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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짬쥐라고 알아?"
"아, 알긴 아는데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
나의 깜짝 질문에 유리야가 당황해 한다.
굉장히 수줍은지 머리칼 끝을 배배 꼬며 눈을 돌린다.
'이 발랑 까진 녀석 같으니라고.'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지 짐작이 간다.
짐작이 가니까 한숨이 푹 새어 나온다.
그렇게 부끄부끄 하지 않아도 니가 생각하는 그런 발칙한 게 아니다
"니가 상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짬을 먹은 쥐를 짬쥐라고 하는 거야."
"저 아무것도 상상 안 했는데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수록 더욱 확신범이다.
어휴, 정말 요즘 애들은 모르는 게 없다.
상상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두렵다.
"왜 짬쥐라고 하냐면 짬을 먹은 동물은 덩치가 커지거든? 주먹만한 쥐가 손바닥만 해져서 그래."
"헤……."
"참고로 고양이가 짬을 먹으면 짬타이거라고 호랑이만 해져."
"헐, 진짜요?"
유리야 집에 가본 적은 없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걸로 안다.
사실 들을 것도 없었던 게 고양이 키우는 애들 특유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인지 고양이 얘기를 하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관심을 가진다.
'물론 당연히 호랑이 만큼 엄청 커지는 건 아니지만.'
부디 궁금하다고 니네집 고양이한테 짬을 먹이지는 않길 바란다.
아무튼 내가 얘를 데려가는 장소는 다름이 아니다.
이 녀석에게 짬을 한 번 먹이고 싶다.
'주워 먹는 것도 많으면서 빼빼 말라 가지고 진짜 보기 안 좋게."
본인이 말하기로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떠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60초반에 40초반의 몸무게.
그렇게 가벼우면 내가 마음 놓고 갈굴 수가 없다.
잘못하다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정상인 수준까지는 몸을 키워야 한다.
몸을 키우는 데에 직빵인 방법이다.
"근데 짬이 뭐에요?"
"모르고 떠든 거야? 군대 밥."
"지금 군대 밥 먹으러 가는 거에요? 저도 먹을 수 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못 먹는다.
군대가 은근히 쓸데없이 깐깐해서 그런 부분에서는 유도리가 없다.
물론 간부가 부탁하면 안되는 거 없겠지만 내가 소대장님을 데리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겨우 짬밥 정도로는 안돼.'
애초에 짬밥은 맛이 없다.
동물들이니까 그렇게 꾸역꾸역 먹는 거지.
아무리 군인들이라도 짬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평균적으로 짬밥은 질이 떨어진다.
100인분, 200인분도 아니고 300인분, 400인분, 500인분씩 만드는데 맛이 있을 수가 있나.
막말로 그냥 음식 형태를 한 사료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먹으러 가는 것은 짬밥이 아니라 맛있는 것이다.
맛있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다.
특히 나는 맛나게 잘한다.
"헉, 군부대 안쪽으로…… 가요?"
"그래야 짬밥을 먹지. 군부대 밖에서도 파는 식당이 있을 줄 알았냐?"
폐업하고 싶어서 난리가 난 것도 아닐 텐데 그런 식당이 있을 리가 없잖아.
소대장님을 통해 받은 면회 허락 서류.
도장이 꽝 찍혀있는 입출입 증명서를 통해 위병소 안쪽, 계룡대로 들어왔다.
발걸음을 옮기는 방향은 병사식당.
이 아니고 그 근처에 있는 장소다.
다름 아닌 충성클럽.
'흔히 PX로 알려져 있는 군대의 편의점이지.'
만찬이 기다린다.
* * *
한 템포 느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글로벌 사회 어쩌고저쩌고 해도 아니 뗀 굴뚝이 타오르진 않는다.
관람을 온 사람이라고 해봤자 수십 명.
심지어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은 카더라 통신이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곧바로 신나서 타자 칠 만큼 오늘만 사는 인간은 흔하겠는가?
설사 썰을 풀었다 해도 이야기가 퍼지는 데에는 또 시간이 걸린다.
로드 오브 로드 관련 커뮤니티들이 뒤늦게 떠들썩해진다.
근황을 알고 싶어도 올라오지 않던 콩샐러드의 근황.
─와 콩샐러드 진짜 뭐하고 사나 했는데
대회 나갔구나…… 군챔스
입대한 줄도 모르고 있었어
군대 생각해서 프로게이머 관둔 거였구나
└ㅇㅇ 입대한지 얼마 안됐어
└근데 아깝다. 그냥 군대 미루고 프로나 쭉 하지…….
글쓴이-그러게. 진짜 스타성도, 실력도 전부 겸비한 드문 인재였는데
시즌3, 전설의 한 페이지를 써내렸던 프로게이머다.
유별난 캐릭터성과 더불어 재밌는 게임.
단순히 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감한 시도로 인기를 모았다.
특히 AP마이를 퍼트린 장본인이라는 건 이미 너무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 그가 입대를 했다?
그리고 대회에 출전했다?
2013 지상군 페스티발 육군참모총장배 E-스포츠 로드 오브 로드 토너먼트 리그!
대체 뭐하는 대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소문이 안 날 수는 없다.
군대에서 정말 롤 대회를 한다니.
롤 대회인 롤챔스와 군대의 합성어, 군챔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롤유저들 사이에서 이미 상당한 화젯거리로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게 10월 중순, 한참 심심함이 가득 찬 시기다.
서머 시즌이 끝나고, 롤드컵도 끝나고, 윈터 시즌이 다가오기 직전이다.
밥 먹기 직전이 가장 배고픈 것처럼 대회 시작 전이 가장 심심하다.
그 심심함을 달래줄 군챔스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 : 롤드컵은 맡기겠다 테이커
나는 군챔스를 맡도록 하지……!
└아아,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안팎에서 국위선양 그저 눙물ㅠ.ㅠ
└군드컵도 나오면 재밌겠다
└군드컵은 ㅅㅂㅋㅋㅋ
벌써부터 드립이 튀어나오며 반쯤 축제 분위기다.
과거 그 인기가 현재의 테이커에 준했다.
유명 프로게이머였던 만큼 파급력도 대단하다.
그런 콩샐러드가 군챔스에 출전했다는 소식에 커뮤니티들이 들끓는다.
궁금했던 그의 근황과 군인들의 롤챔스에 대한 호기심.
하지만 의외로 경기 내용은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콩샐러드 군생활 개꿀이겠다
아직 이등병일 텐데 5박6일 받고 시작하네
자대에서도 선임들이 엄청 좋아할 테고
콩샐 선임들도 부럽다
같이 듀오도 해주고 롤도 가르쳐주겠지?
└??? : 야, 김이병 휴가 나가면 알제? 내 아이디 골드 찍어 놔라
글쓴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히려 고통일 수도ㅋㅋ
└그래도 그냥 군생활 하는 것보단 낫지. 근데 진짜 콩샐 선임이면 개재밌겠다
아무리 군대를 갔다고 한들 전직 프로게이머다.
심지어 가기 직전까지 폼을 유지한 상태였다.
사실상 지금도 실력은 현역 시절에 준하는 상태.
아마추어 리그보다 아래일 군챔스 따위로 성에 차겠는가?
아무리 롤이 팀 게임이다,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런 소리가 있어도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 날 때의 이야기다.
─양민학살 진짜 오지게 찍겠지?
휴가 따러 온 군인들 어리둥절잼ㅋㅋ
마이 같은 걸로 펜타킬 계속 해따버리고
롤챔스에서 못 날뛴 한을 제대로 풀겠네
└군챔스인 줄 알았는데 상대가 롤챔스였던 거임ㅋㅋ
└에이, 마이는 리메이크 돼서 안될 걸
└근데 마이 아니어도 콩샐은 다 잘해서ㅋㅋ
└난 진짜 양학 당해도 영광이니 한 번만 프로랑 게임 해보고 싶다……
평범한 군인들에게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님들 나 다이아임!
응 상대 챌린저 前프로게이머~.
티어 자랑하러 갔다가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맞고 온다.
그런 군인들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구경하는 입장에선 오히려 꿀잼.
일반인 공개는 언제부터 함?
벌써부터 관심이 폭죽하고 있다.
그 과열된 관심에 끼얹어지는 찬물.
오프게임넷 특집! 3부작
1부 군챔스- 콩샐러드의 역습
2부 대격돌- 전설의 재림!
3부 미정
처음에는 찬물이 아니라 기름인 줄 알았다.
캬, 이걸 오프게임넷이 캐치하네!
지상군 페스티벌이 저 멀리 충남, 계룡시에 열리는 만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여건의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방송사가 중계를 해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허군 열사 사건 이후 오프게임넷 실망이었는데
이번에 방송 아이템 엄청 잘 잡았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네
2부 전설의 재림 뭔지 기대된다
└난 3부 미정이 제일 기대됨
글쓴이-미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인데?
└내 여친 이름이 미정이었음ㅅㄱ
└정신승리 오지고요~
1부로 심심하게 끝내는 게 아니라 3부작.
콩샐러드가 우승하는 과정을 낱낱이 볼 수 있겠구나.
기대하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속보]콩샐러드 결승 직전에 광탈!
예선전 결승전에서 떨어짐ㅋㅋㅋ
지금 현장 분위기 장난 아니다
구경해야 돼서 추후 보도함
└개소리 오졌죠?
└그럴 리가 있나ㅋ
└저급 어그로네ㅉㅉ
그런데 주인공이어야 할 콩샐러드가 탈락을 한다는 루머가 올라왔다?
당일 현장에 갔다는 관중 한 명이 글을 썼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그로인 줄 알았다.
아니, 어그로도 그럴 듯하게 써야 믿지
어디서 관심 한 번 못 받아본 찌끄레기가 까불고 있어.
하나둘, 비슷한 증언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겉잡을 수 없다.
주인공이 떨어졌는데 왜 3부작이야?
떨어진 벼락은 한 줄기가 아니었다.
두 번째 벼락이 커뮤니티를 휩쓴다.
* * *
"헐, 팬티 브라자다."
"설마 소문의? 콩샐러드를 꺾었다는 그 사단?"
사단 마크만 보여도 관심을 받는 몸이 됐다.
유리야와 도착한 영내 PX의 부지.
지나가던 군인들이 나를 알아본다.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설마가 맞았다.
소문 퍼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콩샐러드를 꺾었다는 사실이 이미 계룡대 기간병들에게 파다하게 알려진 모양이다.
"야, 유리야."
"네."
"봤냐? 오빠가 무려 이 정도의 사람이다."
살짝 우쭐해져도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솔직히 이런 사소한 걸로 유세 떠는 타입은 아닌데~.
원래 남자는 이따금 잘난 척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특히 이렇게 여자를 끼고 다닐 때.
"근데 여자 존나 아깝다."
"개시발 오징어 새끼 딱 봐도 게임만 잘하게 생겨 가지고."
'…….'
니들은 잘생기면 얼마나 잘생겼다고!
내가 뒷담 까는 건 절대 놓치지 않고 기억한다.
옆에서 중얼거리며 지나가던 기간병들 이름 다 외워 놨다.
'전역 무조건 내가 먼저 하거든? 집 가서 반드시 긁어주마.'
아무튼 유리야를 데리고 도착한 장소는 PX다.
물론 군인들 드글대는 대대 내의 PX가 아니다.
영내 PX, 군부대 면회 장소 근처에 있는 PX로 군인 가족들도 많이 이용해 민간인이 있는 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리야가 상판때기가 나름 괜찮은 아이다.
그래픽 카드가 암드라서 그렇지.
여자에 환장한 군인들의 눈초리가 몰리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래픽 카드가 성능이듯, 사람은 마음이야. 겉포장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면 안돼.'
나도 한 번 판단했다가 군생활 최대의 미스로 자리 잡은 흑역사가 있다.
그래도 오늘 만큼은 안 갈구기로 했다.
이렇듯 먹을 것도 사주기로 했다.
"근데 팬티 브라자가 뭐에요?"
"니가 입고 있는 거."
"우쒸…… 저도 그런 의미 아닌 것 정도는 눈치 챘거든요? 경기 할 때도 사람들이 말한 거 들었거든요?!"
'오~.'
유리야의 눈치가 늘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놀리는 걸 그만둘 생각은 없다.
"설마 안 입었냐 근데?"
"입고 왔어요!"
"무슨 색?"
"분홍…… 아니, 말 돌리지 마요!"
분홍색인가 보다.
어울리는 색깔이지만 알고 싶지 않은 정보다.
유리야한테 섹드립을 쳐봤자 재미가 없다.
오른 팔뚝을 돌려 사단 마크를 보여준다.
"봐봐. 이게 뭘로 보여?"
"하트 아니에요?"
"그래,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근데 일부 몰상식한 무뢰배들이 이걸 반반으로 나눠서 팬티, 브라자로 본다는 거야."
제30기계화보병사단 마크에 얽힌 슬픈 전설이다.
하도 입에 착착 감겨서 나도 가끔 그렇게 부를 때가 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PX 내부의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먹고 싶은 대로 골라."
"……뭘 골라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냉동고 안쪽에 맛있는 음식들이 한가득 보인다.
그런데 무슨 음식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모를 만도 하다.
나도 선임이 사주기 전까지는 감도 안 잡혔다.
내가 유리야에게 먹이고자 하는 음식은 다름이 아니다.
냉동, 군인들의 일용할 양식.
짬밥보다 더한 몸무게를 늘리는 마술과도 같은 식품이다.
"그럼 내가 맛있는 걸로 고를게. 불만 없지?"
"불만은 없는데 왜 맛있는 음식점들 놔두고 굳이……."
입이 대빨 나온 게 딱 봐도 불만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근데 착각해서는 안된다.
절대 돈이 아까워서 PX에 온 게 아니다.
돈이 아까웠으면 애초에 유리야한테 얻어먹었겠지.
'사람의 인생은 냉동을 먹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내가 방금 만든 명언이다.
그 증명은 지금부터 하겠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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