흡이 채 진정되기도 전이었다.

"오~ 영환이. 오랜만이야?"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목소리다.

묘하게 가슴을 압박하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김PD가 갑작스레 예의를 차린다.

"아! 제가 먼저 찾아뵀어야 했는데 현장 관리만 하고 바로 가려던 게 그만……"

"괜찮아, 괜찮아! 한창 바쁠 나이지. 일은 잘되고 있고?"

"예,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육군참모총장 박충규.

전직 육군 대령이었던 아버지의 육사 동기다.

얼굴을 마주하기도 힘들 높은 사람의 안배로 이번 촬영에 힘이 붙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허허, 내 직함으로 열리는 대회인데 참관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육군참모총장배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다.

사실 허가만 했지 잘 모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열리는 행사가 어디 한두 군데겠는가?

절친의 부탁, 그 아들인 김PD의 강렬한 호소.

어떤 의미를 담은 대회인지는 대략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밑에 사람들이 보고서를 올린 거지만.

"영환이가 보기에 주목할 만한 선수가 누가 있겠나?"

"혹시 어떤 대회를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게임 대회라고 했었지. 나 어렸을 때도 오락실이 있었는데 말이야……."

1970년대의 오락실 풍경이라니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따질 것도 없지만 아마 당연히 다를 것이다.

한 가지 공감할 만한 구석은 있었다.

"어디까지 말했었지?"

"……동전 하나로 21연승 하신 부분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더 할 수 있었는데 친했던 동생이 하도 게임을 하고 싶어해서 양보했지. 내가 예나 지금이나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남자가 아닌가? 허허허!"

나루호도…… 소데스까.

굉장히 듣기 거북한 대화긴 하나 다행이다.

의외로 게임에 꽤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막상 대회가 진행됐는데 저게 대체 무슨 대회인가?

실망하시거나 마음에 안 들어하시면 곤욕스럽다.

김PD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대회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누구인가?"

"예, 제 개인적으로 전직 프로게이머였던 콩샐러드였는데……."

"고소할 것 같은 이름의 친구구만. 게임으로 돈도 벌고 시대가 많이 변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프로게이머가 뭔지도 알고 계셨다.

당연히 콩샐러드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냥 음식 이름이겠거니 맞장구.

더한 관심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랬는데…… 안타깝게도 떨어져서 결승전에는 진출을 못했습니다."

"허허, 잘한다는 친구가 어쩌다가?"

"레전설이라는 선수와 용호상박의 경기 끝에 패배했습니다."

"호오, 레전설?"

그런데 그 바라지도 않은 관심.

쓸데없이 의미심장하다.

군인들에게는 가히 달갑지 않다.

독특한 이름이 육군참모총장의 흥미를 끌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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